여로보암 2 세 |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47)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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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4(수) 랜초한인교회 아침 온라인예배 월-토 7:45AM
정용암 목사님과 함께 하는 열왕기하 강해설교
본문: 열왕기하 14장 23-29절
설교: 정용암 목사
www.ranch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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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 나무위키

북이스라엘 왕국의 제13대 왕. 아버지는 요아스, 할아버지는 여호아하즈이다. 그 이름답게 북이스라엘 왕국을 죄악으로 이끈 제 2의 여로보암 1세답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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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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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로보암 2세(재위 기원전 790년경-750년경)는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13대 왕으로 구약성경 열왕기하에서는 그도 어느 이스라엘 왕과 다른 바 없이 죄악을 저질렀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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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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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의 황금시대 – 뉴스앤조이

황금시대, 여로보암 2세 (기원전 787~기원전 748). 경제적 풍요가 여호와 신앙에 도움이 될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로보암 2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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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4/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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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와 그 시대의 선지자들 (왕하 14:23-29)

여로보암 2세는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 아주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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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5/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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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나의 하나님 (5) : “번영의 명암 여로보암 2세”

오늘 설교 서두에 꽤 길게 미국과 한국 대통령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북 왕국 이스라엘 13대 왕 여로보암 2세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서는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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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jpc.org

Date Published: 3/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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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 스톤위키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요아스(북이스라엘왕)의 아들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전성기로, 하맛에서부터 아라바까지 영토롤 넓혔다. 왕하 14:25 · 이스라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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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tonecry.org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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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 Lazy guy의 이야기 창고

여로보암 2세는 요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열세 번째 왕이며 BC 8세기에 41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유다의 왕 아마샤(왕하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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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azy-guy.tistory.com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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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 (왕하14:23-29)

(1) 하나님은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 –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관자시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와 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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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spel323.com

Date Published: 8/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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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 요다위키

Jeroboam II (Hebrew: יָרָבְעָם, Yāroḇə’ām; Greek: Ἱεροβοάμ; Latin:히에로보암/제로보암(Jeroboam)은 기원전 8세기에 그가 41년간 통치했던 고대 이스라엘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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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da.wiki

Date Published: 6/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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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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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여로보암 2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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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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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로보암 2세(재위 기원전 790년경-750년경)는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13대 왕으로 구약성경 열왕기하에서는 그도 어느 이스라엘 왕과 다른 바 없이 죄악을 저질렀다고 기록한다.

전왕 여호아스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 큰 죄악들을 저질렀다. 그의 재위기 동안의 업적은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의 영토를 되찾은 것뿐이었다.

여로보암 2세의 황금시대

황금시대, 여로보암 2세

(기원전 787~기원전 748)

경제적 풍요가 여호와 신앙에 도움이 될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로보암 2세는 확실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내외적으로 황금시대를 열었는데, 이스라엘은 속에서부터 곪아 가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습니다(왕하 14:23). 열왕기하 14장 25절에 따르면, 요아스 뒤를 이어 왕이 된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습니다. ‘하맛 어귀’는 레바논과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에 있는 베카 계곡입니다. 이 회랑 지대로 진입하는 남쪽 입구는 단(Dan) 성읍 근처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라바 바다’는 사해死海입니다. 여로보암 2세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아모스서도 여로보암이 팔레스타인 지역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고 증언합니다(암 6:13-14).

열왕기하 14장 23-29절에 따르면, 아밋대의 아들 요나(요나서 주인공)는 이스라엘이 잃었던 땅을 되찾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 14:25).”

수십 년 동안 남부 레반트 지역을 호령했던 다메섹(아시리아에 의해 기원전 732년 멸망)의 힘이 약해졌고, 아시리아의 공백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8세기 초반에 해외 원정 능력을 상실했고, 내부에서는 왕이 행사할 권력이 지방 관료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지방 총독들은 왕에게 형식적으로 충성을 서약했지만, 상당히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라르투(Urartu, 우랄투)가 시리아 북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아시리아 지중해 무역로가 위협받게 됩니다. 또한 기원전 762년~기원전 759년, 많은 도시가 왕의 권력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 디글랏 빌레셋(Tiglath-pileser) 3세 때부터 다시 왕권이 강해졌습니다. 아시리아는 그의 1차 서부 원정(기원전 743~기원전 738)이 일어날 때까지는 이스라엘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리아와 다메섹 상황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블레셋 땅에서 북쪽으로 갈릴리에 이르는 서부 해안 도로 역시 하사엘이 빼앗아 갔지만, 여로보암 2세 때는 이스라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어느 이스라엘 왕보다도 오래 통치했고 북왕국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 시기를 황금시대 또는 은빛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는 증조부 예후 이후로 내려온 친-아시리아 정책을 이어 갔습니다. 아시리아의 공백을 틈타 영토를 확장하고 광범위한 국제 무역을 펼쳤습니다.

열왕기서가 언급하는 여로보암 이야기는 매우 짧고, 평가 또한 부정적입니다(왕하 14:23-29). 이는 신명기 사가가 여로보암 2세 업적에 대한 주요 기준을 북이스라엘 멸망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여로보암 1세(느밧의 아들)의 모든 죄를 그대로 물려받은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하 17:22-23).”

