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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주의 옷자락을 만지며”
링크 : https://youtu.be/LiWeMmi83hw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나를 살릴 ‘생명의 말씀’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8, 개정)
–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나는 참 포도나무 가지요, 그리스도의 생명의 통로이다(요15:1,5)
요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나는 그리스도의 친구이다(요15:15)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 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 나는 의의 종이다(롬6:18)
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나는 하나님께 종이 된 자이다(롬6:22)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나의 영적인 아버지이시다(롬8:14, 15; 갈3:26; 4:6)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의 영과 그의 생명이 내 안에서 거하신다(고전 3:16; 6:19)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갈 3:26, 28)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이다(갈 4:6,7)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일을 하도록 거듭났다(엡 2:10)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나는 의롭고 거룩하다(엡4:24)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나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 2:9,10)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 려 하심이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나는 완전히 용서 받았으며 의롭다고 인침을 받았다(롬5:1)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나는 값 주고 산 바 되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고전6:19,20)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말씀을 내 심령(밭)에 꼭 심으십시오.
씨앗이 열매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당신을 반드시 회복시킬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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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요? – GotQuestions.org
성령의 검은 사도 바울이 크리스천들에게 죄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입으라고 한 성령의 전신 갑주에 속합니다 (에베소서 6:13). 검은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거나, …
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3/1/2022
View: 3114
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요? – 묵상노트
에베소서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서 양쪽에 날이 선 그 어떤 칼 …
Source: mybiblenotes.tistory.com
Date Published: 4/20/2022
View: 9991
에베소서 6:17-19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0/3/2022
View: 282
(에베소서 6:10-20) 성령의 검
바울사도는 전신갑주의 마지막 요소로서 성령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함께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Source: www.elphis.or.kr
Date Published: 1/12/2021
View: 4884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 진리와 사랑 (TLT)
검은, 신약 원어인 그리스어로 ‘맠하이라'(ἡ μάχαιρα)이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맠하이라 투 프뉴마토스'(ἡ μάχαιρ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이고, 하나님의 말씀 …
Source: truthnlove.tistory.com
Date Published: 5/20/2021
View: 2969
주일강단- 성령의 검 – 온누리 신문
영적 전쟁에서 ‘성령의 검을 가지라’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나를 수술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는 영적 수술을 성령님께서 해주신다는 …
Source: news.onnuri.or.kr
Date Published: 6/13/2022
View: 3144
생명의 말씀 – 성령의 검 – 광성교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가질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
Source: ksch.net
Date Published: 11/9/2022
View: 6929
아침묵상 – 성령의 검 (에베소서 6:17) – 함께걷는교회
하지만 아무래도 공격은 칼로 해야겠지요?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한 곳이 한 군데 더 있지요. “하나님 …
Source: walkingwith.or.kr
Date Published: 6/18/2022
View: 949
당신은 성령의 검을 가졌는가?
성령은 검 자체며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검이란 말입니다. 검은 성령이며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하며 역사합니다. 우리는 검과 성령과 말씀을 가졌습니다. … 그래서 말씀과 …
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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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령 의 검
- Author: 인바이블 말씀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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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8. 3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fnKpdxgPmg
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요?
질문
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요?
답변
“성령의 검”이라는 문구는 성경에 단 한번, 에베소서 6:17에서 등장합니다. 성령의 검은 사도 바울이 크리스천들에게 죄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입으라고 한 성령의 전신 갑주에 속합니다 (에베소서 6:13).검은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거나, 적을 공격하고 무찌르기 위해 사용하는 공격 및 방어용 무기입니다. 군인은 검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엄격한 훈련으로 검의 올바른 사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 군사들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령의 검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알기 위해 마찬가지로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이 세상의 사탄 세력과 영적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마귀에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고, 오류와 거짓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4-5).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4:12에서도 검으로 일컬어집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묘사됩니다. 로마의 검은 주로 양날 검이어서 양쪽으로 찌르고 베기에 좋은 무기였습니다. 성경 말씀이 예리하다는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이 행동의 핵심인 “마음”에 이르고, 말씀에 감동된 자들의 동기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성령의 검, 성경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더 강해지게 하여 사탄의 사나운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11, 119:33-40, 119:99-105). 성령은 말씀의 능력을 사용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고 그들이 주님을 위한 성숙한 군인이 될 수 있도록 영적 능력을 부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잘 알고 이해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 더욱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이며, 영혼의 적과 맞설 때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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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서 양쪽에 날이 선 그 어떤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고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뜻을 알아냅니다.
