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주석 | [하루 한 장] 누가복음9장_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145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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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4 (화) [하루 한 장]“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눅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의 사자로
각 성과 촌에 두루 보내시면서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을 하나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보내신 이가
그들의 삶을 책임지고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알도록
깨닫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친히 책임을 물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까지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이 필요한
구원의 대상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부산 성민교회 분홍목사의 설교 영상들을 통해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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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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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4.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ozWbp785dM

누가복음 9장 주석

누가복음 제 9장

=====9:1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

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그 선택이 완료된 인물들이다. 예수께서 열

둘을 부르신 것은 열 두 지파에 의해 상징되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새 이스

라엘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Hendriksen). 한편 누가는 마가의 ‘부르다'(*

, 프로스칼레오)라는 표현(막 6:7) 대신 ‘불러 모으다'(* ,

슁칼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8:51에 있었던 잠깐 동안의 헤어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고려한 누가의 세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귀신…능력과 권세 – 마태와(마 10:1) 마가는(막 6:7)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모든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마태와 마가는 귀신의 악함에 초점을 두고 누가는 ‘모든 종류’의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 엑수시아)에 능력(* , 뒤나미스)을 첨가하고 있는데, 전

자는 합법적 권리나 권위를 나타내며 후자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와 능력이 예수 당시와 초대 교

회에도 있었던 마술사(행 19:13)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준

다.

=====9:2

하나님의 나라…보내시며 – 마태에 의하면(마 9:3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동

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

라고 하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두 가지 책무를 부여받고서 파송되었다. (1)제자들

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과 인격 속에 현존함과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이기도 했다(마 6:10).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뜻을 백성

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희망

으로인해 곡해(曲解)하고는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권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4:15;마 18:1;20:21;막 11:10;15:43;14:15). 하나

님 나라의 개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막 1:15의 주제 강해 ‘하나님의 나라개념’을 참

조하라. (2)제자들은 병을 고쳐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영적인 일

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은 육적인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바 육적인 문제의 해결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짐에 주목해야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영혼의 구원에

비하여 이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질병 치유가 단순히 영혼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수

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병을 고치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전파하고'(* , 케뤼쎄인)와 ‘고치는’

(* , 이아스다이)이 대등 접속사 ‘카이'(* )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한편 제자들이 해야할 이 두가지 과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일은 다름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인데(11절;마 9:35), 이는 제

자들이 해야하는 일이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할 사도로 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9:3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 – 예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도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 하나 세부적인 항목

까지 열거하고 있다. (1)지팡이(* , 라브도스)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도(마 10:10)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으나 마가는(막 6:8) 지팡이

는 허용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ㄱ)마가는 왕하 4:29에 나오는 게하시의 경우처럼 지팡이를 스승의 권위에 대

한 상징으로 파악했다는 견해(Schurmann). 그러나 게하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스승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만약 게하시의 경우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려

면 제자들 모두가 스승인 예수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ㄴ)누가는 지팡이나

슬리퍼나 허리띠를 띠고 성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랍비적

규율을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Manson). (ㄷ)발음은 비슷하나 뜻은 서로 다른 아람어가

혼동되었다는 견해. 즉 ‘…외에’라는 뜻의 ‘ella'(엘라)와 ‘그리고…도 아닌’의 의

미를 가진 ‘wla'(웰라)를 혼동한데서 생긴 차이이다. 이 설명은 헬라어 성경 원문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ㄹ)두 복음서 기자가 서

로 다른 지팡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 즉 마가는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누가는 맹수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팡이를 각각 염두에 두었

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복음서가 모두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 ‘라브도스’를 사

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결국 이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설명은 아직 없다 하겠다. (2)가방(* , 페라)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방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일 수도 있고 동

냥 주머니일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주머니가 동냥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

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 여행 도중에 축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여행 필수품을 담는 가방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만한 물건을 소유하지 말

라는 의미에서 금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빵(* , 아르토스)도 가지고 가

지 못했다. (4)돈(* , 아르귀리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스스로 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마

지막으로 두 벌 옷(* , 키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 옷은 속옷으로 거

의 발에까지 닿으며 소매가 달려있었다(Hendriksen). 한편 마가복음에는(막 6:9) 신발

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비해 누가는 신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고있는

신발 외에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여

행에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일을함에 있어서 현실적 여건이나 물질에 의지하지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

지하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며, 동시에 사사로운 재산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

하고 따르라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18:18-27). 22:35에 의하면 실제로 제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전도하러 다녔지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다.

=====9:4

어느 집에…떠나라 – 여행 준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유숙(留宿)하는 방

법을 일러주신다. 물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머물라는 말은 아니며 말씀을 받아 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마 10:11). 그러나 한 번 숙소를 정했으

면 그 마을을 떠날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지 불편한 점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대

접을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전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주의

교훈집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다케'(Dedache)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거짓 선지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본문은 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 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 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9:5

발에서…떨어버려 –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는 경우에 마을을 통과한 뒤 발의 먼지를 떨고

이스라엘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방 지역에서 묻은 옷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들어

간다. 이는 유대인들의 성별(聖別)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정한 것을 자신들의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한편 본문에서 주님이 이러한 행위

를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선민과 이방인의 진정한 구분은 메

시지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영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더 나아가 발의 먼지

를 떠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부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사

실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자 증거가 된다. (3)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받

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둠으로써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

하게 되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행 13:50,51에 의하면 바울

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는 도중 유대인들로부터

방해를 당하였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다.

=====9:6

나가 각 촌에 – ‘나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르콘토'(* )는

‘디에르 코마이'(* )의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 제자들의 선교 활동

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촌'(* , 코마스)이라는 단어

에 대해서 그룬트만(Grundmann)같은 학자는 예수가 읍내들을 돌아다니신데 비해 제자

들은 촌락들을 돌아다닌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8:1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성’ 뿐만

아니라 ‘촌’에도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처처에 복음을…병을 고치더라 – ‘처처에’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쿠'(*

)는 ‘그들이 가는곳 어디서나’의 뜻으로, 제자들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

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등 예수의 사역을 열심히 대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바

야흐로 제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9:7

분봉왕 헤롯 – 이는 헤롯이 왕(王)이 아니라 영주(領主)였음을 뜻한다. 그는

B.C.4-A.D. 39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었는데 그 지역은 예수의 사역이 펼쳐

진 중심지였다.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이 모든 일 – 이 문구의 헬라어 표현은 ‘타 기노메나 판타'(*

)로 문법 구조상 현재 중간태 분사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생

하고 있는 모든일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이란 일차적으로는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갖

가지의 이적들과 선포이겠지만 누가는 이 표현을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에 이어 서술

함으로써 제자들의 역할도 예수의 소문이 널리퍼져 헤롯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는데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한다.

심히 당황하여 – 이 말은 부정의 접두사 ‘디아'(* )와 ‘길’을 뜻하는 ‘포로

스'(* )의 합성어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헤

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문법상 미

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때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이…살아났다고도 하며 – 마태나(마 14:2) 마가(막 6:14)는 헤롯이 예수의 소

식을 듣자 곧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마

가는 예수에 관한 헤롯의 최종적인 확신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고 누가는 무엇이 헤롯

으로 하여금 이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즉 먼저는

세례 요한이 살아난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이 있었고 이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지

자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하여(3:19,20;마

14:3-11;막 6:17-28) 즉시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

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구약적 부활 사상이

담겨져 있음(신 32:39;삼상 2:6;욥 19:25-27)을 엿보게 한다.

=====9:8

혹은 엘리야가…혹은 옛 선지자…함이라 –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하게된 배경에는

말 4:5의 말씀이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종말을 알리는 ‘종말적 예언

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와의 연관성은 세례 요한에

게 그가 적용된다(1:17;마 11:14). 예수는 단지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성

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 대한 세번째 견해는, 옛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들은 정

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것이지만 예수의 사역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에

게 선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퍼져나갔음을 알수 있다.

=====9:9

이 사람이 누군고…보고자 하더라 – 헤롯은 예수께 대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

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에 집착하며 고민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 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늘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마 14:3-11; 막 6:17-28). 여기서 “-자 하더라”는 표

현 ‘에제테이'(* )는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헤롯이 계속해서 예수를 보고자

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13:31에 의하면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한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죄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를 희롱하며 예수가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

내지는 동조자(同調者)로서의 역할을 했다(23:8,11).

=====9:10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 – 제자들이 사역한 기간이나 그들이 행한 구체적인 일들

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시에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사역의 기간과 다시 모이는 장소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고한

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게산토'(* )는 “경과를 끝까지 이야

기한다”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킨

다.

벳새다 – 이 지명의 뜻은 ‘고기 잡는집’인데 정확한 명칭은 ‘벳새다 율리아스'(Be-

thsaida Julias)로 빌립왕이 건설하여 황제 아구스도의 딸 율리아스를 기념하는 뜻에

서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은 베드로, 빌립,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요 1:44). 예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간것은 제자들이 먼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

문이다(막 6:31). 말하자면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

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로’ 사적인 만남

을 갖고자했음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선교 여

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

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이다.

=====9:11

무리가…따라 왔거늘 –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마가에 의하면(막

6:32,33)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와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

가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보다는 예수께 많은 사람들

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듯하다.

영접하사…고치시더라 – 제자들 하고만 있고자 했던 예수의 계획은 모여든 무리들

로 인해 일단 좌절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

니라 제자들과 별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영접했다 해

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영접했다’는 표현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목자없

는 양 같이 보인 불쌍한 무리들을 따뜻이 그리고 흔쾌하게 맞아주신 예수의 온정을 느

끼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두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

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는 일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

를 고쳐주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 하시며'(* , 엘랄레이)와 ‘고치시더라’

(* , 이아토)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9:12

날이 저물어 가매 –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고치는 능력에

완전히 마음이 붙들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먹을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시티스몬'(* )은 ‘곡

식’을 뜻하는 ‘시티온'(* )에서 유래한 동사 ‘에피시티조 마이'(*

,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특히 고대 헬라어에

서 ‘여행중의 양식’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제자들이 무리들의 묵을 곳

과 먹을것을 염려하는 모습은 예수의 생각에 비교한다면 믿음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

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점에

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9:13

너희가 먹을 것을…없삽나이다 – 예수는 제자들이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배불

리먹일 수 있는 아무런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

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

해 볼 수 있다. (1)본문에서는 ‘너희가'(* , 휘메이스)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데, 이것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

지고 해결해 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야할 사도로서, 예

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전적인 책임의식을 가지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

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2)예수께서는 선교여행 중 지녔던 권세

와 능력에 대해 망각한 채 극히 평범하고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제자들을 깨우쳐

주고 책망하는 의미로 그런 주문을 하셨다. (3)제자들은 선교여행 중 아무 것도 소유

하지 않았으나 주리지않고 헐벗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그

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받은것에 대해

서 필요에 따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적인 동

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의 명령은 엘리

사가 그의 사환에게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라고 명령한 것을 연상시킨다(왕

하 4:42-44). 이에 대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함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본문의 기록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가 두 마리 뿐이니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2)지금의 장소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음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 수가 없다.

(3)설령 사람을 보내어 200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을 사온다 한들 어림없이 부족하다(요

6:7). 특히 마가(막 6:37)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

는 말투로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먹이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누가는 비교적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9:14

남자가 한 오천 명 – 남자 장정만 오천명 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이다.

떼를 지어 – 마가는 이 표현을 라틴어의 ‘심포지움’ 즉 ‘향연’과 같은 의미의 ‘쉼

포시아'(* )를 사용하는데(막 6:39) 비해 누가는 이 표현을 ‘클리시아

스'(* )라는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정찬에 참석하기 위해 모

여드는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마샬(Marshall)같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만찬을 반영해 준다고 한다.

한 오십 명씩 앉히라 – 여기서도 누가는 독특하게 ‘한'(* , 호세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누가는 의사와 역사가로서 숫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비교, 막 6:40). 몇 명 단위로 앉혔는가 하는 사실에 관해

서는 전승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단지 무리를 일정한 단위

로 세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를 세

분화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9:15

제자들이…다 앉힌 후 – 제자들이 예수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이 간결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 역시 음식이 어디서 올것

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준

다.

=====9:16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 공관복음서 모두가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문구(文句)이

다. 여기서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식사 관습과 일치한다. ‘축사

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오'(* )는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것은 하나님의 이

적적인 능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평범한 감사의 식사 기도로 보아야한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는 삶을 사신 예수께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

으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위한 별도의 간구가 필요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어…놓게하시니 – ‘주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두'(* )는 ‘디도

미'(* )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예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었음을 가리킨다. 떡과 물고기는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을 경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

되었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단지 우리는 ‘주어'(* , 에디두)라는 미완료 동사에서 예수의

손에서 떡이 끝없이 계속해서 떼어져 나가는 기적적인 증가가 있었음을 암시받을 뿐이

다.

=====9: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배불리 먹지 못한 자는 하나도

없다. 이는 예수의 능력의 완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

서는 육신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 보다는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일에 궁극적 목적을 두셨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매료(魅了)되어 찾아온 무리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도한 요한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요 6:14,15,26,27)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 – 무리가 모두 배불리 먹은데 그치지 않고 남은 양이 무려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이라 명하시는

데(요 6:12), 이것은 음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외에도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예수의 이적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다음에

또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구니'(* , 코피노이)는 군인들이 장비나 급식을 담아 짊어지고 다니

는 기구 또는 여행자들이 음식과 필수품을 가지고 다니는 기구를 가리킨다. 처음의 시

작은 바구니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예수 앞에 바쳐졌을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하라. 제자들은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된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적합할 만큼

의 적은 것으로 큰 일을 하신 것이다.

=====9:18

따로 기도하실 때에 – 누가는 막 6:45-8:26의 내용을 생략한 채 오병 이어의 기적

에 이어 바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인 ‘…할때에’라는 ‘엔토'(* )구문으로 단락을 전환시키고 있다. 마태나 마가

에 의하면(마 16:13;막 8:27) 이 장소는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이었다. 가이사랴 빌립

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90km 떨어진 헤르몬 산 근처의 성읍으로 특히 우상 숭배로

유명하다. 토착민들은 바알신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pan)의 신당

을 지어 섬겼으며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이런 우상 숭배의 지역에서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

의 아이러니(irony)라 할 수 있다. 한편 누가는 이러한 단락 전환에 있어서 그 서두를

예수께서 기도 중에 있는 사실로 시작하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전개될 것임

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있어서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3:21;6:12;9:28).

무리가…누구라고 하느냐 –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들

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물으신 듯하다. 예수께서 지

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며, 그는 이미

무리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다(요 6:14,15,26).

=====9:19

세례 요한…엘리야…선지자…살아났다 –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

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

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9:2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

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41-56;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

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게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의 이해를 갖게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한편 이 물음은 모

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베드로가…그리스도시니이다 –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역시 제자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간에 표현상의 차

이를 나타낸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마

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

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 호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 바 하나님의 뜻을 성

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민 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

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요 10:30;요일

4: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의문시 되어 왔던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

으나 마태복음에는(마 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

이 언급되며, 그 본문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여 교회의 머

리가 된다는 근거로도 사용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 16:13-20의 주제 강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따른 약속’을 보라.

=====9:21

경계하사…명하시고 – ‘경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

)인데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

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

, 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

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

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요 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

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9:22

인자가…하리라 – 본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

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

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

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

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

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

마조'(* )는 ‘거부하다’, ‘쓸모 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

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

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

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

)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 )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

‘데이'(* )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

혀준다(사 53장; 요 3:16;롬 8:32).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24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 보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 , 프레스뷔테

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

성하였다(7:3;20:1;22:52). ‘대제사장들'(* , 아르키에류스)은 1년

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

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

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

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 , 그람마튜스)은 ‘랍

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

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

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

다. 유대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옳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9:23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절)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

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가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

마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째로 이러한 자기부

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9:24

목숨을…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

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 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

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요 12:25).

나를 위하여…구원하리라 –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

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

자라 할 수 있다.

=====9:25

온 천하를…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

혼과 본성을 잃게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

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

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계 2:10).

=====9:26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

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

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

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자도…부끄러워 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있다. 누

가는 마태나(마 16:27), 마가(막 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

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

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마 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히 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 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

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

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롬 1:16).

=====9:27

여기 섰는…있느니라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

하였다면 본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

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섰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

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연결구를 첨

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

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

26:37;막 14:33) 예수를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

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다.

기도 하시러 산에 –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山行)의 목적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 ‘메론 산’, ‘다볼산’이라는 추측

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가에게 있어

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

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9:29

기도하실 때에…나더라 –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

이 달라졌다’이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한다. 이

는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시 84:11;계 1:16;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

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마 28:3;막 16:5;행 1:10;계 3:4,5;7:14). 이것 역시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준

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

)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 )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 )의 합성어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

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

모는 (1)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

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 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

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의 모습과(롬

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

다.

=====9:30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이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

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다(말 4:5). 엘리

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

리야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마 5:17,18).

=====9:31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

고 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 )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낸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

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

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

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

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9:32

곤하여 졸다가 –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와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

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

에 곯아 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

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한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

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

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

결과를 초래했다(22:42-46).

아주 깨어…보더니 –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난다. 아마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와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다. 이는 예수가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 시사한

다.

=====9:33

<변회산>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이 제단은 하늘로부터 온 두 사람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는 베드로의

바램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예수의 수난 예

고와(22절) 그것을 확증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31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그리

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安住)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초막 셋을 짓되 – 이 초막은 숙곳에서 장막절에 사용했던 것(출 13:20)과 같이 나

뭇잎이나 기타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움막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텐트나 장막을

가리킨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천상적인 영광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끼

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초막 셋’이라는 표현은 예수를 다른 두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적 무지를 반영한다.

=====9:34

구름 – 구름은 미래에 다시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고(단 7:13) 성도들을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며(계 11:12), 신 구약 중간시대 문학에서는 메시야의

도래와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다(위경 2 Baruch 53:1-12;4 Ezra 13:3). 구

름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이다(출

16:10;19:9;24:15-18;33:9). 특히 출 24:15-18에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병행구를 찾아

볼 수 있다. 예수와 두 인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어 하나님 자신의 임재로 말미암

아 상황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저희를 덮는지라 – 여기서 ‘저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1)예수와 두인물 그리고 3제자 모두(Schurmann), (2)모세와 엘리야만

(Greijdanus, Williams), (3)예수와 모세, 엘리야(Godet, Knox, Marshall). 이 중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무서워하더니 – 신적인 권능 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

끼기 마련인데 이는 인간의 죄성과 유한성 때문이다(8:25;24:4,5).

=====9:35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 – 구름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음성

이기에 그만큼 이 선언은 엄숙하고 확정적이다. 또한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 들려왔던 음성과도 비슷하다(3:22).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예수 이해

는 이제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더이상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요

한에 의하면 수난 주간에도 한번 더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요 12:2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 사역의 시작과 절정기와 마지막에 주어진 것이며 이것

은 그 사역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의미한다. 한편 누가는 마태

(마 17:5)나 마가(막 9:7)와 달리 ‘사랑하는’을 생략하고 ‘택함을 받은 자’를 첨가하

고 있다. 누가는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의 삶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음과 아

울러 예수의 권위의 출처가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저의 말을 들으라 – 이 명령은 신 18:15의 반영으로 이제 예수의 정체(正體)가 분

명히 드러난 이상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의 말을 들으려 하

지 않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이 명령은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 선택 여하에 따른 필연적 심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하여

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에 있으며 예수께서 제시하는 사역의 목적과 방

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지 말라는 것이다(마 16:21-23).

=====9:36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 누가는 상황이 끝나는 장면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마 17:6-8 비교).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 )로 강조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

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 뿐이다. 그만큼 예수는 탁월하신 분이라

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 때에는…아니하니라 – 자기들이 본 사실을 잠정적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

을 말하는데 아마 예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말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듯하다(마 17:9;

막 9:9).

=====9:37

이튿날 – 누가만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변화산의 영광

이 밤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엘리야와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마 17:10-13;막 9:11-13) 누

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한채 바로 무리들과의 만남을 서술한다. 이 무리들 중에는 베드

로, 요한, 야고보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고(40절), 막 9:14에 의하면 서기관들도 있

었다고 한다.

=====9:38

내 외아들이니이다 –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딱한 사정에 대

하여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은 8:40,41에 있는 야이로의 외딸을 살리신 사건과 유사하

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외아들’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극심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고통이 극심한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릴 때(7:12)나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릴

때도(8:41) 마찬가지였다. 한편 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묘사함에 있어서 마가(막

9:22)의 ‘불쌍히 여기다'(* , 스플랑크니조마이)를 ‘돌아보

다'(* , 에피블렙사이)로 대치시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위로’를 뜻

하는 ‘에피'(* )와 ‘보다’를 뜻하는 ‘블레포'(* )의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이다.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9:39

귀신이 저를 잡아 – 마태는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렸다 하고(마 17:15), 마가는 벙

어리 귀신에 들렸다고 하나(막 9:17) 누가는 간략하게 귀신에 붙잡혔다고만 서술하고

있다. 누가로서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증을 받은 ‘아들’과 아들

의 사역을 방해하는 핵심 세력인 ‘귀신’과의 싸움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졸지에…떠나 가나이다 – 이런 증세는 의학적으로 규명할 때 간질병의 증세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 간질병 배후(背後)에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서 기자들

의 공통된 진술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간질병과 예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귀신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9:40

제자들…능히 못하더이다 – 결국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의 변론 주제가(막

9:14) 제자들의 무능력에 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신적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동안 예수와 함께 있던 세 제자는 잠을 자고(32절), 아래

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에 붙잡힌 아이를 구하지 못해 무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서기

관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 바, 이는 제자들의 아둔함을 잘 보여준

다. 본래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능히 예수를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로부터 권능을 받았고 그 권능으로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1-6

절). 그렇다면 제자들의 능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

이 없었기 때문이다.

=====9:4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이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

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하다.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

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한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

동시켜 이적(異蹟)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너희를 참으리요 – 본절에 나타난 ‘믿음이 없는’, ‘패역한’ 등의

표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들을(신 32:5,20) 반

영하며, 본문의 말씀은 더이상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패역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백성들을 품안에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킨다(사 46:4).

이제 예수의 지상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자

들은 여전히 믿음의 결핍을 노출시켰고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무리들은 점점

더 패역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예수의 격한 감정은 ‘호'(* )라는 탄식어가

잘 나타내 준다.

=====9: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 ‘올때에’는 문자적으로 ‘아직 저가 오고있는 동안’

의 의미로 아직 소년이 예수 앞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이 도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비교, 막 9:20). ‘거꾸러뜨리고'(* , 엘렉센 아우톤)

는 전투나 레슬링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타격을 가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아이의 발작이 귀신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귀신이 예수의 사역

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더러운 귀신을…낫게하사 – 귀신의 격렬한 도발 행위는 예수의 꾸짖음 앞에서 무

기력하게 멈춰졌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괴롭힘당했던 모든 질병들로부터 치유를 받았

다. 한편 마가(막 9:22-24)는 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 줌으

로써 신앙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그 부분을 생략하여 예수의 놀라운

치유 능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 조금전의 엄한 꾸짖음(41절)과 달리 이번에는 부드러운 사

랑과 자비로운 행위로 아이를 아비에게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행위는

7:15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적 성품이 사랑임을 나타내 준다.

=====9:43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확인은 예수의 귀신 축사를 통해 분명히 증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사건 속에서

예수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예수의 행위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수준까지 이

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겪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9: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 사람들이 예수의 행함을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예

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다시 한번 수난 예고를 하고 있다. 이 수난 예고는 22절에 이

어 두번째에 해당하며 여기서는 ‘너희'(* , 휘메이스)가 강조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사람들이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기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든지 제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

다. ‘이 말들’이란 계속 이어지는 ‘수난 예고’를 가리킨다.

인자가…넘기우리라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수난 예고는 누가복음 전체에 기록

되어 있는 네 번의 수난예고 가운데 두번째 것이다(9:22,44;18:31-34;22:21-23). 여기

서 ‘넘기우다'(* , 파라디도스다이)는 수동태의 표현은 가룟

유다에 의한 배반을 예고하며 ‘사람들’은 22절에 언급된 바 있는 산헤드린(Sanhedrin)

을 가리킨다. 물론 가룟 유다의 배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었음이 전제되

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마태(마 17:23)나, 마가(막 17:31)와 달리

누가는 여기서 ‘부활’에 관해서는 언급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45

알지 못하였나니 – 제자들은 두 번에 걸쳐 주어진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

하였다. 제자들은 첫째, 변화산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變貌)를 목격하고 이어서

귀신 쫓아내는 권능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

던 까닭에, 둘째 수동태의 ‘히나'(* )절에 의해 확인되는 바 제자들의 몰 이해

배후에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

고 있다. 이러한 ‘숨김’에 대한 진술은 본서에만 나오며, 일정한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제자들이 무지한 상태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여기서 누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

자하는 것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에로의 길은 ‘부활’ 이후에 그들이 갖게 될 성서

적 지식과 부활의 빛에서 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Marshall).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에 대해 묻

기조차 두려워 하였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

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23-27절에 기록된 바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스스로 사도로서 사역할 수 있

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9:46

누가 크냐 – 마가복음에서(막 9:33)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路中)에 논

쟁을 벌였으며 가버나움에 이르러 예수의 추궁이 있었다. 누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문제의 쟁점만을 취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것이었다(마 18:1). 여기서 변론(* , 디알로

기스모스)은 ‘논쟁’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

을 시사한다. 불과 일주일 쯤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 부인을 가르치셨고(23,24절), 조

금 전에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수난을 제차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44절)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결국 메시야가 일으켜 세

울 왕국에서 누가 높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때 제자들

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아(ego)를 버리지 못하고

지위나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제자들로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

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9:47

예수께서…아시고 – 제자들은 예수 몰래 자기들 끼리 논쟁을 벌였으나 예수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다툼을 이미 알고 계셨다.

어린아이 하나를…세우시고 – 누가는 마태나(마 18:3,4), 마가(막 9:35)가 기록하

고 있는 ‘큰 자’에 대한 결론적 서언을 생략한 채 바로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9:48

내 이름으로…영접함이요 – 예수께서 제자들의 사고 방식을 교정시켜주기 위해 간

접적인 방식으로 교훈을 베푸신다. 먼저 ‘내이름으로’ 행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명예

나 지위가 예수께 완전히 종속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모든 제자들의 이름은 예수라

는 이름 앞에 따로 드러날 수 없으며 모든 영광이 예수의 이름에 돌려져야 함을 뜻한

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은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한편 마가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고 하여(막

9:37) 어린이 일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누가는 ‘이 어린아이’라고 하여 바

로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

람 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를 영접하면…영접함이라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 논리는 성도들의 대인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열

쇠가 된다. 허물과 죄로 가득한 인생들을 자연 모습대로 대할 때에는 누구나 환멸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주님의 피로 새로 태

어난 생명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 – 작은 자가 큰 자라는 역설적 진리는 23-25절에서 말씀하

신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역설적 진리와 갖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행위의 대가로 지위나 명예를 얻어 보려는 욕망을 버린 사람이다. 한편

본문에서 ‘가장 낮은 자’와 대비되는 개념을 ‘가장 큰 자’가 아니라 단순히 ‘큰 자’라

고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데는 비교 우위의 개념이 적용되

지만 높아지는 데에는 비교 우위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9:49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의 일원이 아

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하였다. 여기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들만이 예

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자격을 가졌다는 자의식(自意識)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1, 2) 아울러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들의 실패에 대

한(40절)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9:50

금하지 말라…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

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匿名)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

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

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6, 42절)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

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9:51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 여기서 ‘승천'(* , 아날렘프세오

스)은 ‘위로’를 뜻하는 ‘아나'(* )와 ‘올리다’의 의미를 갖는 ‘렙시스'(*

)의 합성어로 ‘들어 올라감’이란 뜻이다(24:51). 여기서는 ‘죽음'(31절) 대신 ‘승

천’이 언급됨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이라는

영광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차가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플레로오'(*

)는 본래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승천을 성취할 시

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런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었음과 예

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심을 분명히 밝혀준다.

예루살렘을…굳게 결심하시고 – 갈릴리로부터 예수의 최종 종착지인 예루살렘에로

의 대전환이 언급되고 있다. 승천은 곧 수난과 죽음을 전제한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날 장소인 예루살렘에로의 행로를 굳은 결심으로 시작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귀는 ‘…로 얼굴을 향하다’는 셈어적인 표현

으로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 하

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음을 향한 결단을

하신 것이다(22:42;요 10:11).

=====9:52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것

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역사 깊은 불화와 반목

(反目)이 있어(왕하 17:24-41;요 4:9)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사

마리아인 사이에는 충돌이 있었다. 그리하여 순례객들은 가까운 사마리아 길로 가지

않고 먼 베레아 지방으로 지나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을 택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른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사마리아를 멸

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하셨음을 보여준다.

=====9:53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중앙 성소

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신 12:4-14).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

은 예루살렘성전에 대응하는 성전을 그리심산에 따로 지어서 이것을 자기들의 중앙 성

소로 삼았다(요 4:20). 이런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들은 예수께서 머무는 것을 허락하

지 않은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조그마한 난관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겪을 고초를 암시하

는듯 하다. 또한 이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 관습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진정한 성전

이신 예수를 만나 구원의 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

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방해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9:54

야고보와 요한이…원하시나이까 –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우뢰의 아들’

(Sons of Thunder, NIV)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막 3:17), 그 까닭은 본절에서 보

는대로 그들의 성격이 매우 급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하

나의 보복 조처를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아하시야 왕 당시 엘리야를 모욕했던 자들에

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그들을 사른 사건(왕하 1:10-12)을 반영한다. 어쨌든 제자들

은 복음이나 메시야 사역의 본질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였으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며 잃어버린

자들을 건지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19:10;요 3:17;12:47)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9:55

꾸짖으시고 – 구체적인 내용없이 간략하게 언급된 ‘꾸짖으시고’는 제자들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하셨음을 말해준다. 제자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의해 보복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구약적 대응방식 즉 ‘이에는 이로 눈에

는 눈으로’를 거절하시고 도리어 꾸짖고 있다. 제자들은 엘리야의 방식 즉 ‘보복의 방

식’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사랑의 방식을 말씀하심으로써 엘리야를 능가하는 분

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여기 나타난 예수의 태도는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저항

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에 대한 하나의 복선(伏線)이라 할 수 있다.

=====9:56

다른 촌으로 – 누가는 지리에 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단지 다른 곳으로갔다

고만 하여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한 사실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예루살

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을 방해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보복적 행동을 취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는 먼 길로 돌아가는 비효율적 방식을 택하셨고 폭력이 아닌 평화의 길을 택하셨다.

그것이야 말로 참된 삶의 방식, 구원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이러한 예수의 방

법을 따를 때 모든 난관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간 ‘다른 촌’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추측하는데, (1)사마리아에 있는 다른 마을

(Klostermann, Zahn, Plummer), (2)사마리아로부터 다시 돌아간 갈릴리의 어느 촌

(Bruce, Gilmour, Farrar), (3)베레아 접경의 촌 등이 그것이며 이중 어느 견해가 정

확한지 단정 지을수 없으나 9절과 10:10과 17:11의 본문을 참고할 때 세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9:57

혹이…좇으리이다 – 여기서 ‘혹이’는 불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헬라어 부정 대명사

‘티스’의 번역이다. 누가는 이렇게 불특정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나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서 이 사람은 서기관이었다(마 8:19). 학식, 재력, 권력에 있어서 유대사회의

최고 상위계층에 있는 서기관(22절 주석 참조)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어디로 가시든지’라는 말은 그가 단지 예수께 대한 신앙을 갖

겠다는 뜻이 아니라 열 두 제자들처럼 예수를 수행하며 섬기는 제자가 되겠다는 의미

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의 어떤 점을 보고 그를 따르려 하는지 그리고 어떤모습

의 제자상을 가지고 그의 제자가 되려고 지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계속 이

어지는 예수의 답변(58절)의 빛에서 볼 때 아마 이 지원자는 예수의 권능(마 8:16)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능력 많으신 분을 수행하는 제자들의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에 부러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광에 동반되는 아픔, 능력 이전에 가

난함의 의미를 알고 지원했어야 했고 무엇보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결심은 자기 부

인(自己否認)의 의미를 알고 난 후에 했어야 했다.

=====9:58

여우도…머리 둘 곳이 없도다 – 암시성이 깊은 예수의 대답은 이 지원자의 의도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런 생각으로 제자가 되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

을 뜻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권력이나 부, 명예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도리어 여우나 새와같은 짐승들에게도 허락된 최소한의 삶의 터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다. 예수를 따르는 일은 의. 식. 주 문제가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거기에 덧붙여 입신

양명(立身揚名)을 지향하는 출세주의가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며 안정

된 삶의 거처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자기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

이다(23절). 허영심에 사로잡혀 예수의 제자가 되려했던 이 서기관은 아마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9:59

부친을 장사하게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이에 대한 예우를 갖춘 장례식은 가

정적, 종교적,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였다. 장례의 의무는 율

법을 공부하는 일, 성전 예배, 유월절 제사, 할례 시행 등 보다도 우선권을 가졌으며,

보통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 사제들도 그들의 친척이 죽은 경우에는 시체를

만질 수 있었다(레 21:1-3). 그 만큼 장례를 치루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밖에

연고자(緣故者) 없이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일은 이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보상이 약속

된 사랑의 행위로 여겨졌다. 유대사회의 장례 풍토가 이런만큼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

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후 따르겠다는 이 사람의 명분은 누구도 반대할수 없는 적절한 것이었다.

=====9:60

죽은 자들로…장사하게 – 이말은 그 내용의 급진성 때문에 해석하여 적용하기가

매우 난해하여 여러가지의 견해가 제기되었던 본문이다. (1)아람어를 잘못 번역한 것

이다(Black). (2)본문의 표현은 역설적인 것으로 장례지내는 일은 반드시 치러지고야

말리라는 의미이다(Manson, Sayings of Jesus, p.73). (3)이 표현은 비유대인 계열에

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이 말을 보편적인 행위 규범으로 해석하여 주의 일을 위하여 가정에 대한 의무를 저버

려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도 안될 것이다. 본문의 의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게하라”는 뜻으로 세상 일은 세상 사람

들에게 맡기고 오직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전심전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 즉 성도들이 예수를 좇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우선 순위를 세상 일과 하나님의

일 중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자세의 문제로서 그것은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하는

결단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 이 문구는 누가만의 것으로 콘첼만(Conzelmann) 같은

학자는 본문에서 회개의 긴박성으로부터 전도의 긴박성으로의 전이를 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무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요 그러한

예수 제자의 길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있음을 말해준다.

=====9:61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 이 장면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기 전에 가족과 마지막

입맞춤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왕상 19:20). 그러나 뒤이은 예수의

대답을(62절) 통해 유추하건대, 이 사람의 마음은 가족에 대한 염려로 가득차 있었으

며 작별인사 중 가족의 만류가 간절해질 경우에는 가정에 발목이 묶일 가능성이 많았

을 것이다.

