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성령 강림 주일 설교 –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ppa.cazzette.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cazzette.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우리들교회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49,937회 및 좋아요 286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 –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우리들교회 주일설교 (http://home.woori.cc)
날짜: 2016.10.02
제목: 오순절 성령강림
본문: 행2:1-13
설교: 김양재 목사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절기 설교 – mission – 성령강림주일 (행 2:1-4)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 …
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6/20/2021
View: 7437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 1:4-8] 성령강림주일 설교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예수님을 하늘로 들어 올리셔서 …
Source: sakumc.org
Date Published: 10/13/2022
View: 874
강남중앙교회 / 예배와 말씀 / 목양칼럼
‘성령강림주일에 물어보는 세 가지 질문’ ‘성령강림주일에 물어보는 세 가지 질문’ 자, … 선지자 요엘과 다윗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합니다.
Source: www.kjm.or.kr
Date Published: 5/16/2022
View: 2262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
성령강림절 설교 메시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 크리스천투데이. 이영훈 목사 2017년 설교 “모두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의 증인 되시길” · 1. 보혜사로 …
Source: ppa.xosotanphat.com
Date Published: 9/20/2022
View: 5172
성령강림절 설교모음 – Daum 블로그
성령강림절설교 15편 모음 ▷ 1.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5-18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15절에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될 것을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3/24/2021
View: 4412
성령강림주일 – 경동교회
오늘은 교회가 성령강림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3대 축일이지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
Source: www.kdchurch.or.kr
Date Published: 3/23/2021
View: 2092
성령강림절 설교 메시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 크리스천투데이
이영훈 목사 2017년 설교 “모두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의 증인 되시길” · 1.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 첫째로,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실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8/3/2021
View: 6411
설교 요약 (2022년6월5일 – 성령강림) – 에임스반석교회
Sermon of the Pentecost Sunday 성령강림주일 설교 & Activity 안내 본문 사도행전 1:1-9, 2:1-4 암송 구절 행 1:8, 2020년6월5일 영과 진리로 예배 …
Source: www.ames-kcrc.org
Date Published: 2/16/2021
View: 8719
[성령강림절 설교] 새 언약 – 코람데오닷컴
성령강림절은 말 그대로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
Source: www.kscoramdeo.com
Date Published: 1/30/2021
View: 9259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Source: you.maxfit.vn
Date Published: 4/5/2021
View: 9523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https://i.ytimg.com/vi/UhUrQI70Wbk/maxresdefault.jpg)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령 강림 주일 설교
- Author: 우리들교회
- Views: 조회수 49,937회
- Likes: 좋아요 286개
- Date Published: 2016. 10.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hUrQI70Wbk
성령강림주일 (행 2:1-4)
성령강림주일 (행 2:1-4)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첫째는 성령이 강림하셨다고 하는 사건과 둘째는 내가 그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사건일 것입니다. 성령님이 초대교회에 임하신 사건은 지구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왜 그것이 인류 최대의 사건이냐 하면 비로소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절을 교회의 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 받기 전까지는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야 했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의 수준으로는 도무지 풀지 못하는 문제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풀리지 않던 사건을 풀리도록 한 날이 성령님의 강림일 입니다. 이 날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오십 일째 되는 날이기에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세례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이십니다. 이 보혜사란 영어로는 돕는 자, 위로자, 상담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슬픔을 당하고 있을 때 몹쓸 병에 걸려 있을 때 하나님이 언제나 동고동락하시면서 우리의 주인으로 함께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주의 일을 한다는 것처럼 고문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목회 한다는 것처럼 저주는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고,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고, 사람이 거듭나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성령으로 되어지는 것이며, 능력과 기적도 성령의 역사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 능력 있는 신앙생활도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함께 행1:4, 5절을 읽겠습니다. “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10일이 지난 후 성령님은 강림하셨고 모여서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사람들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이 약속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때로부터 약 830년 전에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주어진 약속이기도 합니다. 욜2:28,29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고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을 누구에게 주십니까? 행2:3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초대교회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만이 아니라 어떤 제한된 숫자나 특별한 사람에게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먼데 사람! 즉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 속에 저와 여러분이 들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약속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부어준다는 약속입니다.