당신은 분명히 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검이라는 것은 아주 커다란 칼과 같습니다. 굉장히 날카로워 적을 찌르고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받은 모든 무기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것들입니다. 반면에 검은 당신이 적을 공격하고 섬멸할 수 있도록 주신 공격형 무기입니다. 성령의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사탄에게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에 성령의 검을 사용하였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사탄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순간마다 예수님은 사탄을 공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였고 마침내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그 고통을 이기셨고 끝까지 당신의 사명,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제물로 죽임당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은 모두 일곱마디입니다(그래서 가상칠언이라 부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말씀이나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기록된 시편 말씀을 암송하셨습니다.
시편 22편1절- 31편 5절까지의 ‘메시아 시편’을 십자가에서 암송하시며 기록된 말씀을 온 몸으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시 22: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구원해 주시지 않고, 멀리 떨어져 계십니까? 너무 멀리 계셔서 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시 31:5 ” 주님의 손에 내 목숨을 맡기오니 오 주님, 진리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구해 주소서.”
극심한 고통과 사람들의 조롱, 사랑했던 제자들의 배반과 배신, 사탄의 비웃음, 무엇보다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되는 아픔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자신을 공격하는 나쁜 감정과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공격형 무기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탄을 대적하는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당신은 성경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당신이 암송한 성경 구절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코리 텐 붐/ Nobody can take away from you those texts from the Bible which you have learned by heart.- Corrie ten Boom
만약에 당신이 성경책이 없다면 우리가 배우는 묵상 구절들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당신이 시험을 받을 때에 당신이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도와주십니다(요한복음 14:26). 이 성경 구절들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생각나도록 도와주십니다. 시험을 받을 때,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에 매순간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기억하게 하신 말씀을 사용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셨던 것처럼 큰 소리로 주장하고 선포하십시오. 당신이 성경 말씀을 더 많이 알고 암송하게 된다며 당신은 영적인 전쟁에서 성령의 검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능력이 있습니다(히브리서 4:12). 또 성령의 검은 결코 무디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순종할 때에 우리는 사탄을 이기고 정복하게 됩니다.
•참고/ 가상칠언
+제 1언의 말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제 2언의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제 3언의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제 4언의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제 5언의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제 6언의 말씀 : “다 이루었다!”(요19:30)
+제 7언의 말씀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 기도:
나의 하나님 제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 구절씩 성경을 암송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 이 성령의 검을 시험당할 때 그대의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모든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실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매티스/ One of the greatest facts in all of history is that God gave us a book.- David Ma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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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7-19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에베소서 6:17-19 KRV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KRV: 개역한글 번역본 취소 성경 언어 한국어 언어 바꾸기 {{#items}} {{local_title}} {{/items}} ← 언어 취소 {{#items}} {{local_name}} {{/items}}
(에베소서 6:10-20) 성령의 검
바울사도는 전신갑주의 마지막 요소로서 성령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함께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막연한 개념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것이 된다는 것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가진다(take)는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갖추라고 하거나 가지라고 하거나 특히 행하라고 하면 주머니에 넣듯, 아니면 등기나 자신만 누릴 수 있게 소유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하는 것은 행동이 그렇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함은 생명이나 자신이 가진 의가 표현된 결과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본성이나 의나 생각이 있어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앞서 구원을 가진다는 것은 구원이라는 것을 세례증이나 세례명과 같은 증서나 등기된 서류나 배타적 소유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원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성령도 같습니다. 기도하면 중환자가 치유되는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방언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된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신비한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도 늘 그 능력이 없어질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기도하고 성경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령을 가졌는데 언제든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왔다갔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전신갑주 역시 한 번 입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것은 옷이 아니라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특히 검으로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간혹 성령의 검이라고 하니 사람들에게 ‘불신 지옥’이라고 자극하듯 하는 것을 검이라고 표현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권면을 한답시고 신앙이 없다느니 그러면 안 된다느니 훈계하듯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날선 검과 같이 우리를 찌른다는 말씀에 힙 입어서.