=====9:62

손에 쟁기를…돌아보는 자 – 농경문화의 산물인 이 격언적 표현은 B.C. 80년의 헤

시오드(Hesiod; 그리스의 교훈 시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전통

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격언적 문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자신이 가르치고자하는 교훈

의 소재로 삼으시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것이다. 손에 쟁기를 들고 밭을 가는 자의

유일한 목적은 곧은 고랑을 내는 일이며, 그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써서 뒤를 돌아 본다면 고랑은 곧게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좇는 자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다. ‘따르는

자’는 이 목적의식을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합당치’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토스'(* )는 ‘잘 놓여 있는’, ‘적합한’, ‘순응하는’의 의미를 갖는

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함에 있어서 우선 순위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궁극적인 목적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적합한’자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헬라어 누가복음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반응형

슁칼레사메노스 데 투스 도데카 에도켄 아우토이스 뒤나민 카이 엨수시안 에피 판타 타 다이모니아 카이 노수스 데라퓨에인

개역개정,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새번역,1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들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 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영어NIV,1 When Jesus had called the Twelve together, he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to drive out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영어NASB,1 And He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the demons and to heal diseases.

영어MSG,1 Jesus now called the Twelve and gave them authority and power to deal with all the demons and cure diseases.

영어NRSV,1 Then Jesus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헬라어신약Stephanos,1 συγκαλεσαμενος δε τους δωδεκα μαθητας αυτου εδωκεν αυτοις δυναμιν και εξουσιαν επι παντα τα δαιμονια και νοσους θεραπευειν

라틴어Vulgate,1 convocatis autem duodecim apostolis dedit illis virtutem et potestatem super omnia daemonia et ut languores curarent

히브리어Modern,1 ויקרא אל שנים העשר ויתן להם גבורה ושלטן על כל השדים ולרפא חליים׃

성 경: [눅9: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그 선택이 완료된 인물들이다. 예수께서 열둘을 부르신 것은 열 두 지파에 의해 상징되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새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Hendriksen). 한편 누가는 마가의 ‘부르다'(*, 프로스칼레오)라는 표현(막 6:7) 대신 ‘불러 모으다'(*, 슁칼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8:51에 있었던 잠깐 동안의 헤어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고려한 누가의 세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모든 귀신…능력과 권세 – 마태와(마 10:1) 마가는(막 6:7)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모든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마태와 마가는 귀신의 악함에 초점을 두고 누가는 ‘모든 종류’의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엑수시아)에 능력(*, 뒤나미스)을 첨가하고 있는데, 전자는 합법적 권리나 권위를 나타내며 후자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와 능력이 예수 당시와 초대 교회에도 있었던 마술사(행 19:13)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카이 아페스테일렌 아우투스 케뤼쎄인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카이 이아스다이 투스 아스데네이스

개역개정,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새번역,2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우리말성경,2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영어NIV,2 and he sent them out to preach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the sick.

영어NASB,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perform healing.

영어MSG,2 He commissioned them to preach the news of God’s kingdom and heal the sick.

영어NRSV,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αυτους κηρυσσε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και ιασθαι τους ασθενουντας

라틴어Vulgate,2 et misit illos praedicare regnum Dei et sanare infirmos

히브리어Modern,2 וישלחם לקרא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ולרפא את החלים׃

성 경: [눅9: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하나님의 나라…보내시며 – 마태에 의하면(마 9:3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동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하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두 가지 책무를 부여받고서 파송되었다. (1)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과 인격 속에 현존함과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이기도 했다(마 6:10).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뜻을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희망으로 인해 곡해(曲解)하고는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권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4:15;마 18:1;20:21;막 11:10;15:43;14:15).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막 1:15의 주제 강해 ‘하나님의 나라개념’을 참조하라. (2)제자들은 병을 고쳐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영적인 일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은 육적인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바 육적인 문제의 해결도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짐에 주목해야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영혼의 구원에 비하여 이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질병 치유가 단순히 영혼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병을 고치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전파하고'(*, 케뤼쎄인)와 ‘고치는'(*, 이아스다이)이 대등 접속사 ‘카이'(*)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한편 제자들이 해야할 이 두가지 과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일은 다름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인데(11절;마 9:35), 이는 제자들이 해야하는 일이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할 사도로 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메덴 아이레테 에이스 텐 호돈 메테 랍돈 메테 페란 메테 아르톤 메테 아르귀리온 메테 아나 뒤오 키토나스 에케인

개역개정,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새번역,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지팡이도 가방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

가톨릭성경,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영어NIV,3 He told them: “Take nothing for the journey–no staff, no bag, no bread, no money, no extra tunic.

영어NASB,3 And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either a staff, nor a bag, nor bread, nor money; and do not even have two tunics apiece.

영어MSG,3 He said, “Don’t load yourselves up with equipment.

영어NRSV,3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o staff, nor bag, nor bread, nor money–not even an extra tunic.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μηδεν αιρετε εις την οδον μητε ραβδους μητε πηραν μητε αρτον μητε αργυριον μητε ανα δυο χιτωνας εχειν

라틴어Vulgate,3 et ait ad illos nihil tuleritis in via neque virgam neque peram neque panem neque pecuniam neque duas tunicas habeatis

히브리어Modern,3 ויאמר להם אל תקחו מאומה לדרך לא מטות ולא תרמיל ולא לחם ולא כסף ואל יהיה לאיש מכם שתי כתנות׃

성 경: [눅9: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 – 예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도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 하나 세부적인 항목까지 열거하고 있다. (1)지팡이(*, 라브도스)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도(마 10:10)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으나 마가는(막 6:8) 지팡이는 허용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ㄱ)마가는 왕하 4:29에 나오는 게하시의 경우처럼 지팡이를 스승의 권위에 대한 상징으로 파악했다는 견해(Schurmann). 그러나 게하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스승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만약 게하시의 경우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려면 제자들 모두가 스승인 예수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ㄴ)누가는 지팡이나 슬리퍼나 허리띠를 띠고 성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랍비적 규율을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Manson). (ㄷ)발음은 비슷하나 뜻은 서로 다른 아람어가 혼동되었다는 견해. 즉 ‘…외에’라는 뜻의 ‘ella'(엘라)와 ‘그리고…도 아닌’의 의미를 가진 ‘wla'(웰라)를 혼동한데서 생긴 차이이다. 이 설명은 헬라어 성경 원문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ㄹ)두 복음서 기자가 서로 다른 지팡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 즉 마가는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누가는 맹수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팡이를 각각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복음서가 모두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 ‘라브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결국 이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설명은 아직 없다 하겠다. (2)가방(*, 페라)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방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일 수도 있고 동냥 주머니일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주머니가 동냥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 여행 도중에 축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한 것이라고볼 수 있고, 여행 필수품을 담는 가방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만한 물건을 소유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빵(*, 아르토스)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4)돈(*, 아르귀리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스스로 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마지막으로 두 벌 옷(*, 키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 옷은 속옷으로 거의 발에까지 닿으며 소매가 달려있었다(Hendriksen). 한편 마가복음에는(막 6:9) 신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비해 누가는 신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고있는 신발 외에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여행에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현실적 여건이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며, 동시에 사사로운 재산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라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18:18-27). 22:35에 의하면 실제로 제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전도하러 다녔지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카이 에이스 헨 안 오이키안 에이셀데테 에케이 메네테 카이 에케이덴 엨세르케스데

개역개정,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새번역,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우리말성경,4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으라.

가톨릭성경,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영어NI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town.

영어NASB,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city.

영어MSG,4 Keep it simple; you are the equipment. And no luxury inns–get a modest place and be content there until you leave.

영어NRS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and leave from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εις ην αν οικιαν εισελθητε εκει μενετε και εκειθεν εξερχεσθε

라틴어Vulgate,4 et in quamcumque domum intraveritis ibi manete et inde ne exeatis

히브리어Modern,4 והבית אשר תבאו בו שם שבו לכם ומשם צאו׃

성 경: [눅9: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어느 집에…떠나라 – 여행 준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유숙(留宿)하는 방법을 일러주신다. 물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머물라는 말은 아니며 말씀을 받아 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마 10:11). 그러나 한 번 숙소를 정했으면 그 마을을 떠날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지 불편한 점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전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주의 교훈집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다케'(Dedache)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본문은 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 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 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카이 호소이 안 메 데콘타이 휘마스 엨세르코메노이 아포 테스 폴레오스 에케이네스 톤 코니오르톤 나포 톤 포돈 휘몬 아포티나쎄테 에이스 마르튀리온 엪 아우투스

개역개정,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새번역,5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서,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삼아라.”

우리말성경,5 만약 너희를 맞아 주지 않으면 그 마을을 떠날 때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발에 붙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

가톨릭성경,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영어NIV,5 If people do not welcome you,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when you leave their town,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NASB,5 “And as for those who do not receive you, as you go out from that city,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MSG,5 If you’re not welcomed, leave town. Don’t make a scene. Shrug your shoulders and move on.”

영어NRSV,5 Wherever they do not welcome you, as you are leaving that town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σοι αν μη δεξωνται υμας εξερχομενοι απο της πολεως εκεινης και τον κονιορτον απο των ποδων υμων αποτιναξατε εις μαρτυριον επ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5 et quicumque non receperint vos exeuntes de civitate illa etiam pulverem pedum vestrorum excutite in testimonium supra illos

히브리어Modern,5 וכל אשר לא יקבלו אתכם צאו מן העיר ההיא ונערו את העפר מעל רגליכם לעדות בהם׃

성 경: [눅9: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발에서…떨어버려 –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는 경우에 마을을 통과한 뒤 발의 먼지를 떨고 이스라엘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방 지역에서 묻은 옷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들어간다. 이는 유대인들의 성별(聖別)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정한 것을 자신들의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한편 본문에서 주님이 이러한 행위를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선민과 이방인의 진정한 구분은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영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더 나아가 발의 먼지를 떠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부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자 증거가 된다. (3)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둠으로써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행 13:50,51에 의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는 도중 유대인들로부터 방해를 당하였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다.

엨세르코메노이 데 디에르콘토 카타 타스 코마스 유앙겔리조메노이 카이 데라퓨온테스 판타쿠

개역개정,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새번역,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우리말성경,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들을 두루 다니며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영어NIV,6 So they set out and went from village to village,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people everywhere.

영어NASB,6 Departing, they began going throughout the villages,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everywhere.

영어MSG,6 Commissioned, they left. They traveled from town to town telling the latest news of God, the Message, and curing people everywhere they went.

영어NRSV,6 They departed and went through the villages, bringing the good news and curing diseases everywhere.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ξερχομενοι δε διηρχοντο κατα τας κωμας ευαγγελιζομενοι και θεραπευοντες πανταχου

라틴어Vulgate,6 egressi autem circumibant per castella evangelizantes et curantes ubique

히브리어Modern,6 ויצאו ויעברו בכפרים מבשרים את הבשורה ומרפאים בכל מקום׃

성 경: [눅9: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나가 각 촌에 – ‘나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르콘토'(*)는 ‘디에르 코마이'(*)의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 제자들의 선교 활동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촌'(*, 코마스)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룬트만(Grundmann)같은 학자는 예수가 읍내들을 돌아다니신데 비해 제자들은 촌락들을 돌아다닌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8:1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성’ 뿐만아니라 ‘촌’에도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 처처에 복음을…병을 고치더라 – ‘처처에’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쿠'(*)는 ‘그들이 가는곳 어디서나’의 뜻으로, 제자들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등 예수의 사역을 열심히 대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제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에쿠센 데 헤로데스 호 테트라아르케스 타 기노메나 판타 카이 디에포레이 디아 토 레게스다이 휘포 티논 호티 요안네스 에게르데 에크 네크론

개역개정,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새번역,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고, / ㉠그, ‘테트라아르케스’. 지위와 권위가 왕보다 밑에 있었음

우리말성경,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났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영어NIV,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about all that was going on.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some were saying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영어NASB,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of all that was happening; and he was greatly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risen from the dead,

영어MSG,7 Herod, the ruler, heard of these goings on and didn’t know what to think. There were people saying John had come back from the dead,

영어NRSV,7 Now Herod the ruler heard about all that had taken place,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헬라어신약Stephanos,7 ηκουσεν δε ηρωδης ο τετραρχης τα γινομενα υπ αυτου παντα και διηπορει δια το λεγεσθαι υπο τινων οτι ιωαννης εγηγερται εκ νεκρων

라틴어Vulgate,7 audivit autem Herodes tetrarcha omnia quae fiebant ab eo et haesitabat eo quod diceretur

히브리어Modern,7 וישמע הורדוס שר הרבע את כל אשר נעשה על ידו ותפעם רוחו כי יש אשר אמרו יוחנן קם מן המתים׃

성 경: [눅9: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분봉왕 헤롯 – 이는 헤롯이 왕(王)이 아니라 영주(領主)였음을 뜻한다. 그는 B.C.4-A.D. 39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었는데 그 지역은 예수의 사역이 펼쳐진 중심지였다.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 이 모든 일 – 이 문구의 헬라어 표현은 ‘타 기노메나 판타'(*)로 문법 구조상 현재 중간태 분사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는 모든 일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이란 일차적으로는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갖가지의 이적들과 선포이겠지만 누가는 이 표현을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에 이어 서술함으로써 제자들의 역할도 예수의 소문이 널리퍼져 헤롯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는데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한다. 심히 당황하여 – 이 말은 부정의 접두사 ‘디아'(*)와 ‘길’을 뜻하는 ‘포로스'(*)의 합성어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헤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문법상 미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때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요한이…살아났다고도 하며 – 마태나(마 14:2) 마가(막 6:14)는 헤롯이 예수의 소식을 듣자 곧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에 관한 헤롯의 최종적인 확신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고 누가는 무엇이 헤롯으로 하여금 이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즉 먼저는 세례 요한이 살아난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이 있었고 이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지자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하여(3:19,20;마14:3-11;막 6:17-28) 즉시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구약적 부활 사상이 담겨져 있음(신 32:39;삼상 2:6;욥 19:25-27)을 엿보게 한다.

휘포 티논 데 호티 엘리아스 에파네 알론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새번역,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말성경,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옛 예언자 중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8 더러는 “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d come back to life.

영어NASB,8 and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d risen again.

영어MSG,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still others that some prophet of long ago had shown up.

영어NRSV,8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d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8 υπο τινων δε οτι ηλιας εφανη αλλων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ε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8 a quibusdam quia Iohannes surrexit a mortuis a quibusdam vero quia Helias apparuit ab aliis autem quia propheta unus de antiquis surrexit

히브리어Modern,8 ויש שאמרו אליהו נראה ואחרים אמרו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혹은 엘리야가…혹은 옛 선지자…함이라 –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하게된 배경에는 말 4:5의 말씀이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종말을 알리는 ‘종말적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와의 연관성은 세례 요한에게 그가 적용된다(1:17;마 11:14). 예수는 단지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성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 대한 세번째 견해는, 옛선지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들은 정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만 예수의 사역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에게 선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퍼져나갔음을 알수 있다.

에이펜 데 헤로데스 요안넨 에고 아페케팔리사 티스 데 에스틴 후토스 페리 후 아쿠오 토이아우타 카이 에제테이 이데인 아우톤

개역개정,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새번역,9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우리말성경,9 그러자 헤롯은 “내가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이런 소문이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영어NIV,9 But Herod said, “I beheaded John. Who, then, is this I hear such things about?” And he tried to see him.

영어NASB,9 Herod said, “I myself had John beheaded; but who is this man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kept trying to see Him.

영어MSG,9 Herod said, “But I killed John–took off his head. So who is this that I keep hearing about?” Curious, he looked for a chance to see him in action.

영어NRSV,9 Herod said, “John I beheaded; but who is this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tried to se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ειπεν ο ηρωδης ιωαννην εγω απεκεφαλισα τις δε εστιν ουτος περι ου εγω ακουω τοιαυτα και εζητει ιδει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9 et ait Herodes Iohannem ego decollavi quis autem est iste de quo audio ego talia et quaerebat videre eum

히브리어Modern,9 ויאמר הורדוס הן אנכי נשאתי את ראש יוחנן מעליו ומי אפוא הוא אשר אני שמע עליו כזאת ויבקש לראותו׃

성 경: [눅9: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이 사람이 누군고…보고자 하더라 – 헤롯은 예수께 대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에 집착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 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늘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마 14:3-11; 막 6:17-28). 여기서 “…자 하더라”는 표현 ‘에제테이'(*)는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헤롯이 계속해서 예수를 보고자 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13:31에 의하면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한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죄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를 희롱하며 예수가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내지는 동조자(同調者)로서의 역할을 했다(23:8,11).

카이 휘포스트렢산테스 호이 아포스톨로이 디에게산토 아우토 호사 에포이에산 ㅏ이 파랄라본 아우투스 휘페코레센 캍 이디안 에이스 폴린 칼루메넨 베드사이다

개역개정,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새번역,10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이야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우리말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예수께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영어NIV,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reported to Jesus what they had done. Then he took them with him and they withdrew by themselves to a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ASB,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gave an account to Him of all that they had done. Taking them with Him, He withdrew by Himself to a city called Bethsaida.

영어MSG,10 The apostles returned and reported on what they had done. Jesus took them away, off by themselves, near the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RSV,10 On their return the apostles told Jesus all they had done. He took them with him and withdrew privately to a city called Bethsaida.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υποστρεψαντες οι αποστολοι διηγησαντο αυτω οσα εποιησαν και παραλαβων αυτους υπεχωρησεν κατ ιδιαν εις τοπον ερημον πολεως καλουμενης βηθσαιδα

라틴어Vulgate,10 et reversi apostoli narraverunt illi quaecumque fecerunt et adsumptis illis secessit seorsum in locum desertum qui est Bethsaida

히브리어Modern,10 וישובו השליחים ויספרו לו את כל אשר עשו ויקחם אליו ויסר לבדד אל מקום חרב אשר לעיר הנקראה בית צידה׃

성 경: [눅9:1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 – 제자들이 사역한 기간이나 그들이 행한 구체적인 일들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시에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사역의 기간과 다시 모이는 장소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고한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게산토'(*)는 “경과를 끝까지 이야기한다”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킨다.

󰃨 벳새다 – 이 지명의 뜻은 ‘고기 잡는 집’인데 정확한 명칭은 ‘벳새다 율리아스'(Be-thsaida Julias)로 빌립왕이 건설하여 황제 아구스도의 딸 율리아스를 기념하는 뜻에서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은 베드로, 빌립,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요 1:44). 예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간것은 제자들이 먼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막 6:31). 말하자면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로’ 사적인 만남을 갖고자 했음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이다.

호이 데 오클로이 그논테스 에콜루데산 아우토 카이 아포뎈사메노스 아우투스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페리 테스 바실레이아스 투 데우 카이 투스 크레이안 에콘타스 데라페이아스 이아토

개역개정,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새번역,11 그러나 무리가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우리말성경,11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예수를 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영어NIV,11 but the crowds learned about it and followed him.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healing.

영어NASB,11 But the crowds were aware of this and followed Him; and welcoming them, He began speaking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curing those who had need of healing.

영어MSG,11 But the crowds got wind of it and followed. Jesus graciously welcomed them and talked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Those who needed healing, he healed.

영어NRSV,11 When the crowds found out about it, they followed him; and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to be cure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ι δε οχλοι γνοντες ηκολουθησαν αυτω και δεξαμενος αυτους ελαλει αυτοις περι της βασιλειας του θεου και τους χρειαν εχοντας θεραπειας ιατο

라틴어Vulgate,11 quod cum cognovissent turbae secutae sunt illum et excepit illos et loquebatur illis de regno Dei et eos qui cura indigebant sanabat

히브리어Modern,11 והמון העם כאשר ידעו את זאת הלכו אחריו ויקבלם וידבר אליהם על מלכות האלהים וירפא את הצריכים לרפואה׃

성 경: [눅9:1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무리가…따라 왔거늘 –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마가에 의하면(막6:32,33)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와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보다는 예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듯하다.

󰃨 영접하사…고치시더라 – 제자들 하고만 있고자 했던 예수의 계획은 모여든 무리들로 인해 일단 좌절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별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영접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영접했다’는 표현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목자없는 양 같이 보인 불쌍한 무리들을 따뜻이 그리고 흔쾌하게 맞아주신 예수의 온정을 느끼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두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는 일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 하시며'(*, 엘랄레이)와 ‘고치시더라'(*, 이아토)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헤 데 헤메라 에릌사토 클리네인 프로셀돈테스 데 호이 도데카 에이판 아우토 아폴뤼손 톤 오클론 히나 포류덴테스 에이스 타스 퀴클로 코마스 카이 아그루스 카탈뤼소신 카이 휴로신 에피스티스몬 호티 호데 엔 에레모 토포 에스멘

개역개정,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새번역,12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우리말성경,12 날이 저물자 열두 제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외딴 곳에 와 있으니 사람들을 보내 주변 마을과 농가로 가서 잠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얻게 하십시오.”

가톨릭성경,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영어NIV,12 Late in the afternoon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ey can go 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food and lodging, because we are in a remote place here.”

영어NASB,12 Now the day was ending, and the twelve came and said to Him, “Send the crowd away,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lodging and get something to eat; for here we are in a desolate place.”

영어MSG,12 As the day declined, the Twelve said, “Dismiss the crowd so they can go to the farms or villages around here and get a room for the night and a bite to eat. We’re out in the middle of nowhere.”

영어NRSV,12 The day was drawing to a close, and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to lodge and get provisions; for we are here in a deserted place.”

헬라어신약Stephanos,12 η δε ημερα ηρξατο κλινειν προσελθοντες δε οι δωδεκα ειπον αυτω απολυσον τον οχλον ινα απελθοντες εις τας κυκλω κωμας και τους αγρους καταλυσωσιν και ευρωσιν επισιτισμον οτι ωδε εν ερημω τοπω εσμεν

라틴어Vulgate,12 dies autem coeperat declinare et accedentes duodecim dixerunt illi dimitte turbas ut euntes in castella villasque quae circa sunt devertant et inveniant escas quia hic in loco deserto sumus

히브리어Modern,12 והיום רפה לערב ושנים העשר קרבו ויאמרו אליו שלח נא את העם וילכו אל הכפרים והחצרים אשר סביבותינו ללון שם ולמצא מזון כי פה אנחנו במקום חרבה׃

성 경: [눅9:1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날이 저물어 가매 –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고치는 능력에 완전히 마음이 붙들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 먹을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시티스몬'(*)은 ‘곡식’을 뜻하는 ‘시티온'(*)에서 유래한 동사 ‘에피시티조 마이'(*,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특히 고대 헬라어에서 ‘여행중의 양식’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제자들이 무리들의 묵을 곳과 먹을것을 염려하는 모습은 예수의 생각에 비교한다면 믿음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투스 도테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파게인 호이 데 에이펜 우크 에이신 헤민 플레이온 에 아르토이 펜테 카이 이크뒤에스 뒤오 에이 메티 포류덴테스 헤메이스 아고라소멘 에이스 판타 톤 라온 투톤 브로마타

개역개정,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새번역,13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말성경,13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가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합니다.”

가톨릭성경,13 예수님께서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3 He replied,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answered, “We hav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unles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is crowd.”

영어NASB,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 unless perhap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영어MSG,13 “You feed them,” Jesus said. They said, “We couldn’t scrape up more than five loaves of bread and a couple of fish–unless, of course, you want us to go to town ourselves and buy food for everybody.”

영어NRSV,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unless we are to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ιπεν δε προς αυτους δοτε αυτοις υμεις φαγειν οι δε ειπον ουκ εισιν ημιν πλειον η πεντε αρτοι και δυο ιχθυες ει μητι πορευθεντες ημεις αγορασωμεν εις παντα τον λαον τουτον βρωματα

라틴어Vulgate,13 ait autem ad illos vos date illis manducare at illi dixerunt non sunt nobis plus quam quinque panes et duo pisces nisi forte nos eamus et emamus in omnem hanc turbam escas

히브리어Modern,13 ויאמר אליהם תנו אתם להם לאכל ויאמרו אין לנו כי אם חמשת ככרות לחם ודגים שנים בלתי אם נלך ונקנה אכל לכל העם הזה׃

성 경: [눅9:1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너희가 먹을 것을…없삽나이다 – 예수는 제자들이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아무런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본문에서는 ‘너희가'(*, 휘메이스)에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야할 사도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전적인 책임의식을 가지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2)예수께서는 선교여행 중 지녔던 권세와 능력에 대해 망각한 채 극히 평범하고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제자들을 깨우쳐주고 책망하는 의미로 그런 주문을 하셨다. (3)제자들은 선교여행 중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으나 주리지않고 헐벗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받은것에 대해서 필요에 따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적인 동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의 명령은 엘리사가 그의 사환에게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라고 명령한 것을 연상시킨다(왕하 4:42-44). 이에 대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함을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본문의 기록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가 두 마리 뿐이니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2)지금의 장소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음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 수가 없다. (3)설령 사람을 보내어 200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을 사온다 한들 어림없이 부족하다(요6:7). 특히 마가(막 6:37)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는 말투로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누가는 비교적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산 가르 호세이 안드레스 펜타키스킬리오이 에이펜 데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카타클리나테 아우투스 클리시아스 호세이 아나 펜테콘타

개역개정,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새번역,14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우리말성경,14 그곳에는 남자만 5,000명 정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50명씩 둘러앉게 하라.”

가톨릭성경,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영어NIV,14 (About five thousand men were there.) But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NASB,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to eat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MSG,14 (There were more than five thousand people in the crowd.) But he went ahead and directed his disciples, “Sit them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영어NRSV,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Mak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σαν γαρ ωσει ανδρες πεντακισχιλιοι ειπεν δε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κατακλινατε αυτους κλισιας ανα πεντηκοντα

라틴어Vulgate,14 erant autem fere viri quinque milia ait autem ad discipulos suos facite illos discumbere per convivia quinquagenos

히브리어Modern,14 כי היו כחמשת אלפי איש ויאמר אל תלמידיו הושיבו אתם שורות שורות חמשים בשורה׃

성 경: [눅9:1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남자가 한 오천 명 – 남자 장정만 오천명 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이다.

󰃨 떼를 지어 – 마가는 이 표현을 라틴어의 ‘심포지움’ 즉 ‘향연’과 같은 의미의 ‘쉼포시아'(*)를 사용하는데(막 6:39) 비해 누가는 이 표현을 ‘클리시아스'(*)라는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정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마샬(Marshall)같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만찬을 반영해 준다고 한다.

󰃨 한 오십 명씩 앉히라 – 여기서도 누가는 독특하게 ‘한'(*, 호세이)이라는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누가는 의사와 역사가로서 숫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비교, 막 6:40). 몇 명 단위로 앉혔는가 하는 사실에 관해서는 전승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단지 무리를 일정한 단위로 세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를 세분화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카이에포이에산 후토스 카이 카테클리난 하판타스

개역개정,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새번역,15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우리말성경,15 제자들은 그대로 사람들을 모두 앉혔습니다.

가톨릭성경,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영어NIV,15 The disciples did so, and everybody sat down.

영어NASB,15 They did so, and had them all sit down.

영어MSG,15 They did what he said, and soon had everyone seated.

영어NRSV,15 They did so and made them all sit down.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ποιησαν ουτως και ανεκλιναν απαντας

라틴어Vulgate,15 et ita fecerunt et discumbere fecerunt omnes

히브리어Modern,15 ויעשו כן ויושיבו את כלם׃

성 경: [눅9:1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제자들이…다 앉힌 후 – 제자들이 예수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이 간결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 역시 음식이 어디서 올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본 데 투스 펜테 아르투스 카이 투스 뒤오 잌뒤아스 아나블렢사스 에이스 톤 우라논 율로게센 아우투스 카이 카테클레센 카이 에디두 토이스 마데타이스 파라데이나이 토 오클로

개역개정,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새번역,16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우리말성경,16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영어NIV,16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m.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NASB,16 Then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blessed them, and broke them, and kept giving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MSG,16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lifted his face to heaven in prayer, blessed, broke, and gave the bread and fish to the disciples to hand out to the crowd.

영어NRSV,16 And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he looked up to heaven, and blessed and broke them,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crow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λαβων δε τους πεντε αρτους και τους δυο ιχθυας αναβλεψας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υλογησεν αυτους και κατεκλασεν και εδιδου τοις μαθηταις παρατιθεναι τω οχλω

라틴어Vulgate,16 acceptis autem quinque panibus et duobus piscibus respexit in caelum et benedixit illis et fregit et distribuit discipulis suis ut ponerent ante turbas

히브리어Modern,16 ויקח את חמשת ככרות הלחם ואת שני הדגים וישא עיניו השמימה ויברך עליהם ויפרס ויתן לתלמידיו לשום לפני העם׃

성 경: [눅9:1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 공관복음서 모두가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문구(文句)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식사 관습과 일치한다. ‘축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오'(*)는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것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평범한 감사의 식사 기도로 보아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는 삶을 사신 예수께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으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위한 별도의 간구가 필요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 주어…놓게하시니 – ‘주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두'(*)는 ‘디도미'(*)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예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었음을 가리킨다. 떡과 물고기는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을 경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단지 우리는 ‘주어'(*, 에디두)라는 미완료 동사에서 예수의 손에서 떡이 끝없이 계속해서 떼어져 나가는 기적적인 증가가 있었음을 암시받을 뿐이다.

카이 에파곤 카이 에코르타스데산 판테스 카이 에르데 토 페리쓔산 아우토이스 클라스마톤 코피노이 도데카

개역개정,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새번역,17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우리말성경,17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남은 조각들을 거두어 보니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가톨릭성경,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영어NIV,17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영어NASB,17 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broken pieces which they had left over were picked up, twelve baskets full.

영어MSG,17 After the people had all eaten their fill, twelve baskets of leftovers were gathered up.

영어NRSV,17 And all ate and were filled. What was left over was gathered up, twelve baskets of broken piece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και εφαγον και εχορτασθησαν παντες και ηρθη το περισσευσαν αυτοις κλασματων κοφινοι δωδεκα

라틴어Vulgate,17 et manducaverunt omnes et saturati sunt et sublatum est quod superfuit illis fragmentorum cofini duodecim

히브리어Modern,17 ויאכלו כלם וישבעו וישאו מן הפתותים הנותרים להם שנים עשר סלים׃

성 경: [눅9:1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먹고 다 배불렀더라 –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배불리 먹지 못한 자는 하나도없다. 이는 예수의 능력의 완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신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 보다는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일에 궁극적 목적을 두셨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매료(魅了)되어 찾아온 무리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도한 요한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요 6:14,15,26,27)

󰃨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 – 무리가 모두 배불리 먹은데 그치지 않고 남은 양이 무려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이라 명하시는데(요 6:12), 이것은 음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외에도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예수의 이적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다음에 또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구니'(*, 코피노이)는 군인들이 장비나 급식을 담아 짊어지고 다니는 기구 또는 여행자들이 음식과 필수품을 가지고 다니는 기구를 가리킨다. 처음의 시작은 바구니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예수 앞에 바쳐졌을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하라. 제자들은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된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적합할 만큼의 적은 것으로 큰 일을 하신 것이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에이나이 아우톤 프로슈코메논 카타 모나스 쉬네산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카이 에페로테센 아우투스 레곤 티나 메 레구신 호이 오클로이 에이나이

개역개정,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새번역,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말성경,18 한번은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가톨릭성경,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영어NI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in private and his disciples were with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I am?”

영어NASB,18 And it happened that while He was praying alone, the disciples were with Him, and He questioned them, saying, “Who do the people say that I am?”

영어MSG,18 One time when Jesus was off praying by himself, his disciples nearby, he asked them, “What are the crowds saying about me, about who I am?”

영어NRS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alone, with only the disciples near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that I a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ν προσευχομενον καταμονας συνησαν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και επηρωτησεν αυτους λεγων τινα με λεγουσιν οι οχλοι ειναι

라틴어Vulgate,18 et factum est cum solus esset orans erant cum illo et discipuli et interrogavit illos dicens quem me dicunt esse turbae

히브리어Modern,18 ויהי הוא מתפלל לבדד ויאספו אליו תלמידיו וישאל אתם לאמר מה אמרים עלי המון העם מי אני׃

성 경: [눅9:1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따로 기도하실 때에 – 누가는 막 6:45-8:26의 내용을 생략한 채 오병 이어의 기적에 이어 바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할때에’라는 ‘엔토'(*)구문으로 단락을 전환시키고 있다. 마태나 마가에 의하면(마 16:13;막 8:27) 이 장소는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이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90km 떨어진 헤르몬 산 근처의 성읍으로 특히 우상 숭배로 유명하다. 토착민들은 바알신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pan)의 신당을 지어 섬겼으며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이런 우상 숭배의 지역에서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irony)라 할 수 있다. 한편 누가는 이러한 단락 전환에 있어서 그 서두를 예수께서 기도 중에 있는 사실로 시작하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있어서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3:21;6:12;9:28).

󰃨 무리가…누구라고 하느냐 –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들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물으신 듯하다. 예수께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며, 그는 이미 무리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다(요 6:14,15,26).

호이 데 아포크리덴테스 에이판 요안넨 톤 밮티스텐 알로이 데 엘리안 알로이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새번역,19 그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19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옛 예언자 중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침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영어NIV,19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s come back to life.”

영어NASB,19 They answered and said, “John the Baptist, and others say Elijah; but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s risen again.”

영어MSG,19 They said, “John the Baptizer. Others say Elijah. Still others say that one of the prophets from long ago has come back.”

영어NRSV,19 They answered, “John the Baptist; but others,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s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19 οι δε αποκριθεντες ειπον ιωαννην τον βαπτιστην αλλοι δε ηλιαν αλλοι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τ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19 at illi responderunt et dixerunt Iohannem Baptistam alii autem Heliam alii quia propheta unus de prioribus surrexit

히브리어Modern,19 ויענו ויאמרו יוחנן המטביל ואחרים אמרים אליהו ואחרים אמרים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1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세례 요한…엘리야…선지자…살아났다 –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에이펜 데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데 티나 메 레게테 에이나이 페트로스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톤 크리스톤 투 데우

개역개정,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새번역,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 ㉢히브리어로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분’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0 그러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가톨릭성경,20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20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Peter answered, “The Christ of God.”

영어NASB,20 And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And Peter answered and said, ” The Christ of God.”

영어MSG,20 He then asked, “And you–what are you saying about me? Who am I?”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영어NRSV,20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ιπεν δε αυτοις υμεις δε τινα με λεγετε ειναι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πετρος ειπεν τον χριστ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dixit autem illis vos autem quem me esse dicitis respondens Simon Petrus dixit Christum Dei

히브리어Modern,20 ויאמר אליהם ואתם מה אתם אמרים מי אני ויען פטרוס ויאמר משיח האלהים אתה׃

성 경: [눅9:2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 41-56; 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게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한편 이 물음은 모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 베드로가…그리스도시니이다 –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역시 제자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간에 표현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마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호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 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민 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요 10:30;요일4: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의문시 되어 왔던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마태복음에는(마 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이 언급되며, 그 본문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여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근거로도 사용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 16:13-20의 주제 강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따른 약속’을 보라.

호 데 에피티메사스 아우토이스 파렝게일렌 메데니 레게인 투토

개역개정,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새번역,21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우리말성경,21 예수께서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며

가톨릭성경,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영어NIV,21 Jesus strictly warn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NASB,21 But He warned them and instruct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MSG,21 Jesus then warned them to keep it quiet. They were to tell no one what Peter had said.

영어NRSV,21 He sternly ordered and commanded them not to tell anyon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δε επιτιμησας αυτοις παρηγγειλεν μηδενι ειπειν τουτο

라틴어Vulgate,21 at ille increpans illos praecepit ne cui dicerent hoc

히브리어Modern,21 ויצו אתם בגערה לבלתי הגיד לאיש את הדבר הזה׃

성 경: [눅9:2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경계하사…명하시고 – ‘경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인데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 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요 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에이폰 호티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폴라 파데인 카이 아포도키마스데나이 아포 톤 프레스뷔테론 카이 아르키에레온 카이 그람마테온 카이 아포크탄데나이 카이 테 트리테 헤메라 에게르데나이

개역개정,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새번역,22 말씀하셨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우리말성경,22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받아 끝내 죽임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영어NIV,22 And he said,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he must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to life.”