특별히 3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무슨 말씀입니까? “회개한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든 먼데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부르신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그러니 이 약속은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역사를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행1:8절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권능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여러분의 일생을 드리기를 원합니까? 어느 정도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모두 이 질문에 “아멘”을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성령을 대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외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받되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였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행1:15절에는 이 사람들의 수가 12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는 열두 사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그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중에 있었고, 예수님의 동생들이었던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누이동생들(마13:55-56, 막6:3),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던 여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집 안의 장남 아닙니까? 장남이 집 안을 책임져야 하는데, 매일 밖으로만 나돌고 집 안 일은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들에게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지요? 요한은 아예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요7:3-5)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을 불신했던 이 형제들이 120명중에 있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 성령 강림 역사를 소개하면서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은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같이 기도를 해도 서로 다른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어 “주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들이 하나로 통일되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역사하십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선의 모든 식구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오순절의 모습입니다.
2. 그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임하셨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임하셨습니다. 어떤 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습니까?
첫째는 약속을 붙잡고 기다렸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인 장소는 “다락방”(행1:13)이었습니다. 일명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실 때, 승천의 광경을 바라본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오순절 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승천 할 때 예수님의 분부하심을 들은 사람은 500여명 정도였지만 10여일 동안 그 약속을 변함 없이 믿고 기다린 사람의 수는 120명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1:14)
어떤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붙잡고 기도에 전무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약속의 말씀을 강하게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관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남아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성령 받는 일보다 더 관심 있는 일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곳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정말 관심을 많이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성도들을 볼 때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더욱 주님과 교회에 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일과 주님의 교회에 대한 관심이 그 외의 어떤 것에 대한 관심보다 더 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먼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소리가 많습니다. 많은 소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가 있습니다. 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방언을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와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주신 축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20:19-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이 성령을 주신 목적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내 보내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심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확신하시고 이 고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하여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령강림절에 이것을 기대합니다.
1) 존재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불신자가 신자로, 전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들이 하나님으로 채워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2) 인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장악하기 시작하니 인격이 변화됩니다. 삶이 변화됩니다. 언어가 변화됩니다. 생활이 달라집니다. 열매가 없었던 사람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3) 능력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몸을 통해서 나타나니 그들이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결심해도 되지 않던 일이! 마음을 먹어도 되지 않던 일이! 그렇게 몸부림치고 안타까워 울어도 되지 않던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립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4) 심령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행2:26) 즉 마음의 기쁨과 육체가 희망이 나타났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다윗의 예언이지만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이와 같이 썩을 수밖에 없는 육체이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기를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걸어가도 피곤치 않지만, 마음이 괴로우면 십리길만 가도 지친다.”고 했습니다. 스펄젼은 “은사 중에 최고의 은사는 웃는 은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만이 참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적인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실하게 기도하고 성령을 대망 하는 성도들과 교회들에게서 오순절 적인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는 줄 믿습니다.
모쪼록 성령강림절에 우리 모두 성령을 대망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존재의 변화, 인격의 변화, 능력의 변화, 심령의 변화를 맛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 1:4-8] 성령강림주일 설교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예수님을 하늘로 들어 올리셔서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이 땅을 다스리실 모든 권세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을 남기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으니 그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곧 성령님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 계신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증인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 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있으시면서, 제자들이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보여주셨고, 예수님의 부활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승천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본 것을 세상에 그대로 증거하라고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꼭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성령님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이 지난 오순절에,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을 때에 증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도 성령님을 약속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당신이 승천해서 이 땅에 없을 때에, 제자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뻔합니다. 제자들을 그냥 내 버려 두면,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자신의 마음대로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겠다고 뛰쳐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안 계시니 다시 고기나 잡으러 가자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이들도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먼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비로서 제자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4절,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제자들이 한 소망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나타나셔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오라 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서 예수님께 임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은 성령님께 이끌려서 광야로도 가셨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도 성령을 내리시고 그 사역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가 있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 임재의 경험없이 예루살렘을 성급히 떠나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뜻과 열정을 가지고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예루살렘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하는 일이 많다고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서 세상으로 가는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성령의 임재와 그 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고,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러 나가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36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오시기까지 열흘이 걸렸습니다. 제자들이 열흘간을 긴 시간들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또한 그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의 태도가 조급할 때가 있습니다. 