이스라엘 영토 회복과 국경 확장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허락이 있었다고 서술합니다. 여로보암 2세가 부족했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 일을 할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보시고 그가 이런 일을 이루도록 허락하셨다는 말입니다(왕하 14:26).

영토 회복이 신앙 회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 당시 신앙은 뒤틀려진 사회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마지막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 14:28-29).”

여로보암 2세에 대한

고고학 기록

이스라엘 유적을 보면 기원전 8세기 전반은 새로운 도시 건설이 아닌, 기존의 도시를 수리·정비·확장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작은 비非도회적 유적들에서 기존 도시의 확장을 암시하는 증거(성벽 확장, 주거지가 성벽 너머 주변 시골로 퍼지는 현상)에 근거해 국가 전반적으로 인구가 상당히 증가했다고 추정합니다.

여로보암 2세 당시 특징적 고고학 유물은 기원전 8세기 고고학층에서 발견한 사치품들입니다. 특히 사마리아에서 발견된 정교하게 조각한 상아 제품은 당시 교역이 활발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암 6:4-6).”

상아 공예품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나타납니다. 므깃도에서 발견한 상아 세공품은 페니키아와 시리아 북부 영향을 받은 예술 형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페니키아와 활발하게 접촉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왕궁 유적에서 사마리아 상아로 알려진 상아 공예품 파편 500여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극도의 사회적 계층화를 암시합니다. 사자, 소, 스핑크스, 호루스(Horus), 라(Ra), 이시스(Isis), 오시리스(Osiris)와 같은 이집트 신들 이미지를 포함하는 공예품입니다. 특별히 스핑크스는 가장 많았습니다. 페니키아미술로 흔히 볼 수 있는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보는 여인의 모습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귀족들이 외국 종교와 문화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금석학적 기록을 보면, 사마리아의 생활을 잘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초기와 중기 것으로 추정되는 히브리어 인장 가운데 눈여겨볼 물건은 여로보암의 종 셰마(Shema)의 인장으로, 1904년 므깃도에서 발견됐습니다. 므깃도에는 돌기둥이 늘어선 복합건물 두 채가 있습니다. 이 복합건물은 마구간으로 볼 수 있는데, 아합이나 솔로몬 또는 여로보암 2세가 건설의 주체로 물망에 올랐습니다. 정확한 건설 시기는 여전히 논란 중에 있습니다. 여기서 발견된 인장 주인 셰마는 사마리아 정부 고위 관리인 듯합니다.

이 시기 혹은 다른 시기를 놓고 보더라도, 북이스라엘에서 나온 히브리어 명문 가운데 가장 방대한 자료는 사마리아 도기 조각들(Samaria ostraca)입니다. 1910년 사마리아 왕궁에서 질그릇 조각을 100개 이상 발견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없지만, 적혀 있는 연대를 보면 도기 조각들이 요아스나 요아스 아들 여로보암 2세 때에 나온 물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기 조각들은 므낫세 산지에 있던 농장들에서 다양한 관리들에게 보내던 물품 선적을 알리는 행정 문서입니다. 이는 거대 농장이 사마리아 왕실의 활동을 후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이 도편 자료에는 아모스 2장 6-8절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한 곳 이상 지역, 한 개 이상 구역에서 선적된 물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어떻게 세습 재산을 넘어, 생산과 수입의 공급처를 갖게 되었을까요?

또 눈여겨볼 부분은 사마리아 도기 조각들에 여호와와 바알이라는 신명 요소를 포함하는 이름이 등장하는 비율입니다. 비율은 11:7로, 여호와뿐 아니라 바알 이름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는 바알을 많이 섬기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이 통계가 이스라엘 종교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려 주는지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알’이라는 이름이, 사마리아 근교에 토지를 소유하던 페니키아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님’을 뜻하는 ‘바알'(Baal)을 여호와의 별칭으로 허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알 수 있듯, 당시 바알을 신神으로 숭배했다고 볼 정황은 충분합니다. 당시 바알 숭배가 만연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호세아 11:2).”

안타깝게도 여로보암 2세 때는 정치·경제적 풍요가 여호와 신앙에 도리어 방해되는 시기였습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여로보암 2세와 그 시대의 선지자들 (왕하 14:23-29)

2016년 6월 29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6 ✦

“여로보암 2세와 그 시대의 선지자들”

(열왕기하 14장 23-29절)

1.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여로보암 2 세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유다의 아마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아마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여로보암이 왕위에 오릅니다(23). 바로 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하는 여로보암 2세입니다. 그는 41년 동안 다스리면서 이스라엘을 태양처럼 빛나는 제국의 자리에 올려놓았으며, 그의 리더십 아래 이스라엘은 아주 넓게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5절)

남쪽으로는 홍해의 아카바 만에서부터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요단 동편까지 원래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곳을 모조리 회복한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이렇게 마음껏 영토 확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복잡한 국제 정세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오랫동안 북이스라엘을 압박하던 아람이 신흥 강대국인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수도 다메섹이 점령당하면서 비틀거렸습니다. 끊임없이 국력을 키우며 기회를 엿보던 여로보암 2세는 바로 그 틈을 타 재빠르게 군대를 움직여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해 버린 것입니다.