영어NASB,22 saying, ”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and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be raised up on the third day.”

영어MSG,22 He went on, “It is necessary that the Son of Man proceed to an ordeal of suffering, be tried and found guilty by the religious leaders, high priests, and religion scholars,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up alive.”

영어NRSV,22 saying, “The Son of Man must undergo great suffering,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ιπων οτι δει τον υιον του ανθρωπου πολλα παθειν και αποδοκιμασθηναι απο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και αρχιερεων και γραμματεων και αποκτανθηναι και τη τριτη ημερα εγερθηναι

라틴어Vulgate,22 dicens quia oportet Filium hominis multa pati et reprobari a senioribus et principibus sacerdotum et scribis et occidi et tertia die resurgere

히브리어Modern,22 ויאמר מן הצרך הוא אשר בן האדם יענה הרבה וימאס מן הזקנים והכהנים הגדולים והסופרים ויהרג וביום השלישי קום יקום׃

성 경: [눅9:2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인자가…하리라 – 본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마조'(*)는 ‘거부하다’, ‘쓸모 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데이'(*)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혀준다(사 53장; 요 3:16;롬 8:32).

󰃨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24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 보라.

󰃨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 프레스뷔테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성하였다(7:3;20:1;22:52). ‘대제사장들'(*, 아르키에류스)은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 그람마튜스)은 ‘랍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다. 유대 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옳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엘레겐 데 프로스 판타스 에이 티스 델레이 오피소 무 에르케스다이 아르네사스도 헤아우톤 카이 아라토 톤 스타우론 아우투 칻 헤메란 카이 아몰루데이토 모이

개역개정,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새번역,23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우리말성경,23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가톨릭성경,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어NI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NASB,23 And He was saying to them all,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MSG,23 Then he told them what they could expect for themselves: “Anyone who intends to come with me has to let me lead. You’re not in the driver’s seat–I am. Don’t run from suffering; embrace it. Follow me and I’ll show you how.

영어NRS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 want to become my followers, let them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daily and follow me.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λεγεν δε προς παντας ει τις θελει οπισω μου ελθειν απαρνησασθω εαυτον και αρατω τον σταυρον αυτου καθ ημεραν και ακολουθειτω μοι

라틴어Vulgate,23 dicebat autem ad omnes si quis vult post me venire abneget se ipsum et tollat crucem suam cotidie et sequatur me

히브리어Modern,23 ואל כלם אמר איש כי יחפץ ללכת אחרי יכחש בנפשו ויום יום ישא את צלבו והלך אחרי׃

성 경: [눅9:2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절)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가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째로 이러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호스 가르 안 델레 텐 프쉬켄 아우투 소사이 아폴레세이 아우텐 호스 드 안 아폴레세 텐 프쉬켄 아우투 헤네켄 에무 후토스 소세이 아우텐

개역개정,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새번역,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4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영어NIV,24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e will save it.

영어NASB,24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he is the one who will save it.

영어MSG,24 Self-help is no help at all. Self-sacrifice is the way, my way, to finding yourself, your true self.

영어NRSV,24 For those who want to save their life will lose it, and those who lose their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ς γαρ αν θελ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σωσαι απολεσει αυτην ος δ αν απολεσ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ενεκεν εμου ουτος σωσει αυτην

라틴어Vulgate,24 qui enim voluerit animam suam salvam facere perdet illam nam qui perdiderit animam suam propter me salvam faciet illam

히브리어Modern,24 כי כל אשר יחפץ להושיע את נפשו תאבד נפשו ממנו וכל אשר יאבד את נפשו למעני הוא יושיענה׃

성 경: [눅9:2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목숨을…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 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요 12:25).

󰃨 나를 위하여…구원하리라 –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티 가르 오펠레이타이 안드로포스 케르데사스 톤 코스몬 홀론 헤아우톤 데 아폴레사스 에 제미오데이스

개역개정,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새번역,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우리말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가톨릭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영어NIV,25 What good is it for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and yet lose or forfeit his very self?

영어NASB,25 “For what is a man profited if he gains the whole world, and loses or forfeits himself?

영어MSG,25 What good would it do to get everything you want and lose you, the real you?

영어NRSV,25 What does it profit them if they gain the whole world, but lose or forfeit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25 τι γαρ ωφελειται ανθρωπος κερδησας τον κοσμον ολον εαυτον δε απολεσας η ζημιωθεις

라틴어Vulgate,25 quid enim proficit homo si lucretur universum mundum se autem ipsum perdat et detrimentum sui faciat

히브리어Modern,25 כי מה יועיל האדם כי יקנה את כל העולם ואבד והשחית את נפשו׃

성 경: [눅9:2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온 천하를…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계 2:10).

호스 가르 안 에파이스퀸데 메 카이 투스 에무스 로구스 투톤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에파이스퀸데세타이 호탄 엘데 엔 테 돜세 아우투 카이 투 파트로스 카이 톤 하기온 앙겔론

개역개정,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새번역,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우리말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가운데 올 때 그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영어NIV,26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in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NASB,26 “For whoever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MSG,26 If any of you is embarrassed with me and the way I’m leading you, know that the Son of Man will be far more embarrassed with you when he arrives in all his splendor in company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angels. This isn’t, you realize, pie in the sky by and by.

영어NRSV,26 Those who are ashamed of me and of my words, of them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ς γαρ αν επαισχυνθη με και τους εμ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ν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παισχυνθησεται οταν ελθη εν τη δοξη αυτου και του πατρος και των αγιων αγγελων

라틴어Vulgate,26 nam qui me erubuerit et meos sermones hunc Filius hominis erubescet cum venerit in maiestate sua et Patris et sanctorum angelorum

히브리어Modern,26 כי כל אשר הייתי אני ודברי לו לחרפה הוא יהיה לחרפה לבן האדם כאשר יבא בכבודו ובכבוד האב והמלאכים הקדושים׃

성 경: [눅9:2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인자도…부끄러워 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있다. 누가는 마태나(마 16:27), 마가(막 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마 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히 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 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롬 1:16).

레고 데 휘민 알레도스 에이신 티네스 톤 아우투 헤스테코톤 호이 우 메 규손타이 다나투 헤오스 안 이도신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개역개정,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새번역,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

우리말성경,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영어NIV,27 I tell you the truth, some who are standing here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NASB,27 “But I say to you truthfully, there are some of thos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until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MSG,27 Some who have taken their stand right here are going to see it happen, see with their own eyes the kingdom of God.”

영어NRSV,27 But truly I tell you, there are som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λεγω δε υμιν αληθως εισιν τινες των ωδε εστηκοτων οι ου μη γευσονται θανατου εως αν ιδωσ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7 dico autem vobis vere sunt aliqui hic stantes qui non gustabunt mortem donec videant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27 ובאמת אני אמר לכם יש מן העמדים פה אשר לא יטעמו מות עד כי יראו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9:2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여기 섰는…있느니라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하였다면 본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섰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에게네토 데 메타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세이 헤메라이 옼토 카이 파랄라본 페트론 카이 요안넨 카이 야코본 아네베 에이스 토 오로스 프로슠사스다이

개역개정,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새번역,28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우리말성경,28 이런 말씀을 하신 뒤 8일쯤 지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28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영어NIV,28 About eight days after Jesus said this, he took Peter, John and James with him and went up onto a mountain to pray.

영어NASB,28 Some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He took along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영어MSG,28 About eight days after saying this, he climbed the mountain to pray, taking Peter, John, and James along.

영어NRSV,28 Now about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Jesus took with him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γενετο δε μετα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ωσει ημεραι οκτω και παραλαβων τον πετρον και ιωαννην και ιακωβον ανεβη εις το ορος προσευξασθαι

라틴어Vulgate,28 factum est autem post haec verba fere dies octo et adsumpsit Petrum et Iohannem et Iacobum et ascendit in montem ut oraret

히브리어Modern,28 ויהי כשמנה ימים אחרי הדברים האלה ויקח אליו את פטרוס ואת יוחנן ואת יעקב ויעל אל ההר להתפלל שם׃

성 경: [눅9:2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이 말씀을 하신 후 –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연결구를 첨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26:37;막 14:33) 예수를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다.

󰃨 기도하시러 산에 –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山行)의 목적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 ‘메론 산’, ‘다볼산’이라는 추측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프로슈케스다이 아우톤 토 에이도스 투 프로소푸 아우투 헤테론 카이 호 히마티스모스 아우투 류코스 엨사스트랖톤

개역개정,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새번역,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우리말성경,29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동안 얼굴 모습이 변하셨고 옷이 하얗게 빛났습니다.

가톨릭성경,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영어NIV,29 As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as bright as a flash of lightning.

영어NASB,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became different, and His clothing became white and gleaming.

영어MSG,29 While he was in prayer,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blinding white.

영어NRSV,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헬라어신약Stephanos,29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προσευχεσθαι αυτον το ειδος του προσωπου αυτου ετερον και ο ιματισμος αυτου λευκος εξαστραπτων

라틴어Vulgate,29 et factum est dum oraret species vultus eius altera et vestitus eius albus refulgens

히브리어Modern,29 ויהי בהתפללו נשתנה מראה פניו ולבושו הלבין והבריק׃

성 경: [눅9:2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기도하실 때에…나더라 –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이 달라졌다’이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한다. 이는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시 84:11;계 1:16;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다(마 28:3;막 16:5;행 1:10;계 3:4,5;7:14). 이것 역시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준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의 합성어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모는 (1)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 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의 모습과(롬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다.

카이 이두 안드레스 뒤오 쉬넬랄룬 아우토 호이티네스 에산 모위세스 카이 엘리아스

개역개정,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새번역,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우리말성경,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어NIV,30 Two men, Moses and Elijah,

영어NASB,30 And behold, two men were talking with Him; and they were Moses and Elijah,

영어MSG,30 At once two men were there talking with him. They turned out to be Moses and Elijah–

영어NRSV,30 Suddenly they saw two men, Moses and Elijah, talki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ιδου ανδρες δυο συνελαλουν αυτω οιτινες ησαν μωσης και ηλιας

라틴어Vulgate,30 et ecce duo viri loquebantur cum illo erant autem Moses et Helias

히브리어Modern,30 והנה שני אנשים מדברים אתו והמה משה ואליהו׃

성 경: [눅9:3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이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다(말 4:5).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마 5:17,18).

호이 오프덴테스 엔 돜세 엘레곤 텐 엨소돈 아우투 헨 에멜렌 플레룬 엔 예루살렘

개역개정,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새번역,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 ㉤’세상에서 떠나가심’ 곧 ‘죽으심’

우리말성경,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분의 떠나가심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영어NIV,31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영어NASB,31 who, appearing in glory,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영어MSG,31 and what a glorious appearance they made! They talked over his exodus, the one Jesus was about to complete in Jerusalem.

영어NRSV,31 They appeared in glory and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ι οφθεντες εν δοξη ελεγον την εξοδον αυτου ην εμελλεν πληρου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31 visi in maiestate et dicebant excessum eius quem conpleturus erat in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31 אשר נראו בכבוד והגידו את אחריתו אשר ימלאנה בירושלים׃

성 경: [눅9:3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낸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 데 페트로스 카이 호이 쉰 아우토 에산 베바레메노이 휲노 디아그레고레산테스 데 에이돈 텐 돜산 아우투 카이 투스 뒤오 안드라스 투스 쉬네스토타스 아우토

개역개정,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새번역,32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우리말성경,32 베드로와 그 일행이 잠을 이기지 못해 졸다가 완전히 깨서 예수의 영광과 그분 곁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영어NIV,32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very sleepy, but when they becam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ASB,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had been overcome with sleep; but when they wer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MSG,32 Meanwhile, Peter and those with him were slumped over in sleep. When they came to, rubbing their eyes, they saw Jesus in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RSV,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weighed down with sleep; but since they had stayed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who stood wit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2 ο δε πετρος και οι συν αυτω ησαν βεβαρημενοι υπνω διαγρηγορησαντες δε ειδον την δοξαν αυτου και τους δυο ανδρας τους συνεστωτας αυτω

라틴어Vulgate,32 Petrus vero et qui cum illo gravati erant somno et evigilantes viderunt maiestatem eius et duos viros qui stabant cum illo

히브리어Modern,32 ויהיו פטרוס ואשר אתו נרדמים ובהקיצם ראו את כבודו ואת שני האנשים העמדים עליו׃

성 경: [눅9:3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곤하여 졸다가 –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와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곯아 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한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결과를 초래했다(22:42-46).

󰃨 아주 깨어…보더니 –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난다. 아마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와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다. 이는 예수가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 시사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디아코리제스다이 아우투스 앞 아우투 에이펜 호 페트로스 프로스 톤 예순 에피스타타 칼론 에스틴 헤마스 호데 에이나이 카이 포이에소멘 스케나스 트레이스 미안 소이 카이 미안 모위세이 카이 미안 엘리아 메 에이도스 호 레게이

개역개정,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새번역,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3 두 사람이 예수를 떠나려고 하자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 있으니 참 좋습니다. 우리가 초막 세 개를 만들어 하나는 선생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세우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영어NIV,33 As the men were leaving Jesus, Peter said to him,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He did not know what he was saying.)

영어NASB,33 And as these were leaving Him, Peter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one for You,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not realizing what he was saying.

영어MSG,33 When Moses and Elijah had left, Peter said to Jesus, “Master, this is a great moment! Let’s build three memorial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He blurted this out without thinking.

영어NRSV,33 Just as they were leaving him, Peter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make three dwelling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not knowing what he said.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διαχωριζεσθαι αυτους απ αυτου ειπεν ο πετρος προς τον ιησουν επιστατα καλον εστιν ημας ωδε ειναι και ποιησωμεν σκηνας τρεις μιαν σοι και μωσει μιαν και μιαν ηλια μη ειδως ο λεγει

라틴어Vulgate,33 et factum est cum discederent ab illo ait Petrus ad Iesum praeceptor bonum est nos hic esse et faciamus tria tabernacula unum tibi et unum Mosi et unum Heliae nesciens quid diceret

히브리어Modern,33 ויהי בהפרדם ממנו ויאמר פטרוס אל ישוע מורה טוב היותנו פה נעשה נא שלש סכות לך אחת ולמשה אחת ולאליהו אחת ולא ידע מה דבר׃

성 경: [눅9:3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이 제단은 하늘로부터 온 두 사람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는 베드로의 바램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예수의 수난 예고와(22절) 그것을 확증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31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安住)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초막 셋을 짓되 – 이 초막은 숙곳에서 장막절에 사용했던 것(출 13:20)과 같이 나뭇잎이나 기타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움막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텐트나 장막을 가리킨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천상적인 영광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초막 셋’이라는 표현은 예수를 다른 두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적 무지를 반영한다.

타우타 데 아우투 레곤토스 에게네토 네펠레 카이 에페스키아젠 아우투스 에포베데산 데 엔 토 에이셀데인 아우투스 에이스 텐 네펠렌

개역개정,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새번역,34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 ㉥그, ‘그들을’

우리말성경,3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구름이 나와서 그들을 뒤덮었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가톨릭성경,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영어NIV,34 While he was speaking,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they were afraid as they entered the cloud.

영어NASB,34 While he was saying this, a cloud formed and began to overshadow them; and they were afraid as they entered the cloud.

영어MSG,34 While he was babbling on like this, a light-radiant cloud enveloped them. As they found themselves buried in the cloud, they became deeply aware of God.

영어NRSV,34 While he was saying this, a cloud came and overshadowe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as they entered the cloud.

헬라어신약Stephanos,34 ταυτα δε αυτου λεγοντος εγενετο νεφελη και επεσκιασεν αυτους εφοβηθησαν δε εν τω εκεινους εισελθειν εις την νεφελην

라틴어Vulgate,34 haec autem illo loquente facta est nubes et obumbravit eos et timuerunt intrantibus illis in nubem

히브리어Modern,34 הוא מדבר כזאת והנה ענן סכך עליהם וכבואם בענן נבעתו׃

성 경: [눅9:3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구름 – 구름은 미래에 다시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고(단 7:13) 성도들을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며(계 11:12), 신 구약 중간시대 문학에서는 메시야의 도래와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다(위경 2 Baruch 53:1-12;4 Ezra 13:3). 구름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이다(출16:10;19:9;24:15-18;33:9). 특히 출 24:15-18에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병행구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와 두 인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어 하나님 자신의 임재로 말미암아 상황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 저희를 덮는지라 – 여기서 ‘저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1)예수와 두 인물 그리고 3제자 모두(Schurmann), (2)모세와 엘리야만(Greijdanus, Williams), (3)예수와 모세, 엘리야(Godet, Knox, Marshall). 이 중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 무서워하더니 – 신적인 권능 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는 인간의 죄성과 유한성 때문이다(8:25;24:4,5).

카이 포네 에게네토 에크 테스 네펠레스 레구사 후토스 에스틴 호 휘오스 무 호 에클렐레그메노스 아우투 아쿠에테

개역개정,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새번역,35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가 사랑하는 자다’

우리말성경,35 그때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그의 말을 들어라!”

가톨릭성경,35 이어 구름 속에서 “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영어NIV,35 A voice came from the cloud,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have chosen; listen to him.”

영어NASB,35 Then a voice came out of the cloud, saying, “This is My Son, My Chosen One; listen to Him!”

영어MSG,35 Then there was a voice out of the cloud: “This is my Son, the Chosen! Listen to him.”

영어NRSV,35 Then from the cloud came a voice that said, “This is my Son, my Chosen; listen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φωνη εγενετο εκ της νεφελης λεγουσα ουτος εστιν ο υιος μου ο αγαπητος αυτου ακουετε

라틴어Vulgate,35 et vox facta est de nube dicens hic est Filius meus electus ipsum audite

히브리어Modern,35 ויצא קול מן הענן אמר זה בני ידידי אליו תשמעון׃

성 경: [눅9:3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 – 구름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음성이기에 그만큼 이 선언은 엄숙하고 확정적이다. 또한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때 들려왔던 음성과도 비슷하다(3:22).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예수 이해는 이제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더이상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수난 주간에도 한번 더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요 12:2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 사역의 시작과 절정기와 마지막에 주어진 것이며 이것은 그 사역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의미한다. 한편 누가는 마태(마 17:5)나 마가(막 9:7)와 달리 ‘사랑하는’을 생략하고 ‘택함을 받은 자’를 첨가하고 있다. 누가는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의 삶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음과 아울러 예수의 권위의 출처가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 저의 말을 들으라 – 이 명령은 신 18:15의 반영으로 이제 예수의 정체(正體)가 분명히 드러난 이상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이 명령은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것이고 그 선택 여하에 따른 필연적 심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하여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에 있으며 예수께서 제시하는 사역의 목적과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지 말라는 것이다(마 16:21-23).

카이 엔 토 게네스다이 텐 포넨 휴레데 예수스 모노스 카이 아우토이 에시게산 카이 우데니 아펭게일란 엔 에케이나스 타이스 헤메라이스 우덴 혼 헤오라칸

개역개정,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새번역,36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우리말성경,36 그 소리가 사라지고 그들이 보니 예수만 홀로 서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영어NIV,36 When the voice had spoken, they found that Jesus was alone. The disciples kept this to themselves, and told no one at that time what they had seen.

영어NASB,36 And when the voice had spoken, Jesus was found alone. And they kept silent, and reported to no one in those days any of the things which they had seen.

영어MSG,36 When the sound of the voice died away, they saw Jesus there alone. They were speechless. And they continued speechless, said not one thing to anyone during those days of what they had seen.

영어NRSV,36 When the voice had spoken, Jesus was found alone. And they kept silent and in those days told no one any of the things they had seen.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ι εν τω γενεσθαι την φωνην ευρεθη ο ιησους μονος και αυτοι εσιγησαν και ουδενι απηγγειλαν εν εκειναις ταις ημεραις ουδεν ων εωρακασιν

라틴어Vulgate,36 et dum fieret vox inventus est Iesus solus et ipsi tacuerunt et nemini dixerunt in illis diebus quicquam ex his quae viderant

히브리어Modern,36 ובהיות הקול נשאר ישוע לבדו והמה החשו ולא הגידו דבר לאיש בימים ההם מכל אשר ראו׃

성 경: [눅9:3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 누가는 상황이 끝나는 장면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마 17:6-8 비교).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로 강조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 뿐이다. 그만큼 예수는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 그 때에는…아니하니라 – 자기들이 본 사실을 잠정적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을 말하는데 아마 예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말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듯하다(마 17:9;막 9:9).

에게네토 데 테 헼세스 헤메라 카텔돈톤 아우톤 아포 투 오루스 쉬넨테센 아우토 오클로스 폴뤼스

개역개정,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새번역,37 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우리말성경,37 이튿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맞았습니다.

가톨릭성경,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영어NIV,37 The next day,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 large crowd met him.

영어NASB,37 On the next day,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 large crowd met Him.

영어MSG,37 When they came down off the mountain the next day, a big crowd was there to meet them.

영어NRSV,37 On the next day, when they had come down from the mountain, a great crowd me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7 εγενετο δε εν τη εξης ημερα κατελθοντων αυτων απο του ορους συνηντησεν αυτω οχλος πολυς

라틴어Vulgate,37 factum est autem in sequenti die descendentibus illis de monte occurrit illi turba multa

히브리어Modern,37 ויהי ממחרת ברדתם מן ההר ויצא עם רב לקראתו׃

성 경: [눅9:3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이튿날 – 누가만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변화산의 영광이 밤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엘리야와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마 17:10-13;막 9:11-13) 누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한채 바로 무리들과의 만남을 서술한다. 이 무리들 중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고(40절), 막 9:14에 의하면 서기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카이 이두 아네르 아포 투 오클루 에보에센 레곤 디다스칼레 데오마이 수 에피블렢사이 에피 톤 휘온 무 호티 모노게네스 모이 에스틴

개역개정,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새번역,38 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우리말성경,38 그 무리 중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부탁입니다. 제 아들 좀 봐 주십시오. 제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가톨릭성경,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영어NIV,38 A man in the crowd called out,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child.

영어NASB,38 And a man from the crowd shouted, saying,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boy,

영어MSG,38 A man called from out of the crowd, “Please, please, Teacher, take a look at my son. He’s my only child.

영어NRSV,38 Just then a man from the crowd shouted,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he is my only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38 και ιδου ανηρ απο του οχλου ανεβοησεν λεγων διδασκαλε δεομαι σου επιβλεψον επι τον υιον μου οτι μονογενης εστιν μοι

라틴어Vulgate,38 et ecce vir de turba exclamavit dicens magister obsecro te respice in filium meum quia unicus est mihi

히브리어Modern,38 והנה איש אחד מן העם צעק לאמר אנא רבי פנה נא אל בני כי יחיד הוא לי׃

성 경: [눅9:3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내 외아들이니이다 –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딱한 사정에 대하여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은 8:40,41에 있는 야이로의 외딸을 살리신 사건과 유사하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외아들’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극심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고통이 극심한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릴 때(7:12)나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릴때도(8:41) 마찬가지였다. 한편 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묘사함에 있어서 마가(막9:22)의 ‘불쌍히 여기다'(*, 스플랑크니조마이)를 ‘돌아보다'(*, 에피블렙사이)로 대치시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위로’를 뜻하는 ‘에피'(*)와 ‘보다’를 뜻하는 ‘블레포'(*)의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이다.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카이 이두 프뉴마 람바네이 아우톤 카이 엨사이프네스 크라제이 카이 스파라쎄이 아우톤 메타 아프루 카이 모기스 아포코레이 앞 아우투 쉰트리본 아우톤

개역개정,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새번역,39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39 그런데 귀신이 이 아이를 사로잡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게 하고 아이에게 발작을 일으켜 입에 거품을 물게도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영어NIV,39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screams; it throws him into convulsions so that he foams at the mouth. It scarcely ever leaves him and is destroying him.

영어NASB,39 and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screams, and it throws him into a convulsion with foaming at the mouth; and only with difficulty does it leave him, mauling him as it leaves.

영어MSG,39 Often a spirit seizes him. Suddenly he’s screaming, thrown into convulsions, his mouth foaming. And then it beats him black and blue before it leaves.

영어NRSV,39 Suddenly a spirit seizes him, and all at once he shrieks. It convulses him until he foams at the mouth; it mauls him and will scarcely leav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ιδου πνευμα λαμβανει αυτον και εξαιφνης κραζει και σπαρασσει αυτον μετα αφρου και μογις αποχωρει απ αυτου συντριβο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39 et ecce spiritus adprehendit illum et subito clamat et elidit et dissipat eum cum spuma et vix discedit dilanians eum

히브리어Modern,39 והנה רוח אחז בו ופתאם הוא מצעק והרוח מרוצץ אתו בהוריד רירו ומקשה לסור ממנו ובסורו ידכא אתו׃

성 경: [눅9:3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귀신이 저를 잡아 – 마태는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렸다 하고(마 17:15), 마가는 벙어리 귀신에 들렸다고 하나(막 9:17) 누가는 간략하게 귀신에 붙잡혔다고만 서술하고있다. 누가로서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증을 받은 ‘아들’과 아들의 사역을 방해하는 핵심 세력인 ‘귀신’과의 싸움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 졸지에…떠나 가나이다 – 이런 증세는 의학적으로 규명할 때 간질병의 증세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 간질병 배후(背後)에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서 기자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간질병과 예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귀신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카이 에데에덴 톤 마데톤 수 히나 에크발로신 아우토 카이 우크 에뒤네데산

개역개정,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새번역,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말성경,40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은 해내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영어NIV,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drive it out, but they could not.”

영어NASB,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cast it out, and they could not.”

영어MSG,40 I asked your disciples to deliver him but they couldn’t.”

영어NRSV,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cast it out, but they could not.”

헬라어신약Stephanos,40 και εδεηθην των μαθητων σου ινα εκβαλλωσιν αυτο και ουκ ηδυνηθησαν

라틴어Vulgate,40 et rogavi discipulos tuos ut eicerent illum et non potuerunt

히브리어Modern,40 ואבקש מתלמידיך לגרשו ולא יכלו׃

성 경: [눅9:4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제자들…능히 못하더이다 – 결국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의 변론 주제가(막9:14) 제자들의 무능력에 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신적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동안 예수와 함께 있던 세 제자는 잠을 자고(32절),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에 붙잡힌 아이를 구하지 못해 무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서기관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 바, 이는 제자들의 아둔함을 잘 보여준다. 본래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능히 예수를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로부터 권능을 받았고 그 권능으로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1-6절). 그렇다면 제자들의 능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호 예수스 에이펜 오 게네아 아피스토스 카이 디에스트람메네 헤오스 포테 에소마이 프로스 휘마스 카이 아넼소마이 휘몬 프로사가게 호데 톤 휘온 수

개역개정,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새번역,4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우리말성경,41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참아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가톨릭성경,41 그러자 예수님께서, “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영어NIV,41 “O unbelieving and perverse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and put up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영어NASB,41 And Jesus answered and said, “You unbelieving and perverted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and put up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영어MSG,41 Jesus said, “What a generation! No sense of God! No focus to your lives! How many times do I have to go over these things? How much longer do I have to put up with this? Bring your son here.”

영어NRSV,41 Jesus answered, “You faithless and perverse generation, how much longer must I be with you and bear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헬라어신약Stephanos,41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ιησους ειπεν ω γενεα απιστος και διεστραμμενη εως ποτε εσομαι προς υμας και ανεξομαι υμων προσαγαγε ωδε τον υ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41 respondens autem Iesus dixit o generatio infidelis et perversa usquequo ero apud vos et patiar vos adduc huc filium tuum

히브리어Modern,41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הוי דור חסר אמונה ופתלתל עד מתי אהיה עמכם ואסבל אתכם הבא הנה את בנך׃

성 경: [눅9:4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이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하다.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한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이적(異蹟)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내가 얼마나…너희를 참으리요 – 본절에 나타난 ‘믿음이 없는’, ‘패역한’ 등의 표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들을(신 32:5,20) 반영하며, 본문의 말씀은 더이상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패역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백성들을 품안에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킨다(사 46:4). 이제 예수의 지상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의 결핍을 노출시켰고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무리들은 점점더 패역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예수의 격한 감정은 ‘호'(*)라는 탄식어가 잘 나타내 준다.

에티 데 프로세르코메누 아우투 에르렠센 아우톤 토 다이모니온 카이 쉬네스파랔센 에페티메센 데 호 예수스 토 프뉴마티 토 아카다르토 카이 이아사토 톤 파이다 카이 아페도켄 아우톤 토 파트리 아우투

개역개정,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새번역,42 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 ㉧그, ‘더러운’

우리말성경,42 그 아이가 오는 중에도 귀신은 아이의 몸을 바닥에 내던지며 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며 그 아이를 고쳐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영어NIV,42 Even while the boy was coming, the demon threw him to the ground in a convulsion. But Jesus rebuked the evil spirit,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NASB,42 While he was still approaching, the demon slammed him to the ground and threw him into a convulsion. But Jesus rebuked the unclean spirit, and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MSG,42 While he was coming, the demon slammed him to the ground and threw him into convulsions. Jesus stepped in, ordered the vile spirit gone, healed the boy, and handed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NRSV,42 While he was coming, the demon dashed him to the ground in convulsions. But Jesus rebuked the unclean spirit,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헬라어신약Stephanos,42 ετι δε προσερχομενου αυτου ερρηξεν αυτον το δαιμονιον και συνεσπαραξεν επετιμησεν δε ο ιησους τω πνευματι τω ακαθαρτω και ιασατο τον παιδα και απεδωκεν αυτον τω πατ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42 et cum accederet elisit illum daemonium et dissipavit

히브리어Modern,42 ויהי אך הקריב לבוא וירעצהו השד וירוצצהו וישוע גער ברוח הטמא וירפא את הנער וישיבהו לאביו׃

성 경: [눅9:4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 ‘올때에’는 문자적으로 ‘아직 저가 오고있는 동안’의 의미로 아직 소년이 예수 앞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이 도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비교, 막 9:20). ‘거꾸러뜨리고'(*, 엘렉센 아우톤)는 전투나 레슬링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타격을 가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아이의 발작이 귀신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귀신이 예수의 사역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 더러운 귀신을…낫게하사 – 귀신의 격렬한 도발 행위는 예수의 꾸짖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멈춰졌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괴롭힘당했던 모든 질병들로부터 치유를 받았다. 한편 마가(막 9:22-24)는 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 줌으로써 신앙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그 부분을 생략하여 예수의 놀라운치유 능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 조금전의 엄한 꾸짖음(41절)과 달리 이번에는 부드러운 사랑과 자비로운 행위로 아이를 아비에게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행위는 7:15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적 성품이 사랑임을 나타내 준다.

엨세플레손토 데 판테스 에피 테 메갈레이오테티 투 데우 판톤 데 다우마존톤 에피 파신 호이스 에포이에이 에이펜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개역개정,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새번역,43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그, ‘위대하심’

우리말성경,43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모두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에 다들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영어NIV,43 And they were all amazed at the greatness of God. While everyone was marveling at all that Jesus did, he said to his disciples,

영어NASB,43 And they were all amazed at the greatness of God. But while everyone was marveling at all that He was doing, He said to His disciples,

영어MSG,43 They all shook their heads in wonder, astonished at God’s greatness, God’s majestic greatness. While they continued to stand around exclaiming over all the things he was doing, Jesus said to his disciples,

영어NRSV,43 And all were astounded at the greatness of God. While everyone was amazed at all that he was doing, he said to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43 εξεπλησσοντο δε παντες επι τη μεγαλειοτητι του θεου παντων δε θαυμαζοντων επι πασιν οις εποιησεν ο ιησους ειπεν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43 et increpavit Iesus spiritum inmundum et sanavit puerum et reddidit illum patri eius

히브리어Modern,43 וישתוממו כלם על גדלת האלהים ויהי בתמהם כלם על כל אשר עשה ויאמר ישוע אל תלמידיו׃

성 경: [눅9:4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확인은 예수의 귀신 축사를 통해 분명히 증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사건 속에서 예수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예수의 행위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겪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데스데 휘메이스 에이스 타 오타 휘몬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 가르 휘오스 투 안드로푸 멜레이 파라디도스다이 에이스 케이라스 안드로폰

개역개정,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새번역,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인자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우리말성경,44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유의해 들으라. 인자가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가톨릭성경,44 “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영어NIV,44 “Listen carefully to what I am about to tell you: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men.”

영어NASB,44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for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men.”

영어MSG,44 “Treasure and ponder each of these next words: The Son of Man is about to be betrayed into human hands.”

영어NRSV,44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human hands.”

헬라어신약Stephanos,44 θεσθε υμεις εις τα ωτα υμων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ο γαρ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μελλει παραδιδοσθαι εις χειρας ανθρωπων

라틴어Vulgate,44 stupebant autem omnes in magnitudine Dei omnibusque mirantibus in omnibus quae faciebat dixit ad discipulos suos ponite vos in cordibus vestris sermones istos Filius enim hominis futurum est ut tradatur in manus hominum

히브리어Modern,44 שימו אתם באזניכם את הדברים האלה כי עתיד בן האדם להמסר בידי בני האדם׃

성 경: [눅9:4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번째 예고]

󰃨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 사람들이 예수의 행함을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다시 한번 수난 예고를 하고 있다. 이 수난 예고는 22절에 이어 두번째에 해당하며 여기서는 ‘너희'(*, 휘메이스)가 강조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사람들이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기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든지 제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들’이란 계속 이어지는 ‘수난 예고’를 가리킨다.

󰃨 인자가…넘기우리라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수난 예고는 누가복음 전체에 기록되어 있는 네 번의 수난예고 가운데 두번째 것이다(9:22,44; 18:31-34;22:21-23). 여기서 ‘넘기우다'(*, 파라디도스다이)는 수동태의 표현은 가룟유다에 의한 배반을 예고하며 ‘사람들’은 22절에 언급된 바 있는 산헤드린(Sanhedrin)을 가리킨다. 물론 가룟 유다의 배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었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마태(마 17:23)나, 마가(막 17:31)와 달리 누가는 여기서 ‘부활’에 관해서는 언급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이 데 에그노운 토 레마 투토 카이 엔 파라케칼륌메논 앞 아우톤 힌나 메 아이스돈타이 아우토 카이 에포분토 에로테사이 아우톤 페리 투 레마토스 투투

개역개정,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새번역,45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 뜻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그에게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우리말성경,45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 뜻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예수께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영어NIV,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this meant. It was hidden from them, so that they did not grasp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it.

영어NASB,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tatement, and it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would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tatement.

영어MSG,45 They didn’t get what he was saying. It was like he was speaking a foreign language and they couldn’t make heads or tails of it. But they were embarrassed to ask him what he meant.