열흘이 아니라, 몇 시간도 하나님의 약속을 지긋히 기다리지 못하고 내 판단대로 행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에, 성령의 임재와 지시를 기다리는 예루살렘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비로소, 내 뜻대로 사역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왜곡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주님의 제자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에 권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권능, 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악한 영의 권세가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마땅한 권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인들과 같이 사회적인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지적으로도 탁월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대부분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신분이 미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상대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 가기에는 너무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외모로 볼 때에 뱃사람으로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의지 또한 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장차 자신을 버리고 도망 갈 것이라고 예언하셨을 때에, 자신은 예수님과 함께 죽일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잡히신 예수님을 뵈려고 대제사장의 집 뜰에 있을 때 그곳에 있던 여자 계집종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를 따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거하기는 커녕,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저주까지 했습니다. 아주 보 잘 것 없는 여종 앞에서 말입니다. 의지는 강할지 모르지만, 그 의지를 이룰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로서, 증인으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해도, 우리 스스로에는 그 사명을 감당할 만한 권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성령이 임하실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그들을 주장하게 되니까 그들이 능력있게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 누구의 권능보다도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능력을 구합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서 사람들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질의 능력을 구하고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물질을 의지하는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에 “사람이 일하냐? 돈이 일하지? “라면서 물질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적인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오늘날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구하지 않고, 세상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사역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성령의 영적인 능력은 구하지 않고, 세상적인 지혜와 방법을 구하며 그 힘으로 믿음생활을 하며, 교회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현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에이든 토저 (Aiden Wilson Tozer)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님이 몸을 빼시면 우리들이 하는 일의 95퍼센트는 계속될 것이고, 아무도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신약교회에서 성령을 제외시킨다면 그들이 한 일의 95 퍼센트가 중단될 것이고 누구나 그 차이를 직감하였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 뱅이를 보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앉은뱅이에게 임하게 되고, 그가 고침을 받아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세상적인 권세와 능력은 없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는 세상적인 많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들도 많아졌고, 재산도 소유하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성령의 능력이 구하지 않아도, 사역을 잘 할 수 있을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성령님의 신령한 영적 능력이 사라져 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성령의 영적인 능력을 간구하고 그 능력을 덧입으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이 세상의 영적인 대적자들을 이기며, 능히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이야 말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성도들의 가장 큰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8절에 보면, 이러한 성령의 권능을 받은 후에, 그 능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게 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성령님을 받게 되면, 그 때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서,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마가의 다락방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권세있는 자들이 제자들을 위협하며 방해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핍박받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교회로서의 사명을 열심히 감당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고, 전도와 선교에 힘쓸 때에, 그 현장에서 성령님의 능력을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내가 가정에서, 직장과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 갈 때에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자 할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증인이 되어 다른 이들을 섬기고자 할 때에,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심과 부활을 증거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의 임재가 우선적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성령의 임재를 구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예루살렘을 뛰쳐 나가게 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증인된 성도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일을 하기 전에, 가장 우선적으로 예루살렘에 머물러서 성령의 임재를 구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심을 드러내는 외적인 증거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주님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인의 삶을 통해서 더 큰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뜨겁게 복음이 성장하는 곳 중에서 하나가 중국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교회들이 사회적인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성령의 임재가 있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사람들이 성령의 영적 능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변화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능력은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죄인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하기는, 우리교회와 속한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삶의 분주함속에서 성령의 능력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고 기다리는 예루살렘 오순절 다락방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운데서, 신령한 권능 가운데서, 증인의 삶을 우리의 삶속에서 펼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강림주일에 물어보는 세 가지 질문’
‘ 성령강림주일에 물어보는 세 가지 질문’
자 , 오늘은 성령감림절기의 첫 주일인 [ 성령강림주일 ] 입니다 . 성령강림절기는 주님 부활하신 후 , 처음 성령을 받았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한 곳에 모였더니 ”( 행 2:1)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이 유월절이었고 이후 50 일째 되는 절기가 오순절이었는데 ,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예배할 때에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 그래서 이에 대해 세 가지 질문으로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자 , 1) 먼저 , 하나님은 왜 성령을 ‘ 오순절 ’ 에 내리셨을까 ? 하는 질문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순절은 어떤 의미 이길래 ? 그것은 바로 이 날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날 ’ 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이 50 일 후인 3 월 첫날에 시내산에 도착한 것입니다 . 그래서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 “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 출 19:1)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친히 ‘ 말씀 ’ 하신 것입니다 . “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 출 20:1) 즉 , 오순절은 말씀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2) 두 번째 질문은 , 그럼 이 오순절에 내린 성령을 통해 교회와 성령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 입니다 .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성령에 대한 오해에서 나오는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 성령이 오순절에 내린 것과 또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
즉 ,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이 땅에 세워졌는데 , 그 성령이 바로 ‘ 말씀하시는 영 ’ 이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당시 성령임재의 첫 장면이 이렇게 씌여진 것입니다 .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행 2:4) 여기 ‘ 다른 언어들로 ’ 는 지금의 방언이 아닌 당시에 상용되던 언어로 , 모든 사람들에게 ‘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통해 ’ 구원의 경륜이 전파된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이것을 신기하게 여겼던 사람들은 제자들을 향해 “ 새 술에 취하였다 ”( 행 2:13) 고 하였지만 , 베드로와 열 한 사도가 함께 소리를 높여 그것이 아님을 , 선지자 요엘과 다윗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합니다 .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행 2:37) 즉 , 그들이 ‘ 성령의 말하게 하시는 말씀 ’ 을 듣고 그 영이 움직여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 먼저 ,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 의에 대하여 ,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 16:8) 입니다 . 즉 , 성령이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 말씀 ’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 또한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 요 16:13) 입니다 . 여기서 ‘ 진리 ’ 란 세상이 말하는 진리가 아니라 ‘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이것이 우리교회가 말씀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 교회가 세워진 오늘 ,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계 2:11) 의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 이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한 차례입니다 . 바로 3) 세 번째 질문은 , 나는 어떻게 성령과 동행하고 있는가 ? 입니다 .