그러나 사람을 가장 크고 아프게 찌르는 것은 스스로 아픔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찔림을 받고 뉘우치게 하려면 그 사람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가야 합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상대가 나를 보고 스스로 찔림이 되도록 살아내는 것을 위함입니다. 그것이 가장 날카로운 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안에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인하여 잉태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고 또한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라고 하심이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육신을 드려서 하나님 아들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보이시니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자신들이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음을 시인하므로 각 사람 마음 안에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 아들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이미지(성품)가 심겨지고 그것을 다시 성령께서 잉태케 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능력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령의 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께서 각 사람 마음에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스스로 도려낼 수 있게 하는 정말로 날선 검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검이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자기 육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삶으로 나타내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릴까 염려할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곧 성령의 검이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을 가지는 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그 삶을 말씀하시는 것임이란 것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고대 로마 군인의 검과 기타 무장
영적 싸움 무기 6: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시오).” (에페소서 6’17b. 사역)
원어(그리스어=헬라어): … καὶ τὴν μάχαιραν τοῦ Πνεύματος, ὅ ἐστιν ῥῆμα Θεοῦ,
(음역: 카이 텐 맠하이란 투 프뉴마토스, 호 에스틴 ㅎ레마 테우)
라틴어: …et gladium Spiritus quod est verbum Dei.*
(에트 글라디움 스피리투스 쿠오드 에스트 베르붐 데이)
* 라틴어 성구는 당대 로마 군대용어를 참고하느라 인용했음.
공격용 무기
우리는 지금 에페소서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온몸갑옷/완전무장/the Whole Armor of God)에 관하여 시리즈로 공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속한 7 가지 무기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성령의 검(劍),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무기들–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판, 평화의 복음의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등이 모두 방어용인 것과는 달리, 이것은 주된 공격/방어 용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또 하나의 공격용 무기는 모든 기도 및 간구와 무시(無時)로 하는 영적 기도(영언)이다*).
[* 이 마지막 요소(기도와 영언)를 하나님의 전신갑주 범주에서 제외한 나머지 ‘6 가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것을 나는 치명적인 omission(생략)과 간과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영언은 매우 중요한 무기이고, 방어 겸 공격용 무기다! 기도 없는 영적 싸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기도와 금식으로밖엔 물러가지 않는 악령들도 있다고 귀띔하신 바 있다(마르코스복음서=맑 9’29). 그런데 어떻게 기도 없이 영적 싸움이 가능한가 말이다.또한, 다른 무기들이 주로 전술 무기인 데 비해, 기도와 영언은 전략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시리즈 다음 편에서 상론한다.]
검은, 신약 원어인 그리스어로 ‘맠하이라'(ἡ μάχαιρα)이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맠하이라 투 프뉴마토스'(ἡ μάχαιρ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ㅎ레마 테우(ῥῆμα Θεοῦ)이다. 참고로, 구약의 고대 히브리어에서 검에 해당하는 말은 ㅋ헤레브(חֶ֫רֶב)이다. 칼이라고도 불리지만, 일반 칼(刀, knife)과 분류하느라 살상/전쟁용 칼을 흔히 검(영어 sword)이라고 부른다. 서두의 라틴어 성경 본문에서 보는 대로, 고대 로마에서는 글라디우스(gladius)라고 불렀다. [*여기서 검투사(gladiator)라는 말과 잎 모양이 검 같은 꽃, 글래디올러스(gladiolous, 중국에서는 진란/剑兰 즉 검 같은 난이라고 한다) 등의 낱말이 파생했다].
마카이라는 본래 비교적 짧은 검, 또는 단검이라는 뜻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로마 군 보병들의 주무기였던 이 글라디우스는 좌우가 날선, 휴대가 편한 보통 길이의 양날 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글라디우스는 여러 타국 군이 가진 (칼등과 한쪽 날만 있는) 검과는 달리, 양쪽이 모두 동일하게 날카로운 날선 검이었기에 그 효율성과 살상률, 위험도가 높았다. 모양은 달랐겠지만, 양날 단검은 훨씬 더 오랜 고대의 이스라엘에도 이미 부분적으로 존재했다(판관기=삿 3’16).
글라디우스에도 역사적으로 칼날의 길이 등 몇 가지 미묘하게 다른 형태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도 파울 당시에는 주로 고대의 영국 쪽에서 (켈팈 검들을 참고하여) 개발된 풀함 글라디우스(Fulham gladius) 또는 마인츠-풀함 글라디우스(Mainz-Fulham gladius) 등이 쓰였다고 추정된다. 칼날의 길이가 약 50-55cm(전체 칼 길이: 65-70cm), 칼날 폭은 6cm, 검 전체 무게는 700g 정도였다고 한다.
이 유형의 가장 큰 특징은 칼끝이, 길고 뾰죽하게 각이 진 이등변삼각형이어서, 적을 찌르기가 쉬웠다는 점이다(위 사진 참조). 로마 보병은 백병전에서 기본적으로 방패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이 검을 방패 아래 곁으로 불쑥 내밀어 적의 흉부 아래를 주로 노리고 공격하면서 전진했다. 필요하면 적의 목이나 팔 등 신체 일부를 마구 찍어버리거나 절단하곤 하여, 적의 극심한 공포를 자아냈다. 양날이 햇빛이나 불빛에 반사되어 번득이는 모습은 더욱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예리한 양날 검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히브리서 4’12)!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계시고, 입에서도 그런 검이 나온다고 하였다(요계 1’16, 2’12). 단, 요한계시록의 양날검들은 모두 ‘마카이라’ 대신에 ‘롬파이아(ῤομφαία)’라는 단어를 썼다. 롬파이아는 대체로 마카이라보다 칼날의 폭이 넓고, 길이도 더 긴 장검으로서, 허리에 차지 않고 어깨에 매었던 종류로 추정된다.