영토가 커지니까 상대적으로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넓은 영토에서 걷힌 세금과 여러 자원들을 활용하여 무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라의 경제가 윤택해지면서 북이스라엘은 부와 힘을 동시에 소유한 대제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뤄낸 여로보암 2세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같은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여로보암 2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26-27절)

과거의 이스라엘은 극심한 고난에 처했는데도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힘든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여로보암이라는 지도자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여로보암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다 하시고 여로보암에게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가 뛰어난 리더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 왕을 그 시대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41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별 쿠데타 없이 나라를 통치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가 다스리는 기간 동안 라이벌인 아람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꼼짝 못 하는 국제 정세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로보암이 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2세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국제 정세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운이 좋고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평가합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4절)

여로보암 2세는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 아주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 1세의 죄를 그대로 본받아 우상 숭배를 따라한 악한 왕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로보암은 성공에 취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입니다. 아니,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틀어서도 아주 뛰어난 왕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좋은 말로 그를 칭찬하며 그를 높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는 아주 단순하고 냉혹합니다. 그는 악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끝냅니다. “악했다.”

그토록 놀라운 업적을 이룬 여로보암 2세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딱 일곱 절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면 세상의 역사책에 얼마나 길게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실제 역사에도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다른 왕들과 똑같이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악한 왕이었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최고의 리더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하고 치켜세웁니다.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도 그런 평가를 그들이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역사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인기를 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엄청나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다고 평가를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무엇을 이루기 원하는가? 또 왜 그것을 원하는가? 이런 것을 늘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점검하면서 살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다는 평가를 듣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어도 천국 갈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생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하면 그냥 끝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악의 재앙입니다.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대는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백성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았겠습니까? 태평성대였고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던 시절이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영적으로는 역대 왕들의 시절과 마찬가지로 계속 암흑기였습니다. 막강해진 국력 때문에 오히려 교만해져서, 부유해진 국민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해버렸습니다.

참 이상한 게, 사람은 일이 잘 풀리고 부자가 되고 잘 살게 되면 좋아질 것 같아도 이상하게 타락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맨해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다수가 마약 파티를 상습적으로 즐깁니다. 성적인 타락은 말할 것도 없고, 이상한 클럽들도 많습니다.

가난할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살만 하면 이상하게 눈이 그런 데로 돌아갑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이스라엘도 똑같았습니다. 외부적으로 강해진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급속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것은 얼마 안 있어 닥쳐올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 시대로부터 불과 30년 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을 앗수르(역사의 앗시리아)가 압박해줌으로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시대에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인데, 바로 그 앗수르의 손에 의해 멸망당할 줄은 이때 여로보암 2세도, 이스라엘의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 그토록 부강했는데, 군사적으로도 강하고 돈도 많고 다들 잘 살았는데, 불과 30년 후에 그 강한 나라가 그대로 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30년 전이면 제가 이민 온 때입니다. 저는 그때 기억이 굉장히 생생합니다. 그런데 겨우 그 사이에 망한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부유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마음이 풀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엄청난 재앙이 금방 몰려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지금 힘들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바꿔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금 힘들 때 우리는 잘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잘 풀리고 부유해지는 날이 올 때 바로 타락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타락했습니까? 잘 될 때를 대비하지 않았던 겁니다. 대충 우상 숭배하며 살다가, 잘되니까 더 타락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힘들 때 미리 잘될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고 주님 앞에서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2.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

1) 요나 (활동연대: BC 784-772)

요나서는 길이가 짧지만 하늘과 땅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과 그 안에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사실 <피노키오>나 <백경 모비 딕> 같은 문학작품도 요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땄습니다. 그런데 요나서는 단지 재미를 넘어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크고 끈질긴 것인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못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도구로 쓰십니다. 때로는 이 사명이 싫어서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최대한 멀리 도망쳐 보려고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쓰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요나서입니다.