영어NRSV,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its meaning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45 οι δε ηγνοουν το ρημα τουτο και ην παρακεκαλυμμενον απ αυτων ινα μη αισθωνται αυτο και εφοβουντο ερωτησαι αυτον περι του ρηματος τουτου

라틴어Vulgate,45 at illi ignorabant verbum istud et erat velatum ante eos ut non sentirent illud et timebant interrogare eum de hoc verbo

히브리어Modern,45 והמה לא הבינו את המאמר הזה ונעלם הוא מדעתם וייראו לשאל אתו על המאמר הזה׃

성 경: [눅9:4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번째 예고]

󰃨 알지 못하였나니 – 제자들은 두 번에 걸쳐 주어진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제자들은 첫째, 변화산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變貌)를 목격하고 이어서 귀신 쫓아내는 권능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까닭에, 둘째 수동태의 ‘히나'(*)절에 의해 확인되는 바 제자들의 몰이해 배후에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숨김’에 대한 진술은 본서에만 나오며, 일정한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제자들이 무지한 상태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여기서 누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에로의 길은 ‘부활’ 이후에 그들이 갖게 될 성서적 지식과 부활의 빛에서 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Marshall).

󰃨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에 대해 묻기조차 두려워 하였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23-27절에 기록된 바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스스로 사도로서 사역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에이셀덴 데 디알로기스모스 엔 아우토이스 토 티스 안 에이에 메이존 아우톤

개역개정,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새번역,46 제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우리말성경,46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인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가톨릭성경,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영어NIV,46 An argument started among the disciples as to which of them would be the greatest.

영어NASB,46 An argument started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might be the greatest.

영어MSG,46 They started arguing over which of them would be most famous.

영어NRSV,46 An argument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ne of them was the greatest.

헬라어신약Stephanos,46 εισηλθεν δε διαλογισμος εν αυτοις το τις αν ειη μειζ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46 intravit autem cogitatio in eos quis eorum maior esset

히브리어Modern,46 ויעל על לבבם לחשוב מי הוא הגדול בהם׃

성 경: [눅9:4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누가 크냐 – 마가복음에서(막 9:33)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路中)에 논쟁을 벌였으며 가버나움에 이르러 예수의 추궁이 있었다. 누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문제의 쟁점만을 취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것이었다(마 18:1). 여기서 변론(*, 디알로기스모스)은 ‘논쟁’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을 시사한다. 불과 일주일 쯤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 부인을 가르치셨고(23,24절), 조금 전에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수난을 제차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44절)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결국 메시야가 일으켜 세울 왕국에서 누가 높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때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아(ego)를 버리지 못하고지위나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제자들로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 데 예수스 에이도스 톤 디알로기스몬 테스 카르디아스 아우톤 에필라보메노스 파이디온 에스테센 아우토 파르 헤아우토

개역개정,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새번역,47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우리말성경,47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아시고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곁에 세우며

가톨릭성경,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영어NIV,47 Jesus, knowing their thoughts, took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beside him.

영어NASB,47 But Jesus, knowing what they were thinking in their heart, took a child and stood him by His side,

영어MSG,47 When Jesus realized how much this mattered to them, he brought a child to his side.

영어NRSV,47 But Jesus, aware of their inner thoughts, took a little child and put it by his side,

헬라어신약Stephanos,47 ο δε ιησους ιδων τον διαλογισμον της καρδιας αυτων επιλαβομενος παιδιου εστησεν αυτο παρ εαυτω

라틴어Vulgate,47 at Iesus videns cogitationes cordis illorum adprehendens puerum statuit eum secus se

히브리어Modern,47 וירא ישוע את מחשבת לבם ויקח ילד ויעמידהו אצלו׃

성 경: [눅9:4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예수께서…아시고 – 제자들은 예수 몰래 자기들 끼리 논쟁을 벌였으나 예수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다툼을 이미 알고 계셨다.

󰃨 어린아이 하나를…세우시고 – 누가는 마태나(마 18:3,4), 마가(막 9:35)가 기록하고 있는 ‘큰 자’에 대한 결론적 서언을 생략한 채 바로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스 에안 뎈세타이 투토 토 파이디온 에피 토 오노마티 무 에메 데케타이 카이 호스 안 에메 뎈세타이 데케타이 톤 아포스테일란타 메 호 가르 미크로테로스 엔 파신 휘민 휘파르콘 후토스 에스틴 메가스

개역개정,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새번역,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우리말성경,48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가톨릭성경,48 그들에게 이르셨다. “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영어NIV,48 Then he said to them, “Whoever welcomes this little child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welcomes the one who sent me. For he who is least among you all–he is the greatest.”

영어NASB,48 and said to them,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for the one who is least among all of you, this is the one who is great.”

영어MSG,48 “Whoever accepts this child as if the child were me, accepts me,” he said. “And whoever accepts me, accepts the One who sent me. You become great by accepting, not asserting. Your spirit, not your size, makes the difference.”

영어NRSV,48 and said to them, “Whoever welcomes this child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welcomes the one who sent me; for the least among all of you is the greatest.”

헬라어신약Stephanos,48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ος εαν δεξηται τουτο το παιδιον επι τω ονοματι μου εμε δεχεται και ος εαν εμε δεξηται δεχεται τον αποστειλαντα με ο γαρ μικροτερος εν πασιν υμιν υπαρχων ουτος εσται μεγας

라틴어Vulgate,48 et ait illis quicumque susceperit puerum istum in nomine meo me recipit et quicumque me recipit recipit eum qui me misit nam qui minor est inter omnes vos hic maior est

히브리어Modern,48 ויאמר אליהם כל אשר יקבל את הילד הזה לשמי אותי הוא מקבל וכל אשר יקבל אותי הוא מקבל את אשר שלחני כי הקטן בכלכם הוא יהיה הגדול׃

성 경: [눅9:4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내 이름으로…영접함이요 – 예수께서 제자들의 사고 방식을 교정시켜 주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교훈을 베푸신다. 먼저 ‘내 이름으로’ 행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명예나 지위가 예수께 완전히 종속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모든 제자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 앞에 따로 드러날 수 없으며 모든 영광이 예수의 이름에 돌려져야 함을 뜻한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은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한편 마가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고 하여(막9:37) 어린이 일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누가는 ‘이 어린아이’라고 하여 바로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 나를 영접하면…영접함이라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 논리는 성도들의 대인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허물과 죄로 가득한 인생들을 자연 모습대로 대할 때에는 누구나 환멸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주님의 피로 새로 태어난 생명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 – 작은 자가 큰 자라는 역설적 진리는 23-25절에서 말씀하신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역설적 진리와 갖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행위의 대가로 지위나 명예를 얻어 보려는 욕망을 버린 사람이다. 한편 본문에서 ‘가장 낮은 자’와 대비되는 개념을 ‘가장 큰 자’가 아니라 단순히 ‘큰 자’라고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데는 비교 우위의 개념이 적용되지만 높아지는 데에는 비교 우위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요안네스 에이펜 에피스타타 에이도멘 티나 엔 토 오노마티 수 에크발론타 다이모니아 카이 에콜뤼오멘 아우톤 호티 우크 아콜루데이 멛 헤몬

개역개정,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새번역,49 요한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우리말성경,49 요한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못하게 막았습니다.”

가톨릭성경,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영어NIV,49 “Master,” said John, “we saw a man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stop him, because he is not one of us.”

영어NASB,49 John answered and said,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prevent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along with us.”

영어MSG,49 John spoke up, “Master, we saw a man using your name to expel demons and we stopped him because he wasn’t of our group.”

영어NRSV,49 John answered,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stop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with us.”

헬라어신약Stephanos,49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ιωαννης ειπεν επιστατα ειδομεν τινα επι τω ονοματι σου εκβαλλοντα τα δαιμονια και εκωλυσαμεν αυτον οτι ουκ ακολουθει μεθ ημων

라틴어Vulgate,49 respondens autem Iohannes dixit praeceptor vidimus quendam in nomine tuo eicientem daemonia et prohibuimus eum quia non sequitur nobiscum

히브리어Modern,49 ויען יוחנן ויאמר מורה ראינו איש מגרש שדים בשמך ונכלא אותו יען איננו הולך עמנו׃

성 경: [눅9:4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하였다. 여기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자격을 가졌다는 자의식(自意識)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1, 2) 아울러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들의 실패에 대한(40절)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톤 호 예수스 메 콜뤼에테 호스 가르 우크 에스틴 칻 휘몬 휘페르 휘몬 에스틴

개역개정,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성경,5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막지 마라. 누구든지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위하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영어NIV,50 “Do not stop him,” Jesus said,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영어NASB,50 But Jesus said to him, “Do not hinder him; for he who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영어MSG,50 Jesus said, “Don’t stop him. If he’s not an enemy, he’s an ally.”

영어NRSV,50 But Jesus said to him, “Do not stop him;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50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ν ο ιησους μη κωλυετε ος γαρ ουκ εστιν καθ ημων υπερ ημων εστιν

라틴어Vulgate,50 et ait ad illum Iesus nolite prohibere qui enim non est adversum vos pro vobis est

히브리어Modern,50 ויאמר ישוע אליו אל תכלאו כי כל אשר איננו נגדנו בעדנו הוא׃

성 경: [눅9:5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금하지 말라…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匿名)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6, 42절)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에게네토 데 엔 토 쉼플레루스다이 타스 헤메라스 테스 아날렘프세오스 아우투 카이 아우토스 토 프로소폰 에스테리센 투 포류에스다이 에이스 예루살렘

개역개정,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새번역,51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우리말성경,51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영어NIV,51 As the time approached for him to be taken up to heaven, Jesus resolutely set out for Jerusalem.

영어NASB,51 When the days were approaching for His ascension, He was determined to go to Jerusalem;

영어MSG,51 When it came close to the time for his Ascension, he gathered up his courage and steeled himself for the journey to Jerusalem.

영어NRSV,51 When the days drew near for him to be taken up,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51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συμπληρουσθαι τας ημερας της αναληψεως αυτου και αυτος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εστηριξεν του πορευεσθαι εις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51 factum est autem dum conplerentur dies adsumptionis eius et ipse faciem suam firmavit ut iret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51 ויהי כמלאת ימי העלותו והוא שם את פניו ללכת ירושלים׃

성 경: [눅9:5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

󰃨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 여기서 ‘승천'(*, 아날렘프세오스)은 ‘위로’를 뜻하는 ‘아나'(*)와 ‘올리다’의 의미를 갖는 ‘렙시스'(*)의 합성어로 ‘들어 올라감’이란 뜻이다(24:51). 여기서는 ‘죽음'(31절) 대신 ‘승천’이 언급됨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이라는 영광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차가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플레로오'(*)는 본래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승천을 성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런 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었음과 예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심을 분명히 밝혀준다.

󰃨 예루살렘을…굳게 결심하시고 – 갈릴리로부터 예수의 최종 종착지인 예루살렘에로의 대전환이 언급되고 있다. 승천은 곧 수난과 죽음을 전제한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그일이 일어날 장소인 예루살렘에로의 행로를 굳은 결심으로 시작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귀는 ‘…로 얼굴을 향하다’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음을 향한 결단을 하신 것이다(22:42;요 10:11).

카이 아페스테일렌 앙겔루스 프로 프로소푸 아우투 카이 포류덴테스 에이셀돈 에이스 코멘 사마리톤 호스 헤토이마사이 아우토

개역개정,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새번역,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이 길을 떠나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우리말성경,52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미리 앞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가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가톨릭성경,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영어NIV,52 And he sent messengers on ahead, who went into a Samaritan village to get things ready for him;

영어NASB,52 and He sent messengers on ahead of Him, and they went and entered a village of the Samaritans to make arrangements for Him.

영어MSG,52 He sent messengers on ahead. They came to a Samaritan village to make arrangements for his hospitality.

영어NRSV,52 And he sent messengers ahead of him. On their way they entered a village of the Samaritans to make ready for him;

헬라어신약Stephanos,52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αγγελους προ προσωπου αυτου και πορευθεντες εισηλθον εις κωμην σαμαρειτων ωστε ετοιμασαι αυτω

라틴어Vulgate,52 et misit nuntios ante conspectum suum et euntes intraverunt in civitatem Samaritanorum ut pararent illi

히브리어Modern,52 וישלח מלאכים לפניו וילכו ויבאו אל אחד מכפרי השמרונים להכין לו׃

성 경: [눅9:5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

󰃨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역사 깊은 불화와 반목(反目)이 있어(왕하 17:24-41;요 4:9)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충돌이 있었다. 그리하여 순례객들은 가까운 사마리아 길로 가지않고 먼 베레아 지방으로 지나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을 택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른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사마리아를 멸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하셨음을 보여준다.

카이 우크 에뎈산토 아우톤 호티 토 프로소폰 아우투 엔 포류오메논 에이스 예루살렘

개역개정,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새번역,53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말성경,53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영어NIV,53 but the people there did not welcome him, because he was heading for Jerusalem.

영어NASB,53 But they did not receive Him, because He was traveling toward Jerusalem.

영어MSG,53 But when the Samaritans learned that his destination was Jerusalem, they refused hospitality.

영어NRSV,53 but they did not receive him, because his face was set toward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53 και ουκ εδεξαντο αυτον οτι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ην πορευομενον εις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53 et non receperunt eum quia facies eius erat euntis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53 ולא קבלהו על אשר היו פניו הלכים ירושלים׃

성 경: [눅9:5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

󰃨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중앙 성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신 12:4-14).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응하는 성전을 그리심산에 따로 지어서 이것을 자기들의 중앙 성소로 삼았다(요 4:20). 이런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들은 예수께서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조그마한 난관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겪을 고초를 암시하는듯 하다. 또한 이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 관습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를 만나 구원의 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방해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이돈테스 데 호이 마데타이 야코보스 카이 요안네스 에이판 퀴리에 델

[스크랩] 누가복음 9장 주석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마17:4

매튜헨리주석982-누가복음 09장

누가복음 09장

Ⅰ. 제자들의 사명과 헤롯의 공포 9:1-9

1. 그리스도가 그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택하신 방법(1-6)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두루 여행을 다니셨다. 그러나 그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제자들을 내어 보내셨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1,2절). 그는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어’ 귀신들의 소유를 빼앗고 그들을 내쫓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주었고,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그들을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들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하였으며 그들의 호의를 얻게 하였다. 이것이 곧 제자들의 임무였다. 이 일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1) 이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지시하신 일은 무엇인가? (1) 그들은 외모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가야 하며 옷을 바꿔 입어서도 새 신을 신어서도 안 된다. (2) 그들은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며 그들의 친구들의 돈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친절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기대하라고 하셨다. (3) 그들은 자기들을 받아들인 자들이 그들을 지겨워 하지나 않을까 해서 숙소를 옮겨서도 안 된다. 즉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야 한다(4절). 사람들이 그들의 있는 곳을 알 수 있도록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고, 그들에게 익숙해 진 자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었다. (4) 그들은 권위를 가져야 되며, 그들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위로를 주고 그들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말을 해야 한다(5절). 만약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 버려라. 그리고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2)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은 무엇을 하였나(6절). 그들은 주의 곁을 떠나갔다. 그들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각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제자들의 행할 일은 그들의 주가 행한 것과 마찬가지로써 영혼과 육체에 대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었다.

2. 제자들의 복음 전파를 전해들은 헤롯의 놀라움(7-9)

우리는 여기서 헤롯이 이 일을 듣고 당황하고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진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메시야라는 놀랍고도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기적들을 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적을 행할 능력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떠한 일보다도 그리스도의 명성을 널리 퍼뜨렸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었었다'(행 4:13). 각 촌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주 예수님을 존귀한 자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옛 선지자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였다.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7,8절).

(2) 헤롯의 마음에 큰 고민이 생겼다. 그리스도가 행한 이 모든 일을 듣고 헤롯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하였다. “어찌 하여야 할까?” 헤롯이 말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 사람은 누군고.” “그는 요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요한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왔는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점점 더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헤롯은 그를 보고자 하였다(9절). 그런데 왜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을까? 헤롯은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법정에서 만나기 전에 그를 보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Ⅱ. 제자들이 돌아온 일과 오천 명을 먹이신 일 9:10-17

(1)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의 결과를 예수께 고하였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10절).

(2) 그들은 잠깐 동안 은거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떠나 가셨다. 우리의 남종과 여종을 쉬게 하라고 명하셨던 그리스도는 그의 종에게도 쉬게 하셨다. 지극히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들은, 육체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명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워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하여 때때로 은밀하게 은거해야 한다.

(3)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영접하셨다. 그리스도는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무리들이 그를 따라왔다. 그는 그들을 영접하셨다(11절). 여기서 우리는, 경건한 열성을 품은 자들이 그 열성으로 인하여 다소 무례를 범한다 해도 용납받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용납받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그랬으며 우리 또한 이러한 자들을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때 아니게 찾아왔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이 와서 구하는 것을 주셨다. 곧 그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셨다. 그리고 병든자를 고치셨다. 그리스도는 육체적인 질병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셨으므로 치유를 필요로 하는 그의 백성들을 치료해 주신다. 우리에게 있어서 때때로 육체의 편안을 위한 치유 보다는 영혼의 유익을 위한 질병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스도는 알고 계셨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종이므로, 그는 성도들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그를 따라온 무리를 충분히 먹이셨다. 곧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오천 명을 먹이셨다. 이 기사는 앞에서 두 번 나왔는데, 여기서 다시 대하게 된다. 우리 구주의 기적들 중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것은 오로지 이 사건뿐이다. 이 기사를 세밀히 살펴 보자.

(1) 열심히 그리스도를 쫓아 임무를 행하며 그러기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기도, 그러내기도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는 그를 두려워하고 충실하게 섬기며 어떠한 선한 것을 바라는 자들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2) 우리 주 예수님은 아낌없이 주시는 관대한 분이시다. 그의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했지만, 그리스도는 “아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데까지 주어서 그들이 자유로이 먹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그의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할 것’을 가르치셨다. 적게 가진 자들은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것이 바로 그것을 많게 하는 방법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자를 치유하실 뿐 아니라 음식이 필요한 자에게 음식도 주신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질병으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구해 주실 뿐 아니라 영혼을 살찌게 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힘을 주신다. (4) 그리스도의 모든 선물은 정해진 격식에 따라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14절)고 말하고 계시다. (5) 우리는 우리에게 안락을 주는 것들(음식, 등등)을 받을 때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셨으며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것들을 받고 그것들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며 또한 그 축복을 간구한다. (6) 그리스도의 축복은 작은 것을 크게 만든다. (7) 그리스도가 먹인 자들은 ‘다 배가 불렀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실 수 있을 만큼 부요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먹고 남을 정도로 풍부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궁핍하지 않다.

Ⅲ.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수난 예고 9:18-27

우리는 본문에서 다른 복음서들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특수한 상황을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가 ‘따로 기도 했다’는 것과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 그리스도의 물음이 시작된다(18절).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그의 아버지와 그리고 제자들과 대화하시기 위해서 은밀하게 따로 계실 필요를 느끼셨다. 따로 계실 때 그리스도는 기도하셨다. 기도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따로 있을 때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는’ 제자들이 같이 기도하고자 ‘주와 함께’ 있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시기 전에 그들과 함께 기도하셨다. 우리도 우리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또한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 이어서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담화하셨다.

(1) 그리스도는 자신에 관하여 질문하셨다.

1)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그들이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예수에 대한 여러 추측들을 말했다. 사역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보다 자주 그리고 친밀하게 대화를 할 때 더욱 그들의 상황에 알맞게 가르치고 책망하며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의사도 환자와 많이 대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환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잘 알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죽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였다. 또한 엘리야라고 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옛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2)제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곧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하라고 명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하였다. 그가 부활하신 후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완전히 증거되자 베드로는 이 사실을 성전이 울리도록 외쳤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그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직 증거가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그 사실은 감추어져야 했다.

(2)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주 확실히 믿게 되었고 또한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다(22절). 제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직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놀라운 사건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거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3) 그리스도는 자신 때문에 제자들이 받을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1)우리는 자기부정과 인내에 익숙해져야 한다(23절). 또한 안일과 욕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에 빠지면 그리스도를 위한 수고나 궁핍, 피곤 등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무를 행하는 동안 자주 십자가를 대하게 된다. 그러한 십자가를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지면 그것을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며 그것에 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우리는 어떤 세속적인 일보다 우리의 영혼의 구원과 행복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숙고해 보자. ①자기 멋대로의 생활이나 재산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혹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부정하는 자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말할 수 없는 상실자가 될 것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24절). 훨씬 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신의 영혼을 잃을 것이다. ②우리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잃는다면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게 될 것이다. ③온 천하를 얻어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버린다면, 결코 그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의 끝없는 상실과 파멸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25절).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부, 명예, 즐거움 등을 획득했다고 생각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여 영원히 자기를 잃고 마침내 파멸해 버린다면 그렇듯 세상적으로 얻은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가장 두려운 일은 자기 영혼의 상실이라고 되어 있으며, 여기 본문에서는 그것을 자기를 잃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영혼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시사해 준다. 다시 말해서 영혼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잘됨과 못됨에 따라 우리 자신도 잘되거나 못 되거나 하는 것이다. 영혼이 저 세상에서 비참한 상태에 있다면 몸도 편안할 수 없다. 그러나 몸이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과 억압을 받아도 영혼은 행복할 수 있다.

3)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이며(26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자는, 최후의 심판 날에 그를 위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때, 그리스도가 그렇게 비겁하고 속되며 비열한 자를 인정하시기를 부끄러워 할 것이며 ‘그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내게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수난을 당할 때 기꺼이 함께 수난을 받는 자들 그리고 그들만이 그가 통치할 때 그와 더불어 통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현재 수치를 당하고 있는 그 자신과 그의 따르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가 재림할 때의 영광의 찬란함을 어떻게 말씀하시는 지를 살펴보자.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이 귀절이 없다.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그날 영광 중에 오실 복된 예수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는 그가 그렇게 오시리라는 것을 믿으며, 이제 그리스도와 그의 말을 결코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고난당하는 자들을 격려하지 위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곧 오리라고 말씀하셨다(27절). “여기 섰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능력으로 현 세대에 임할 것이다.” 성령이 확산되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을 때, 그리고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다. 즉 그들은 이방나라가 파괴되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목격하였다.

Ⅳ. 예수님의 변모 9:28-36

본문은 그리스도의 변모에 대한 기사이다. 그리스도의 변모는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그의 영광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그를 위해 고난당하면서 결코 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의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나와 있다.

(1) 그런데 본문에는 상황이 위의 두 복음서의 것과는 다르게 언급되어 있다. 두 복음서에는 이 말씀을 하신 지 6일 후로 되어 있는데, 누가 복음에는 말씀하신 후 8일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그 날은 말씀하신 후 일곱 밤 다시 말해서 만 엿새가 지난 후인 여덟째 날이었다.

(2) 본문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덧붙여져 설명되고 있다.

1)본문을 보면 그리스도가 이 영광을 기도할 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28절). 그리고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29절). 그리스도는 겸비해져서 기도하였을 때 이렇게 존귀하게 되셨다. 그리스도는 그를 위하여 준비되고 약속된 은혜를 스스로 구하여 받으셔야 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려 하셨으며 우리도 또한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자 하셨다. 이것이 바로 변모되고 변화되는 일이다.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은혜 그리고 기쁨을 얻게 되며, 그로인해 얼굴에 광채가 날 것이다.

2)누가는 변형되었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마태와 마가는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뜻을 가진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뜻을 가진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즉, 빛이 비치는 것처럼 환했다. 그리하여 그는 빛으로 온 몸을 치장하고 옷을 해 입은 것처럼 보였다.

3)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났다고 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계시므로, 그들도 예수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난 것이다.

4)여기서 그리스도와 구약의 두 선지자가 나눈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 보자:그들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의 떠남 곧 죽음을 이야기 하였다. ①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문에서는 그의 퇴거, 나감, 세상을 떠나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도의 죽음은 출애굽, 즉 이 세상이라는 애굽에서의 떠남이요 속박의 집으로부터의 해방이다. ②그리스도는 죽어야만 했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결정되었으므로 변경될 수 없었다. ③그는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했다. ④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가 수난을 받고 그 후에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참조. 눅24:26,27). ⑤우리 주 예수께서는 변화하신 후에도 그의 죽음과 수난에 관해 기꺼이 이야기하셨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영화롭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영원한 도성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5)본문에서 우리는, 전에 없었던 일, 즉 제자들이 조는 모습을 볼 수 있다(32절). 아마도 죄된 무관심이 그들로 하여금 졸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기도할 때 그들은 그의 기도에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잠자고 있었으므로 이 놀라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볼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있을 때 잠자고 있었다. 이들은 후에 그리스도가 고뇌할 때에도 똑같이 잠을 잤다.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주님의 영광과 고뇌보다 더 관심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고뇌 중에 그들은 깨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생동력 있게 되기 위하여 소생시키는 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가. 얼마 후 그들은 정신을 차려 모든 영광의 장면들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벧후 1:18). 우리는 지금 그들 중 한 사람이 쓴 기사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6)본문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막 떠날 때 베들로가 이렇게 말한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게 하소서. 이와 같이 우리는 축복을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 그리고 축복이 떠난 후에야 그것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구한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말하였다.

7)그들은 뒤덮인 구름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구름 속으로 들어 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 하더니(34절). 이 구름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표시였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안전하게 구름 속을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8)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에 대한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기사는 마태복음의 기사만큼 자세하지 않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35절). 여기에는 마태복음과 베드로서에 있는 ‘내 기뻐하는 자니’라는 귀절이 없지만, 그것은 ‘택함을 받은 자니’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다.

끝으로,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그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당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시기가 있는가 하면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모든 일은 때가 차야 아름답고 쓸모있게 된다.

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 9:37-42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이 기사는 그리스도의 변모와 변모 후 그리스도와 제자들과의 대화에 이어서 곧바로 나온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튿날 산에서 내려온’ 다음에 있었던 일로 되어 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들은 ‘산에서 내려왔으며’ 그 때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아셨다. (1) 그리스도가 돌아오자 큰 무리가 그를 맞기 위해 나아왔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듯이 이 날도 큰 무리가 그를 맞았다. (2)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도와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것이 그의 요청이었다. 그리스도의 동정적인 보살핌은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해 놓기에 족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는 내 외아들이니다’라고 호소하였다. 많은 자녀에게서 받는 위안으로 무마시킬 수도 있지만, 외아들뿐일 때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3) 그 아이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39절). 그는 ‘그를 잡고 있는’ 귀신의 지배하에 있었다. 발작이 시작되면 그는 ‘졸지에 부르짖었으며’ 그의 비명은 그의 온화한 아버지의 심정을 찔렀다. 이 악한 귀신은 그를 괴롭혔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였다. 사단은 자기가 들어간 곳에 얼마나 해를 입히는가! 반대로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4) 제자들의 신앙은 불완전하였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지배할 능력을 주었지만, 그들은 이 사악한 영을 내쫒지 못하였다(40절). 그들은 능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거니와 마땅히 해야 할 기도로써 자신을 단련시키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가 그들을 책망하신 것도 이 때문이었다. (5) 그리스도가 이 아이에게 행한 치유는 매우 효과적이었다(42절).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이 할 수 없는 일도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다. 귀신은 그 아이를 산산조각이라도 낼 것처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그 아이를 낫게 했으며, 귀신이 그에게 입힌 손상을 보상해 주었다. 예수께서는 아이를 그 아비에게 도로 주셨다. 우리 자녀가 질병에서 회복되면 그들이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으로, 그리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영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들을 돌려 받는 것은 위안이 되는 일이다. “자 이 아이를 데려가라. 그리고 감사해라.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해 양육하라. 왜냐하면 이 아이는 나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유념하여 부모들은 그리스도의 손에서 자녀들을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

Ⅵ. 그리스도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변론 9:43-50

1. 그리스도의 기적이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준 영향(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그들의 놀라움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들 각자가 모두 놀랐다. 각자가 놀란 원인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놀랐다. 그의 행하는 모든 일에는 특이하고도 놀랄 만한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2. 그리스도가 다가올 고난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예고(43-45)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여기에는 다른 복음기자들이 기록한 “그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는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1) 여기 본문의 귀절은 바로 앞에 있었던 사건, 즉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찬양한 일과 관계가 있다.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43절).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세속적인 권위와 권세로 다스릴 현세적인 왕국에 대해 강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전능하신 힘으로 그 일을 쉽게 이루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의 손에 넘기워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질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시게 되었다. (2) 그리스도는 근엄하게 말문을 여셨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내가 말한 것을 받아들이고 복종하라”. 시리아어와 아랍어로는 “이 말을 너희 심령에 담아두라”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머리와 심령에 담아두지 않는다면 유익이 없다. (3) 제자들은 말할 수 없이 어리석었다. 마가복음은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말씀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는데도 제자들은 실제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것을 어떤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못을 깨달으려고도 또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저희가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고 부언되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상하여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그 말씀이 자비로써 숨겨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가장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심(45-48)

이 귀절은 앞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일을 다시 본문에서 대하게 되었다.

(1) 명예에 대한 야망, 그리고 우위에 대한 자리다툼은 걸핏하면 우리 주 예수의 제자들에게 찾아드는 죄였다. 그들은 그토록 극복해야 하며 부끄럽게 생각해야 했던 부패에 물들게 되었다(46절). 이 세상에서 크고자 하는 자들은 높은 자리를 노린다. 그러나 그들을 높혀 주는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많은 유혹과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작아지는 것, 가장 작아지는 것, 가장 작은 것보다 더 작아지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은 그러한 고통과 유혹을 받지 않는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완전히 알고 계시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47절). 그에게 있어 생각은 말이고 속삭임은 큰 외침이다.

(3)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묵묵히 겸손해짐으로써 얻게 될 명예를 구하고 끊임없이 치솟는 야망에 의해서 얻어질 명예는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셨다(47절). 왜냐하면 그는 항상 어린아이들을 애정과 친절로 대하셨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 어린아이의 품성처럼 겸손하고 조용하고 평온하라고 하셨다. 만일 그렇게 됨으로써 유익을 끼칠 수만 있다면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즐거워하라. (2) 이것이 바로 높아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케 하셨다. 그들(제자들)은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자들이므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그의 이름으로 그들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가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그들도 사랑을 받게 하고자 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48절).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들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것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 있겠는가?

4.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편협됨을 책망하심(49,50)

그리스도는 그를 존경하고 섬겼던 한 사람을 실망시킨 데 대해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그 사람은 제자들의 동료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으며, 진실한 태도로 믿고 기도하면서 그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쫒은 자였다. 제자들은 그를 비난하고 견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기도하고 전파하는 일을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가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행한 일을 꾸짖으셨다. 금하지 말라(50절). “오히려 그를 격려해 주라. 그도 너희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느니라. 그는 똑같은 길에서 너희와 동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똑같은 목적지에서 너희와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이다. 그러니 그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친구는 적고, 적은 많으므로 우리는 친구를 잃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자들은, 비록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 인정받게 될 것이다.

Ⅶ. 제자들의 그릇된 열심 9:51-56

이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비신자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독단과 박해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예수께서 예루살렘행을 결심하심(51)

속죄와 구원을 위해 고난받을 때가 되자 우리 주 예수께서는 준비하시고 결심하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리 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때는 정해져 있었다. 예수께서도 그 때를 잘 알고 계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 공공연하게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분주하게 일하셨다. 그는 자기의 죽음과 고난이 다가왔음을 알고, 그것들을 통해 뒤따라올 영광을 바라보셨다. 그 때가 되면 그는 ‘영광 가운데 올리우심을’ 받게 될 것이다(딤전 3:16).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죽음은 올리움을 받는 것이요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가올 기쁨을 예상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단념하지 않으시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그는 기쁨을 가지고 용기있게 그곳에 가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의롭다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도 받을 것이며, 수치를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리우심을 받을’ 것임을 아셨으므로 실망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으셨다. 이 일을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2.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들의 무례함(52,53)

(1)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다. 그는 쉴 곳을 정하고 자기와 제자들이 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다(52절). 그는 그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몇 사람을 보냐 준비하게 하셨다.

(2)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께 무례하게 대했다(53절).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였다. 만일 그들이 예수를 영접했다면 그는 가장 큰 축복을 베푸셨을 것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과 사라미아인들 간의 논쟁은 예배 장소에 관한 것이었다. 즉 예루살렘이냐 시갈 근처의 그리심 산이냐 하는 문제였다(눅 4:20). 그들 사이의 반목이 극심하였으므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했으며 사마리아인도 마찬가지였다(요 4:9). 사마리아인들은 특히 세상에 잘 알려진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의 전도여행때 그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예의를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3. 이러한 모욕에 대해 야곱과 요한이 분개함(54)

이 두 제자는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그리고 이 마을에 소돔의 저주를 내리도록 그리스도께 청했다.

(1) 여기서 제자들에게 몇 가지 칭찬할 만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능력에 대한 큰 확신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말로써 하늘에서 물을 내려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말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2) 그들의 선생님의 명예를 위해 열심이었다. 가는 곳에서 마다 선을 베풀었고 환영을 받았던 그들의 선생에게 하찮은 사마리아인들이 마음대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의 선의를 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4) 그들에 앞서 간 선지자들의 예를 언급하였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할까요”라고 물었다(개역 한글 성경에는 이 말이 없다-역주). 그들은 이러한 전례가 오늘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훌륭한 사람들의 본보기를 잘못 적용하기가 쉽다.

(2) 그들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지만, 잘못된 점이 더 많았다. (1) 우리 주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처럼 모욕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모욕을 끝까지 참으셨다. (2)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서는 더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마 10:5)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던 다른 사람보다 나쁜 것은 아니다. (3) 그 말을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그리스도에게 무례하게 대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리스도가 그 마을에 가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나와서 그를 환영했을 것이다. (4) 그들의 선생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늘로서 불을 좇아 내리지 않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리스도가 보아너게 (우리의 아들 막 3:17)라고 불렀던 제자들이었다. 그 이름처럼 그들은 행동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 역시 빛의 아들이 아닌가? (5) 엘리야의 예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엘리야는 율법의 두려움을 알리도록 보내졌지만, 여기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은 은혜의 법이다. 그토록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여기에 전혀 맞지 않는다.

4. 그리스도가 야고보와 요한을 책망하심(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몹시 사랑하는 만큼 꾸짖고 벌하신다. 특히 그리스도에 대해 열심히라는 미명하에 그들에게 어울리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을 했을 때 그렇게 하신다.

(1) 그리스도는 특별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 “너희는 너희에게 어떠한 영이 있는지 모른다” (1) “너희는 너희 주님에 대한 열성이라는 구실 속에 감추어진 자만, 분노, 원한이 얼마나 많은 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선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부패가 숨어 있다. 아니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2) “너희는 선한 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지 확실히 배워야 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하늘로부터 불이 아닌 은혜가 그들에게 내려오기를 구하라고 배우지 않았느냐? 너희는 사랑 자유 은혜의 법 아래 있다.” 그것은 땅에는 평화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라는 선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종교의 일반적인 뜻과 취지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56절).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개역 한글 성경에는 난외에 기록되어 있음-역주).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한 종교를 불과 검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친절,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끌고 애정을 느끼게 하는 모든 방법으로 전파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처럼 천벌과 파괴의 기적으로가 아니라 치유의 기적을 행함으로써 전파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적의를 제거하고 그것을 마음에 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도 구하러 오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으며, 인간적인 유대나 사랑의 끈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라고 가르치셨다.

5. 그리스도가 이 마을을 떠나가심(56)

그리스도는 그들의 무례함을 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다른 촌으로 가셨다. 즉 그다지 완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례히 행동하다면 우리는 복수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대우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Ⅷ. 주님을 따르려는 세 부류의 사람들 9:57-62

본문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즉각적으로 따르고자 나서는 자이다. 그는 너무 성급한 나머지 생각도 하지 말고 앞일을 내다보지도 못하는 것 같다.