성령 강림 주일 설교 |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옥한흠 목사 97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성령 강림 주일 설교 –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옥한흠 목사“?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ppa.xosotanphat.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xosotanphat.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말씀듣기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3,681회 및 61121 Like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 ‘자발적 구독료'(후원 – 예금주: 조영국)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 1002-353-999-227
☆카카오뱅크 3333-0695-30430
@ 채널 말씀듣기 바로가기 URL
https://www.youtube.com/말씀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 …
+ 여기에 보기
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8/22/2022
View: 4229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 첫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은 날 베드로가 긴 설교를 …
+ 더 읽기
Source: ppa.covadoc.vn
Date Published: 1/20/2022
View: 2505
자, 오늘은 성령감림절기의 첫 주일인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기는 주님 부활하신 후, 처음 성령을 받았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여기를 클릭
Source: www.kjm.or.kr
Date Published: 9/13/2022
View: 644
이영훈 목사 2017년 설교 “모두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의 증인 되시길” · 1.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 첫째로,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실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 여기를 클릭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0/6/2021
View: 2377
오늘은 교회가 성령강림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3대 축일이지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kdchurch.or.kr
Date Published: 2/3/2022
View: 2647
2022년 6월 5일은 성령강림주일이다. … 12:8-10의 모든 영적인 은사가 오늘날에도 교회의 복음 전파에 유효하다고 설교한 Martyn Lloyd-Jones의 말에.
+ 여기에 표시
Source: www.kscoramdeo.com
Date Published: 8/4/2022
View: 8475
절기 설교 – mission – 성령강림주일 (행 2:1-4); 강남중앙교회 / 예배와 말씀 / 목양칼럼;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 그때와 지금: 표적과 기사에 신학 …
+ 여기에 표시
Source: aodaithanhmai.com.vn
Date Published: 6/9/2022
View: 9749
기독교 전통이 지켜온 성령강림주일은 유대 전통에서 지켜온 의 컨텍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월절 이후 오십일이 지난 후 맞이하는 오순절은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nbkumc.org
Date Published: 3/17/2021
View: 9074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옥한흠 목사.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We are using cookies to give you the best experience on our website.
You can find out more about which cookies we are using or switch them off in settings.
설교 요약 (2022년6월5일 – 성령강림)
Sermon of the Pentecost Sunday 성령강림주일 설교 & Activity 안내
본문 사도행전 1:1-9, 2:1-4 암송 구절 행 1:8, 2020년6월5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에는, 요 16:19-33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잠시 슬픔의 시간이 있겠지만, 다시 부활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또한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응답 받음으로 제자들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바, 이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행 1:1-9, 2:1-4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교회에 처음 강림하신 일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교회력에 의하면 이번 주는 성령강림 주일로 지켜왔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이제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성령으로 인쳐 주시고(요20:22),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가르쳐 주신 (1:3) 후, 승천 (1:9) 하셨는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제자들은 10일째 되는 오순절날 (2:1)에,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하나님의 큰 일을 찬양하기 (2:4) 시작했습니다.