요나서 자체만 보면 요나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열왕기하(14:25) 등을 보면, 요나가 자신의 시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가 활동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 때였는데, 요나는 영적지도자로서 정치지도자인 여로보암 2세와 절묘한 팀워크를 이루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늘 재앙과 회개만을 예언해야 했던 예레미야와는 달리, 요나는 계속 여로보암 왕의 승리를 예언했고, 그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져 백성들이 번영을 누렸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민족을 다시 일으키시는 도구로 쓰임 받는 데 신이 났을 겁니다. 우리는 요나서 1장에서 도망부터 가는 요나를 보기 때문에 그를 신통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 전까지는 최소한 요나가 아주 충성스럽고 열정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면서, 요나의 인생이 바뀝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욘 1:2)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한 바퀴 도는 데 걸어서 3일이나 걸리는 “큰 성읍”이었으며, 초강대국인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지금의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 니느웨는 30미터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으며, 성벽 위로 마차 3대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성벽이 두꺼웠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는 “악독”한 성읍이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과 군사력으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포로들에게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앗수르 니느웨 사람들의 불의와 우상 숭배와 잔인한 폭력을 더 이상 그냥 두지 않으시고, 그 성을 심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한 번 더 회개의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으시고, 요나를 보내셔서 심판의 메시지를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예언자를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에게 보내어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 일은 요나서가 유일합니다. 그러므로 요나서는 선교적으로 볼 때 아주 독특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요나서를 신약의 마태복음 28:19-20에 나오는 지상대명령(대사명)과 비교되는 책으로 높게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 단순히 그들에게만 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요나서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강한 군사적 힘으로 북이스라엘을 공격한 대적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지만, 자기 조국을 짓밟은 앗수르에 가서 회개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하라니, 요나는 속이 뒤틀렸습니다. 요나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 아니라,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를 니느웨로 보내시는지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문제였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실 것을 생각하니까, 그것이 너무 싫었던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번영과 부흥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는데 신이 아지 않으면 이상한 일입니다. 이처럼 누가 봐도 보람된 일, 신나는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면 우리도 요나처럼 신나게 순종하며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감정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일을 하나님이 시키실 때, 니느웨 같이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품으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면서도 싫은 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하나님이니까 대 놓고 싫다는 말은 못하고, 요나처럼 도망가 버리는 겁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도 그 반대편인 다시스(스페인 남부 지브랄타 Gibraltar 부근의 도시)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결국 물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3일간 들어가게 되고, 회개한 뒤 다시 나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앗수르의 왕부터 시작해서 12만이나 되는 니느웨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 사람들도 이 정도의 회개 운동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그토록 악한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당시 앗수르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주변 나라들을 점령하던 앗수르 군대가, 북쪽에서 일어난 신흥제국인 아라랏의 공격을 받아 참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무서운 전염병과 흉년과 기근이 겹쳐 앗수르 제국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때 앗수르에서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지는 큰 일식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과학적으로 그것을 다 알지만, 당시 별들과 태양을 숭배하던 앗수르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때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당시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은 이러한 여러 재난으로 인해 가난하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만큼 낮아지고 연해진 마음 밭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와 자연현상까지 주관하시면서 복음 전파의 타이밍을 맞추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행했던 악한 죄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 이들은 다시 타락했고, 결국 요나의 조국 북이스라엘은 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요나에게, 또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2) 아모스 (활동연대: BC 767-755)

아모스는 원래 선지자가 아니었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농부이자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남 유다 사람이었지만, 여로보암 2세 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암 1:1)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로보암 2세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정말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성공과 번영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강해진 국력으로 부유해지고 안일해진 이스라엘의 왕족과 상류층은 급격히 타락했고, 그에 따라 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부정부패로 가득했습니다. 상도덕이 무너지고 성적으로 너무나 문란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 타락도 극에 달하여,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마음은 이미 부패해서 혼합적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가서는 사기를 치고, 인신매매에 가담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인과 관계를 맺는 죄를 짓는, 위선적 신앙인들로 넘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사를 안 드린 게 아니라 제사를 지내고 나가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북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억압을 받았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널리 퍼진 사회였습니다.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백성들을 이곳저곳에서 보면서, 아모스는 피눈물을 쏟으며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타락을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강같이 흘려보내라고 외쳤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버리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했습니다.

아모스서는 선지서들 중에서 사회정의 문제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한 책입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암 5:21-24, 새)

이것을 요즘 말로 하면, “너희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나는 기쁘지 않다. 내게 너희가 아무리 헌금을 드려도 나는 안 받겠다. 역겹다. 찬양하는 것 집어치워라!”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다만 공의가 물처럼,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여러분, 공의와 정의가 무엇이겠습니까? 약한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을 말합니다.

아모스서를 읽어보면, 참 신앙이란 복만 누리는 게 아니라 책임을 행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여러분,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찬양하고 다 멋지게 했는데, 나가서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살인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지만, 나가서 전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면 하나님은 “역겹다. 그만 해라. 집어치워라.”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 즉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또 호세아와 아모스의 예언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회복의 소망을 선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의 잔인한 공격이 가장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암 8:11, 새)

하나님의 말씀을 그토록 듣기 싫어하던 그들에게 오는 가장 무서운 저주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거두어버리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부담이 되더라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3) 호세아 (활동연대: BC 755-714)

호세아는 무려 4명의 유다 왕들과 2명의 이스라엘 왕들이 다스리던 긴 시간 동안 활동한 선지자(예언자)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호 1:1)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호세아는 분명히 북이스라엘 사람인데, 오히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남 유다의 왕들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있어서 ‘남북관계’라고 하고 북한은 ‘북남관계’라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한국은 ‘한일전’이라고 하고 일본은 ‘일한전’이라고 합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경기를 하면 연대는 ‘연고전’이라고 하고 고대는 ‘고연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지금도 순서가 중요하고 특히 성경에서는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호세아는 왜 당시 대립관계에 있던 유다 왕들을 먼저 소개한 것입니까? 먼저 소개했다는 것은 자기 조국 북이스라엘의 왕들보다 라이벌인 유다의 왕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말이 됩니다. 왜 그랬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북이스라엘에는 계속해서 무력 쿠데타가 일어나 왕조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왕권을 빼앗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숙청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전형적인 인간의 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남 유다는 달랐습니다. 유다의 리더들과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타락한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윗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왕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 세워진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라가 타락하고 정치적인 파워게임이 벌어지곤 했어도, 감히 왕권을 빼앗을 마음을 품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백성들의 분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호세아는 칼과 창으로 왕위에 앉은 자기 조국 이스라엘의 왕들보다 유다의 왕들의 권위를 더 인정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존경입니다.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더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에서 드려지는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교제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호세아 자신이 태어난 조국은 북이스라엘이었지만, 영적으로 사모하는 마음의 조국은 유다였던 셈입니다.