1)그는 그리스도에게 큰 약속을 하였다(57절). 길 가실 때에 혹이 어찌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이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결심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어디로 가들지 그를 따라간다.

2)그리스도는 그에게 필요한 주의를 주었다. 즉 그를 따르는 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 큰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는 머리 둘곳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①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주 비천한 상태로 계셨다. 그는 훌륭한 왕자들이 으레껏 가지고 있는 장식품을 물론 여우나 공중의 새에게 있는 것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그는 모든 것을 만드셨지만 자기를 위한 거처, 즉 머리 둘 곳은 만들지 않으셨다. 본문에서 그는 자신을 인자, 곧 육과 피를 가진 아담의 아들로 부르고 계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있는 곳에도 낮아지는 것을 기뻐하시며, 이로써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고 이 세상에 대한 거룩한 경멸과 저 세상에 대한 계속적인 소망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비천해져서 가난한 그의 백성들에게 가난을 견디기 쉽게 해주셨으며 정당화 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받으신 것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에 당연히 만족해야 한다. ②이 말은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해야 될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우리가 믿는 하늘나라보다 더 중시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아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춥고 불편하게 되며 푸대접을 받고 모욕을 당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이 일에 복종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사람은 돌아갔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는 이와 반대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실망하지 않는다.

(2)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하루만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59절).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먼저 이 사람을 부르셨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가 부르셨던 이 사람은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나중에는 복종했던 것 같다. 원하는 것도 그가 아니고 행하는 것도 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1)그의 변명: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나에게는 집에 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나를 필요로 합니다. 가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보살피게 하옵소서. 그러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유혹을 볼 수 있다. ①일반적으로 제자직을 수행할 때 우리는 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그 일을 미해결인 채로 내버려 두게 된다. ②우리의 의무로 알고 있는 일을 연기하라는 유혹을 받게 되어 그 일을 어떤 다른 때로 연기한다.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신앙적인 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속음으로써 모든 시간에 속게 되는 것이다. ③우리는 우리 친척에 대한 의무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하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의의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고 염두에 두어야 한다.

2)그리스도의 대답: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60절).

“너에겐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를 따르는 자들이나 사역자들에게 몰인정하게 되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가족 하나하나에 대하여 친절하게 대하고 선을 베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데 대한 변명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만약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자들인 사랑하는 가족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멀어지도록 방해한다면, 차라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잊을 정도로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일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3) 본문에는 기꺼이 주를 따르고자 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친구들과 잠깐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1)그는 간청했다.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61절). 이 말을 “가서 가사를 정리하게 하소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보자. ①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서글프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였다. 그 일이 그에게는 마치 죽으러 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는 그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위안과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②그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철저하려고 하기보다는 세상적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가족과 친척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그를 주저하게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작별인사를 한 번 했었을 것이다. 떠나기가 싫어서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집에서 편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③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의 계획이 유혹받도록 하는 데에 자진해서 뛰어들고 있다. 집에 편히 있는 자들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은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할 정도로 강한 유혹을 받게끔 자신을 유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자기들을 떠나지 말라고 간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세주를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들을 유혹하는 것들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2)그리스도는 그의 간청을 듣고 다음과 같이 책망하신다(62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그렇게 되면 쟁기질을 잘못하여 쟁기질한 땅에 씨를 뿌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따르고자 하면서도 세상적인 생활을 되돌아 보고 그것을 갈망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 만일 네가 무성의하게 쟁기질을 한다면 너는 하나님 나라의 좋은 씨를 뿌리기에 적합한 땅이 되지 못한다.” 쟁기질은 씨를 뿌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묵혀진 땅을 경작하는 법을 모르는 자들은 씨뿌리는 일에 적합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은 쟁기를 잡고서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고 그 일을 그만 둘 생각을 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다가는 후퇴하게 되며 후퇴는 곧 파멸이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였다가 뒤돌아보는 자들은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9 Christ sent his twelve disciples abroad, who by this time were able to teach others what they had received from the Lord.

They must not be anxious to commend themselves to people’s esteem by outward appearance.

They must go as they were.

The Lord Jesus is the fountain of power and authority, to whom all creatures must, in one way or another, be subject; and if he goes with the word of his ministers in power, to deliver sinners from Satan’s bondage, they may be sure that he will care for their wants.

When truth and love thus go together, and yet the message of God is rejected and despised, it leaves men without excuse, and turns to a testimony against them.

Herod’s guilty conscience was ready to conclude that John was risen from the dead.

He desired to see Jesus; and why did he not go and see him? Probably, because he thought it below him, or because he wished not to have any more reprovers of sin.

Delaying it now, his heart was hardened, and when he did see Jesus, he was as much prejudiced against him as others, #Lu 23:11|.

#10-17 The people followed Jesus, and though they came unseasonably, yet he gave them what they came for.

He spake unto them of the kingdom of God.

He healed those who had need of healing.

And with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es, Christ fed five thousand men.

He will not see those that fear him, and serve him faithfully, want any good thing.

When we receive creature-comforts, we must acknowledge that we receive them from God, and that we are unworthy to receive them; that we owe them all, and all the comfort we have in them, to the mediation of Christ, by whom the curse is taken away.

The blessing of Christ will make a little go a great way.

He fills every hungry soul, abundantly satisfies it with the goodness of his house.

Here were fragments taken up: in our Father’s house there is bread enough, and to spare.

We are not straitened, nor stinted in Christ.

#18-27 It is an unspeakable comfort that our Lord Jesus is God’s Anointed; this signifies that he was both appointed to be the Messiah, and qualified for it.

Jesus discourses concerning his own sufferings and death.

And so far must his disciples be from thinking how to prevent his sufferings, that they must prepare for their own.

We often meet with crosses in the way of duty; and though we must not pull them upon our own heads, yet, when they are laid for us, we must take them up, and carry them after Christ.

It is well or ill with us, according as it is well or ill with our souls.

The body cannot be happy, if the soul be miserable in the other world; but the soul may be happy, though the body is greatly afflicted and oppressed in this world.

We must never be ashamed of Christ and his gospel.

#28-36 Christ’s transfiguration was a specimen of that glory in which he will come to judge the world; and was an encouragement to his disciples to suffer for him.

Prayer is a transfiguring, transforming duty, which makes the face to shine.

Our Lord Jesus, even in his transfiguration, was willing to speak concerning his death and sufferings.

In our greatest glories on earth, let us remember that in this world we have no continuing city.

What need we have to pray to God for quickening grace, to make us lively! Yet that the disciples might be witnesses of this sign from heaven, after awhile they became awake, so that they were able to give a full account of what passed.

But those know not what they say, that talk of making tabernacles on earth for glorified saints in heaven.

#37-42 How deplorable the case of this child! He was under the power of an evil spirit.

Disease of that nature are more frightful than such as arise merely from natural causes.

What mischief Satan does where he gets possession! But happy those that have access to Christ! He can do that for us which his disciples cannot.

A word from Christ healed the child; and when our children recover from sickness, it is comfortable to receive them as healed by the hand of Christ.

#43-50 This prediction of Christ’s sufferings was plain enough, but the disciples would not understand it, because it agreed not with their notions.

A little child is the emblem by which Christ teaches us simplicity and humility.

What greater honour can any man attain to in this world, than to be received by men as a messenger of God and Christ; and to have God and Christ own themselves received and welcomed in him! If ever any society of Christians in this world, had reason to silence those not of their own communion, the twelve disciples at this time had; yet Christ warned them not to do the like again.

Those may be found faithful followers of Christ, and may be accepted of him, who do not follow with us.

#51-56 The disciples did not consider that the conduct of the Samaritans was rather the effect of national prejudices and bigotry, than of enmity to the word and worship of God; and through they refused to receive Christ and his disciples, they did not ill use or injure them, so that the case was widely different from that of Ahaziah and Elijah.

Nor were they aware that the gospel dispensation was to be marked by miracles of mercy.

But above all, they were ignorant of the prevailing motives of their own hearts, which were pride and carnal ambition.

Of this our Lord warned them.

It is easy for us to say, Come, see our zeal for the Lord! and to think we are very faithful in his cause, when we are seeking our own objects, and even doing harm instead of good to others.

#57-62 Here is one that is forward to follow Christ, but seems to have been hasty and rash, and not to have counted the cost.

If we mean to follow Christ, we must lay aside the thoughts of great things in the world.

Let us not try to join the profession of Christianity, with seeking after worldly advantages.

Here is another that seems resolved to follow Christ, but he begs a short delay.

To this man Christ first gave the call; he said to him, Follow me.

Religion teaches us to be kind and good, to show piety at home, and to requite our parents; but we must not make these an excuse for neglecting our duty to God.

Here is another that is willing to follow Christ, but he must have a little time to talk with his friends about it, and to set in order his household affairs, and give directions concerning them.

He seemed to have worldly concerns more upon his heart than he ought to have, and he was willing to enter into a temptation leading him from his purpose of following Christ.

No one can do any business in a proper manner, if he is attending to other things.

Those who begin with the work of God, must resolve to go on, or they will make nothing of it.

Looking back, leads to drawing back, and drawing back is to perdition.

He only that endures to the end shall be saved.

[하루 한 장] 누가복음9장_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123 개의 베스트 답변 – Ro.taphoami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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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4 (화) [하루 한 장]“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눅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의 사자로

각 성과 촌에 두루 보내시면서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을 하나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보내신 이가

그들의 삶을 책임지고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알도록

깨닫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친히 책임을 물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까지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이 필요한

구원의 대상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부산 성민교회 분홍목사의 설교 영상들을 통해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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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제 9장 =====9:1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 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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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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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우리말성경,22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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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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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9장 주석 … (눅 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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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9/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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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982-누가복음 09장 · 1)우리는 자기부정과 인내에 익숙해져야 한다(23절). 또한 안일과 욕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 · 2)우리는 어떤 세속적인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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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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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 장.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임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사도들이 행한 이 일은 예수님께서 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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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3/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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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 이 말은 8:38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즉 원문에 보면 등위 접속사 카이 가 있어서 앞절에 언급한 내용과 대등한 내용이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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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9/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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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제 9장. =====9:1 …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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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covadoc.vn

Date Published: 3/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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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누가복음 9장을 하나로 묶는 소재를 굳이 찾아내자면 ‘제자’가 될 것이다. 물론 헬라 원문의 경우는 아니지만 한글개역성경의 누가복음 총 24장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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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ppycampus.com

Date Published: 5/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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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자비와 나 스스로의 결정, 누가복음 9장 51절-62절 주석해설 새벽기도설교 · 주현절 후 넷째 주일 본문들의 개요 및 전체 주제 연결, 교회력 성서일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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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8/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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슁칼레사메노스 데 투스 도데카 에도켄 아우토이스 뒤나민 카이 엨수시안 에피 판타 타 다이모니아 카이 노수스 데라퓨에인

개역개정,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새번역,1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들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 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영어NIV,1 When Jesus had called the Twelve together, he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to drive out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영어NASB,1 And He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the demons and to heal diseases.

영어MSG,1 Jesus now called the Twelve and gave them authority and power to deal with all the demons and cure diseases.

영어NRSV,1 Then Jesus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헬라어신약Stephanos,1 συγκαλεσαμενος δε τους δωδεκα μαθητας αυτου εδωκεν αυτοις δυναμιν και εξουσιαν επι παντα τα δαιμονια και νοσους θεραπευειν

라틴어Vulgate,1 convocatis autem duodecim apostolis dedit illis virtutem et potestatem super omnia daemonia et ut languores curarent

히브리어Modern,1 ויקרא אל שנים העשר ויתן להם גבורה ושלטן על כל השדים ולרפא חליים׃

성 경: [눅9: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그 선택이 완료된 인물들이다. 예수께서 열둘을 부르신 것은 열 두 지파에 의해 상징되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새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Hendriksen). 한편 누가는 마가의 ‘부르다'(*, 프로스칼레오)라는 표현(막 6:7) 대신 ‘불러 모으다'(*, 슁칼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8:51에 있었던 잠깐 동안의 헤어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고려한 누가의 세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모든 귀신…능력과 권세 – 마태와(마 10:1) 마가는(막 6:7)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모든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마태와 마가는 귀신의 악함에 초점을 두고 누가는 ‘모든 종류’의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엑수시아)에 능력(*, 뒤나미스)을 첨가하고 있는데, 전자는 합법적 권리나 권위를 나타내며 후자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와 능력이 예수 당시와 초대 교회에도 있었던 마술사(행 19:13)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카이 아페스테일렌 아우투스 케뤼쎄인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카이 이아스다이 투스 아스데네이스

개역개정,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새번역,2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우리말성경,2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영어NIV,2 and he sent them out to preach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the sick.

영어NASB,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perform healing.

영어MSG,2 He commissioned them to preach the news of God’s kingdom and heal the sick.

영어NRSV,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αυτους κηρυσσε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και ιασθαι τους ασθενουντας

라틴어Vulgate,2 et misit illos praedicare regnum Dei et sanare infirmos

히브리어Modern,2 וישלחם לקרא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ולרפא את החלים׃

성 경: [눅9: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하나님의 나라…보내시며 – 마태에 의하면(마 9:3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동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하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두 가지 책무를 부여받고서 파송되었다. (1)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과 인격 속에 현존함과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이기도 했다(마 6:10).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뜻을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희망으로 인해 곡해(曲解)하고는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권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4:15;마 18:1;20:21;막 11:10;15:43;14:15).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막 1:15의 주제 강해 ‘하나님의 나라개념’을 참조하라. (2)제자들은 병을 고쳐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영적인 일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은 육적인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바 육적인 문제의 해결도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짐에 주목해야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영혼의 구원에 비하여 이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질병 치유가 단순히 영혼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병을 고치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전파하고'(*, 케뤼쎄인)와 ‘고치는'(*, 이아스다이)이 대등 접속사 ‘카이'(*)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한편 제자들이 해야할 이 두가지 과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일은 다름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인데(11절;마 9:35), 이는 제자들이 해야하는 일이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할 사도로 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메덴 아이레테 에이스 텐 호돈 메테 랍돈 메테 페란 메테 아르톤 메테 아르귀리온 메테 아나 뒤오 키토나스 에케인

개역개정,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새번역,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지팡이도 가방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

가톨릭성경,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영어NIV,3 He told them: “Take nothing for the journey–no staff, no bag, no bread, no money, no extra tunic.

영어NASB,3 And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either a staff, nor a bag, nor bread, nor money; and do not even have two tunics apiece.

영어MSG,3 He said, “Don’t load yourselves up with equipment.

영어NRSV,3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o staff, nor bag, nor bread, nor money–not even an extra tunic.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μηδεν αιρετε εις την οδον μητε ραβδους μητε πηραν μητε αρτον μητε αργυριον μητε ανα δυο χιτωνας εχειν

라틴어Vulgate,3 et ait ad illos nihil tuleritis in via neque virgam neque peram neque panem neque pecuniam neque duas tunicas habeatis

히브리어Modern,3 ויאמר להם אל תקחו מאומה לדרך לא מטות ולא תרמיל ולא לחם ולא כסף ואל יהיה לאיש מכם שתי כתנות׃

성 경: [눅9: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 – 예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도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 하나 세부적인 항목까지 열거하고 있다. (1)지팡이(*, 라브도스)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도(마 10:10)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으나 마가는(막 6:8) 지팡이는 허용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ㄱ)마가는 왕하 4:29에 나오는 게하시의 경우처럼 지팡이를 스승의 권위에 대한 상징으로 파악했다는 견해(Schurmann). 그러나 게하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스승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만약 게하시의 경우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려면 제자들 모두가 스승인 예수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ㄴ)누가는 지팡이나 슬리퍼나 허리띠를 띠고 성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랍비적 규율을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Manson). (ㄷ)발음은 비슷하나 뜻은 서로 다른 아람어가 혼동되었다는 견해. 즉 ‘…외에’라는 뜻의 ‘ella'(엘라)와 ‘그리고…도 아닌’의 의미를 가진 ‘wla'(웰라)를 혼동한데서 생긴 차이이다. 이 설명은 헬라어 성경 원문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ㄹ)두 복음서 기자가 서로 다른 지팡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 즉 마가는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누가는 맹수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팡이를 각각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복음서가 모두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 ‘라브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결국 이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설명은 아직 없다 하겠다. (2)가방(*, 페라)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방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일 수도 있고 동냥 주머니일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주머니가 동냥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 여행 도중에 축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한 것이라고볼 수 있고, 여행 필수품을 담는 가방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만한 물건을 소유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빵(*, 아르토스)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4)돈(*, 아르귀리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스스로 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마지막으로 두 벌 옷(*, 키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 옷은 속옷으로 거의 발에까지 닿으며 소매가 달려있었다(Hendriksen). 한편 마가복음에는(막 6:9) 신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비해 누가는 신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고있는 신발 외에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여행에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현실적 여건이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며, 동시에 사사로운 재산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라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18:18-27). 22:35에 의하면 실제로 제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전도하러 다녔지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카이 에이스 헨 안 오이키안 에이셀데테 에케이 메네테 카이 에케이덴 엨세르케스데

개역개정,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새번역,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우리말성경,4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으라.

가톨릭성경,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영어NI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town.

영어NASB,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city.

영어MSG,4 Keep it simple; you are the equipment. And no luxury inns–get a modest place and be content there until you leave.

영어NRS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and leave from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εις ην αν οικιαν εισελθητε εκει μενετε και εκειθεν εξερχεσθε

라틴어Vulgate,4 et in quamcumque domum intraveritis ibi manete et inde ne exeatis

히브리어Modern,4 והבית אשר תבאו בו שם שבו לכם ומשם צאו׃

성 경: [눅9: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어느 집에…떠나라 – 여행 준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유숙(留宿)하는 방법을 일러주신다. 물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머물라는 말은 아니며 말씀을 받아 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마 10:11). 그러나 한 번 숙소를 정했으면 그 마을을 떠날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지 불편한 점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전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주의 교훈집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다케'(Dedache)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본문은 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 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 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카이 호소이 안 메 데콘타이 휘마스 엨세르코메노이 아포 테스 폴레오스 에케이네스 톤 코니오르톤 나포 톤 포돈 휘몬 아포티나쎄테 에이스 마르튀리온 엪 아우투스

개역개정,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새번역,5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서,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삼아라.”

우리말성경,5 만약 너희를 맞아 주지 않으면 그 마을을 떠날 때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발에 붙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

가톨릭성경,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영어NIV,5 If people do not welcome you,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when you leave their town,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NASB,5 “And as for those who do not receive you, as you go out from that city,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MSG,5 If you’re not welcomed, leave town. Don’t make a scene. Shrug your shoulders and move on.”

영어NRSV,5 Wherever they do not welcome you, as you are leaving that town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σοι αν μη δεξωνται υμας εξερχομενοι απο της πολεως εκεινης και τον κονιορτον απο των ποδων υμων αποτιναξατε εις μαρτυριον επ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5 et quicumque non receperint vos exeuntes de civitate illa etiam pulverem pedum vestrorum excutite in testimonium supra illos

히브리어Modern,5 וכל אשר לא יקבלו אתכם צאו מן העיר ההיא ונערו את העפר מעל רגליכם לעדות בהם׃

성 경: [눅9: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발에서…떨어버려 –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는 경우에 마을을 통과한 뒤 발의 먼지를 떨고 이스라엘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방 지역에서 묻은 옷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들어간다. 이는 유대인들의 성별(聖別)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정한 것을 자신들의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한편 본문에서 주님이 이러한 행위를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선민과 이방인의 진정한 구분은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영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더 나아가 발의 먼지를 떠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부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자 증거가 된다. (3)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둠으로써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행 13:50,51에 의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는 도중 유대인들로부터 방해를 당하였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다.

엨세르코메노이 데 디에르콘토 카타 타스 코마스 유앙겔리조메노이 카이 데라퓨온테스 판타쿠

개역개정,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새번역,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우리말성경,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들을 두루 다니며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영어NIV,6 So they set out and went from village to village,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people everywhere.

영어NASB,6 Departing, they began going throughout the villages,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everywhere.

영어MSG,6 Commissioned, they left. They traveled from town to town telling the latest news of God, the Message, and curing people everywhere they went.

영어NRSV,6 They departed and went through the villages, bringing the good news and curing diseases everywhere.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ξερχομενοι δε διηρχοντο κατα τας κωμας ευαγγελιζομενοι και θεραπευοντες πανταχου

라틴어Vulgate,6 egressi autem circumibant per castella evangelizantes et curantes ubique

히브리어Modern,6 ויצאו ויעברו בכפרים מבשרים את הבשורה ומרפאים בכל מקום׃

성 경: [눅9: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나가 각 촌에 – ‘나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르콘토'(*)는 ‘디에르 코마이'(*)의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 제자들의 선교 활동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촌'(*, 코마스)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룬트만(Grundmann)같은 학자는 예수가 읍내들을 돌아다니신데 비해 제자들은 촌락들을 돌아다닌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8:1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성’ 뿐만아니라 ‘촌’에도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 처처에 복음을…병을 고치더라 – ‘처처에’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쿠'(*)는 ‘그들이 가는곳 어디서나’의 뜻으로, 제자들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등 예수의 사역을 열심히 대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제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에쿠센 데 헤로데스 호 테트라아르케스 타 기노메나 판타 카이 디에포레이 디아 토 레게스다이 휘포 티논 호티 요안네스 에게르데 에크 네크론

개역개정,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새번역,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고, / ㉠그, ‘테트라아르케스’. 지위와 권위가 왕보다 밑에 있었음

우리말성경,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났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영어NIV,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about all that was going on.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some were saying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영어NASB,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of all that was happening; and he was greatly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risen from the dead,

영어MSG,7 Herod, the ruler, heard of these goings on and didn’t know what to think. There were people saying John had come back from the dead,

영어NRSV,7 Now Herod the ruler heard about all that had taken place,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헬라어신약Stephanos,7 ηκουσεν δε ηρωδης ο τετραρχης τα γινομενα υπ αυτου παντα και διηπορει δια το λεγεσθαι υπο τινων οτι ιωαννης εγηγερται εκ νεκρων

라틴어Vulgate,7 audivit autem Herodes tetrarcha omnia quae fiebant ab eo et haesitabat eo quod diceretur

히브리어Modern,7 וישמע הורדוס שר הרבע את כל אשר נעשה על ידו ותפעם רוחו כי יש אשר אמרו יוחנן קם מן המתים׃

성 경: [눅9: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분봉왕 헤롯 – 이는 헤롯이 왕(王)이 아니라 영주(領主)였음을 뜻한다. 그는 B.C.4-A.D. 39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었는데 그 지역은 예수의 사역이 펼쳐진 중심지였다.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 이 모든 일 – 이 문구의 헬라어 표현은 ‘타 기노메나 판타'(*)로 문법 구조상 현재 중간태 분사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는 모든 일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이란 일차적으로는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갖가지의 이적들과 선포이겠지만 누가는 이 표현을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에 이어 서술함으로써 제자들의 역할도 예수의 소문이 널리퍼져 헤롯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는데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한다. 심히 당황하여 – 이 말은 부정의 접두사 ‘디아'(*)와 ‘길’을 뜻하는 ‘포로스'(*)의 합성어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헤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문법상 미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때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요한이…살아났다고도 하며 – 마태나(마 14:2) 마가(막 6:14)는 헤롯이 예수의 소식을 듣자 곧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에 관한 헤롯의 최종적인 확신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고 누가는 무엇이 헤롯으로 하여금 이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즉 먼저는 세례 요한이 살아난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이 있었고 이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지자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하여(3:19,20;마14:3-11;막 6:17-28) 즉시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구약적 부활 사상이 담겨져 있음(신 32:39;삼상 2:6;욥 19:25-27)을 엿보게 한다.

휘포 티논 데 호티 엘리아스 에파네 알론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새번역,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말성경,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옛 예언자 중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8 더러는 “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d come back to life.

영어NASB,8 and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d risen again.

영어MSG,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still others that some prophet of long ago had shown up.

영어NRSV,8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d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8 υπο τινων δε οτι ηλιας εφανη αλλων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ε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8 a quibusdam quia Iohannes surrexit a mortuis a quibusdam vero quia Helias apparuit ab aliis autem quia propheta unus de antiquis surrexit

히브리어Modern,8 ויש שאמרו אליהו נראה ואחרים אמרו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혹은 엘리야가…혹은 옛 선지자…함이라 –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하게된 배경에는 말 4:5의 말씀이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종말을 알리는 ‘종말적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와의 연관성은 세례 요한에게 그가 적용된다(1:17;마 11:14). 예수는 단지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성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 대한 세번째 견해는, 옛선지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들은 정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만 예수의 사역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에게 선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퍼져나갔음을 알수 있다.

에이펜 데 헤로데스 요안넨 에고 아페케팔리사 티스 데 에스틴 후토스 페리 후 아쿠오 토이아우타 카이 에제테이 이데인 아우톤

개역개정,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새번역,9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우리말성경,9 그러자 헤롯은 “내가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이런 소문이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영어NIV,9 But Herod said, “I beheaded John. Who, then, is this I hear such things about?” And he tried to see him.

영어NASB,9 Herod said, “I myself had John beheaded; but who is this man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kept trying to see Him.

영어MSG,9 Herod said, “But I killed John–took off his head. So who is this that I keep hearing about?” Curious, he looked for a chance to see him in action.

영어NRSV,9 Herod said, “John I beheaded; but who is this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tried to se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ειπεν ο ηρωδης ιωαννην εγω απεκεφαλισα τις δε εστιν ουτος περι ου εγω ακουω τοιαυτα και εζητει ιδει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9 et ait Herodes Iohannem ego decollavi quis autem est iste de quo audio ego talia et quaerebat videre eum

히브리어Modern,9 ויאמר הורדוס הן אנכי נשאתי את ראש יוחנן מעליו ומי אפוא הוא אשר אני שמע עליו כזאת ויבקש לראותו׃

성 경: [눅9: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이 사람이 누군고…보고자 하더라 – 헤롯은 예수께 대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에 집착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 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늘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마 14:3-11; 막 6:17-28). 여기서 “…자 하더라”는 표현 ‘에제테이'(*)는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헤롯이 계속해서 예수를 보고자 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13:31에 의하면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한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죄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를 희롱하며 예수가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내지는 동조자(同調者)로서의 역할을 했다(23:8,11).

카이 휘포스트렢산테스 호이 아포스톨로이 디에게산토 아우토 호사 에포이에산 ㅏ이 파랄라본 아우투스 휘페코레센 캍 이디안 에이스 폴린 칼루메넨 베드사이다

개역개정,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새번역,10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이야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우리말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예수께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영어NIV,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reported to Jesus what they had done. Then he took them with him and they withdrew by themselves to a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ASB,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gave an account to Him of all that they had done. Taking them with Him, He withdrew by Himself to a city called Bethsaida.

영어MSG,10 The apostles returned and reported on what they had done. Jesus took them away, off by themselves, near the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RSV,10 On their return the apostles told Jesus all they had done. He took them with him and withdrew privately to a city called Bethsaida.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υποστρεψαντες οι αποστολοι διηγησαντο αυτω οσα εποιησαν και παραλαβων αυτους υπεχωρησεν κατ ιδιαν εις τοπον ερημον πολεως καλουμενης βηθσαιδα

라틴어Vulgate,10 et reversi apostoli narraverunt illi quaecumque fecerunt et adsumptis illis secessit seorsum in locum desertum qui est Bethsaida

히브리어Modern,10 וישובו השליחים ויספרו לו את כל אשר עשו ויקחם אליו ויסר לבדד אל מקום חרב אשר לעיר הנקראה בית צידה׃

성 경: [눅9:1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 – 제자들이 사역한 기간이나 그들이 행한 구체적인 일들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시에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사역의 기간과 다시 모이는 장소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고한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게산토'(*)는 “경과를 끝까지 이야기한다”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킨다.

󰃨 벳새다 – 이 지명의 뜻은 ‘고기 잡는 집’인데 정확한 명칭은 ‘벳새다 율리아스'(Be-thsaida Julias)로 빌립왕이 건설하여 황제 아구스도의 딸 율리아스를 기념하는 뜻에서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은 베드로, 빌립,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요 1:44). 예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간것은 제자들이 먼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막 6:31). 말하자면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로’ 사적인 만남을 갖고자 했음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이다.

호이 데 오클로이 그논테스 에콜루데산 아우토 카이 아포뎈사메노스 아우투스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페리 테스 바실레이아스 투 데우 카이 투스 크레이안 에콘타스 데라페이아스 이아토

개역개정,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새번역,11 그러나 무리가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우리말성경,11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예수를 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영어NIV,11 but the crowds learned about it and followed him.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healing.

영어NASB,11 But the crowds were aware of this and followed Him; and welcoming them, He began speaking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curing those who had need of healing.

영어MSG,11 But the crowds got wind of it and followed. Jesus graciously welcomed them and talked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Those who needed healing, he healed.

영어NRSV,11 When the crowds found out about it, they followed him; and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to be cure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ι δε οχλοι γνοντες ηκολουθησαν αυτω και δεξαμενος αυτους ελαλει αυτοις περι της βασιλειας του θεου και τους χρειαν εχοντας θεραπειας ιατο

라틴어Vulgate,11 quod cum cognovissent turbae secutae sunt illum et excepit illos et loquebatur illis de regno Dei et eos qui cura indigebant sanabat

히브리어Modern,11 והמון העם כאשר ידעו את זאת הלכו אחריו ויקבלם וידבר אליהם על מלכות האלהים וירפא את הצריכים לרפואה׃

성 경: [눅9:1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무리가…따라 왔거늘 –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마가에 의하면(막6:32,33)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와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보다는 예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듯하다.

󰃨 영접하사…고치시더라 – 제자들 하고만 있고자 했던 예수의 계획은 모여든 무리들로 인해 일단 좌절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별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영접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영접했다’는 표현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목자없는 양 같이 보인 불쌍한 무리들을 따뜻이 그리고 흔쾌하게 맞아주신 예수의 온정을 느끼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두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는 일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 하시며'(*, 엘랄레이)와 ‘고치시더라'(*, 이아토)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헤 데 헤메라 에릌사토 클리네인 프로셀돈테스 데 호이 도데카 에이판 아우토 아폴뤼손 톤 오클론 히나 포류덴테스 에이스 타스 퀴클로 코마스 카이 아그루스 카탈뤼소신 카이 휴로신 에피스티스몬 호티 호데 엔 에레모 토포 에스멘

개역개정,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새번역,12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우리말성경,12 날이 저물자 열두 제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외딴 곳에 와 있으니 사람들을 보내 주변 마을과 농가로 가서 잠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얻게 하십시오.”

가톨릭성경,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영어NIV,12 Late in the afternoon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ey can go 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food and lodging, because we are in a remote place here.”

영어NASB,12 Now the day was ending, and the twelve came and said to Him, “Send the crowd away,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lodging and get something to eat; for here we are in a desolate place.”

영어MSG,12 As the day declined, the Twelve said, “Dismiss the crowd so they can go to the farms or villages around here and get a room for the night and a bite to eat. We’re out in the middle of nowhere.”

영어NRSV,12 The day was drawing to a close, and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to lodge and get provisions; for we are here in a deserted place.”

헬라어신약Stephanos,12 η δε ημερα ηρξατο κλινειν προσελθοντες δε οι δωδεκα ειπον αυτω απολυσον τον οχλον ινα απελθοντες εις τας κυκλω κωμας και τους αγρους καταλυσωσιν και ευρωσιν επισιτισμον οτι ωδε εν ερημω τοπω εσμεν

라틴어Vulgate,12 dies autem coeperat declinare et accedentes duodecim dixerunt illi dimitte turbas ut euntes in castella villasque quae circa sunt devertant et inveniant escas quia hic in loco deserto sumus

히브리어Modern,12 והיום רפה לערב ושנים העשר קרבו ויאמרו אליו שלח נא את העם וילכו אל הכפרים והחצרים אשר סביבותינו ללון שם ולמצא מזון כי פה אנחנו במקום חרבה׃

성 경: [눅9:1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날이 저물어 가매 –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고치는 능력에 완전히 마음이 붙들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 먹을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시티스몬'(*)은 ‘곡식’을 뜻하는 ‘시티온'(*)에서 유래한 동사 ‘에피시티조 마이'(*,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특히 고대 헬라어에서 ‘여행중의 양식’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제자들이 무리들의 묵을 곳과 먹을것을 염려하는 모습은 예수의 생각에 비교한다면 믿음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투스 도테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파게인 호이 데 에이펜 우크 에이신 헤민 플레이온 에 아르토이 펜테 카이 이크뒤에스 뒤오 에이 메티 포류덴테스 헤메이스 아고라소멘 에이스 판타 톤 라온 투톤 브로마타

개역개정,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새번역,13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말성경,13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가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합니다.”

가톨릭성경,13 예수님께서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3 He replied,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answered, “We hav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unles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is crowd.”

영어NASB,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 unless perhap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영어MSG,13 “You feed them,” Jesus said. They said, “We couldn’t scrape up more than five loaves of bread and a couple of fish–unless, of course, you want us to go to town ourselves and buy food for everybody.”

영어NRSV,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unless we are to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ιπεν δε προς αυτους δοτε αυτοις υμεις φαγειν οι δε ειπον ουκ εισιν ημιν πλειον η πεντε αρτοι και δυο ιχθυες ει μητι πορευθεντες ημεις αγορασωμεν εις παντα τον λαον τουτον βρωματα

라틴어Vulgate,13 ait autem ad illos vos date illis manducare at illi dixerunt non sunt nobis plus quam quinque panes et duo pisces nisi forte nos eamus et emamus in omnem hanc turbam escas

히브리어Modern,13 ויאמר אליהם תנו אתם להם לאכל ויאמרו אין לנו כי אם חמשת ככרות לחם ודגים שנים בלתי אם נלך ונקנה אכל לכל העם הזה׃

성 경: [눅9:1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너희가 먹을 것을…없삽나이다 – 예수는 제자들이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아무런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본문에서는 ‘너희가'(*, 휘메이스)에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야할 사도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전적인 책임의식을 가지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2)예수께서는 선교여행 중 지녔던 권세와 능력에 대해 망각한 채 극히 평범하고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제자들을 깨우쳐주고 책망하는 의미로 그런 주문을 하셨다. (3)제자들은 선교여행 중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으나 주리지않고 헐벗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받은것에 대해서 필요에 따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적인 동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의 명령은 엘리사가 그의 사환에게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라고 명령한 것을 연상시킨다(왕하 4:42-44). 이에 대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함을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본문의 기록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가 두 마리 뿐이니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2)지금의 장소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음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 수가 없다. (3)설령 사람을 보내어 200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을 사온다 한들 어림없이 부족하다(요6:7). 특히 마가(막 6:37)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는 말투로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누가는 비교적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산 가르 호세이 안드레스 펜타키스킬리오이 에이펜 데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카타클리나테 아우투스 클리시아스 호세이 아나 펜테콘타

개역개정,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새번역,14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우리말성경,14 그곳에는 남자만 5,000명 정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50명씩 둘러앉게 하라.”

가톨릭성경,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영어NIV,14 (About five thousand men were there.) But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NASB,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to eat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MSG,14 (There were more than five thousand people in the crowd.) But he went ahead and directed his disciples, “Sit them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영어NRSV,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Mak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σαν γαρ ωσει ανδρες πεντακισχιλιοι ειπεν δε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κατακλινατε αυτους κλισιας ανα πεντηκοντα

라틴어Vulgate,14 erant autem fere viri quinque milia ait autem ad discipulos suos facite illos discumbere per convivia quinquagenos

히브리어Modern,14 כי היו כחמשת אלפי איש ויאמר אל תלמידיו הושיבו אתם שורות שורות חמשים בשורה׃

성 경: [눅9:1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남자가 한 오천 명 – 남자 장정만 오천명 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이다.