2) 그런데, 부활하신 첫날 저녁 마가 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성령을 주신 것은, 제자들을 공적으로 세상에 파송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 것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성령 강림”은 성령님께서 그의 교회에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하였으며, 또한 요엘 2:28 에서 예언된 것처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이 성취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즉, 요 20:22 마가 다락방에서의 성령을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고 (눅 3:22) 이를 눅 4:1에서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 (πλήρης, pleres 충만한)을 입”었다고 말씀 하였듯, 이제 제자들도 복음 전파를 위한 파송에 대한 공적 선포의 의미 (요 20:22) 를 가지고 있다면, 오늘 본문의 오순절 성령 강림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신 (행 1:8; 2:4) 것으로, 눅 4:14절에서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ἐν τῇ δυνάμει τοῦ πνεύματος, in the power of the Spirit)”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4) 이것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누가복음 4:1절의 성령충만은 헬라어로는 “플레레스 (형용사형, πλήρης, pleres) 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제자의 성품이 주를 닮아가도록 하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의미하며, 주로 지혜가 충만하다 혹은 믿음이 충만하다와 같은 형태로 많이 쓰이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령 충만의 상태에서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누가복음 4:14에 나오는 성령의 능력은, 행 2:4 처럼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할 때의 헬라어 동사 “핌쁠레미 (πίμπλημι, pimplemi, 충만하다)”가 쓰여, 순간적이고 돌발적인 성령의 능력 (δύναμις, dunamis,능력, 눅 4:14, 행 1:8) 주심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선포하거나, 기적을 베푸실 때 사용되는 성령 충만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복음 증거 사역을 감당할 제자들에게도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성령 충만 (요 20:22)과 더불어 성령의 능력 (행 1:8; 2:4)도 함께 주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리고 한가지 더, 오늘 본문 2장1-4에, 성령님께서 그의 교회에 강림하신 때는, 신학적으로 하늘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 되었고 예수님께서 천상 통치를 시작하신 때로, 계1:6 에서 말씀하시듯,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통치하시게 되는데, 이때, 그의 교회에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 강림절의 신학적 의미인 것입니다.그리고 성령님께서 그의 교회에 처음 강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을 때, 행 2:1-4 말씀에 의하면, 불과 바람과 방언이 나타났는데, 불은 출 3:2 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바람은 창 1:2과 2:7에서 알 수 있듯, 성령의 재창조 사역을 상징하며, 행 2:6 에서 각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창 11:1-8 에서 볼 수 있듯, 인간들이 자기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는데,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나님 나라 안에서, 다시 언어를 회복해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첫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가르치셨는데, 이 40일 동안 주님께서는 계속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또 사라지시는 것을 반복하셨음을 알 수 있는데, 주님은 이를 통해서 제자들이 앞으로 주님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다시 오실 것인 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늘 신실하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할 것을 훈련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재림이 오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늘 신실하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주님께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언제 성령님께서 오실 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제자들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분명 그의 택자에게 오실 것이지만, 또한 그의 백성들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실 성령님을 기도함으로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다스리시도록 기도하면서 성령님을 우리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또한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120명의 제자들이 한 일은 하나님의 큰 일, 즉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죄와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재창조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에 대해 선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기도하옵기는, 오늘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우리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Activity questions and thought behind
Q1 오늘 본문의 2장4절에 의하면,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을, 제자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을 때 두려워 떨었던 제자들이 이제 주님께서 보내주신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그들 속에 내주하심으로 함께 계시고 또 성령의 능력으로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어떻게 느꼈을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면서, 그 이유를 물어 보시면서 피차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행 2: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혹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들은 모두 성령을 선물로 혹은 성령의 선물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가요? 성령님께서 여러분 마음 속에 함께 계시며 성령의 선물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요?
(이 질문을 통해서, 제자들 마음 속에 함께 하셨던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들 마음에도 함께 계심을 알고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고 간증 나누시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3 성령님께서 그의 교회에 강림하실 때에, 하늘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천상 통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계 1:6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 즉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 즉 왕과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드시는가요?
(이 질문을 통해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왕권을 받으시고 천상 통치를 시작하신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우리들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그 정체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셨는데, 이러한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위로를 주는지 한번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 즉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서의 삶은 크리스천으로 불리는 우리도 그렇게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렇게 하나님의 왕, 제사장, 선지자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질문입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4 우리 크리스천들이 성령을 받고 또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공의가 세상에 드러남으로 우리들이 주님의 제자임을 세상이 알게 되며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공의를 이 땅에 드러낼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게 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 삶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요?
(이 질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루 하루 이 세상에서 신실히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삶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일지 한번 생각해 보는 질문입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Prayer Note 기도 노트
( ) 하나님 아버지!
(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 한 죄를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저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오니,
이제 (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합니다.
( )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 대표 기도 노트
( 이번주 대표 기도 내용과 잘 맞는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 한주간 우리 교회 전체적인 감사 기도 제목. )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은 (해 주시니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올려) 드립니다.)