그러한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하셨는데, 문제는 고멜이 엄청나게 바람기가 많은 여자였다는 데 있습니다. 자녀 셋을 낳고도 끊임없이 집을 나가서 다른 남자들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보통 남편 같으면 눈이 뒤집혀서 당장 잡아와 돌로 쳐 죽였을 텐데, 하나님은 호세아가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와 살게 하십니다. 그것도 비싼 값을 치르고 말입니다. 또 그렇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호세아는 결국 참다못해,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런 혐오스런 일을 시키실 수 있느냐고 하며 하나님께 따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로 그것이 끊임없이 나를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곧 신약의 ‘예수’와 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는 같은 이름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길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소리 높여 부르짖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호세아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또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호세아는 자기 눈으로 보고 맙니다. 그러나 비록 죄로 인하여 멸망당한 이스라엘이었어도, 하나님은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 2:23)

[ 나가는 말 ]

우리는 바로 이 시대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되겠고,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바로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진정한 부흥의 불길이 우리에게서 일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그러한 주님의 종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회개하고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무너진 인생이라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소망을 우리 자신이 붙들 뿐 아니라 그것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5) : “번영의 명암 여로보암 2세”

❚ 지도자 평가의 기준

미국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대통령의 날’이라는 공휴일이 있습니다. 매년 2월 세 번째 월요일이 대통령의 날입니다. 미국 의회가 전임 대통령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대통령의 날’을 국가 공휴일로 정한 것이지요. 아마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날’을 정해 공휴일로 하자고 하면 무슨 소리냐, 뭔 특혜냐, 데모하고 난리가 날 걸요? 그런데 몇 해 전 미국 워싱턴의 브루킹스 연구소라는 곳에서 ‘대통령의 날’을 맞아 ‘미국 정치학회’ 소속 회원 391명을 대상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습니다. 지금 재임 중인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아직 재임 중이고 임기를 마치지 않았으니 평가를 하기 어렵겠지요.) 44명의 대통령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한 결과 최고의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합중국의 분리를 막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사진1)이었고, 최악의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의 전임자인 제임스 뷰캐넌(사진2)(15대)이었습니다. 100점 만점의 항목별 조사 결과, 링컨은 평균 점수 95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조지 워싱턴(1대), 3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순입니다.

이 결과를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이 평가의 기준이 뭘까 궁금했습니다. 미국이 가장 잘 살고 부강하던 시대의 대통령? 아니더군요. 미국의 영토가 가장 확장되고 넓어진 전성기의 대통령? 아닙니다. 흑인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1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초대 대통령 워싱턴 2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즈벨트 3위, 다 전쟁에 관련된 대통령들이 1,2,3위인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게 아니라 이들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으며, 또 도덕성은 얼마나 높았으며, 무엇보다 얼마나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단연 1위는 링컨 대통령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두 번째 생각은 과연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이런 조사를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누가 1위가 될까요? 나라를 건국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일까요? 아니면 누가 뭐라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일까요? 최초의 문민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일까요?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김대중 대통령일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이 뭐냐가 중요할 겁니다. “어느 대통령 때 나라가 가장 부강하고 경제성장을 이루었냐?”를 기준으로 본다면 답은 분명하지요.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무슨 소리?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재를 벗어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룬 대통령이다!” 한다면 이 또한 답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식으로 그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으며, 도덕성은 얼마나 높았으며, 무엇보다 얼마나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느냐를 기준으로 본다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높은 점수를 받은 대통령이 없다는 겁니다. 아마 이게 우리나라 역사의 불행 중 하나가 아닐까요? 미국처럼 ‘전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하면 ‘링컨’ 하고 딱 떠오르는 대통령, 능력만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은 대통령이 별로 없다는 이 사실,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대한민국에도 이런 대통령이 꼭 나왔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 북 왕국 이스라엘 13대 왕 여로보암 2세

오늘 설교 서두에 꽤 길게 미국과 한국 대통령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북 왕국 이스라엘 13대 왕 여로보암 2세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서는 그의 이름을 그냥 ‘여로보암’이라고 소개합니다. 지난주일 설교 때 이스라엘 남북분단의 주범으로 소개한 여로보암, 나라를 남북으로 두 쪽 내고 북 왕국을 세워 초대 임금이 된 여로보암과 이름이 똑같지요. 그래서 성경에는 그냥 ‘여로보암’이라고 나오지만 학자들이 이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여로보암 1세’와 ‘여로보암 2세’라고 부릅니다.