󰃨 떼를 지어 – 마가는 이 표현을 라틴어의 ‘심포지움’ 즉 ‘향연’과 같은 의미의 ‘쉼포시아'(*)를 사용하는데(막 6:39) 비해 누가는 이 표현을 ‘클리시아스'(*)라는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정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마샬(Marshall)같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만찬을 반영해 준다고 한다.

󰃨 한 오십 명씩 앉히라 – 여기서도 누가는 독특하게 ‘한'(*, 호세이)이라는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누가는 의사와 역사가로서 숫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비교, 막 6:40). 몇 명 단위로 앉혔는가 하는 사실에 관해서는 전승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단지 무리를 일정한 단위로 세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를 세분화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카이에포이에산 후토스 카이 카테클리난 하판타스

개역개정,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새번역,15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우리말성경,15 제자들은 그대로 사람들을 모두 앉혔습니다.

가톨릭성경,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영어NIV,15 The disciples did so, and everybody sat down.

영어NASB,15 They did so, and had them all sit down.

영어MSG,15 They did what he said, and soon had everyone seated.

영어NRSV,15 They did so and made them all sit down.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ποιησαν ουτως και ανεκλιναν απαντας

라틴어Vulgate,15 et ita fecerunt et discumbere fecerunt omnes

히브리어Modern,15 ויעשו כן ויושיבו את כלם׃

성 경: [눅9:1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제자들이…다 앉힌 후 – 제자들이 예수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이 간결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 역시 음식이 어디서 올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본 데 투스 펜테 아르투스 카이 투스 뒤오 잌뒤아스 아나블렢사스 에이스 톤 우라논 율로게센 아우투스 카이 카테클레센 카이 에디두 토이스 마데타이스 파라데이나이 토 오클로

개역개정,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새번역,16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우리말성경,16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영어NIV,16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m.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NASB,16 Then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blessed them, and broke them, and kept giving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MSG,16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lifted his face to heaven in prayer, blessed, broke, and gave the bread and fish to the disciples to hand out to the crowd.

영어NRSV,16 And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he looked up to heaven, and blessed and broke them,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crow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λαβων δε τους πεντε αρτους και τους δυο ιχθυας αναβλεψας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υλογησεν αυτους και κατεκλασεν και εδιδου τοις μαθηταις παρατιθεναι τω οχλω

라틴어Vulgate,16 acceptis autem quinque panibus et duobus piscibus respexit in caelum et benedixit illis et fregit et distribuit discipulis suis ut ponerent ante turbas

히브리어Modern,16 ויקח את חמשת ככרות הלחם ואת שני הדגים וישא עיניו השמימה ויברך עליהם ויפרס ויתן לתלמידיו לשום לפני העם׃

성 경: [눅9:1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 공관복음서 모두가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문구(文句)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식사 관습과 일치한다. ‘축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오'(*)는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것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평범한 감사의 식사 기도로 보아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는 삶을 사신 예수께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으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위한 별도의 간구가 필요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 주어…놓게하시니 – ‘주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두'(*)는 ‘디도미'(*)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예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었음을 가리킨다. 떡과 물고기는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을 경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단지 우리는 ‘주어'(*, 에디두)라는 미완료 동사에서 예수의 손에서 떡이 끝없이 계속해서 떼어져 나가는 기적적인 증가가 있었음을 암시받을 뿐이다.

카이 에파곤 카이 에코르타스데산 판테스 카이 에르데 토 페리쓔산 아우토이스 클라스마톤 코피노이 도데카

개역개정,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새번역,17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우리말성경,17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남은 조각들을 거두어 보니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가톨릭성경,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영어NIV,17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영어NASB,17 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broken pieces which they had left over were picked up, twelve baskets full.

영어MSG,17 After the people had all eaten their fill, twelve baskets of leftovers were gathered up.

영어NRSV,17 And all ate and were filled. What was left over was gathered up, twelve baskets of broken piece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και εφαγον και εχορτασθησαν παντες και ηρθη το περισσευσαν αυτοις κλασματων κοφινοι δωδεκα

라틴어Vulgate,17 et manducaverunt omnes et saturati sunt et sublatum est quod superfuit illis fragmentorum cofini duodecim

히브리어Modern,17 ויאכלו כלם וישבעו וישאו מן הפתותים הנותרים להם שנים עשר סלים׃

성 경: [눅9:1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먹고 다 배불렀더라 –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배불리 먹지 못한 자는 하나도없다. 이는 예수의 능력의 완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신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 보다는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일에 궁극적 목적을 두셨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매료(魅了)되어 찾아온 무리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도한 요한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요 6:14,15,26,27)

󰃨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 – 무리가 모두 배불리 먹은데 그치지 않고 남은 양이 무려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이라 명하시는데(요 6:12), 이것은 음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외에도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예수의 이적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다음에 또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구니'(*, 코피노이)는 군인들이 장비나 급식을 담아 짊어지고 다니는 기구 또는 여행자들이 음식과 필수품을 가지고 다니는 기구를 가리킨다. 처음의 시작은 바구니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예수 앞에 바쳐졌을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하라. 제자들은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된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적합할 만큼의 적은 것으로 큰 일을 하신 것이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에이나이 아우톤 프로슈코메논 카타 모나스 쉬네산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카이 에페로테센 아우투스 레곤 티나 메 레구신 호이 오클로이 에이나이

개역개정,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새번역,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말성경,18 한번은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가톨릭성경,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영어NI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in private and his disciples were with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I am?”

영어NASB,18 And it happened that while He was praying alone, the disciples were with Him, and He questioned them, saying, “Who do the people say that I am?”

영어MSG,18 One time when Jesus was off praying by himself, his disciples nearby, he asked them, “What are the crowds saying about me, about who I am?”

영어NRS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alone, with only the disciples near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that I a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ν προσευχομενον καταμονας συνησαν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και επηρωτησεν αυτους λεγων τινα με λεγουσιν οι οχλοι ειναι

라틴어Vulgate,18 et factum est cum solus esset orans erant cum illo et discipuli et interrogavit illos dicens quem me dicunt esse turbae

히브리어Modern,18 ויהי הוא מתפלל לבדד ויאספו אליו תלמידיו וישאל אתם לאמר מה אמרים עלי המון העם מי אני׃

성 경: [눅9:1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따로 기도하실 때에 – 누가는 막 6:45-8:26의 내용을 생략한 채 오병 이어의 기적에 이어 바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할때에’라는 ‘엔토'(*)구문으로 단락을 전환시키고 있다. 마태나 마가에 의하면(마 16:13;막 8:27) 이 장소는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이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90km 떨어진 헤르몬 산 근처의 성읍으로 특히 우상 숭배로 유명하다. 토착민들은 바알신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pan)의 신당을 지어 섬겼으며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이런 우상 숭배의 지역에서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irony)라 할 수 있다. 한편 누가는 이러한 단락 전환에 있어서 그 서두를 예수께서 기도 중에 있는 사실로 시작하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있어서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3:21;6:12;9:28).

󰃨 무리가…누구라고 하느냐 –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들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물으신 듯하다. 예수께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며, 그는 이미 무리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다(요 6:14,15,26).

호이 데 아포크리덴테스 에이판 요안넨 톤 밮티스텐 알로이 데 엘리안 알로이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새번역,19 그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19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옛 예언자 중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침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영어NIV,19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s come back to life.”

영어NASB,19 They answered and said, “John the Baptist, and others say Elijah; but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s risen again.”

영어MSG,19 They said, “John the Baptizer. Others say Elijah. Still others say that one of the prophets from long ago has come back.”

영어NRSV,19 They answered, “John the Baptist; but others,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s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19 οι δε αποκριθεντες ειπον ιωαννην τον βαπτιστην αλλοι δε ηλιαν αλλοι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τ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19 at illi responderunt et dixerunt Iohannem Baptistam alii autem Heliam alii quia propheta unus de prioribus surrexit

히브리어Modern,19 ויענו ויאמרו יוחנן המטביל ואחרים אמרים אליהו ואחרים אמרים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1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세례 요한…엘리야…선지자…살아났다 –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에이펜 데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데 티나 메 레게테 에이나이 페트로스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톤 크리스톤 투 데우

개역개정,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새번역,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 ㉢히브리어로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분’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0 그러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가톨릭성경,20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20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Peter answered, “The Christ of God.”

영어NASB,20 And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And Peter answered and said, ” The Christ of God.”

영어MSG,20 He then asked, “And you–what are you saying about me? Who am I?”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영어NRSV,20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ιπεν δε αυτοις υμεις δε τινα με λεγετε ειναι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πετρος ειπεν τον χριστ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dixit autem illis vos autem quem me esse dicitis respondens Simon Petrus dixit Christum Dei

히브리어Modern,20 ויאמר אליהם ואתם מה אתם אמרים מי אני ויען פטרוס ויאמר משיח האלהים אתה׃

성 경: [눅9:2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 41-56; 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게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한편 이 물음은 모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 베드로가…그리스도시니이다 –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역시 제자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간에 표현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마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호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 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민 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요 10:30;요일4: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의문시 되어 왔던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마태복음에는(마 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이 언급되며, 그 본문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여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근거로도 사용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 16:13-20의 주제 강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따른 약속’을 보라.

호 데 에피티메사스 아우토이스 파렝게일렌 메데니 레게인 투토

개역개정,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새번역,21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우리말성경,21 예수께서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며

가톨릭성경,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영어NIV,21 Jesus strictly warn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NASB,21 But He warned them and instruct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MSG,21 Jesus then warned them to keep it quiet. They were to tell no one what Peter had said.

영어NRSV,21 He sternly ordered and commanded them not to tell anyon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δε επιτιμησας αυτοις παρηγγειλεν μηδενι ειπειν τουτο

라틴어Vulgate,21 at ille increpans illos praecepit ne cui dicerent hoc

히브리어Modern,21 ויצו אתם בגערה לבלתי הגיד לאיש את הדבר הזה׃

성 경: [눅9:2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경계하사…명하시고 – ‘경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인데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 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요 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에이폰 호티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폴라 파데인 카이 아포도키마스데나이 아포 톤 프레스뷔테론 카이 아르키에레온 카이 그람마테온 카이 아포크탄데나이 카이 테 트리테 헤메라 에게르데나이

개역개정,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새번역,22 말씀하셨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우리말성경,22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받아 끝내 죽임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영어NIV,22 And he said,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he must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to life.”

영어NASB,22 saying, ”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and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be raised up on the third day.”

영어MSG,22 He went on, “It is necessary that the Son of Man proceed to an ordeal of suffering, be tried and found guilty by the religious leaders, high priests, and religion scholars,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up alive.”

영어NRSV,22 saying, “The Son of Man must undergo great suffering,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ιπων οτι δει τον υιον του ανθρωπου πολλα παθειν και αποδοκιμασθηναι απο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και αρχιερεων και γραμματεων και αποκτανθηναι και τη τριτη ημερα εγερθηναι

라틴어Vulgate,22 dicens quia oportet Filium hominis multa pati et reprobari a senioribus et principibus sacerdotum et scribis et occidi et tertia die resurgere

히브리어Modern,22 ויאמר מן הצרך הוא אשר בן האדם יענה הרבה וימאס מן הזקנים והכהנים הגדולים והסופרים ויהרג וביום השלישי קום יקום׃

성 경: [눅9:2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인자가…하리라 – 본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마조'(*)는 ‘거부하다’, ‘쓸모 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데이'(*)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혀준다(사 53장; 요 3:16;롬 8:32).

󰃨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24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 보라.

󰃨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 프레스뷔테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성하였다(7:3;20:1;22:52). ‘대제사장들'(*, 아르키에류스)은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 그람마튜스)은 ‘랍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다. 유대 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옳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엘레겐 데 프로스 판타스 에이 티스 델레이 오피소 무 에르케스다이 아르네사스도 헤아우톤 카이 아라토 톤 스타우론 아우투 칻 헤메란 카이 아몰루데이토 모이

개역개정,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새번역,23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우리말성경,23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가톨릭성경,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어NI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NASB,23 And He was saying to them all,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MSG,23 Then he told them what they could expect for themselves: “Anyone who intends to come with me has to let me lead. You’re not in the driver’s seat–I am. Don’t run from suffering; embrace it. Follow me and I’ll show you how.

영어NRS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 want to become my followers, let them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daily and follow me.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λεγεν δε προς παντας ει τις θελει οπισω μου ελθειν απαρνησασθω εαυτον και αρατω τον σταυρον αυτου καθ ημεραν και ακολουθειτω μοι

라틴어Vulgate,23 dicebat autem ad omnes si quis vult post me venire abneget se ipsum et tollat crucem suam cotidie et sequatur me

히브리어Modern,23 ואל כלם אמר איש כי יחפץ ללכת אחרי יכחש בנפשו ויום יום ישא את צלבו והלך אחרי׃

성 경: [눅9:2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절)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가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째로 이러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호스 가르 안 델레 텐 프쉬켄 아우투 소사이 아폴레세이 아우텐 호스 드 안 아폴레세 텐 프쉬켄 아우투 헤네켄 에무 후토스 소세이 아우텐

개역개정,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새번역,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4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영어NIV,24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e will save it.

영어NASB,24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he is the one who will save it.

영어MSG,24 Self-help is no help at all. Self-sacrifice is the way, my way, to finding yourself, your true self.

영어NRSV,24 For those who want to save their life will lose it, and those who lose their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ς γαρ αν θελ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σωσαι απολεσει αυτην ος δ αν απολεσ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ενεκεν εμου ουτος σωσει αυτην

라틴어Vulgate,24 qui enim voluerit animam suam salvam facere perdet illam nam qui perdiderit animam suam propter me salvam faciet illam

히브리어Modern,24 כי כל אשר יחפץ להושיע את נפשו תאבד נפשו ממנו וכל אשר יאבד את נפשו למעני הוא יושיענה׃

성 경: [눅9:2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목숨을…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 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요 12:25).

󰃨 나를 위하여…구원하리라 –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티 가르 오펠레이타이 안드로포스 케르데사스 톤 코스몬 홀론 헤아우톤 데 아폴레사스 에 제미오데이스

개역개정,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새번역,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우리말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가톨릭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영어NIV,25 What good is it for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and yet lose or forfeit his very self?

영어NASB,25 “For what is a man profited if he gains the whole world, and loses or forfeits himself?

영어MSG,25 What good would it do to get everything you want and lose you, the real you?

영어NRSV,25 What does it profit them if they gain the whole world, but lose or forfeit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25 τι γαρ ωφελειται ανθρωπος κερδησας τον κοσμον ολον εαυτον δε απολεσας η ζημιωθεις

라틴어Vulgate,25 quid enim proficit homo si lucretur universum mundum se autem ipsum perdat et detrimentum sui faciat

히브리어Modern,25 כי מה יועיל האדם כי יקנה את כל העולם ואבד והשחית את נפשו׃

성 경: [눅9:2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온 천하를…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계 2:10).

호스 가르 안 에파이스퀸데 메 카이 투스 에무스 로구스 투톤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에파이스퀸데세타이 호탄 엘데 엔 테 돜세 아우투 카이 투 파트로스 카이 톤 하기온 앙겔론

개역개정,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새번역,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우리말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가운데 올 때 그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영어NIV,26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in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NASB,26 “For whoever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MSG,26 If any of you is embarrassed with me and the way I’m leading you, know that the Son of Man will be far more embarrassed with you when he arrives in all his splendor in company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angels. This isn’t, you realize, pie in the sky by and by.

영어NRSV,26 Those who are ashamed of me and of my words, of them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ς γαρ αν επαισχυνθη με και τους εμ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ν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παισχυνθησεται οταν ελθη εν τη δοξη αυτου και του πατρος και των αγιων αγγελων

라틴어Vulgate,26 nam qui me erubuerit et meos sermones hunc Filius hominis erubescet cum venerit in maiestate sua et Patris et sanctorum angelorum

히브리어Modern,26 כי כל אשר הייתי אני ודברי לו לחרפה הוא יהיה לחרפה לבן האדם כאשר יבא בכבודו ובכבוד האב והמלאכים הקדושים׃

성 경: [눅9:2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인자도…부끄러워 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있다. 누가는 마태나(마 16:27), 마가(막 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마 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히 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 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롬 1:16).

레고 데 휘민 알레도스 에이신 티네스 톤 아우투 헤스테코톤 호이 우 메 규손타이 다나투 헤오스 안 이도신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개역개정,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새번역,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

우리말성경,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영어NIV,27 I tell you the truth, some who are standing here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NASB,27 “But I say to you truthfully, there are some of thos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until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MSG,27 Some who have taken their stand right here are going to see it happen, see with their own eyes the kingdom of God.”

영어NRSV,27 But truly I tell you, there are som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λεγω δε υμιν αληθως εισιν τινες των ωδε εστηκοτων οι ου μη γευσονται θανατου εως αν ιδωσ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7 dico autem vobis vere sunt aliqui hic stantes qui non gustabunt mortem donec videant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27 ובאמת אני אמר לכם יש מן העמדים פה אשר לא יטעמו מות עד כי יראו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9:2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여기 섰는…있느니라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하였다면 본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섰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에게네토 데 메타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세이 헤메라이 옼토 카이 파랄라본 페트론 카이 요안넨 카이 야코본 아네베 에이스 토 오로스 프로슠사스다이

개역개정,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새번역,28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우리말성경,28 이런 말씀을 하신 뒤 8일쯤 지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28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영어NIV,28 About eight days after Jesus said this, he took Peter, John and James with him and went up onto a mountain to pray.

영어NASB,28 Some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He took along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영어MSG,28 About eight days after saying this, he climbed the mountain to pray, taking Peter, John, and James along.

영어NRSV,28 Now about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Jesus took with him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γενετο δε μετα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ωσει ημεραι οκτω και παραλαβων τον πετρον και ιωαννην και ιακωβον ανεβη εις το ορος προσευξασθαι

라틴어Vulgate,28 factum est autem post haec verba fere dies octo et adsumpsit Petrum et Iohannem et Iacobum et ascendit in montem ut oraret

히브리어Modern,28 ויהי כשמנה ימים אחרי הדברים האלה ויקח אליו את פטרוס ואת יוחנן ואת יעקב ויעל אל ההר להתפלל שם׃

성 경: [눅9:2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이 말씀을 하신 후 –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연결구를 첨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26:37;막 14:33) 예수를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다.

󰃨 기도하시러 산에 –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山行)의 목적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 ‘메론 산’, ‘다볼산’이라는 추측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프로슈케스다이 아우톤 토 에이도스 투 프로소푸 아우투 헤테론 카이 호 히마티스모스 아우투 류코스 엨사스트랖톤

개역개정,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새번역,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우리말성경,29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동안 얼굴 모습이 변하셨고 옷이 하얗게 빛났습니다.

가톨릭성경,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영어NIV,29 As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as bright as a flash of lightning.

영어NASB,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became different, and His clothing became white and gleaming.

영어MSG,29 While he was in prayer,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blinding white.

영어NRSV,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헬라어신약Stephanos,29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προσευχεσθαι αυτον το ειδος του προσωπου αυτου ετερον και ο ιματισμος αυτου λευκος εξαστραπτων

라틴어Vulgate,29 et factum est dum oraret species vultus eius altera et vestitus eius albus refulgens

히브리어Modern,29 ויהי בהתפללו נשתנה מראה פניו ולבושו הלבין והבריק׃

성 경: [눅9:2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기도하실 때에…나더라 –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이 달라졌다’이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한다. 이는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시 84:11;계 1:16;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다(마 28:3;막 16:5;행 1:10;계 3:4,5;7:14). 이것 역시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준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의 합성어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모는 (1)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 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의 모습과(롬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다.

카이 이두 안드레스 뒤오 쉬넬랄룬 아우토 호이티네스 에산 모위세스 카이 엘리아스

개역개정,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새번역,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우리말성경,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어NIV,30 Two men, Moses and Elijah,

영어NASB,30 And behold, two men were talking with Him; and they were Moses and Elijah,

영어MSG,30 At once two men were there talking with him. They turned out to be Moses and Elijah–

영어NRSV,30 Suddenly they saw two men, Moses and Elijah, talki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ιδου ανδρες δυο συνελαλουν αυτω οιτινες ησαν μωσης και ηλιας

라틴어Vulgate,30 et ecce duo viri loquebantur cum illo erant autem Moses et Helias

히브리어Modern,30 והנה שני אנשים מדברים אתו והמה משה ואליהו׃

성 경: [눅9:3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이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다(말 4:5).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마 5:17,18).

호이 오프덴테스 엔 돜세 엘레곤 텐 엨소돈 아우투 헨 에멜렌 플레룬 엔 예루살렘

개역개정,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새번역,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 ㉤’세상에서 떠나가심’ 곧 ‘죽으심’

우리말성경,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분의 떠나가심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영어NIV,31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영어NASB,31 who, appearing in glory,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영어MSG,31 and what a glorious appearance they made! They talked over his exodus, the one Jesus was about to complete in Jerusalem.

영어NRSV,31 They appeared in glory and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ι οφθεντες εν δοξη ελεγον την εξοδον αυτου ην εμελλεν πληρου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31 visi in maiestate et dicebant excessum eius quem conpleturus erat in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31 אשר נראו בכבוד והגידו את אחריתו אשר ימלאנה בירושלים׃

성 경: [눅9:3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낸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 데 페트로스 카이 호이 쉰 아우토 에산 베바레메노이 휲노 디아그레고레산테스 데 에이돈 텐 돜산 아우투 카이 투스 뒤오 안드라스 투스 쉬네스토타스 아우토

개역개정,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새번역,32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우리말성경,32 베드로와 그 일행이 잠을 이기지 못해 졸다가 완전히 깨서 예수의 영광과 그분 곁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영어NIV,32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very sleepy, but when they becam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ASB,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had been overcome with sleep; but when they wer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MSG,32 Meanwhile, Peter and those with him were slumped over in sleep. When they came to, rubbing their eyes, they saw Jesus in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RSV,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weighed down with sleep; but since they had stayed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who stood wit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2 ο δε πετρος και οι συν αυτω ησαν βεβαρημενοι υπνω διαγρηγορησαντες δε ειδον την δοξαν αυτου και τους δυο ανδρας τους συνεστωτας αυτω

라틴어Vulgate,32 Petrus vero et qui cum illo gravati erant somno et evigilantes viderunt maiestatem eius et duos viros qui stabant cum illo

히브리어Modern,32 ויהיו פטרוס ואשר אתו נרדמים ובהקיצם ראו את כבודו ואת שני האנשים העמדים עליו׃

성 경: [눅9:3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곤하여 졸다가 –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와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곯아 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한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결과를 초래했다(22:42-46).

󰃨 아주 깨어…보더니 –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난다. 아마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와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다. 이는 예수가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 시사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디아코리제스다이 아우투스 앞 아우투 에이펜 호 페트로스 프로스 톤 예순 에피스타타 칼론 에스틴 헤마스 호데 에이나이 카이 포이에소멘 스케나스 트레이스 미안 소이 카이 미안 모위세이 카이 미안 엘리아 메 에이도스 호 레게이

개역개정,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새번역,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3 두 사람이 예수를 떠나려고 하자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 있으니 참 좋습니다. 우리가 초막 세 개를 만들어 하나는 선생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세우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영어NIV,33 As the men were leaving Jesus, Peter said to him,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He did not know what he was saying.)

영어NASB,33 And as these were leaving Him, Peter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one for You,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not realizing what he was saying.

영어MSG,33 When Moses and Elijah had left, Peter said to Jesus, “Master, this is a great moment! Let’s build three memorial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He blurted this out without thinking.

영어NRSV,33 Just as they were leaving him, Peter said to Jesu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make three dwelling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not knowing what he said.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διαχωριζεσθαι αυτους απ αυτου ειπεν ο πετρος προς τον ιησουν επιστατα καλον εστιν ημας ωδε ειναι και ποιησωμεν σκηνας τρεις μιαν σοι και μωσει μιαν και μιαν ηλια μη ειδως ο λεγει

라틴어Vulgate,33 et factum est cum discederent ab illo ait Petrus ad Iesum praeceptor bonum est nos hic esse et faciamus tria tabernacula unum tibi et unum Mosi et unum Heliae nesciens quid diceret

히브리어Modern,33 ויהי בהפרדם ממנו ויאמר פטרוס אל ישוע מורה טוב היותנו פה נעשה נא שלש סכות לך אחת ולמשה אחת ולאליהו אחת ולא ידע מה דבר׃

성 경: [눅9:3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이 제단은 하늘로부터 온 두 사람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는 베드로의 바램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예수의 수난 예고와(22절) 그것을 확증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31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安住)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초막 셋을 짓되 – 이 초막은 숙곳에서 장막절에 사용했던 것(출 13:20)과 같이 나뭇잎이나 기타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움막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텐트나 장막을 가리킨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천상적인 영광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초막 셋’이라는 표현은 예수를 다른 두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적 무지를 반영한다.

타우타 데 아우투 레곤토스 에게네토 네펠레 카이 에페스키아젠 아우투스 에포베데산 데 엔 토 에이셀데인 아우투스 에이스 텐 네펠렌

개역개정,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새번역,34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 ㉥그, ‘그들을’

우리말성경,3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구름이 나와서 그들을 뒤덮었습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가톨릭성경,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영어NIV,34 While he was speaking,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they were afraid as they entered the cloud.

영어NASB,34 While he was saying this, a cloud formed and began to overshadow them; and they were afraid as they entered the cloud.

영어MSG,34 While he was babbling on like this, a light-radiant cloud enveloped them. As they found themselves buried in the cloud, they became deeply aware of God.

영어NRSV,34 While he was saying this, a cloud came and overshadowe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as they entered the cloud.

헬라어신약Stephanos,34 ταυτα δε αυτου λεγοντος εγενετο νεφελη και επεσκιασεν αυτους εφοβηθησαν δε εν τω εκεινους εισελθειν εις την νεφελην

라틴어Vulgate,34 haec autem illo loquente facta est nubes et obumbravit eos et timuerunt intrantibus illis in nubem

히브리어Modern,34 הוא מדבר כזאת והנה ענן סכך עליהם וכבואם בענן נבעתו׃

성 경: [눅9:3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구름 – 구름은 미래에 다시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고(단 7:13) 성도들을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며(계 11:12), 신 구약 중간시대 문학에서는 메시야의 도래와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다(위경 2 Baruch 53:1-12;4 Ezra 13:3). 구름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이다(출16:10;19:9;24:15-18;33:9). 특히 출 24:15-18에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병행구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와 두 인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어 하나님 자신의 임재로 말미암아 상황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 저희를 덮는지라 – 여기서 ‘저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1)예수와 두 인물 그리고 3제자 모두(Schurmann), (2)모세와 엘리야만(Greijdanus, Williams), (3)예수와 모세, 엘리야(Godet, Knox, Marshall). 이 중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 무서워하더니 – 신적인 권능 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는 인간의 죄성과 유한성 때문이다(8:25;24:4,5).

카이 포네 에게네토 에크 테스 네펠레스 레구사 후토스 에스틴 호 휘오스 무 호 에클렐레그메노스 아우투 아쿠에테

개역개정,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새번역,35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가 사랑하는 자다’

우리말성경,35 그때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그의 말을 들어라!”

가톨릭성경,35 이어 구름 속에서 “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영어NIV,35 A voice came from the cloud, saying, “This is my Son, whom I have chosen; listen to him.”

영어NASB,35 Then a voice came out of the cloud, saying, “This is My Son, My Chosen One; listen to Him!”

영어MSG,35 Then there was a voice out of the cloud: “This is my Son, the Chosen! Listen to him.”

영어NRSV,35 Then from the cloud came a voice that said, “This is my Son, my Chosen; listen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φωνη εγενετο εκ της νεφελης λεγουσα ουτος εστιν ο υιος μου ο αγαπητος αυτου ακουετε

라틴어Vulgate,35 et vox facta est de nube dicens hic est Filius meus electus ipsum audite

히브리어Modern,35 ויצא קול מן הענן אמר זה בני ידידי אליו תשמעון׃

성 경: [눅9:3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 – 구름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음성이기에 그만큼 이 선언은 엄숙하고 확정적이다. 또한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때 들려왔던 음성과도 비슷하다(3:22).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예수 이해는 이제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더이상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수난 주간에도 한번 더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요 12:2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 사역의 시작과 절정기와 마지막에 주어진 것이며 이것은 그 사역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의미한다. 한편 누가는 마태(마 17:5)나 마가(막 9:7)와 달리 ‘사랑하는’을 생략하고 ‘택함을 받은 자’를 첨가하고 있다. 누가는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의 삶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음과 아울러 예수의 권위의 출처가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 저의 말을 들으라 – 이 명령은 신 18:15의 반영으로 이제 예수의 정체(正體)가 분명히 드러난 이상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이 명령은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것이고 그 선택 여하에 따른 필연적 심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하여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에 있으며 예수께서 제시하는 사역의 목적과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지 말라는 것이다(마 16:21-23).

카이 엔 토 게네스다이 텐 포넨 휴레데 예수스 모노스 카이 아우토이 에시게산 카이 우데니 아펭게일란 엔 에케이나스 타이스 헤메라이스 우덴 혼 헤오라칸

개역개정,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새번역,36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우리말성경,36 그 소리가 사라지고 그들이 보니 예수만 홀로 서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영어NIV,36 When the voice had spoken, they found that Jesus was alone. The disciples kept this to themselves, and told no one at that time what they had seen.

영어NASB,36 And when the voice had spoken, Jesus was found alone. And they kept silent, and reported to no one in those days any of the things which they had seen.

영어MSG,36 When the sound of the voice died away, they saw Jesus there alone. They were speechless. And they continued speechless, said not one thing to anyone during those days of what they had seen.

영어NRSV,36 When the voice had spoken, Jesus was found alone. And they kept silent and in those days told no one any of the things they had seen.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ι εν τω γενεσθαι την φωνην ευρεθη ο ιησους μονος και αυτοι εσιγησαν και ουδενι απηγγειλαν εν εκειναις ταις ημεραις ουδεν ων εωρακασιν

라틴어Vulgate,36 et dum fieret vox inventus est Iesus solus et ipsi tacuerunt et nemini dixerunt in illis diebus quicquam ex his quae viderant

히브리어Modern,36 ובהיות הקול נשאר ישוע לבדו והמה החשו ולא הגידו דבר לאיש בימים ההם מכל אשר ראו׃

성 경: [눅9:3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 누가는 상황이 끝나는 장면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마 17:6-8 비교).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로 강조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 뿐이다. 그만큼 예수는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 그 때에는…아니하니라 – 자기들이 본 사실을 잠정적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을 말하는데 아마 예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말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듯하다(마 17:9;막 9:9).

에게네토 데 테 헼세스 헤메라 카텔돈톤 아우톤 아포 투 오루스 쉬넨테센 아우토 오클로스 폴뤼스

개역개정,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새번역,37 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우리말성경,37 이튿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맞았습니다.

가톨릭성경,37 다음 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가니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다.

영어NIV,37 The next day,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 large crowd met him.

영어NASB,37 On the next day,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 large crowd met Him.

영어MSG,37 When they came down off the mountain the next day, a big crowd was there to meet them.

영어NRSV,37 On the next day, when they had come down from the mountain, a great crowd me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7 εγενετο δε εν τη εξης ημερα κατελθοντων αυτων απο του ορους συνηντησεν αυτω οχλος πολυς

라틴어Vulgate,37 factum est autem in sequenti die descendentibus illis de monte occurrit illi turba multa

히브리어Modern,37 ויהי ממחרת ברדתם מן ההר ויצא עם רב לקראתו׃

성 경: [눅9:3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이튿날 – 누가만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변화산의 영광이 밤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엘리야와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마 17:10-13;막 9:11-13) 누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한채 바로 무리들과의 만남을 서술한다. 이 무리들 중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고(40절), 막 9:14에 의하면 서기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카이 이두 아네르 아포 투 오클루 에보에센 레곤 디다스칼레 데오마이 수 에피블렢사이 에피 톤 휘온 무 호티 모노게네스 모이 에스틴

개역개정,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새번역,38 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우리말성경,38 그 무리 중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부탁입니다. 제 아들 좀 봐 주십시오. 제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가톨릭성경,38 그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남자가 부르짖었다. “ 스승님, 청하건대 부디 제 아들을 보아 주십시오. 저의 외아들입니다.

영어NIV,38 A man in the crowd called out,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child.

영어NASB,38 And a man from the crowd shouted, saying,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boy,

영어MSG,38 A man called from out of the crowd, “Please, please, Teacher, take a look at my son. He’s my only child.

영어NRSV,38 Just then a man from the crowd shouted,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he is my only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38 και ιδου ανηρ απο του οχλου ανεβοησεν λεγων διδασκαλε δεομαι σου επιβλεψον επι τον υιον μου οτι μονογενης εστιν μοι

라틴어Vulgate,38 et ecce vir de turba exclamavit dicens magister obsecro te respice in filium meum quia unicus est mihi

히브리어Modern,38 והנה איש אחד מן העם צעק לאמר אנא רבי פנה נא אל בני כי יחיד הוא לי׃

성 경: [눅9:3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내 외아들이니이다 –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딱한 사정에 대하여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은 8:40,41에 있는 야이로의 외딸을 살리신 사건과 유사하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외아들’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극심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고통이 극심한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릴 때(7:12)나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릴때도(8:41) 마찬가지였다. 한편 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묘사함에 있어서 마가(막9:22)의 ‘불쌍히 여기다'(*, 스플랑크니조마이)를 ‘돌아보다'(*, 에피블렙사이)로 대치시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위로’를 뜻하는 ‘에피'(*)와 ‘보다’를 뜻하는 ‘블레포'(*)의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이다.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카이 이두 프뉴마 람바네이 아우톤 카이 엨사이프네스 크라제이 카이 스파라쎄이 아우톤 메타 아프루 카이 모기스 아포코레이 앞 아우투 쉰트리본 아우톤

개역개정,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새번역,39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39 그런데 귀신이 이 아이를 사로잡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게 하고 아이에게 발작을 일으켜 입에 거품을 물게도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영어NIV,39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screams; it throws him into convulsions so that he foams at the mouth. It scarcely ever leaves him and is destroying him.

영어NASB,39 and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screams, and it throws him into a convulsion with foaming at the mouth; and only with difficulty does it leave him, mauling him as it leaves.

영어MSG,39 Often a spirit seizes him. Suddenly he’s screaming, thrown into convulsions, his mouth foaming. And then it beats him black and blue before it leaves.

영어NRSV,39 Suddenly a spirit seizes him, and all at once he shrieks. It convulses him until he foams at the mouth; it mauls him and will scarcely leav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ιδου πνευμα λαμβανει αυτον και εξαιφνης κραζει και σπαρασσει αυτον μετα αφρου και μογις αποχωρει απ αυτου συντριβο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39 et ecce spiritus adprehendit illum et subito clamat et elidit et dissipat eum cum spuma et vix discedit dilanians eum

히브리어Modern,39 והנה רוח אחז בו ופתאם הוא מצעק והרוח מרוצץ אתו בהוריד רירו ומקשה לסור ממנו ובסורו ידכא אתו׃

성 경: [눅9:3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귀신이 저를 잡아 – 마태는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렸다 하고(마 17:15), 마가는 벙어리 귀신에 들렸다고 하나(막 9:17) 누가는 간략하게 귀신에 붙잡혔다고만 서술하고있다. 누가로서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증을 받은 ‘아들’과 아들의 사역을 방해하는 핵심 세력인 ‘귀신’과의 싸움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 졸지에…떠나 가나이다 – 이런 증세는 의학적으로 규명할 때 간질병의 증세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 간질병 배후(背後)에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서 기자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간질병과 예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귀신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카이 에데에덴 톤 마데톤 수 히나 에크발로신 아우토 카이 우크 에뒤네데산

개역개정,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새번역,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말성경,40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은 해내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영어NIV,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drive it out, but they could not.”