히브리서 4’12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검이라는 사실을 매우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검보다 더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혼과 영을, 관절들과 골수를 찔러 나누기까지도 하며, 마음 속 생각들과 뜻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선언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한 영적 실체이지, 결코 추상적이 아님을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이 검은 성령의 검, 곧 영적인 검이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칼보다 더 예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검은 초강력 무기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수많은-사실은 대다수의-신자들이 이 진리를 미처 모르고 지내거나, 알고도 제대로 써 먹지 못한 채 무력하게 살아가기가 십상이다.
영적 무기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첫째로, 성령의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저자는 성령이시란 진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진리의 영인 성령님은 당신이 쓰신 말씀에 대해 신실하시며, 그 말씀을 올바로 믿을 때 거기 담긴 모든 약속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
둘째로, 죽은 검이 아닌 살아 있는 검이다. 활력 있는 검이고, 자체에 권능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화합할(결부시킬) 때, 초자연적(영적)인 권능과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 무기의 권능을 믿는 사람만 체험할 수 있는 효과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력하게 살아가는 이유 한 가지는 말씀이 살아있음을 잊고, 반대로 죽은 것처럼 믿기 때문이다.
셋째로, 영적인 검이다. 영적 검이란 뜻은 세상적, 물리적 차원의 검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어느 물리적인 검보다 더 실제적이고, 강력하고, 더 날카롭다는 의미다. 많은 신자들이 이 점 역시 놓친다.
이 말은 또한 인간의 영을 다룬다는 의미다. 인공적/물리적인 검이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적을 다루는 데 사용되지 않고, 눈에 뵈지 않는 영적인 원수들, 곧 마귀와 그 졸개 악령들을 상대로 사용된다.
이 검은 예리하여 초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이 검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나누기)까지 한다!
[여기서 한글 번역들 다수가 획일적으로 “찔러 쪼갠다”고만 옮겼는데, 막연하고 별로 걸맞은 옮김이라기엔 다소 어폐가 있다. 되려 ‘찔러 나누기도 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므로 난외주로라도 덧붙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될 때, 혼과 영 사이, 즉 혼과 영의 차원을 극명하게 나누는 이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보통사람이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 성령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혼과 영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이 밝은 사람은 사도 파울이 코린토A서(고전) 14장 2,14,15절에서 말한 내용이 바로 이에 관한 것임을 안다. 우리가 평소 보통 모국어로 하는 기도는 혼적 차원의 것이지만, 영언(‘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영적 차원의 것이다. 영언해석 은사자가 함께 할 때 혼(정신/이성)으로도 비로소 이해가 돼, 영적 차원에서 혼적 차원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영언은 기도가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는 교인들이 있는데, 이같은 오해는 영적 체험의 결여에서 온다. 로마서 8’26c, 코린토A서 14’2, 14, 15, 에페소서 6’18, 유다서 1’20b 등은 모두 이 기도에 관해 말하고 있는 대목들이다. 물론 영언으로 찬양도 하며(행전 2’11; 10’45,46, 코A 14’15b, 엪 5;19, 콜로새 3’16b),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행19’6; 코A 14장).]
신유의 도구
성령의 검은 아울러 영적인 메스(수술도)로도 사용된다.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믿음+성령의 권능>으로 다양한 질환을 고친다는 의미도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고침 받았다는 환자들이 매우 많다.
영적 싸움에서의 말씀의 검
이 무기 역시 다른 무기처럼 믿음을 화합할/결부시킬 때, 제대로 활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인 무기로 그칠 뿐이다.
성경을 맨날 읽더라도 이것을 믿음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기 십상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적군들을 무찌를 수 있는가? 물론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께서는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던 끝에 유혹하며 찾아온 마귀를 모두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그만큼 주님은 어릴 적부터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하여 익히신 데다 슐로모(솔로몬)보다 더 능한 말씀 지식으로 대처하셨다.