( 성도 전체를 대표하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기도. ) 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하나님 뜻대로 ( 용서받은 성도로서 어떻게 살지를 구하는 기도 ) 하며 살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절기 혹은 특별한 Event ) 주일을 맞아 우리교회가
(. 교회의 사역을 위한 기도. ) 를 잘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에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 말씀을 위한 기도 ) 목사님께서 말씀 증거하실 때에 성령님 께서 힘을 더하셔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게 도와 주시고 온 교회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시며, 어린이 예배와 청소년 예배에도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안내, 찬양, 미디어, 교제 등 에배의 모든 순서를 맡은 에배 위원들의 헌신을 주님 받아 주옵시되, 오늘 주님의 에배에 초대 받고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성령과 진리로 에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충만한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필요시 세계 선교를 위해.. 혹은 커뮤니티나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 하게 해 주십시오.
( 오늘 주일에 합당한 예수님의 성품 )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 대표기도에는 (1) 경배와 찬양 (2) 감사 (3) 회개 (4) 중보 (5) 간구의 5가지 기본 요소를 적절히 넣으시되, 개인이 아니라 전체 성도들을 대표하는 기도이기에 모든 성도들의 감사의 마음이 반영되고 용서받고자 하는 마음이 보편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며 간구의 내용이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위의 Form 을 참조하셔서 대표기도를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령강림절 설교] 새 언약
본문/ 고후 3:3-8, 17-18
설교자/ 곽창대 목사
2022-06-05 한밭교회 성령강림절 설교
곽창대 목사
◇설교 전문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말 그대로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간 지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친히 보이셨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승천하면 성령님께서 곧 강림하실 것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쯤 되었을 때 예루살렘 어느 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던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예수님께서도 약속하셨던 바로 그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자기들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방언)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이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가 오순절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바로 그날에 오순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국내외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 교회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던 예루살렘에 주님의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은 신약의 첫 교회가 세워진 날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교회가 확산되었습니다.
성령강림의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는 한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강림 이전의 시대에는 성령님께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간헐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강림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교회에 성령님께서 항상 거주하십니다. 그래서 성령강림 이후의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성도의 심령과 교회에 내주하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8에 따르면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은 성도와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우선적으로 예수님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성품과 사역 면에서 예수님을 닮는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성도의 심령과 교회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성도와 교회로 하여금 주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열매는 성품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입니다.
“성품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을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언급한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역의 열매”는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을 뜻합니다. 즉 전도와 양육의 열매입니다. 종합하면 성품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심중을 꿰뚫어보시고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네가 선한 일을 함으로써 영생을 얻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청년은 예수님께 다시 질문합니다. “무슨 계명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에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 계명들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부족함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네가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려면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듣고는 청년이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가진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덕법과 제사법입니다. 대표적인 도덕법이 십계명인데 도덕법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즉 도덕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생을 얻습니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리라고 해도 복음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 역으로 말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어겨 죄를 지으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율법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사망과 심판을 선언하는 율법이 진리이지만 복음은 아닙니다. 우리를 살려야 복음(good news)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도덕적 율법)을 누가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요? 이 율법의 요구는 너무나 엄중해서 어떤 인생도 온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금방 예를 든 부자 청년도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었기에 근심하며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율법으로는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율법 외에 또 한 종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제사법입니다. 제사법은 도덕적 율법을 어긴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받게 하는 은혜의 법이었습니다.
제사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성전에 올라가 양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리고 고기는 불로 태워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법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속죄제였습니다. 이 속죄제의 뜻은 일 년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 지난 일 년 간 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저 양처럼 제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이 속죄제를 드리오니 제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입니다. 이 제사법을 따라 믿음으로 제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람이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기에는 불가능하지만 제사법은 별 힘들지 않습니다. 자기 형편에 맞게 제물을 준비하여 성전에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대신 제사를 집례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제사 자리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제사법보다 지키기에 쉬운 율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법은 구약시대의 복음이었습니다.
예)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려면 수능 1등급에 내신 1등급을 받은 다음 논술과 면접시험에서도 1등급을 받아야 한다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모일 모시에 서울대학교 정문에 오기만 하면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저 먹기입니다. 전자가 도덕법 수준이라면 후자가 제사법 수준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법도 온전한 복음은 아니었습니다. 실체가 나타나면 사라질 잠정적인 복음이었습니다. 즉 그림자였습니다. 그래서 속죄제만 해도 매년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 용서의 은혜도 1년만 유효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온전한 복음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 즉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은 흠 없는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 때문에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은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내던지신 것입니다. 이로써 도덕적 율법의 요구인 사랑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신 자기의 사랑을 자기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내 아들이 달린 십자가를 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뜻은 내 아들을 버려서라도 너희들을 살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드러났으며 성취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복음이 논리적이기보다는 초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외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오랜 추적 끝에 법인을 잡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행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살인자를 죽인다면 그것은 복수입니다. 법정에 보내 처벌한다면 그것은 정의입니다. 그러나 그 살인자의 사면을 호소하고 그를 여러분의 아들로 삼는다면 그것은 논리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말하면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은혜 쪽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힘듭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머리로는 그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감사히 받을 때 비로소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자식은 부모로부터, 상사는 부하에게서, 부하는 상사에게서, 연인들은 서로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저런 불평이 생기는 것은 여러분에게 사랑이 채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도 사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랑이 채워지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의 사랑을 그처럼 갈구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렇게도 무관심할 수 있나요? 마치 하나님의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해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성경은 교만이 가장 큰 죄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절하는 교만이야말로 인간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병이 교만입니다. 교만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근원적인 죄입니다.