여로보암 2세는 아버지 요아스 왕의 뒤를 이은 제13대 왕으로 나라를 41년 동안이나 통치하는데 특이한 점은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이 “백성이 번성케 되기를 원하다”는 뜻인 것처럼 그 통치 기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고의 성장과 번영을 이루었다는 겁니다. 그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전성기, 황금기를 이룬 왕이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이웃에는 수리아(=아람, 오늘날 시리아)라는 강대국이 있어서 늘 북 왕국을 압박하고 많은 영토를 빼앗았는데 여로보암 2세가 왕위에 올라 수리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되찾습니다. 또한 남 왕국 유다도 공격해 남방으로도 영토를 넓히는 등 북 왕국 역사 상 최대의 영토를 확장하게 되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4:25은 이렇게 말씀한 겁니다. 같이 읽읍시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유명한 선지자 요나가 바로 이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했는데 그 예언처럼 여로보암 2세는 북 왕국의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확장시킵니다. ‘하맛’이라는 곳은 (사진3)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저 북쪽에 위치한 상업적으로 번성한 요충지인데, 다윗 왕 때 잠시 점령한 적이 있을 뿐 늘 이웃나라 수리아의 영토였지요. 따라서 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라는 표현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처럼, 여로보암 2세 때 북 왕국 이스라엘이 다윗 솔로몬 최고 전성기에 맞먹는 최대의 영토를 차지했다는 겁니다. 대단한 업적이지요. 이 하나만 가지고도 여로보암 2세는 최고의 치적을 이룬 왕으로 평가 받을 만합니다.

영토뿐만 아니에요. 여로보암 2세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전성기를 이룬 왕이었습니다. 우리도 행복한 상상 한 번 해봅시다. 만약 우리나라에 어떤 대통령이 취임하더니 드디어 남북통일을 이루었다? 그것만으로도 노벨 평화상 타고도 남을 만하고 역사 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텐데 게다가 재임기간에 경제를 최고로 성장시켜 부강한 나라를 이루고, 외교도 제일 잘 해서 대한민국이 온 세계 위에 우뚝 서고, 문화도 최고 전성기를 이루었다 한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대통령 아닙니까? 아마 온 국민이 그를 추대해 임기 상관없이 종신직으로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 할지 모릅니다. 저라도 그런 대통령 있으면 제발 평생 대통령 해달라고 애원할 겁니다.

자, 이런 기준으로만 본다면 여로보암 2세는 최고의 왕이고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가장 유능하고 전무후무한 큰 번영을 이룬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이미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 2세의 치적과 공로에 대해서 소개하면서도 참 이상하게도 그의 엄청난 공적에 비해 그 분량을 너무 적게 할애하고 있습니다. 23절부터 29절까지 불과 일곱 절에 불과합니다. 그의 공적을 다 적으려면 7절 가지고 되겠습니까? 70절, 아니 70장을 써도 부족할 겁니다. 그런데 불과 7절, 그나마 그의 공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했다.”고 딱 한 마디만 소개하고 있는 반면, 그의 실정(失政), 그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타를 한 방 먹이고 있습니다. 24절 말씀을 읽읍시다.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지난주일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런 말씀 드렸지요? 여로보암은 나라를 두 쪽 낸 죄뿐 아니라 더 큰 죄, 즉 나라를 처음 시작하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우상숭배 국가를 만든 죄가 있다고요. 백성들이 남 왕국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하러 가는 게 너무 싫어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라고 했지요?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우상숭배 국가로 시작한 초대 왕 여로보암,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다 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간 겁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여로보암 2세 역시 초대 왕 여로보암과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그 길을, 그 죄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 2세의 41년간의 통치를 딱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한 것 아닙니까?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한 마디로 여로보암 2세는 초대 왕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와 죄악을 고스란히 따라간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 2세의 공적뿐 아니라 그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딱 한 마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라고만 표현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딱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는 거에요. 만약 그래도 여러분이 정 궁금하시다면, 도대체 여로보암 2세가 뭘 그렇게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는 건지 알고 싶다면 열왕기하 말고 성경의 다른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됩니다. 그 책이 뭐냐? 바로 아모스서입니다.

❚ 번영의 명암 여로보암 2세

구약 12소선지서 중 세 번째 책인 아모스서는 남 왕국 유다 출신 선지자 아모스의 예언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남 왕국 유다 드고아 출신인 아모스 선지자가 정작 북 왕국 영토인 벧엘에 가서 활동했다는 겁니다. ‘벧엘’ 이곳이 어디입니까?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찬송가 338장 2절)

이 가사처럼 벧엘은 일찍이 야곱이가 집을 떠나 도망할 때 돌베개 베고 자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거룩한 장소인데, 머리가 비상한 초대 왕 여로보암이 그 종교적 가치를 이용해 이 거룩하고 뜻깊은 장소에 성소를 세우고, 그 성소의 제사장도 마음대로 임명해 거기 세워진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한 겁니다. 바로 남 왕국 유다 드고아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로서 활동하던 곳이 바로 이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심장인 벧엘이란 말입니다. 그 벧엘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죄와 임금 여로보암 2세의 죄를 가차 없이 공격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너희의 온갖 우상숭배와 엄청난 죄악들 때문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여로보암 2세 임금도 심판을 당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남한의 포항에 사는 이하준목사가 저 북한 평양에 들어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북한은 멸망하고 김정은이는 죽을 것이다.”라고 소리친 셈입니다.