이때 역설적으로 마귀도 성경 구절을 사용하여 유혹에 사용했다. 이처럼 마귀와 악령들은 성경 말씀을 착하게 믿어서가 아니라, 거꾸로 신자들을 유혹하고 공격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흔히 빛나는 천사로 위장하여 이 방법을 써 먹는다. 마치 에덴 동산의 간교한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뒤틀어 하와(이브)를 유혹했듯이, 지금도 악한 천사들과 더러운 악령들이 그러고들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영적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익히 알고,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성경을 읽긴 읽어도 영적 싸움에 도움되는 핵심적인 성구들을 제대로 써 먹을 줄 모른다.
이것은 말씀의 권능과 더불어, 하나님이 인간의 혀에 주신 권능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의 입술과 혀에 무서운 권능이 숨어 있다고 시사해 주고 있다. 사도 야코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사람의 말로써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긍정적/부정적, 자연적/초자연적인 일을 상세히 언급한 바 있다(야코보서 3’2-11).
구약 성경에도 사람의 혀와 입에 주어진 권능을 암시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있다.
(예: 잠언 10’11; 12’14,19; 13’2,3; 16’24; 18’7,20,21; 21’23, 예샤야후=사 57’19a).
인간의 입과 혀는 왜 그럴까?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입과 말씀에 창조의 권능이 있어(창세기 1장 참조; 시편 33’6; 148’5),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 분의 형상을 심으면서 그 권능도 일부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전능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형상은 죄로 인해 대부분 손상됐으나, 아직도 인간의 혀와 입술에는 권능이 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 형상이 회복된다.
요한복음서 1장은 메시아로 오신 성자님이신 예수 크리스토가 곧 로고스, 창조 때 창조주 하나님이 사용하신 그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요복 1’1~3).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선포하고 활용할 때, ‘(ㅎ)레마(rhema)'(서두의 원어 성구 참조)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입술과 혀를 제대로 바로 사용하는 길은 헛된 말짓거리가 아닌, 성경 말씀을 입에 담아 믿음으로 읊조리고 고백하고 선언/선포하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그런 예를 들어 보자:
사탄(또는 악령들)아, 물러가라!
사탄아, 내가(‘나’ 또는 ‘내가’에다 신자의 이름 대입) 너를 대적하노라!
사탄아, 주 예호봐(여호와)님께서 너를 책망하신다! 널 책망하신단 말이다!
참고: 마태복음서 4’10; 16’23, 엪 6’11, 야코보 4’7b, 제카리야서(=슥) 3’2
더러운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너라!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마르코스복음서=맑 5’8; 9’25)
사도 파울도 이를 응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한다. 그에게서 나오너라”(행 16’18b)
이런 식의 고백 내지 자기 선언도 가능하다.
“나(이름 대입)는 약하지만, 예수 안에서 강하다!”
참고: 에제키엘 34’16; 요엘 3’10. 참고: 예샤야후=이사야 35’3, 히브리서 11’34c
수많은 성경구절을 이런 식으로 믿음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까지 입술과 혀의 권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다음 성구들은 주님께서 심지어 이런 믿음의 선언을 담대히 할 것을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놀랍다! 물론 이런 말씀은 무턱대고 적용하기보다 슬기롭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17’20; 21’21, 마르코스복음서(맑) 11’23, 루카복음서=눅 17’6.
주일강단- 성령의 검
성령의 검
엡 6:10~20
이재훈 목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립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중립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느냐 사탄의 편에 서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하나님과 사탄, 진리와 거짓 둘 중 하나의 길밖에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전사들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이 필요해서 우리를 군사로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탄을 정복하셨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여전히 거짓에 속고, 계속 사탄의 편에 서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변화된 우리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거짓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아직도 거짓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면서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받이,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복음 안에 살아갈 때 영적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검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무기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님께서 준비하시고, 성령님께서 사용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입니다. 앞서 살펴본 전신갑주는 대개 방어용 무기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검은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전쟁을 할 때 방어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격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을 무
찌르고 승리를 누려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과 성령의 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검을 가지라, 성령의 검을 너희가 취하라, 성령의 검을 너희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라, 성령의 검을 차고 그것으로 승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검은 단검을 의미합니다. 로마 군사들은 긴 창과 긴 칼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가까이 공격해 오는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도 단검이 지급됩니다. 소위 백병전이라고 하는 적들과 가까이 맞서 싸우는 싸움에서는 반드시 단검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은 백병전과 같습니다. 매일매일 가까이 다가와 공격하는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단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검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검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사용하시고 역사하시는 검입니다. 성령님은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평화로운 분입니다. 기름같이 부드러운 분입니다. 바람처럼 시원하신 분입니다. 아침이슬처럼 조용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위로와 평화로서 성령님을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표현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를 태우시는 분입니다. 칼처럼 예리하게 우리를 찌르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심판의 영이기도 하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설명하실 때 ‘보혜사’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는 성령님을 표현하는 최고의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헬라어로 ‘파레클레토스’는 ‘곁에 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위로자 혹은 상담자라고 번역했지만 사실 그 어떤 번역보다 ‘늘 함께 있어서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라는 보혜사라는 번역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소개할 때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가장 먼저 소개한 단어는 위로나 평화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거짓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우리를 참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요한복음 16장 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