이 죽음의 병에서 살아날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그의 자비를 구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그 한 가지를 가장 먼저 보십니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생이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질문을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까?” 긍정적으로 답하면 종교마다 나름대로의 구원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는 다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모두 인간의 행위로,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착해야 득도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면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동쪽으로 오르든지 서쪽으로 오르든지 밧줄을 이용해서 오르든지 지팡이를 짚고 오르든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오르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체력을 단련하면 더 잘 오를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면 구원의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산 정상에 오르는 구원이 아니라 하늘에 오르는 구원을 말합니다. 산 아래에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산 정상에 오르면 하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산 정상에 올라와보니 자기 힘으로는 하늘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즉 인생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곳이 바로 산 정상입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관은 자력으로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타 종교에서 추구하는 구원관을 초월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 즉시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강조하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뭇 인생들의 구주시며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영생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은 지금 결단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주변의 이웃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조리 있게 소개하기 힘들면 예수영접모임에 데리고 오시면 됩니다. 우리교회는 짝수 달 첫째 주일, 낮 12시경에 예수영접모임을 갖습니다(오늘). 그 자리에 데리고 오셔서 복음을 듣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로부터 은혜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에게 한량없는 은혜가 계속 부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인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새 언약은 영원히 변경되지 않을 약속이라는 뜻입니다(11절, 길이 있을 것). 그리고 꼭 성취되고야 말 약속을 뜻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성취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로 미루어진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성취되어가는 약속입니다. 즉 오늘 여기서 우리가 그 성취의 상당 부분을 경험할 수 있는 약속입니다. 14, 16, 18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새 언약의 영광스러운 성취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고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언약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3절에서 새 언약을 비유로 표현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의 마음 판에 쓰인 “그리스도의 편지”가 새 언약입니다. 3절 하반절에서는 잉크로 쓴 편지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성령님)으로 쓰신 편지라고 말씀합니다. 돌비에 쓴 편지(돌 판에 새겼던 구약의 십계명으로서의 옛 언약을 일컬음)가 아니라 심비(마음 판)에 새긴 편지입니다.
6절을 보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역할을 대비합니다. 돌에 새긴 율법(옛 언약)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며 성령님으로 우리의 마음에 새긴 새 언약은 우리를 살린다고 말씀합니다. 9절에서는 옛 언약은 사람을 정죄하지만 새 언약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고 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돌비에 새긴 율법(옛 언약)은 온전한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 행위에 미치지 못하면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그래서 그 결국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사람을 살립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까지 공급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즐겁게 순종하도록 모든 은혜를 공급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인하여 성도는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보게 됩니다. 18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새 언약 아래에 있는 성도는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즉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닮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은혜가 주의 영(성령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새 언약에 대해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했는데 그 대표적인 구절이 에스겔 36:26-27입니다.