도대체 왜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걸까요? 그것은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이 사상 최대의 번영과 성장을 이루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많은 죄를 저질러서, 우리 하나님이 도저히 참으실 수 없어 남 왕국 유다 출신 선지자 아모스를 보내 그 죄를 지적하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 겁니다. 그럼 북 왕국에는 선지자가 없어서 남 왕국 출신을 데리고 오신 걸까요? 아니요. 북 왕국에도 선지자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결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들한테 떡을 주고 생계를 책임져주는 여로보암 2세 임금님 눈치를 보며 그 뜻에만 따르고 아부하던 어용(御用)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 왕국 출신 선지자 아모스를 보내신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따라서 아모스서의 내용은 전부 북 왕국의 죄악상과 여로보암 2세 왕의 죄와 허물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초대 왕 여로보암 1세가 물려준 금송아지 우상을 비롯해 온갖 우상숭배, 그리고 약자를 억누르는 사회적 억압과 불의 등 죄라는 죄는 다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는 북 왕국이 겉으로 볼 때는 엄청난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지만 그 속을 들어다 보면 온갖 우상숭배로 영혼은 썩어 들어가고 온갖 불의와 차별이 판을 치고 법과 정의는 무너진 나라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의 별명이 정의의 선지자에요. 이러한 여로보암 2세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바로 아모스 8:11 말씀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먹을 게 없어서 양식이 없어서 주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식은 넘치고 풍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져 영적 기갈을 겪고 있는 그 시대의 북 왕국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모스 선지자가 볼 때, 아니 하나님이 보실 때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은 어떤 사람인가? 긴 말 필요 없어요. 딱 한 마디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까 앞에서 말씀드린 오늘 본문 열왕기하 14:24 말씀인 거에요.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이게 바로 무슨 말이냐? 겉으로 보기에, 사람이 보기에는 여로보암 2세가 훌륭한 왕이라는 겁니다. 나라를 최고의 번영과 부강으로 이끌었으니 당연하지요. 하지만 누가 보기에는 악을 행했다고요? 예, 여호와 보시기에는 온갖 악을 행한 최악의 왕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세상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최악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기준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보고, 세상 사람들은 다 그 기준으로 평가할지라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 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여호와 보시기에” 즉 하나님의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래서 여로보암 2세에 대해 길게 말씀하지 않고 딱 한 마디 “이 사람, 여호와 보시기에 불합격, 아니 최악이었다.”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세상은 그가 훌륭한 통치자였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지도자라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빵점이라고 말입니다. 나 자신에게나, 우리 자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인정받고 폼 잡고 살았는데 마지막 주님 앞에 섰을 때 불합격, 빵점 인생이라고 평가받는 일, 그런 끔찍한 일이 내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기준으로, 누구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나 자신을, 그리고 남을, 그리고 우리 가정과 교회를 말입니다. 절대로 남들처럼 세상의 눈과 사람의 기준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고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가 완전히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으며 오늘 설교 후 부를 찬송인 <세상 부귀 안일함과>라는 곡의 가사를 읽어드립니다.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기도합시다!

여로보암 2세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요아스(북이스라엘왕)의 아들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전성기로, 하맛에서부터 아라바까지 영토롤 넓혔다.

가장 넓은 영토를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그저 그 사실만을 간략하게 기록했는데, 이는 이 시기가 물질적으로는 가장 발달했어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타락한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신음과 고통을 하나님이 들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압제에서 해방시키신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주 활동 선지자는 요나(선지자)와 아모스(선지자)이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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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를 상상한 그림, 16세기 유럽 /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북이스라엘 영역

여로보암 2세는 요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열세 번째 왕이며 BC 8세기에 41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통치는 유다의 왕 아마샤(왕하 14:23) 및 웃시야(아사랴로도 불림)(왕하 15:1)와 동시대였다.

그는 BC 793-782년 동안 요아스와 함께 통치하였고 이후 BC 782-753년까지 단독으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그는 아람을 이기고(왕하 14:26, 27)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14:28) 이스라엘을 “하맛의 평야에서 아라바의 바다(사해)까지” 이전의 한계까지 확장했다.

고고학적 증거는 그의 통치가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알지 못했던 가장 번영했던 통치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인시켰다. BC 8세기 말까지 이스라엘 영토는 전체 레반트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이었으며 인구는 약 35만 명이었다. 이 번영은 이집트, 특히 아시리아가 시장을 제공하는 올리브유, 포도주, 그리고 아마도 말의 무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선지자 아모스에 따르면, 왕의 승리는 왕국에서 거만한 과신의 정신을 불러일으켰다(암 6:13). 전례 없는 화려함의 궁전에 있는 위대하고 사치스러움과 가난한 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오락에 대한 갈망은 이러한 대외 승리의 결실의 일부였다.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의 신은 금송아지와 같은 실제 형상으로 만들어져 단과 벧엘과 다른 이스라엘의 오래된 성지에서 숭배되었다. 단과 벧엘, 길갈과 브엘세바에서 행한 이 예배는 선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수많은 이방 종교(암 5장)와 수없이 많이 타락한 행위로 선지자들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더욱 기여했다. 여로보암의 통치는 선지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의 시대였는데 이들은 모두 당대의 이스라엘 엘리트의 물질주의와 이기심을 정죄했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암 6:3-5). 열왕기 하에서 여로보암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억압과 예루살렘 성전에 반대하는 단과 벧엘의 성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의미한다.