성령님께서 죄에 대해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해 책망하실 뿐만 아니라 불처럼 심판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검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되 그 마음에 있는 죄를 책망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성령님은 심판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책망하시고, 세상 속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는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우리의 대적인 사탄 마귀를 무찌르는 무기 이전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떠난 죄를 책망하시는 무기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할 때 나는 전혀 변화 없이 내 밖에 있는 영들만 내가 공격하는 무기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령의 검은 대적하는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무기입니다. 병든 내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 내 마음을 찌를 때 더러운 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회복을 위한 수술입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죄를 불태우고, 육체는 그대로 두신 채로 우리 마음에 있는 죄를 수술하는 칼로서 성령의 검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성령의 검은 두 날이 있는데 한쪽 날로는 죄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치고, 다른 날로는 자기 의에 빠진 교만을 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성령의 검을 가지라’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나를 수술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는 영적 수술을 성령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수술대 위에 우리를 올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을 만드셨기 때문에 성령의 검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들은 강한 바람에 의해 운반되듯이 성령님에 의해 운반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뜻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은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것을 우리에게 깨달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피시는 분이십니다”(고전 2:10).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겨주신 까닭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죄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진술을 받으실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칼보다도 예리해서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말입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기 전에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쪼갠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우리의 영혼을 파헤친다는 것입니다. 목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그 의도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숨을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우리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 두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깊은 상태가 드러납니다. 성경을 잘못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세상만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이렇다, 세상이 저렇다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과 자신의 깊은 상태는 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려고 할 때 성경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의 일차적 목적은 하나님의 깊은 뜻과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너무나 오랫동안 죄 가운데 거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 판단, 의식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모습들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아십니까? 예레이먀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이다. 내 말이 불과 같지 않느냐? 또 바위를 조각으로 깨뜨리는 망치와 같지 않느냐?”(예 23:29).
하나님의 말씀이 불처럼 그리고 망치처럼 우리를 깨뜨리고 칼로 찌르시는 것 같이 죄를 책망하시고, 불로 태우시고, 깨뜨리시는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수술을 거쳐야 합니다. 성령의 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수술하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안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사탄 마귀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살아있는 관계 맺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악한 자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사탄을 우리의 생각, 경험, 세상의 지식으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비웃습니다. 사탄은 적어도 나보다 오랜 세월 인간을 다뤄왔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습니다. 사탄은 수많은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고, 인간의 약점, 욕망, 심지어 역사의 흐름까지도 바꿉니다. 사탄은 한 시대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시대를 살기 때문에 아무리 기발한 생각을 해도 그것은 한 시대에 속한 사상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탄을 이기겠습니까? 오직 사탄이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진리만이 사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사례가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신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공격을 받으실 때 사탄을 이기신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굶주린 상태에 있을 때 사탄이 시험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유혹은 어떤 의미입니까? “네가 메시아인데 이렇게 굶주릴 필요가 있느냐? 이런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고난은 메시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으로 대응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격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 8:3).
진정한 생명은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공격에 실패한 사탄은 두 번째 공격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시편 91편에 보니까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잡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던데 그대로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사탄도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도 성경을 암송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인용으로 우리를 혼란케 합니다. 이단들을 보면 성경을 암송하게 합니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해석을 합니다. 사탄이 시편 91편을 인용하면서 공격하자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으로 또 다시 대응하시며 공격하셨습니다.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
세 번째 시험에 이르러 사탄은 무척 당황한 기색을 보입니다. 교묘하게 포장하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할 때만 사탄이 당황합니다. 인간의 지식, 경험, 문화 그 어떤 것도 사탄을 당황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경험해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할 때만 사탄이 당황합니다. 사탄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게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의 한계는 예수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의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분입니다.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사탄이 주겠다고 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신 6:13).