영어NASB,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cast it out, and they could not.”

영어MSG,40 I asked your disciples to deliver him but they couldn’t.”

영어NRSV,40 I begged your disciples to cast it out, but they could not.”

헬라어신약Stephanos,40 και εδεηθην των μαθητων σου ινα εκβαλλωσιν αυτο και ουκ ηδυνηθησαν

라틴어Vulgate,40 et rogavi discipulos tuos ut eicerent illum et non potuerunt

히브리어Modern,40 ואבקש מתלמידיך לגרשו ולא יכלו׃

성 경: [눅9:4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제자들…능히 못하더이다 – 결국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의 변론 주제가(막9:14) 제자들의 무능력에 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신적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동안 예수와 함께 있던 세 제자는 잠을 자고(32절),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에 붙잡힌 아이를 구하지 못해 무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서기관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 바, 이는 제자들의 아둔함을 잘 보여준다. 본래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능히 예수를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로부터 권능을 받았고 그 권능으로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1-6절). 그렇다면 제자들의 능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호 예수스 에이펜 오 게네아 아피스토스 카이 디에스트람메네 헤오스 포테 에소마이 프로스 휘마스 카이 아넼소마이 휘몬 프로사가게 호데 톤 휘온 수

개역개정,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새번역,4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우리말성경,41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참아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가톨릭성경,41 그러자 예수님께서, “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영어NIV,41 “O unbelieving and perverse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and put up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영어NASB,41 And Jesus answered and said, “You unbelieving and perverted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and put up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영어MSG,41 Jesus said, “What a generation! No sense of God! No focus to your lives! How many times do I have to go over these things? How much longer do I have to put up with this? Bring your son here.”

영어NRSV,41 Jesus answered, “You faithless and perverse generation, how much longer must I be with you and bear with you? Bring your son here.”

헬라어신약Stephanos,41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ιησους ειπεν ω γενεα απιστος και διεστραμμενη εως ποτε εσομαι προς υμας και ανεξομαι υμων προσαγαγε ωδε τον υ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41 respondens autem Iesus dixit o generatio infidelis et perversa usquequo ero apud vos et patiar vos adduc huc filium tuum

히브리어Modern,41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הוי דור חסר אמונה ופתלתל עד מתי אהיה עמכם ואסבל אתכם הבא הנה את בנך׃

성 경: [눅9:4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이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하다.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한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이적(異蹟)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내가 얼마나…너희를 참으리요 – 본절에 나타난 ‘믿음이 없는’, ‘패역한’ 등의 표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들을(신 32:5,20) 반영하며, 본문의 말씀은 더이상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패역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백성들을 품안에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킨다(사 46:4). 이제 예수의 지상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의 결핍을 노출시켰고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무리들은 점점더 패역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예수의 격한 감정은 ‘호'(*)라는 탄식어가 잘 나타내 준다.

에티 데 프로세르코메누 아우투 에르렠센 아우톤 토 다이모니온 카이 쉬네스파랔센 에페티메센 데 호 예수스 토 프뉴마티 토 아카다르토 카이 이아사토 톤 파이다 카이 아페도켄 아우톤 토 파트리 아우투

개역개정,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새번역,42 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 ㉧그, ‘더러운’

우리말성경,42 그 아이가 오는 중에도 귀신은 아이의 몸을 바닥에 내던지며 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며 그 아이를 고쳐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영어NIV,42 Even while the boy was coming, the demon threw him to the ground in a convulsion. But Jesus rebuked the evil spirit,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NASB,42 While he was still approaching, the demon slammed him to the ground and threw him into a convulsion. But Jesus rebuked the unclean spirit, and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MSG,42 While he was coming, the demon slammed him to the ground and threw him into convulsions. Jesus stepped in, ordered the vile spirit gone, healed the boy, and handed him back to his father.

영어NRSV,42 While he was coming, the demon dashed him to the ground in convulsions. But Jesus rebuked the unclean spirit, healed the boy, and gave him back to his father.

헬라어신약Stephanos,42 ετι δε προσερχομενου αυτου ερρηξεν αυτον το δαιμονιον και συνεσπαραξεν επετιμησεν δε ο ιησους τω πνευματι τω ακαθαρτω και ιασατο τον παιδα και απεδωκεν αυτον τω πατ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42 et cum accederet elisit illum daemonium et dissipavit

히브리어Modern,42 ויהי אך הקריב לבוא וירעצהו השד וירוצצהו וישוע גער ברוח הטמא וירפא את הנער וישיבהו לאביו׃

성 경: [눅9:4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 ‘올때에’는 문자적으로 ‘아직 저가 오고있는 동안’의 의미로 아직 소년이 예수 앞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이 도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비교, 막 9:20). ‘거꾸러뜨리고'(*, 엘렉센 아우톤)는 전투나 레슬링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타격을 가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아이의 발작이 귀신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귀신이 예수의 사역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 더러운 귀신을…낫게하사 – 귀신의 격렬한 도발 행위는 예수의 꾸짖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멈춰졌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괴롭힘당했던 모든 질병들로부터 치유를 받았다. 한편 마가(막 9:22-24)는 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 줌으로써 신앙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그 부분을 생략하여 예수의 놀라운치유 능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 조금전의 엄한 꾸짖음(41절)과 달리 이번에는 부드러운 사랑과 자비로운 행위로 아이를 아비에게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행위는 7:15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적 성품이 사랑임을 나타내 준다.

엨세플레손토 데 판테스 에피 테 메갈레이오테티 투 데우 판톤 데 다우마존톤 에피 파신 호이스 에포이에이 에이펜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개역개정,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새번역,43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그, ‘위대하심’

우리말성경,43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모두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에 다들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영어NIV,43 And they were all amazed at the greatness of God. While everyone was marveling at all that Jesus did, he said to his disciples,

영어NASB,43 And they were all amazed at the greatness of God. But while everyone was marveling at all that He was doing, He said to His disciples,

영어MSG,43 They all shook their heads in wonder, astonished at God’s greatness, God’s majestic greatness. While they continued to stand around exclaiming over all the things he was doing, Jesus said to his disciples,

영어NRSV,43 And all were astounded at the greatness of God. While everyone was amazed at all that he was doing, he said to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43 εξεπλησσοντο δε παντες επι τη μεγαλειοτητι του θεου παντων δε θαυμαζοντων επι πασιν οις εποιησεν ο ιησους ειπεν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43 et increpavit Iesus spiritum inmundum et sanavit puerum et reddidit illum patri eius

히브리어Modern,43 וישתוממו כלם על גדלת האלהים ויהי בתמהם כלם על כל אשר עשה ויאמר ישוע אל תלמידיו׃

성 경: [눅9:4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심]

󰃨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확인은 예수의 귀신 축사를 통해 분명히 증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사건 속에서 예수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예수의 행위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겪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데스데 휘메이스 에이스 타 오타 휘몬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 가르 휘오스 투 안드로푸 멜레이 파라디도스다이 에이스 케이라스 안드로폰

개역개정,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새번역,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인자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우리말성경,44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유의해 들으라. 인자가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가톨릭성경,44 “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영어NIV,44 “Listen carefully to what I am about to tell you: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men.”

영어NASB,44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for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men.”

영어MSG,44 “Treasure and ponder each of these next words: The Son of Man is about to be betrayed into human hands.”

영어NRSV,44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human hands.”

헬라어신약Stephanos,44 θεσθε υμεις εις τα ωτα υμων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ο γαρ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μελλει παραδιδοσθαι εις χειρας ανθρωπων

라틴어Vulgate,44 stupebant autem omnes in magnitudine Dei omnibusque mirantibus in omnibus quae faciebat dixit ad discipulos suos ponite vos in cordibus vestris sermones istos Filius enim hominis futurum est ut tradatur in manus hominum

히브리어Modern,44 שימו אתם באזניכם את הדברים האלה כי עתיד בן האדם להמסר בידי בני האדם׃

성 경: [눅9:4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번째 예고]

󰃨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 사람들이 예수의 행함을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다시 한번 수난 예고를 하고 있다. 이 수난 예고는 22절에 이어 두번째에 해당하며 여기서는 ‘너희'(*, 휘메이스)가 강조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사람들이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기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든지 제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들’이란 계속 이어지는 ‘수난 예고’를 가리킨다.

󰃨 인자가…넘기우리라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수난 예고는 누가복음 전체에 기록되어 있는 네 번의 수난예고 가운데 두번째 것이다(9:22,44; 18:31-34;22:21-23). 여기서 ‘넘기우다'(*, 파라디도스다이)는 수동태의 표현은 가룟유다에 의한 배반을 예고하며 ‘사람들’은 22절에 언급된 바 있는 산헤드린(Sanhedrin)을 가리킨다. 물론 가룟 유다의 배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었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마태(마 17:23)나, 마가(막 17:31)와 달리 누가는 여기서 ‘부활’에 관해서는 언급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이 데 에그노운 토 레마 투토 카이 엔 파라케칼륌메논 앞 아우톤 힌나 메 아이스돈타이 아우토 카이 에포분토 에로테사이 아우톤 페리 투 레마토스 투투

개역개정,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새번역,45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 뜻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그에게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우리말성경,45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그 뜻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예수께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영어NIV,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this meant. It was hidden from them, so that they did not grasp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it.

영어NASB,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tatement, and it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would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tatement.

영어MSG,45 They didn’t get what he was saying. It was like he was speaking a foreign language and they couldn’t make heads or tails of it. But they were embarrassed to ask him what he meant.

영어NRSV,45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its meaning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45 οι δε ηγνοουν το ρημα τουτο και ην παρακεκαλυμμενον απ αυτων ινα μη αισθωνται αυτο και εφοβουντο ερωτησαι αυτον περι του ρηματος τουτου

라틴어Vulgate,45 at illi ignorabant verbum istud et erat velatum ante eos ut non sentirent illud et timebant interrogare eum de hoc verbo

히브리어Modern,45 והמה לא הבינו את המאמר הזה ונעלם הוא מדעתם וייראו לשאל אתו על המאמר הזה׃

성 경: [눅9:4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번째 예고]

󰃨 알지 못하였나니 – 제자들은 두 번에 걸쳐 주어진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제자들은 첫째, 변화산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變貌)를 목격하고 이어서 귀신 쫓아내는 권능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까닭에, 둘째 수동태의 ‘히나'(*)절에 의해 확인되는 바 제자들의 몰이해 배후에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숨김’에 대한 진술은 본서에만 나오며, 일정한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제자들이 무지한 상태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여기서 누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에로의 길은 ‘부활’ 이후에 그들이 갖게 될 성서적 지식과 부활의 빛에서 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Marshall).

󰃨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에 대해 묻기조차 두려워 하였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23-27절에 기록된 바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스스로 사도로서 사역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에이셀덴 데 디알로기스모스 엔 아우토이스 토 티스 안 에이에 메이존 아우톤

개역개정,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새번역,46 제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우리말성경,46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인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가톨릭성경,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영어NIV,46 An argument started among the disciples as to which of them would be the greatest.

영어NASB,46 An argument started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might be the greatest.

영어MSG,46 They started arguing over which of them would be most famous.

영어NRSV,46 An argument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ne of them was the greatest.

헬라어신약Stephanos,46 εισηλθεν δε διαλογισμος εν αυτοις το τις αν ειη μειζ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46 intravit autem cogitatio in eos quis eorum maior esset

히브리어Modern,46 ויעל על לבבם לחשוב מי הוא הגדול בהם׃

성 경: [눅9:4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누가 크냐 – 마가복음에서(막 9:33)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路中)에 논쟁을 벌였으며 가버나움에 이르러 예수의 추궁이 있었다. 누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문제의 쟁점만을 취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것이었다(마 18:1). 여기서 변론(*, 디알로기스모스)은 ‘논쟁’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을 시사한다. 불과 일주일 쯤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 부인을 가르치셨고(23,24절), 조금 전에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수난을 제차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44절)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결국 메시야가 일으켜 세울 왕국에서 누가 높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때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아(ego)를 버리지 못하고지위나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제자들로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 데 예수스 에이도스 톤 디알로기스몬 테스 카르디아스 아우톤 에필라보메노스 파이디온 에스테센 아우토 파르 헤아우토

개역개정,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새번역,47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우리말성경,47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아시고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곁에 세우며

가톨릭성경,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영어NIV,47 Jesus, knowing their thoughts, took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beside him.

영어NASB,47 But Jesus, knowing what they were thinking in their heart, took a child and stood him by His side,

영어MSG,47 When Jesus realized how much this mattered to them, he brought a child to his side.

영어NRSV,47 But Jesus, aware of their inner thoughts, took a little child and put it by his side,

헬라어신약Stephanos,47 ο δε ιησους ιδων τον διαλογισμον της καρδιας αυτων επιλαβομενος παιδιου εστησεν αυτο παρ εαυτω

라틴어Vulgate,47 at Iesus videns cogitationes cordis illorum adprehendens puerum statuit eum secus se

히브리어Modern,47 וירא ישוע את מחשבת לבם ויקח ילד ויעמידהו אצלו׃

성 경: [눅9:4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예수께서…아시고 – 제자들은 예수 몰래 자기들 끼리 논쟁을 벌였으나 예수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다툼을 이미 알고 계셨다.

󰃨 어린아이 하나를…세우시고 – 누가는 마태나(마 18:3,4), 마가(막 9:35)가 기록하고 있는 ‘큰 자’에 대한 결론적 서언을 생략한 채 바로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스 에안 뎈세타이 투토 토 파이디온 에피 토 오노마티 무 에메 데케타이 카이 호스 안 에메 뎈세타이 데케타이 톤 아포스테일란타 메 호 가르 미크로테로스 엔 파신 휘민 휘파르콘 후토스 에스틴 메가스

개역개정,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새번역,48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우리말성경,48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가톨릭성경,48 그들에게 이르셨다. “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영어NIV,48 Then he said to them, “Whoever welcomes this little child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welcomes the one who sent me. For he who is least among you all–he is the greatest.”

영어NASB,48 and said to them, “Whoever receives this child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for the one who is least among all of you, this is the one who is great.”

영어MSG,48 “Whoever accepts this child as if the child were me, accepts me,” he said. “And whoever accepts me, accepts the One who sent me. You become great by accepting, not asserting. Your spirit, not your size, makes the difference.”

영어NRSV,48 and said to them, “Whoever welcomes this child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welcomes the one who sent me; for the least among all of you is the greatest.”

헬라어신약Stephanos,48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ος εαν δεξηται τουτο το παιδιον επι τω ονοματι μου εμε δεχεται και ος εαν εμε δεξηται δεχεται τον αποστειλαντα με ο γαρ μικροτερος εν πασιν υμιν υπαρχων ουτος εσται μεγας

라틴어Vulgate,48 et ait illis quicumque susceperit puerum istum in nomine meo me recipit et quicumque me recipit recipit eum qui me misit nam qui minor est inter omnes vos hic maior est

히브리어Modern,48 ויאמר אליהם כל אשר יקבל את הילד הזה לשמי אותי הוא מקבל וכל אשר יקבל אותי הוא מקבל את אשר שלחני כי הקטן בכלכם הוא יהיה הגדול׃

성 경: [눅9:4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내 이름으로…영접함이요 – 예수께서 제자들의 사고 방식을 교정시켜 주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교훈을 베푸신다. 먼저 ‘내 이름으로’ 행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명예나 지위가 예수께 완전히 종속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모든 제자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 앞에 따로 드러날 수 없으며 모든 영광이 예수의 이름에 돌려져야 함을 뜻한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은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한편 마가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고 하여(막9:37) 어린이 일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누가는 ‘이 어린아이’라고 하여 바로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 나를 영접하면…영접함이라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 논리는 성도들의 대인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허물과 죄로 가득한 인생들을 자연 모습대로 대할 때에는 누구나 환멸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주님의 피로 새로 태어난 생명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 – 작은 자가 큰 자라는 역설적 진리는 23-25절에서 말씀하신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역설적 진리와 갖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행위의 대가로 지위나 명예를 얻어 보려는 욕망을 버린 사람이다. 한편 본문에서 ‘가장 낮은 자’와 대비되는 개념을 ‘가장 큰 자’가 아니라 단순히 ‘큰 자’라고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데는 비교 우위의 개념이 적용되지만 높아지는 데에는 비교 우위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요안네스 에이펜 에피스타타 에이도멘 티나 엔 토 오노마티 수 에크발론타 다이모니아 카이 에콜뤼오멘 아우톤 호티 우크 아콜루데이 멛 헤몬

개역개정,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새번역,49 요한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우리말성경,49 요한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못하게 막았습니다.”

가톨릭성경,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영어NIV,49 “Master,” said John, “we saw a man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stop him, because he is not one of us.”

영어NASB,49 John answered and said,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prevent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along with us.”

영어MSG,49 John spoke up, “Master, we saw a man using your name to expel demons and we stopped him because he wasn’t of our group.”

영어NRSV,49 John answered, “Master, we saw someone cast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stop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with us.”

헬라어신약Stephanos,49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ιωαννης ειπεν επιστατα ειδομεν τινα επι τω ονοματι σου εκβαλλοντα τα δαιμονια και εκωλυσαμεν αυτον οτι ουκ ακολουθει μεθ ημων

라틴어Vulgate,49 respondens autem Iohannes dixit praeceptor vidimus quendam in nomine tuo eicientem daemonia et prohibuimus eum quia non sequitur nobiscum

히브리어Modern,49 ויען יוחנן ויאמר מורה ראינו איש מגרש שדים בשמך ונכלא אותו יען איננו הולך עמנו׃

성 경: [눅9:4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하였다. 여기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자격을 가졌다는 자의식(自意識)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1, 2) 아울러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들의 실패에 대한(40절)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톤 호 예수스 메 콜뤼에테 호스 가르 우크 에스틴 칻 휘몬 휘페르 휘몬 에스틴

개역개정,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성경,5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막지 마라. 누구든지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위하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영어NIV,50 “Do not stop him,” Jesus said,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영어NASB,50 But Jesus said to him, “Do not hinder him; for he who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영어MSG,50 Jesus said, “Don’t stop him. If he’s not an enemy, he’s an ally.”

영어NRSV,50 But Jesus said to him, “Do not stop him; for whoever is not against you is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50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ν ο ιησους μη κωλυετε ος γαρ ουκ εστιν καθ ημων υπερ ημων εστιν

라틴어Vulgate,50 et ait ad illum Iesus nolite prohibere qui enim non est adversum vos pro vobis est

히브리어Modern,50 ויאמר ישוע אליו אל תכלאו כי כל אשר איננו נגדנו בעדנו הוא׃

성 경: [눅9:5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제자들의 욕망과 포용에 대한 교훈]

󰃨 금하지 말라…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匿名)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6, 42절)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에게네토 데 엔 토 쉼플레루스다이 타스 헤메라스 테스 아날렘프세오스 아우투 카이 아우토스 토 프로소폰 에스테리센 투 포류에스다이 에이스 예루살렘

개역개정,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새번역,51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우리말성경,51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영어NIV,51 As the time approached for him to be taken up to heaven, Jesus resolutely set out for Jerusalem.

영어NASB,51 When the days were approaching for His ascension, He was determined to go to Jerusalem;

영어MSG,51 When it came close to the time for his Ascension, he gathered up his courage and steeled himself for the journey to Jerusalem.

영어NRSV,51 When the days drew near for him to be taken up,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51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συμπληρουσθαι τας ημερας της αναληψεως αυτου και αυτος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εστηριξεν του πορευεσθαι εις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51 factum est autem dum conplerentur dies adsumptionis eius et ipse faciem suam firmavit ut iret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51 ויהי כמלאת ימי העלותו והוא שם את פניו ללכת ירושלים׃

성 경: [눅9:5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

󰃨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 여기서 ‘승천'(*, 아날렘프세오스)은 ‘위로’를 뜻하는 ‘아나'(*)와 ‘올리다’의 의미를 갖는 ‘렙시스'(*)의 합성어로 ‘들어 올라감’이란 뜻이다(24:51). 여기서는 ‘죽음'(31절) 대신 ‘승천’이 언급됨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이라는 영광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차가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플레로오'(*)는 본래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승천을 성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런 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었음과 예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심을 분명히 밝혀준다.

󰃨 예루살렘을…굳게 결심하시고 – 갈릴리로부터 예수의 최종 종착지인 예루살렘에로의 대전환이 언급되고 있다. 승천은 곧 수난과 죽음을 전제한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그일이 일어날 장소인 예루살렘에로의 행로를 굳은 결심으로 시작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귀는 ‘…로 얼굴을 향하다’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음을 향한 결단을 하신 것이다(22:42;요 10:11).

카이 아페스테일렌 앙겔루스 프로 프로소푸 아우투 카이 포류덴테스 에이셀돈 에이스 코멘 사마리톤 호스 헤토이마사이 아우토

개역개정,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새번역,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이 길을 떠나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우리말성경,52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미리 앞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가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가톨릭성경,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영어NIV,52 And he sent messengers on ahead, who went into a Samaritan village to get things ready for him;

영어NASB,52 and He sent messengers on ahead of Him, and they went and entered a village of the Samaritans to make arrangements for Him.

영어MSG,52 He sent messengers on ahead. They came to a Samaritan village to make arrang

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09장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 이 말은 8:38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즉 원문에 보면 등위 접속사 카이 가 있어서 앞절에 언급한 내용과 대등한 내용이 전개될 것을 시사해 준다. 사실 내용상으로 볼 때 8:38 과 본절의 내용이 서로 비슷하여 이 두 절이 자연 스럽게 연결된다. 그래서 본절을 8:28 – 38의 구조 속에 포함하여 이해 하는 것이 적걸하다.

==================9:2

엿새 후에 – 평행 본문 마 17:1과 함께 구체적인 날짜가 제시되는데 눅 9:28에서는 8일 쯤 이라고 약간 부정확한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이는 수치에 있어 정확치 못하고 대체로 조금 느슨한 유대인들의 표현법에 근거한 것이라 본다.

=================9:3

그 옷이 관채가 . . . 희어졌더라 – 마가는 예수의 옷이 광채가 날 정도로 희어졌다고 하는데 비해마태는 예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같이 희어졌다고 묘사 하면서 얼굴과 옷이 동시에 변화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9:4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 예수의 변형과 함께 구약성경의 두인물이 나타난다. 마태와 누가는 모세 와 엘리야 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본문의 엘리야 와 모세 라는 순서 보다 더 자연스런 표현일 것이다.

==================9:5

예수께 고하되 – 베드로가 예수에게 신비적 장면에 대한 즉각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고하되 는 헬라어 아포그리데이스 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대답하다 , 응답하다 으 뜻을 가진 아포크리노마이 의 제1 과거 수동형이다. 따라서 베드로의 행동은 주체적인 것이라기 보다 베드로가 목격한 변화된 예수와 엘리야와 모세의 모습에 의한 수동적 반응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9: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 하므로 – 본문은 베드로의 어리석은 간청(5절)을 변호하는 표현으로서, 마가가 베드로에게 매우 사려깊게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마가는 당시 베드로를 위시한 세 제자 모두 신적 현현 앞에 압도된 채 심한 공포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했으리라는 암시를 제공한다.

==================9:7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 여기서는 산상 변형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이 묘사되고 있다. 구름이 모려왔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엄숙한 장면을 나타내 준다.

==================9:8

문득 둘러보니 –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마17:6) 이때 제자들은 공포에 휩싸여 땅에 엎드려 있었는데 예수께서 손을 대시어 그들을 일으키셨다고 한다. 그 순간 제자들이 고개를 들고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이러한 순간 동작은 생동감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는 마가의 표현 기법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9:9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 . 이르지 말라 – 산에서 내려오며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적 사건 이후에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산 위에서 보았던 신비적 체험에 대해 비밀로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제자들이 침묵을 지시하는 예수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제자들을 예수가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진의를 알 수 없었다. 즉 예수 자신이 다시 부활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이는 일반적인 부활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이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9:11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 제자들은 인자의 부활에 관해 상당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나(10절)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예수께 직접 묻지 못하고 대신 엘리야와 관계되는 일반적인 종말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당시 서기관들이 가르쳤던 종말론의 내용인 말 3:1과 4:5, 6에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되어있다.

===================9:12

머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 예수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동의를 하고 있다. 예수가 말하고 있는 회복하다 란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로잡는 것을 뜻한다.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 예수께서는 당신의 절대적인 권위로 엘리야에 관한 당신의 판단을 피력하시고자 하셨다. 실로 엘리야에 관한 예수의 진술은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엘리야 왔으되 – 예수는 이미 앨리야가 왔었다고 말하는데 마태는 본 장면에서(마17:13)제자들이 엘리야를 세례요한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예수께서 메시야의 고난을 엘리야의 종말적 사역과 직접 관련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12, 13절에 제시된 예수의 말씀은 엘리야가 인자(메시야)보다 먼저 와서 그의 종마론적 사역을 완수할지라도 인자는 고난받고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해 주고 있다. .

===================9: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 여기서 이에 는 접속사 카이 를 번역한 것으로, 바로 앞의 산상변화 사건과 계속 연결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지금부터 전개되는 이야기와 앞절과의 시간적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본 장면에 관해 변화산 사건 이튿날 이라고 밝히고 산으로부터 내려 왔다는 사실도 언굽하고 있는 누가의 보고에 의하면(눅9:37)본문은 산상 변화 사건과 그렇게 큰 시간 차이가 없이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9:15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 . 문안하거늘 – 군중들 속에 나타나는 예수의 모습을 마가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현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의 출현에 모든 군중이 놀라와 한 이유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 이 본문 역시 마태와 누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가는 같은 묘사를 하면서 누구에게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다만 그 물음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논쟁을 벌리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논쟁을 벌리는 사람들이 제자들과 서기관들이었다면(14절) 예수는 상식적으로 제자들을 향해 질문을 했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을. . . 변론 하느냐 – 제자들은 서기관들의 빗발치는 비난과 야유에 대해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같은 무기력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복음의 권위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자들과 더불어 언쟁을 하는것은 그것이 적극적 측면에서든 소극적 측면에서든 간에 헛된 일일 뿐이다(딛3:9). 진정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을 따름이다(고전4:20).

===================9:17

무리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 예수의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하는자가 없었다. 아마도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의 질문에 대답할

아무런 책임을 못느꼈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제자들은 지금껏 다투어온 언쟁 과정을 예수께 소상히 보고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영적 무기력과 무능력을 폭로 하는 것이었기에 침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침묵의 정황을 깨고 나선것은 바로 무리 중 가장 답답한 지경에 놓인 아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무리를 헤집고 달려나와 숨김없이 그간의 되어진 일을 설명하게 된다.

====================9:18

귀신이 어디서 든지. . . 파리하여 가는지라 – 그 아비는 자기 아들에게 대한 귀신의 만행을 그 아이를 사로잡아 넘어뜨리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의설명을 비추어 볼때 그 아이는 분명 간질병 질환에 고통당하고 있었다. 특히 그 각 증세를 살펴 보면 거꾸러져 란 부셔버리다 , 소리지르다 , 잡아 찢다 등의 뜻에서 파생된 말로서 괴성을 동반한 심한 경련과 뒤틀림을 의미한다.

====================9:19

믿음이 없는 세대여 – 제자들이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말에 대한 예수의 반응은 믿음 없음에대한 탄식이다. 여기서 믿음이 없다 는 말은 단순히 믿음이 약한 상태를 일컫는다. 그리고 세대 란 족속 자손 , 동시대 사람들 등의 다양한 의미가 들어 있다.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책망하신 대상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9:20

귀신이 예수를 보고. . .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 여기서도 역시 귀신은 1:24;5:7에서와 같이 예수가 자신을 정복하고 추방 시킬 분으로 알아차리고 환자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한다. 이 같은 묘사는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그 원인 자인 악령의 실체를 규명해 주고 있다.

====================9:21

언제부터. . . 어릴 때부터 – 이 같은 표현은 환자의 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매우 심각한 것이라는 점과 환자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다. 한편 그 아버지의 대답은 어릴 때부터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태어날 때 부터는 아니지만 그 아이의 지각이 발달하기 시작할 때부터, 즉 그의 지금까지의 생애 동안 계속되어 온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9:22

귀신이 죽이려고. . . 자주 던졌나이다 – 귀신의 본질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한 인간의 영. 육을 죽이려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귀신이 한 아이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하여 그를 물과 불에 몰아넣어 파멸시키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마가가 언급한 물 은 복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아마도 물 이 연못이나 시내 등을 가리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주 란 말은 그 아이에 대한 귀신의 악한 영향력이 한 두 번에 그친것이 아니라 빈번히 지속되었음을 암시한다.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 이는 22절의 아비의 말 곧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을 받는 말로서, 그 아비가 강조한 . . . 있거든 이라는 표현에 특별한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서 믿음의 결핍을 예리하게 꼬집고 있다. 믿는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22절에서 아버지가 간청한 말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구절인데 환자의 아버지는 예수의 능력을 의지하여 예수께 할 수 있다면 해 달라고 요청 했지만 예수는 전혀 반대로 예수 자신의 능력의 유무와는 별개로 환자 아버지의 예수께 대한 신뢰와 그 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 치병이 달려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로 믿음은 병 고침을 받는데 필요한 조건이라기보다는 믿음 자체가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하는 능동적인 힘인 것이다.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 사건의 긴박성과 생동감을 더해 주는 곧 이란 부사로써 본문이 시작되고 있다(1:10). 시로 그 아비는 예수의 믿음 없음에 대한 질책을 듣자마자 그 즉시 격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여기서 소리를 질러 는 제 1 과거 분사 형태를 취하고 있어 그 외침은 마치 반항의 고함처럼 크고도 계속적으로 터져나왔음을 암시한다.

====================9:25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 이 구절은 15절의 내용과 모순되고 있는데 15절에서는 이미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에게로 달려나와 문안한 것으로 묘사된 반면 어기서 또다시 무리들이 달려온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서로 모순이 되는 듯이 보인다. 여기서 모인 무리들은 15절에서 보여진 무리들과 함께 새로 모여든 또다른 무리들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9:26

귀신이 . . . 죽었다 하나 – 이 장면은 마가만이 언급하고 있는데 귀신이 그아이에게서 쫓겨나기 직전 최후 발악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귀신이 소리 질렀다는 표현은 구신이 도망치며 지르는 비명소리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같은 귀신의 행동 때문에 환자는 크나큰 충격을 받아 다시 발작을 하였으며 마침내 죽은 듯이 기진맥진하여 누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환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치료된것은 다른 치병 기적과 독특하게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다.

====================9:27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기진맥진한 환자를 예수가 직접 손을 잡아 일으키는 장면은 19절에서 묘사된 바 있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라는 말과 같이 예수의 깊은 동정심과 연대 의식이 넘치는 사랑과 권능에 찬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사실은 문맥상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9:28

우리는 어찌하여. . .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이야기는 군중들과 헤어져 예수와 제자들만 한적한 곳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말해 주는 것인데, 본서에는 이와 같은 활동 후 집으로 들어가 제자들에게 보충 설명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난다(4:10; 10:10;1:17은 집이 아니라 한적한 곳).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단호하고 분명한 것이었다. 즉 기도 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란 어떤 초능력적 힘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게를 이루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촉구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9:30

그 곳을 떠나 가릴리 가운데로 – 여기서 말하는 그곳 이 어딘지 밝힐 수 있는 단서는 없지만 앞절과 무리없이 이야기가 연결된다면 산상 변화 사건과 그 산 아래에서의 치병 기적이 일어난 그 사건 현장으로부터 떠나 갈릴리 지역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 이 문장은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 가르 로 연결되는데, 앞절에서 언급된 이야기, 즉 아무에게도 자신의 여행을 알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즉 그것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동안 이 일에 거의 전념하시게 된다.

==================9:32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가는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언급하는데, 평행 본문 마 17:23에서는 제자들이 근심 했다고 말하며, 눅 9:45 에서는 예수가 일부러 어렵게 말하여 제자들이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무튼 마가의 표현은 제자들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왜냐하면 마가는 기회있을 때마다 제자들의 무지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10절; 4:13; 8:17 – 21등).

====================9:33

가버나움에 이르 집에 계실새 – 예수의 일행이 가버나움의 어떤 집에 들어가 후식을 취하셨는데, 30절에서 언급한 갈릴리 지역의 동쪽 호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가버나움은 베드로의 동리로서(1:21; 2:1), 머문 집은 베드로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는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을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들러보고 싶었을 것이 틀림 없다.

=====================9:34

저희가 잠잠하니 – 잠잠하니 란 말 역시 미완료 시제를 취하고 있어 계속적인 침묵을 넌지시 보여 주고 있다. 실로 예수의 질문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알아보기 위함이라기보다 그들 내부에 깃든 어리석고 추악한 욕망을 여실히 파헤치고 지적하신 것이었기에 제자들은 당황과 수치로 뒤덤벅이된 채 침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누가 더 높은자인가 하는 논쟁은 제자들 사이에서 서열 문제가 분명하게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본다.

=====================9:35

예수께서 앉으사 – 이런 자세는 유대교의 랍비가 흔히 취했던 것으로(마13:1;눅5:3; 요8:2), 이때 예수께서는 양쪽다리를 주욱 뻗으시고 앉으셨을 것이다.

=====================9:36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 에수 자신의 가르침을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 으로 어린이를 통헤 가르치고 있다, 어린아이는 당시 헬라적 무화권내에서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이해됐고 유대 문화권 내에서도 어린아이를 방자하고 무분별하며 엄격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요, 전쟁이나 노역에 별가치가 없는 신분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마가는 어린아이를 상징적으로 가장 낮은 자로 이해했고 더욱이 낮고 작은 자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섬김의 모델로서 어린아이를 내세운 것은, 그 시대에 그들이 가장 낮은 자로 평가 되었기 때문이다.

======================9:37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난를 영접하면 – 예수는 가장 낮고 천하며 약한자로 상징되는 어린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를 대하는 일이 곧 예수를 대하는 일이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과 가장 낮은 자를 동일시한 이야기는 마25:31 – 46에도 나오는데, 굶주리고 옥에 갇히고 헐벗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가장 낮은 자에게는 마치 예수를 대하듯이 하라는 말이 되는데, 내 이름으로 라는 말이 그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이 요한의 질문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요한의 질문은 앞에서 언급한 섬김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나타낸 반응으로 보인다. 즉 내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 를 영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이다. 요한이 우리 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 상황 에서 그가 모든 제자들을 대표해서 말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39

금하지 말라 – 예수의 대답이 간결하고 분명하게 언급되는데, 한 마디로 금하지 말라 는 것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 사람을 방해하는 일을 중단하라 는 뜻이 된다. 즉 그가 비록 너희제자 집단에 소속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의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행위를 막지 말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사람은 예수의 치병기적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그리고 제자들의 치병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거나 직접 보았기 때문에 모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자 – 예수께서 막지 말라 명령하신 두번째 근거는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것으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요 언젠가는 우리의편이 된다는 사실이다.