BC 8세기 여로보암 2세의 점토 인장 / 인장의 복제품

BC 760년 경 이스라엘의 지진

이스라엘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BC 760년 경, 여로보암 2세 시대에 그의 통치 말기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 지진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암 1:1)의 통치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아모스 서에 언급되어 있다.

스티븐 A. 오스틴에 따르면 이 지진의 규모는 최소 7.8에서 최대 8.2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규모 8의 지진은 지난 4천 년 동안 사해 변형 단층대에 기록된 가장 큰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진의 진원지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북쪽으로 200-300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아모스 서(3:14, 6:11, 8:8, 9:1)와 스가랴 14:5에도 이 지진에 대한 여러 성경적 언급이 있다.

고대 가드에서 Aren Maeir가 최근 발굴한 결과 대지진의 증거가 밝혀졌다.

“긴밀한 층서학적 맥락에 따르면, 이것은 BC 8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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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이스라엘의 군주

Jeroboam II (Hebrew: יָרָבְעָם, Yāroḇə‘ām; Greek: Ἱεροβοάμ; Latin: 히에로보암/제로보암(Jeroboam)은 기원전 8세기에 그가 41년간 통치했던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13대 왕이자 요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이다. 그의 치세는 아마샤와[1] 웃시야의 [2]치세와 동시대였다.

역사

윌리엄 F. 올브라이트는 그의 통치 연대를 기원전 786-746년으로 추정했고, 반면 E. R. 틸레는 그가 기원전 793년부터 782년까지의 제후이자 기원전 [3]782년부터 753년까지의 단독 통치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시리아인들을 [4]이기고,[5] 다마스쿠스를 정복했으며, 이스라엘을 “하맛의 입구”에서 [6]평원의 바다로 확장시켰다.

1910년, G. A. 리스너는 사마리아에서 왕궁을 발굴하던 중 63개의 새겨진 도기를 발견했는데, 이 도기는 나중에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의 통치 기간 중 9번째에서 17번째까지 연장된 왕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오스트라카들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문자, 언어, 종교, 행정 시스템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2020년 여로보암 2세의 신하인 불라가 [7]인증되었다.

고고학적 증거는 그의 통치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이스라엘 북부 왕국이 아직 알지 못했던 가장 번영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기원전 8세기 후반까지,[8] 이스라엘의 영토는 약 35만 명의 인구를 가진 전체 레반트에서 가장 조밀하게 정착되었다. 이집트와 특히 아시리아가 시장을 [9]제공하면서 올리브유, 와인, 그리고 아마도 말의 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에 따르면, 왕의 승리는 [10]국내에서의 거만한 과신 정신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권력자에 의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전례 없는 호화로운 궁전의 사치, 그리고 오락에 대한 갈망은 이러한 외부 승리의 [6]내적 결실 중 일부였다.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신은 단과 벳엘, 그리고 금송아지와 같은 실제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오래된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단과 벳엘, 길갈과 브엘세바에서의 이러한 예배는 예언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성질의 것이었고, 외국의 종교는 [11]수없이 많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예언정신을 [6]더욱 일깨우는 데 기여하였다. 여로보암의 치세는 예언자 호사, 요엘, 아모스, 요나의 시대로,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엘리트들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규탄하였다. “상아 침대에 누운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다. 양떼와 송아지들을 잡아먹다… 왕기는 [12]여로보암이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가난한 자들의 억압과 예루살렘의 성전에 반대하는 단과 베델의 컬트 센터를 계속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원전 760년 이스라엘 지진

기원전 760년경 이스라엘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기에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진은 아모스서에 [13]”요아스의 아들 제로보암”의 통치 기간에 일어났다고 언급되어 있다.

지질학자들은 이스라엘과 [14]요르단 전역의 현장에서 이 큰 지진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고고학자 Yigael Yadin과 이스라엘 Finkelstein은 파괴 [15]파편의 층서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텔 하조르의 지진 수준을 기원전 760년으로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우시킨은 라치쉬의 ‘급파괴’ 수준에 따라 같은 날짜에 도착한다.

스티븐 A에 따르면 오스틴, 이번 지진의 규모는 최소 7.8에서 최대 8.2까지일 가능성이 높다.”기원전 750년의 이 규모 8 사건은 지난 [16]4천년 동안 사해 변환 단층대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것 중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현재의 이스라엘에서 북쪽으로 200~300km 떨어진 곳일 것이다.

이 [17]지진에 대한 성경적 언급은 아모스기와 사가랴 14장 [18]5절에 많이 있다.

고대 가스에서 아렌 메이어가 최근 발굴한 결과 대지진의 증거가 밝혀졌다.

그는 엄격한 층서학적 맥락으로 볼 때 이는 8센트 중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BCE”…[19]

성경에

그의 이름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두 개의 왕,[20] 1개의 연대기,[21] 호사기,[22] 그리고 [23]아모스기에만 나온다. 다른 모든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1세이다.

「 」를 참조해 주세요.

2 킹 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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