예수님께서 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탄에게 대응하셨습니까?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의 생각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사탄의 공격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진리의 말씀만으로 성령의 검만으로 대응해라 그래야 사탄이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대응할 수 있는 말씀이 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매일 공부하고, 읽고, 묵상할 때 어떤 공격이든지 대응하고 공격할 수 있는 성령의 검이 우리 마음의 칼집에 늘 꽂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떠오르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유혹을 당할 때, 어떤 시련 속에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적의 공격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떠오르고 그 말씀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응할 수 있는 말씀으로 무장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쫓아버릴 수 있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대응하라”고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의 검을 사용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우리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늘 성령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연구, 성경공부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통독, 묵상, 암송, 연구이건 간에 모든 종류의 성경공부의 목표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연구가 나의 지식을 채우는 것으로, 지적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되면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연구할 때마다 “성령님과 더 친밀해졌는가?”라는 각도로 살펴봐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분리시킨 모습이 역사 속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없는 성령님의 역사를 추구할 때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내적인 빛, 내적 조명만을 추구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성령님의 역사 없이 기계적, 문자적, 지식적으로 성령을 이해하려고 하면 생명 없는 종교적 생활로 치우칠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는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고, 성령님 안에서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 때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하면서 날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미움의 칼, 분노의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을 늘 예리하게 묵상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옷을 입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진리의 허리띠를 차고, 의의 가슴받이를 붙이고, 신을 신을 때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칼집에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영적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동안에 있었던 영적 전쟁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승리의 기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저는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신형 무기로 오늘도 승리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새벽 새롭게 공급해 주신 성령의 검이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내일은 어떤 말씀을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신고 나간 군화가 산 넘고 물을 건너다니다 젖었습니다. 방패는 적들의 화살을 막느라 거의 못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천국의 무기고를 활짝 열어서 내일 아침 싸우러 나가는데 차질이 없도록 공급해 주십시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내 안에 있는 죄를 찌르시고, 내 안에 있는 죄를 심판하시고 불태우십니다. 그리고 적을 내쫓고 당황케 하고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으로 마음의 칼집에 꽂혀 있어서 늘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email protected]
생명의 말씀
2006. 4.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17)
본문 : 엡 6:17
제목 : 성령의 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무기를 가지고 삽니다.
아주 옛날에는 짐승을 사냥하거나 혹은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창이나 칼과 같은 무기를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오늘날의 전쟁무기는 아주 엄청납니다.
총, 대포, 폭탄, 핵무기… 실로 엄청난 무기들을 개발해서 서로 적을 향해서 싸울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그런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무기들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잔뜩 벌어서 그것을 무기로 삼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손에 쥐고 그것을 무기로 삼아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체력을 단련하고 몸짱을 만들어서 그것을 무기로 삼고 살고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다듬어서 얼굴을 무기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학벌을 무기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고
많은 것을 배워서 지식과 실력을 무기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늘 나름대로 그 무기들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승리감에 도취되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서글픈 사람은 이런 무기들을 가지지 못하고 힘없이 사는 인생이 서글픈 인생입니다.
늘 남보다 뒤 처져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삽니다.
돈이 남보다 많던지 배경이 좋던지 권력이 있던지 재주라도 좋던지 뭐 하나 좋은 무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행하게도 영적인 것에는 우리가 정말 크고 좋은 무기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가 우리에게 크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무기만 있으면 백전백승할 수 있는 아주 큰 힘이 있는 무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이런 귀한 무기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잘 활용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무기는 “성령의 검”입니다.
1.공격용 무기
지금까지 배운 무기는 대부분 수비용 방어용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성령의 검만이 공격용 무기입니다.
허리띠나, 흉배나, 신발이나, 방패나, 투구나, 이런 무기들은 다 수비용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지 공격을 할 때 쓰는 무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검은 공격을 할 때 쓰는 무기입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항상 외세의 침략만 받았지 한번도 남의 나라를 먼저 쳐들어가서 싸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는 모습도 늘 방어적이고 수비적이고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냥 참는 것이 제일이고 내 자신을 희생하고 운명이려니 팔자이려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즘은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의 권리가 신장이 되어서 함부로 못하지만 옛날에 아버지들은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마누라나 자식이나 잘못하면 때리고 구박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했습니다.
거기 맞서서 한번 대항하지 못하고 그저 맨날 맞고만 산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즘은 그랬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남편이라고 해서 아내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마음대로 학대하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이래라 저래라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가장들의 횡포가 심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늘 소극적이고 수비적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사탄을 공격하고 사탄과 싸워서 이길 생각은 하지 않고 누가 시비를 하고 누가 비아냥거려도 아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참고만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수비적이어서만 안됩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냥 세월 가는 대로 주어진 형편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이 나면 교회에 가고 형편이 되면 충성을 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말씀을 순종하고 그렇게 하면 늘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공격적이 무기를 주셨으니까 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칼날을 갈고 있다가 누가 신앙에 대해서 시비를 하면 공격을 해야 합니다.