(겔 36:26-27)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러므로 새 언약의 핵심은 성령님(새 영, 하나님의 영)을 자기 백성들의 마음속에 두시겠다는 것이며 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새롭고 부드럽게 되어서 능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새 언약의 성취를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약속하신 새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이다. 내가 가면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낼 것인데 그 성령님께서 너희 마음에 자리 잡아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능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될 것이다. 즉 성품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할 것이며 너희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요 14:16-17, 26, 16:7, 13-15참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도 새 언약의 성취인 성령님의 강림을 최종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행 1:4-5, 8). 이 약속의 첫 성취가 오순절날 120여명의 제자들이 모인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행 2장). 성령님께서 그들의 모임 가운데 강림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심령 가운데 들어가 좌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성령의 시대, 은혜 시대, 교회 시대, 새 언약이 성취되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님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그들은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평화가 임했습니다. 공포로부터 자유 했습니다. 모든 문들을 걸어 잠갔던 자들이 성령님을 받은 후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물질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필요하면 자기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자 가난까지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명예와 권력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즐겁게 남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환경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안락한 가정생활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열어 나그네들의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서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혈통이나 민족에도 매이지 않았습니다. 온 세계가 그들의 일터였고 모든 백성들에게 친구로 형제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죽음까지도 초월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핍박 받아 죽는다 해도 그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증언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정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들도 그들을 속박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을 참 자유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사는 것이 너무나도 뿌듯했습니다. 겁쟁이였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나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 언약의 성취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했고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의 성취가 비단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내주해계십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자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놀라운 은혜의 세계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의 말씀처럼 여러분은 마침내 주님처럼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님과 교제하면 됩니다. 순간순간 겸손하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뢰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갈 길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뜻에 순종하도록신령한지혜와능력도공급하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승리하는 첩경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흐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도 살고 이웃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즉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간구해야 할 최고의 기도제목은 우리 각자와 가정과 교회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 예수님을 떠난 부자 청년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떠나 혼자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겠습니까?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성도는 이미 승리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성령님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이미 우리 속에 내주해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더욱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셔서 자신도 행복할 뿐 아니라 이웃들에게 그 복을 나누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일꾼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자기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우리들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담긴 날입니다. 첫째로 성령님의 내주를 깊이 감사하는 날입니다. 한 번 우리의 마음에 내주하신 성령님은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끝까지 도우십니다.
둘째는 불신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결의를 다시 다지는 날입니다. 성령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성령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전도와 선교가 하나님의 가장 큰 일이요 이 지구촌에 더 많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성령님의 소원입니다. 우리도 같은 소원을 품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더욱 예수님을 닮게 되어 우리의 인격이 온전해지고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될 것이며 성령님으로 충만한 우리를 통해 가정과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세상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항상 성령님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끝) 찬송가 191장
◇요약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쯤 되었을 때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던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약속대로 강림하셨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자기들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그때가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첫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성령강림의 이전과 이후 시대에는 한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강림 이전에는 성령님께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간헐적으로 역사하셨지만 성령강림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교회에 성령님께서 항상 거주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성도의 심령과 교회에 내주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성도와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열매는 성품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입니다. “성품의 열매”는 대표적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갈 5:22~23). “사역의 열매”는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크게 도덕법과 제사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덕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생도 이 말씀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기에 도덕적 율법으로는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율법을 어긴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받게 하는 은혜의 법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제사법입니다. 제사법을 따라 믿음으로 제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법은 구약시대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법도 온전한 복음은 아니었습니다. 속죄제를 매년 반복해서 드려야 했고 죄 용서의 은혜도 1년만 유효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온전한 복음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내던지셨습니다. 이로써 도덕적 율법의 요구인 사랑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해하기보다는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선물을 성경적인 용어로 말하면 “은혜”입니다. 은혜를 감사히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은혜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새 언약의 핵심입니다. 새 언약이란,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의 마음 판에 쓰인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3절). 옛 언약은 사람을 정죄하지만 새 언약은 사람을 의롭게 합니다(9절). 새 언약 아래에 있는 성도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닮게 됩니다(18절). 성령님을 자기 백성들의 마음속에 두셔서 하나님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고 부드럽게 하심으로 능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십니다(겔 36:26~27).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님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물질, 명예와 권력, 환경, 혈통이나 민족, 심지어 죽음으로부터도 자유자가 되었습니다(17절). 이러한 새 언약의 성취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내주해 계십니다. 마침내 우리는 주님처럼 온전하게 될 것이며,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18절).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과 교제하면 됩니다. 매순간 겸손하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뢰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신령한 지혜와 능력도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흐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도 살고 이웃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간구해야 할 최고의 기도제목은 우리 각자와 가정과 교회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셔서 자신도 행복할 뿐 아니라 이웃들에게 그 복을 나누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일꾼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담긴 날입니다. 첫째, 성령님의 내주를 깊이 감사하는 날입니다. 한 번 우리의 마음에 내주하신 성령님은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끝까지 도우십니다. 둘째, 불신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결의를 다시 다지는 날입니다. 성령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성령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날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더욱 예수님을 닮게 되어 우리의 인격이 온전해지고 우리를 통해 가정과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세상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항상 성령님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눔
1. 성령님께서 교회에 내주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2.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요?
3. 성령강림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성령 강림 주일 설교 | 19870607 오직 성령으로(성령강림주일), 스가랴 4장 6~10절, 옥한흠 목사 423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We are using cookies to give you the best experience on our website.
You can find out more about which cookies we are using or switch them off in settings.
키워드에 대한 정보 성령 강림 주일 설교
다음은 Bing에서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
- 우리들교회
- 김양재
- 설교
YouTube에서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6/10/02] 김양재 목사 – 오순절 성령강림(행2:1-13) |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