왜 내가 신앙생활을 하며 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를 자신있게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남들이 그까짓 주일 한번 빠지면 어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데 왜 당신은 별나게 그러는 거야 라고 하면 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친척들이 주일날 잔치를 하면서 우리들 보고 주일날 잔치에 안가고 교회에나 가면 제일이야 라고 비아냥거리면 왜 그런 잔치보다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선인지를 확실하게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여러 가지로 유혹을 하면 담대하게 공격을 하고 적들을 물리쳐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 공격무기가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이라고 하니까 또 어디 가서 “신검” 같은 시비한 칼을 찾으려고 하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 다음에 즉시로 그 검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가질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고 비웃을 때 확실히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이 유일한 공격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칼이 있어도 늘 쓰지 않고 놔두면 녹슬어 못쓰는 칼이 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자꾸 자꾸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녹이 슬고 못쓰게 됩니다.
늘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상고하고 늘 칼을 갈고 점검을 하듯이 말씀도 그렇게 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가 갔다가 하다가 진리의 말씀인 성경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다니면 사탄이 아 저 사람 칼은 녹슬었구나 하고 덤벼듭니다.
요즘 성경공부를 빙자한 이단들이 참 많습니다.
무료성경학교 무료신학교 교회가 아닌 집에서 몇 명씩 모여서 공부하는 이런 데는 십중팔구 이단들입니다.
제가 앞서 진리의 허리띠를 설명하면서도 성경말씀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성령의 검인 말씀에 대해서도 차후로 몇 시간 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말씀의 참된 의미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무나 범위가 넓고 장황한 설명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할 때 “고공의 법칙”을 먼저 써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무슨 공부든지 먼저 대략적으로 전체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의 내용을 먼저 알고 부분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도 성경말씀 전체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전체가 무슨 책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1)성령님의 말씀(성경의 원 저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성령의 검이라고 한 것은 성령님께서 이 책의 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마태라는 사람이 쓴 마태복음이나 누가라는 사람이 쓴 누가복음… 이런 것을 보면서 아 마태라는 사람이 이 책을 썼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면 안됩니다.
디모데 후서 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씀이 성령님께서 성경말씀의 저자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면서 성령님이 오시면 하실 일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마태에게 오셔서 감동하심으로 그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과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가나 누가나 요한이나 베드로나 또 바울 이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고 그 의도대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매태복음이 마태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원 저자는 성령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무기가 되는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말은 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을 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 이 말씀에는 검과 같은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2)예수님에 관한 말씀(성경의 주인공)
모든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성경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예수님에 관하여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아예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1:1)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로고스(λογοs)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헬라의 철학에서 쓰는 용어였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수 백년 전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담글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강물은 끊임이 없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흐르는 강물은 과거에 흘렀던 그 강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단 강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흘러가고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인데 어떻게 만물들이 똑 같은 모습으로 이렇게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우주만물의 배후에는 그것을 지배하고 관할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하나님의 말씀 즉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그 하나님이시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은 즉 로고스는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우주만물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이렇게 질서가 유지되어서 존재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삽니다.
그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근본도 모르고 기초도 모르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알겠으며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아는 지식은 이 우주의 근본이 되는 지식이며 진리의 말씀이 되기 때문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말씀의 주인공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해 주시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속에 나타난 능력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라는 말을 쓰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얼굴을 대하고 만나서 집으로 영접해서 같이 식사를 나눴는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 속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생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르는 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을 주시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무기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3)나에게 하신 말씀(말씀의 대상)
개혁주의자들의 성경관 중에 하나는 성경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는 앞서 요한복음 1장에서 인용한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ρημα)”라는 단어입니다.
이 레마를 복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해석된 말씀이라고 하기도 하고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어떤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 나에게 필요한 말씀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같은 말씀이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그 때 그 때 필요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전에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다시 읽을 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에 역사하시어서 그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나에게 다가오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성경을 백 독을 했다라고 하면서 지금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50년을 100년을 설교를 듣고 살았다고 하면서 지금 설교를 듣지 않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쌀 한가마니의 밥을 먹었다고 몇 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끼니가 되면 다시 먹어야 하는 것처럼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늘 설교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시면서 또 뻔한 말 그 말이 그 말인 설교를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설교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이 말씀은 요한에게 하신 말씀 이 말씀은 우리 장로님에게 하신 말씀 이 말씀은 우리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바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말씀이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승리하게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강력한 공격무기인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공격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사용해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을 이길 만한 강력한 힘이 되는 말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새롭게 무장을 하시고 능력있는 사람을 사심으로 강해지고 행복해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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