======================9:41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 본절은 39, 40절에 언급된 관용의 정신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물론 본절은, 40절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40절은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같은 편이라는 소극적인 언급인 반면 여기서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이유로 물 한그릇을 대접한 사람은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로서 동조자라고 할 수 있다.

=======================9:42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 이 말은 우선 37절의 어린아이를 통한 교훈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된 소자 는 분명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연약하여 쉽게 깨어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 세상에서 천시와 멸시를 받는 자, 무엇하나 떳떳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는 자(고전1:28)등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본문에서 언급한 나를 믿는 이라는 단서 조항은 지금 예수 공동체에 속해 있거나, 또는 잠재적으로 예수를 믿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신앙공동체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문구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본문은 38절에서 요한에 의해서 언급된 질문을 연관시켜 생각할 수도 있다.

=======================9:43-48

여기서 부터는 42절에서 언급한 실족케 하는자의 징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좀더 발전적으로 생명, 곧 영원하면 서도 종말론적인 생명에 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죄를 제하기 위해서는 철두 철미한 수단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본절의 표현 방법과 그에 부과된 의미와, 또 예수께서 본문의 말씀을 하신 본질적인 의도 등에 대하여 대략 일곱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겠다. 1) 이야기의 형태는 사람의 신체 중 제일 민감한 감각 기관인 손 과 발 그리고 눈 을 들어 사람의 범죄와 연결시키고 있다. 2) 이야기의 전개는 3단계로 진행되는데, 범죄 – 찍어버림 – 영생의길을 말하고있다. 다시 말하면 손이 범죄하면 손을 찍어버리고, 발이 범죄하면 발을 찍어버리며, 눈이 범죄하면 눈을 빼버려야 하는 것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다. 3) 여기서 크게두가지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범죄 요인이 되는 손, 발, 눈을 제거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길이다. 즉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생을 얻는 다는 말이 된다. 4) 여기서 말하는 영생이란 영원한 이라는 형용사 아이온 없이 단순한 조엔 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직역하면 생명이된다. 물론 이 조엔 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 을 뜻하는 프쉬케 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관된 영원한 특성을 지닌 초월적인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은 옳다고 생각된다. 5)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리는 형벌로 지옥 이 등장하는데, 이와 같은 지옥의 개념은 당시 사람들에게 보편화된 개념이다. 6) 44절과 46절이 생략되었는데, 여러 후기 사본(알렉산드리아, 모스코, 베자 사본 및 벌게잇 역 등)에는 이 두 절이 각각 48절의 내용과 동일한 문구로 연결되어 있었다. 7)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형벌과 심판이 중심을 차지한 듯 하지만 사실상 강조점은 사람의현재적 행동 윤리에 관심하는 것이다. 즉 저세상에 가서 편안하게살기 위한 도피적 암시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한 철저한 자기 책임성과 윤리적 철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신채의 일부에 대한 잔혹스러운 표현, 즉 잘라버리고 빼어버리라는 말은 육체에 대한 무가치 또는 문자적 측면에서의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회개의 철저성과 전인격의 경건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9:49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 본절과 50절은 본서 가운데 가장 난해한 구절 중 하나로 취급되며, 그런 까닭에 그 해석들도 구구하다. 그 해석들을 살펴보면 1)헬라어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아니한 가르 라는 접속사가 들어 있어 48절과 본절을 자연스레 연결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불을 앞절에서 언급된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2) 재물에 뿌리는 소금을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의 상징으로 보는 방법이다(민18:19) 3)여기서의 불을 예수의 제자들이 겪는 시련과 박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방법이다. 이상과 같은 세가지의 견해는 그 모두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점에서 취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48절과 연결성을 고려한다면 1)의 견해를 가장 타당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 이 마지막 절은 39 – 49절까지의 내용을 함축시켜, 격언구 형식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즉 이제까지의 가르침에 대한 의도와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금은 사람에게 참 좋은 것이고 사람의 삶에 있어서 참맛을 내기 위해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소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소금은 33- 42절까지의 내용을 생각해 볼때 어린아이와 같은 작고 미미한 사람을 섬기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섬김을 위한 자기 회생, 겸손, 사랑,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김, 절제와 경건등으로 나타나는 삶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50절이 갖는 전체적 의미는 49절에서처럼 심판의 때에 불로 소금 치듯 당하지 않으려면 평소의 삶속에서 희생과 겸손 사랑의 소금을 치라는 것이다.

전장에서는 예수께서 최초로 메시야 신분 및 그 사역의 본질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제 본장에서는 전장에서 계시된 내용이 더욱 구체적이고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첫번째와 두번째 수난 예고 사이에 변화산 사건이 수록되어 있는 점이나 수난 예고가 먼저 있은 연후에 변화산 사건이 등장하는 순서의 의미 등의 문맥상의 유의 사항은 마태복음 평행 부분(17장)의 강해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므로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본장의 중심 주제를 다음 두 가지의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상고해 보기로 하자.

(1) 예수의 수난과 영광. 본장의 내용은 세 문단으로 나누어지며(1-13;14-32;33-50절). 이 가운데 첫번째와 두번째 문단은 각기 예수의 영광과 수난을 시사하는 두개의 소단락으로 구분될 수 있다. 즉, 1-8절은 베드로에 의해 고백되어진 바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보여 주는 반면에, 9-13절은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인 십자가 수난을 재차 예고하는 내용이다. 또한 14-29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영광스러운 권능이 소개되는 반면, 30-32절에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 감당해야 할 수난이 다시금 예고된다. 마가가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광과 수난에 관한 내용을 거듭 교차시킨 것은 첫째로, 앞장에서 계시된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의 본질을 보다 확실히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며,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고난에 함축된 역설적 진리를 강조하여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2) 제자 훈련. 공생애를 결산하는 시점에 이르러 예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시행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본장에 수록된 사건들이 결론적 교훈 및 경계 부분인 세번째 문단(33-50절)은 물론이고 본장 전체는 예수의 제자화 훈련에 대한 의지를 뚜렷이 보여 준다. 하지만 당시 제자들은 주님의 의도와는 달리 당신의 이루고자 하신 일을 도무지 깨닫지 못했다(32절). 아마 그들은 예수의 변화된 일련의 태도와 행동들을 통해, 그들이 기대해왔던 시기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던 것 같다. 메시야로서의 자기 계시와 영광스러운 변화산 사건 이후에는 항상 예수의 수난 예고가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의 영광과 관련된 사실에만 집착하고 수난에 관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거나 의아해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예수께서 이적적 권능을 행사하사 정치적 메시야로 등장하리라는 기대에만 부푼 나머지, 정치적이고 지상적인 메시야 왕국이 도래했을 때를 전제한 자리 다툼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34절). 그들의 관심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보다는 세상에로 집중되어 있었고 십자가 고통없이 면류관만 바라고 있었으므로, 예수의 영광과 수난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역설적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제반 이유들로 말미암아 예수께서는 집중적인 제자 훈련을 시행하셨다.

1. 변화산 사건(9:1-13)

본문은 예수께서 당신의 메시야직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신지 엿새 후에 세 제자 앞에서 영광스러운 형태로 변모하신 내용이다. 이 변모(Transfiguration) 사건은 성육신(Incarnation), 십자가 수난(Crucifixion), 부활(Resurrection) 및 승천(Ascension)과 더불어 예수 생애의 5대 사건에 해당하며, 공관 복음서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마 17:1-13;눅 9:28-36). 마 17:1-13 강해에서는 변화산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순서별로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이 사건의 목적 혹은 의의를 상고하는 데에 그치기로 하자.

(1) 메시야되신 예수를 증거함.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에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선포받음 바 있거니와(1:11), 이제 공생애의 마감 시기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하늘의 인정을 받고 있다(7절). 뿐만 아니라 본문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4절), 이는 곧,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이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함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예시하고 있기도 하다(골 3:4). 비록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를 증거하는 본문은 8:29에 언급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한 확증이기도 하다.

(2) 제자들을 위한 위로와 교훈. 본문은 또한 예수의 제자 훈련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향후 예수의 행동이나 메시지는 고난과 희생이라는 주제에로 더욱 집중될 것이었으며, 영적 무지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이 주제가 감당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특히 불과 며칠 전에 예수는 자신의 수난을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예고하셨거니와(8:31), 이 예고를들은 제자들은 한편으로 의아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안에 사로잡혔음직하다. 따라서 예수는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제자들의 불안과 동요를 가라앉힐 뿐만 아니라 그들로 장차 당신의 영광을 널리 증거하게끔 훈련시키고자 하셨다고 볼 수 있다.

제자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본문을 상고할 때, 우리는 예수의 거시안적(巨視眼的) 계획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광경을 보고서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곤경과 궁핍에 허덕이는 산 아래의 무리들(14절 ff. )을 도외시한 채 영광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또한 예수를 모세나 엘리야와 동등한 위상(位相)에 두었다(5절). 이처럼 당시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실로 보잘 것 없었지만, 이 모든 체험들이 장래에는 그들을 교회의 지도자로서 봉사하게 하는 데에 큰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2. 귀신 축사(逐邪)와 두번째 수난 예고(9:14-32)

본문은 변화산 사건 직후에 예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시고 이어 수난을 예고하신 사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8장에 수록된 메시야의 자기 공개가 예수의 공생애에 있어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는 사건이었음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전환점이란 측면에서 본문의 치유 기사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또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후 처음으로 복음 사역을 개시하신 사실에 비견될 수 있다(1:14, 15).

이 사건은 공관 복음서에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마 17:14-20;눅 9:37;43b), 그 중에서 본서의 설명이 가장 상세하다. 마태는 이 사건을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제자들의 불신 상태를 지적하려는 의도를 강력히 시사한다. 따라서 마 1:14-21의 강해에서는 이 ‘믿음’의 문제에다 초점을 맞추어 믿음의 보존과 진보 및 믿음의 본질과 능력 등을 상고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본문을 통해 뚜렷이 부각되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사항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예수의 두번째 수난 예고(30-32절)에 관한 강해는 본서에 수록된 예수의 세 차례의 수난 예고를 비교하는 주제 강해로 대신하고자 한다.

(1) 변화산 위와 산 아래. 라파엘로(Raffaello Santi, 1483-1520)라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 중에는 변화산상의 영광스러운 광경과 산 아래의 참경(慘景)을 선명히 대조시킨 것이 있다. 이 그림에서 보여 주듯이 제자들은 영광의 광경을 목격하고 흥분과 환희에 도취되어 예수께서 감당하셔야 할 사역과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을 잊은듯이 보인다. 그러나 예수는 당신의 영광 가운데 계속 함께 머무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 오셨다. 주님은 변화산상에 계시면서도 자신이 필히 완수해야 할 고난받는 종의 사명과,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의 영육간의 궁핍함을 채우고자 하는 봉사의 삶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변화산의 위와 아래의 대조적인 두 광경은 어거스틴(Augustine)의 말한 바 두 도성을 연상시킨다. 즉, 성도들이 위로는 영화롭고 이상적인 신천 신지(新天新地)에 대한 비전을 바라 보지만, 아래로는 온갖 부조리와 비극이 더불어 존재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이 두 세계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야말로 신앙 생활의 큰 관건 중의 하나라 하겠다. 인간 상호간의 모든 수평적 관계를 건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에 충실해야 함이 당연하다. 따라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내밀하고도 깊이 있는 영교(靈交)의 시간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현실을 도외시하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에만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 바른 신앙 자세가 아니다. 묵상에서 실제적 활동(praxis)으로, 서재에서 구체적 삶의 터 (field)로, 밀실에서 가두(街頭)로 그리고 주님과의 내밀한 영교에서 사단과의 전투로 나아가는 신앙이어야말로 올바르고 생명력 있는 신앙이라 하겠다.

(2) 예수의 권능과 제자들을 불신. 또한 본문에서는 귀신을 제어하는 예수의 권능과 믿음이 없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기력함이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의 권능을 수(數)없이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그 크신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마 21:22;요 14: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잠시 예수와 떨어져 있는 사이에 믿음을 상실하고만 듯하다. 이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하는 이 긴박한 시점에 이르러, 예수의 제자들은 잠시 예수와 떨어져 있는 사이에 이르러, 예수의 제자 훈련이 집중적으로 강화되어갔음은 물론이거니와 제자들은 영적 무지와 불신에 대한 예수의 안타까움과 책망도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41절).

불신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권능을 상실해 버린 이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사단은 고통스러운 역경이나 달콤한 유혹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성도들을 은혜의 보좌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한다. 따라서 늘 기도에 힘쓰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에만 저러한 사단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다(고전 15:58;빌 4:8;딤전 4:7, 8;벧전 3:11).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영혼의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그리고 이들의 멸망을 방관하는 자는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 책임을 반드시 추궁받을 것이다.

* 세 차례 수난 예고의 비교.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수난당하시리라는 예고는 공생애 초기부터 당신의 여러 말씀들 속에 암시되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수난을 예고하신 때는 메시야로서의 자기 공개 이후이다. 예수의 사역 면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이후로부터 당신의 십자가 수난을 집중적으로 예고 하심으로써, 예수는 메시야직의 본질적 의미를 확실히 표명함과 아울러 제자들도 고난과 희생에 내포된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당신의 뒤를 좇게끔 교육하고자 원하셨다. 세 차례에 걸친 예수의 공개적 수난 예고는 공관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각 수난 예고의 시기는 메시야의 자기 공개 직후(8:31-9:1;마 16:21-28;눅 9:22, 23), 변화산 사건 직후(9:30-32;마 17:22;눅 9:43b-45)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무렵(10:32-34;마 20:17-19;눅 18:31-34)등이다. 그리고 공관 복음서 기자들 중 유독 마태만이 마 26:1-5에서 수난 예고를 한 차례 더 수록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친 공개적 수난 예고를 비교해 보면. 점차적으로 그 수난 과정과 수난 상황이 구체화 되어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예고에는 한결같이 예수의 부활이 동시에 언급됨으로써, 주께서 잠시 고난을 당하나 마침내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스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종국적 승리가 제시되어 있다.

(1) 첫번째 예고는 수난의 전반적 측면 곧, 수난당하실 장소, 핍박의 주동 세력,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등을 예시하며, 예수의 고난에 제자들도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2) 두번째 예고는 예수께서 체포당하실 것을 묘사한다.

(3) 세번째 예고는 예수의 수난 장면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즉 예수께서 희롱과 능욕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되는 과정들을 생생하게 예언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 앞에 놓인 고난의 쓴 잔을 너무도 명백히 알고 있었지만, 그 잔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고 묵묵히 감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고자 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자발적이고도 완벽한 순종을 보게 된다(요 1:29).

* 귀신들림과 축사. 공관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데에 공생애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셨다(1:34;마 4:24;눅 4:40). 특히 여기서는 귀신 축사(逐邪)에 관해 일고해 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 우리는 먼저 귀신의 존재와 속성 및 활동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분명 귀신의 존재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귀신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사람들의 있는가 하면 인정은 하되 귀신에 대한 비성경적 식견을 가진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1) 귀신의 속성과 활동. 귀신의 영적이며(9:25;마 17:18), 지적인 존재이며(딤전 4:1-4:15;마 13:25) 사단의 지배를 확장시키는 일에 주안점을 두고 전개된다.

(2) 귀신들림에 대하여. ‘귀신들렸다’는 것은 귀신이 어떤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신이나(마 17:15;요 10:18-21) 몸을 (18절;마 4:24;9:32, 33;눅 11:14) 해(害)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귀신들린 자는 미쳐 날뛰기도 하고(5:5, 15) 각종 병에 걸리기도 한다(욥 2:7;눅 4:40, 41). 하지만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귀신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라 할지라도 불순종에 빠져 성령의 도우심을 스스로 제한시켰을 경우에는 귀신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귀신들린 듯이 보이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3) 귀신 축사. 귀신은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 인간을 파멸로 인도하기 위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추방되어져야만 한다. 귀신은 초월적 존재이므로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으로써 인간을 괴롭힐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다(16:17). 축사함에 있어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능력이나 특별한 주술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의 권능으로써 귀신을 쫓는다는 것이다. 한편, 귀신은 예수의 이름으로 쫓겨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든 귀신이 사단과 더불어 불못에 던지움을 받게될 것이다(창 3:14;눅 10:18;계12:9;20:10).

3. 어린아이를 통한 교훈(9:33-37)

서로 높아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혁신적인 가치관을 교훈하신 내용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본문의 기사가 시작되기 전에, 물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shekel)을 꺼내어 성전세를 내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마 17:24-27). 마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하고 본문의 기사를 막바로 연결시켜 이를 9:1-32에 대한 결론적 교훈으로 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을 상고할 때 유념해 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제자들과 예수 사이의 내면적 괴리 상태. 제자들은 예수의 거듭되는 수난 예고를 듣고서도 그 뜻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데 대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을 강렬하게 기대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머리 속에는 머리 둘 곳도 없이 빈한(貧寒)하게 지내시며 병들고 가난한 무리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종의 모습 보다는 이적적 권능을 행하며 영광 중에 거하는 승리자의 모습만이 인상깊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서 그 수난의 의미를 주지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주님과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영광에 더욱 집착해가는 제자들 간의 괴리감(乖離感)은 이후의 내용들에서 더욱 현저해져 간다. 그들은 외관상으로는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예수를 따랐지만, 참된 메시야관에 대해 무지하였고 신앙의 도리의 심오한 진면목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적 측면에서는 갓난 아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2) 새로운 가치관. 겸손과 봉사 그리고 나아가 자기 희생을 강조하는 예수의 교훈은 세상적 가치관에 비할 때 실로 파격적이며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약육 강식의 힘의 논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일반적 가치관을 지배해 왔다. 자연 세계에서 우리는 사슬식으로 연결된 먹고 먹히는 관계를 통해 생태계(生態系) 전체가 유지되는 것을 본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요,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숭고한 차원의 윤리적 요구를 받은 존재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몰두하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기적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면 소위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장소로 전락되고 만다. 인간의 삶을 이런 관점에서만 파악하게 되면, 어떤 이기적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돈과 권력으로 압축되는 세상적 힘을 얻지 못하면 심히 불안해 한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는 날이 갈수록 약육 강식의 힘의 논리가 더 신봉되어가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패배해 감에 따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숭고한 천국 시민의 윤리는 단지 허공에서만 맴도는 추상적 이상론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러나 악인의 영화(榮華)는 실로 덧없는 것이요(시 37:2, 10, 38;75:8;잠 14:2;벧후 2:17), 주님이 다스리는 공의와 사랑의 나라가 조만간 온 누리에 임하리라는 믿음을 확고히 가진 자는 본문의 교훈을 정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또한 천군만만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여길 것이다.

4. 제자들의 무지와 독선 및 범죄에 대한 경고(9:38-50)

앞 문단에 이어 본문에서도 제자들의 헛된 야욕과 무지 및 이를 교정시키고자 애쓰시는 주님의 교훈과 경고가 소개된다. 본문의 내용을 편의상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상고하는 것이 좋겠다.

(1) 화목을 가르치심. 본문에 수록된 예수의 말씀은 요한을 위시한 제자들의 시기심과 파벌의식을 직접적 발달으로 하고 있다(38절).

이와 유사한 상황은 민 11:26-29에서도 나타난다. 즉, 여호수아(Joshua)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칠십인의 장로들 중에 피택된 엘닷(Eldad)과 메닷(Medad)이 이스라엘의 진 중에서 예언하자 이를 금하도록 모세에게 요청하였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엘닷과 메닷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줄로만 알고 그러한 요청을 한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영적 무지를 노출시킨 것에 불과하였다.

본문의 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세속적 야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주의 일꾼의 사역을 금지시켰다는 점에서 여호수아보다 훨씬 더 완악하고 무지하였다(38절). 앞 단락에서 제자들은 그들간에 서로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불화를 일으켰거니와, 이제 여기서는 그들과 친분 관계가 없는 자들의 활동에 대해 공통적으로 시기하고 있다. 아마 당시 제자들은 지상적 메시야 왕국의 도래시에 자신들 외의 사람들이 요직(要職)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더구나 제자들의 기억 속에는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를 치유하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14-18절)이 강렬하게 되살아났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세속적 권력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 상호간에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이간과 경쟁 의식을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앞 단락에 이어 섬김의 도를 재차 강조하면서(41절) 화목을 추구할 것을 명령하셨다(50절;잠 3:30;20:3;빌 2:3;약 3:4). 그리고 배타적 편견과 독선적 특권 의식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될 것을 가르치셨다(33-37절). 본문에서 주님이 힘주어 경계하신 당파성과 분리주의는 초대 교회와(고전 1:12)향후의 교회사 전체를 통해 나타났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였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실리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교파로 갈라서거나 새로운 군소 교단을 만들어 행세를 하려는 자들은 예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2) 범죄에 대한 경고. 43-49절은 범죄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직접적 경고 대상은 (1)항에 설명한 배타적이고 세속적인 당파심이라 하겠지만 넓게는 제자들이 처한 전반적인 심령 상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영적 무지와 완악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든 불신 세력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본문의 경고가 매우 신랄하고 엄격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엄청난 고난을 당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을 만큼 인류의 죄악이 심각한 성질의 것임을 시사함과 아울러 영생의 축복이야말로 그 어떤 희생을 지불해도 아까울 것이 없는 고귀한 것임을 상기시킨다(마 13:45, 46).

또한 본문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연악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으므로 당장에는 그들이 무지와 불신 가운데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하는 것을 용납하사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으로 훈계하셨지만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될 죄악된 요소들이 있음을 분명히 천명하고 계신다.

* 지옥에 대하여. 여기서는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각기 다양하게 표현되는 지옥에 관하여 개괄적으로나마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정의. 지옥이란 구속함 받지 못한 죄인들이 마지막 심판 후에 들어가게 될 형벌의 장소 혹은 고통의 상태를 의미하며, 사후의 중간 상태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눅 23:43 주제 강해 ‘사후의 중간기 상태’ 참조).

(2) 구약 시대의 지옥관.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이사야의 진술(사 66:24)을 제외하면, 앞에서 정의한 바와 같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지옥에 관한 언급이 구약성경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음부'(* , 스올)라는 개념 속에 지옥의 개념이 어렴풋하게 내포되어 있을 뿐이다(사 14:15;겔 32:23등). 구약성경에서 음부는 어둡고 그늘진 장소이며(욥 10:21, 22;시 143:3), 침묵의 장소로서(시 94:17;115:17), 여기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을 뿐 아니라(시 6:5;88:10-12)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곳(욥 14:21;전 9:5-10)이라 묘사되었다. 결국 초기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선인과 악인 사이에 약간의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두 부류의 사람이 함께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에서 기거하게 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신구약 중간기의 지옥관. 선인과 악인간의 거처의 구별이 빈약한 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의 음부 개념은 신구약 중간기에 이르러 점차 선인과 악인을 분리하는 사상으로 발전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비로서 지옥의 개념이 히브리인들의 의식 속에 지배적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4) 신약 시대의 지옥관. 신약 시대에 이를러 음부의 개념은 더욱 발전되어 의인의 영혼들이 부활과 백보좌 심판을 기다리며 임시 대기하는 장소인 낙원(낙 23:43)과 대치되는 개념. 즉 악인의 영혼들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기 전에 임시 대기하는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눅 16:23;계 20:13).

한편, 이와는 별도로 영원한 멸망의 처소인 지옥에 관한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신약 시대의 특기할 만한 계시의 진전이다. 개역 성경의 ‘지옥’이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엔나'(* )는 히브리어 ‘힌놈'(* ,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하였다. 힌놈 골짜기는 몰렉(Molech) 우상에게 아이들을 인신 제사로 바쳤던 곳이며(대하 28:3;33:6), 요시야(Josiah)의 개혁 때에는 불결한 곳으로 선언되어 쓰레기 태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Jeremiah)에 의하면 그렇듯 가증스러운 인신 제사 관습이 여전히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예레미야는 그곳을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였다(렘 7:32;19:6). 이러한 개념을 확대되어서 나중에 힌놈의 골짜기는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될 곳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한편, 주목할 만한 사실은 ‘게엔나’라는 말이 약 3:6을 제외하면 공관 복음서에만 나오며, 공관 복음서에서도 예수에 의해서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지옥에 대한 개념은 거의 전적으로 예수의 계시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예수는 지옥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48절), ‘풀무불'(마 13:50), ‘영원한 불'(마 25:41), ‘바깥 어두운 데'(마 8:12)등으로 묘사하였다. 기타 서신서나 요한계시록에는 지옥이란 말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내세에서의 혹심한 형벌이라는 의미에서 지옥과 동일한 개념을 시사하는 구절이 많이 발견된다(롬 2:3-9;살전 5:3;살후 1:6-9;히 10:27;벧후 2:4-9;계 14:11등).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 볼때, 예수는 지옥의 교리를 명백하게 그리고 강조하여 가르쳤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성경을 그대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은 지옥을 묘사하는 말들이 비유적 언어이기는 하지만 더할 수 없이 두려운 현실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겠다. 지옥의 구체적 위치나 구조에 관한 언급은 없지만 불신자들에게 영원한 형벌이 엄연히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분명히 언급된 만큼,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야 할 긴급한 사명이 바로 전도임을 일깨워 준다(16:15;시 96:3;마 28:19).

누가복음 9장 57-62절 주해 레포트

소개글 총신 성경해석학 심상법 교수 과제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번역

2. 구조분석

3. 양식 이해

4. 배경 이해

5. 언어학적인 이해

6. 해석학적 이해

Ⅲ. 결론

< 참고 문헌 >

본문내용 Ⅰ. 서론

누가복음 9장을 하나로 묶는 소재를 굳이 찾아내자면 ‘제자’가 될 것이다. 물론 헬라 원문의 경우는 아니지만 한글개역성경의 누가복음 총 24장 가운데 ‘제자’라는 단어가 11회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9장이다. 예수께서 12제자를 파송하여 자신의 사역을 대리하게 하는 일화로 시작한 9장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제자도로 마감한다.

제자가 되기 위한 댓가라는 주제는 예수께서 즐겨 사용했다. 이는 주로 3권의 공관복음서에서 주로 나타나 있다. 여기에 나타난 세 사람은 관연 그들이 진정으로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 지를 시험받았다. “제가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는 예수님을 첫째로 두는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함에 있다. 이 본문 말씀은 그것이 선한 의도나 처음에 갖는 열광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만 보고 전진해야한다. 제자 되는 것은 이른바 문화생활의 일부 정도로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남으면 약간 신경을 쓰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예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뜻한다. 여차하다 보면 예수가 그러했듯 들짐승이나 날것들보다 못한 노숙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57-58절). 물론 잠자리가 없다는 것은 보장된 정착에서 오는 삶의 안일을 포기해야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역을 위한 생활의 수단도 없을 것이라 짐작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생활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6:33). 하지만 생활의 보장을 위해 제자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착오다. 노숙자의 처지가 되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각오로 제자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에게 죽은 지를 장사 지내는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치러야할 종교적 의무로 여겨졌다. 율법 공부도 이보다는 긴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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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22 (수) [하루 한 장]“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마태복음 9장은 예수님의 치유가

반대에 부딪히는 장면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단순히 병을 고치는

능력자가 아니라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나는 왕이 아니고

내 중심으로 살던 나는 주님을

따라 내 욕심을 포기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나와 다른

약자를 무시하고 정죄하면서

속으로 비웃는 동안 그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노라고

더 이상 너 때문이 아니라고

그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야 몸도 낫게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 관계도 회복되게

그를 전인적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치유를 우리도 소망합시다.

마태복음 제 9장 =====9:1 배에 오르사 건너가 – 이는 예수께서 자기들의 지역에서 떠나달라는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폭풍우를 잠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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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2/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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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엠바스 에이스 플로이온 디에페라센 카이 엘덴 에이스 텐 이디안 폴린 개역개정,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새번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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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2/24/2021

View: 1003

. 내용상 8장과 연결된다. 여기서도 중풍병자(1~8절), 혈루증 환자 및 죽은 야이로의 딸(18~26절), 소경과 벙어리(27~3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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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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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 예수의 변형과 함께 구약성경의 두인물이 나타난다. 마태와 누가는 모세 와 엘리야 의 순서로 기록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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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9/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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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주님이 갖고 계시는 사죄의 권세 (본문 : 마태복음 9 : 1- 8) 서 론 : 예수님은 언제나 그를 배척하는 곳에는 머물지 아니하셨으며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이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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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amjoongsori.org

Date Published: 8/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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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의 금식이 새 언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금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 계시록 16장 강해 설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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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3/4/2021

View: 1026

그것은 신약교회가 힘써야 할 전도와 설교의 사역과 병환자들을 돌아보아야 할 심방과 구제의 사역을 보인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음의 일꾼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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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rn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0/2/2022

View: 1870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9장 헬라어 강해설교 중에서 혈루증 여인의 치유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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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6/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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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하루 한 장] 마태복음9장_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 , and it came to pass, 그리고 다음과 같이되었다)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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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엠바스 에이스 플로이온 디에페라센 카이 엘덴 에이스 텐 이디안 폴린

개역개정,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새번역,1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바다를 건너 자기 마을에 돌아오셨다.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자기 마을로 돌아오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영어NIV,1 Jesus stepped into a boat, crossed over and came to his own town.

영어NASB,1 Getting into a boat, Jesus crossed over the sea and came to His own city.

영어MSG,1 Back in the boat, Jesus and the disciples recrossed the sea to Jesus’ hometown.

영어NRSV,1 And after getting into a boat he crossed the sea and came to his own town.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εμβας εις το πλοιον διεπερασεν και ηλθεν εις την ιδιαν πολιν

라틴어Vulgate,1 et ascendens in naviculam transfretavit et venit in civitatem suam

히브리어Modern,1 וירד באניה ויעבר ויבא אל עירו׃

성 경: [마9:1]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배에 오르사 건너가 – 이는 예수께서 자기들의 지역에서 떠나달라는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며 건너왔던(8:23-27) 게네사렛 호수를 다시 건너 되돌아 가심을 뜻한다. 그런데 마가와 누가는 본 사건의 평행기사를 다루면서 예수께서 되돌아가기 전에, 귀신들렸던 사람에게 자기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그 지역 사람에게 증거할 것을 당부하시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막 5:18-20; 눅 8:38, 39).

󰃨 본(本) 동네에 – 이는 가버나움을 가리키는 것으로서(4:13; 막 2:1),가버나움이 갈릴리 지방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한편 본절의 문맥을 보면 뒤이은 2-8절의 내용이 마치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서 돌아온 후에 발생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가다라 광인(狂人) 사건을 살펴볼 때 오히려 다음의 중풍 병자 사건이 가다라 사건 이전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막 2:2-12과 막 5:1-20 비교). 이는 이 두 사건이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상, 즉 예수는 귀신과 죄 문제같은 영적 차원에서도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보다는 신학적 주제에 따라 마태가 이를 재구성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뒤에 언급될 2-8절의 도입부로서가 아니라 앞의 8:8-34의 사건을 마무리짓는 결론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2절은 원문상,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고 있는, 새로운 사건을 소개할 때 흔히 등장하는 ‘카이 이두'(*)란 어구로 시작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카이 이두 프로세페론 아우토 파랄뤼티콘 에피 클리네스 베블레메논 카이 이돈 호 예수스 텐 피스틴 아우톤 에이펜 토 파랄뤼티코 다르세이 테크논 아피엔타이 수 하이 하마르티아이

개역개정,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새번역,2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 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라, 아이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우리말성경,2 사람들이 중풍 환자 한 사람을 자리에 눕힌 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안심하여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가톨릭성경,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영어NIV,2 Some men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mat.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영어NASB,2 And they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bed. Seeing their faith, Jesus said to the paralytic, “Take courage, son; your sins are forgiven.”

영어MSG,2 They were hardly out of the boat when some men carried a paraplegic on a stretcher and set him down in front of them. Jesus, impressed by their bold belief, said to the paraplegic, “Cheer up, son. I forgive your sins.”

영어NRSV,2 And just then some people were carrying a paralyzed man lying on a be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ιδου προσεφερον αυτω παραλυτικον επι κλινης βεβλημενον και ιδων ο ιησους την πιστιν αυτων ειπεν τω παραλυτικω θαρσει τεκνον αφεωνται σοι αι αμαρτιαι σου

라틴어Vulgate,2 et ecce offerebant ei paralyticum iacentem in lecto et videns Iesus fidem illorum dixit paralytico confide fili remittuntur tibi peccata tua

히브리어Modern,2 והנה הם מביאים אליו איש נכה אברים והוא משכב על המטה ויהי כראות ישוע את אמונתם ויאמר אל נכה האברים חזק בני נסלחו לך חטאתיך׃

성 경: [마9:2]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 본 사건에 대한 마가와 누가의 평행 기사에 의하면 예수가 계신집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병자의 친구인 듯한 자들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그를 줄에 매달아 예수앞에 데려다 놓았다고 설명되고 있다(막 2:1-12; 눅 5:17-26). 여기서 침상을 뜻하는 ‘클리네스’ (*)란 그것을 들고 돌아가라는 6절의 예수의 명령에서도 암시되어 있다시피 한사람의 힘으로도 들 수 있을 만한 가벼운 메트리스(mattress)같은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여기서 ‘저희’란 것은 데리고 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병자 자신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Clarke, Plummer). ‘저희의 믿음’이란 것은 예수께서 이 병자의 질병을 고쳐 주실 능력이 있음을 그들이 믿었다는 것을 뜻한다. 칼빈(Calvin)은 이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하여 하나님만이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실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편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한가지 사실은 예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것이 그들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예수께 대한 ‘믿음’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실로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오직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히 11:1, 6). 더욱이 중풍병자의 치유는 단지 동료들의 믿음에 근거하기 보다 근본적으로 중풍병자 자신의 예수께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가능했다(겔 18:1-4).

󰃨 소자야(*, 테크논) – ‘테크논’은 연장자가 손 아래 사람을 다정하게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이다(요일 2:1).

󰃨 안심하라(*, 다르세이) – ‘용기를 가지라’, ‘무서워 말라’는 뜻으로 중풍병자가 지니고 있던 철저한 절망의 파도를 일거에 잠재우시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긴 자는 진정 무서움의 그늘을 벗고 용기의 햇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피엔타이’ (*)는 현재 수동 직설법으로서 진행의 의미보다는 완료의 뜻이 강하다. 즉 이는 예수께서 사죄(赦罪)를 선언하시는 그 순간 이미 그 은총이 실현되었음을 나타낸다(Burton). 이 말씀은 적어도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 있어서 죄와 질병이 어떤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주목할만한 것은 이 사람이 예수를 찾아온 이유란 다름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서였는데, 예수께서는 질병 치료에 앞서 그의 죄가 사함받았다고 선언했다는 점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1) 그는 오랫동안 나쁜 죄악에 빠져있다가, 즉 오랫동안의 타락과 방탕이 원인이 되어 이 중풍병에 걸렸으며, 그후 지난 날에 범한 죄악에 양심을 가책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자신과 같은 나쁜 인간을 주목해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지난 날 지은 범죄가 용서받았음을 먼저 선언한 것은 질병의 치유선언과 같은 뜻인 동시에 나아가 질병의 원인까지도 제거해 주신 것이었다. (2)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자기에게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보이려는 적절한 기회로 삼았다. 만약 그가 어떤 기적도 행치 않고 말로만 죄 용서함을 선언했다면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았을 것이고 또 제자들까지도 의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 용서함과 아울러 이적을 행하심으로 어느 누구도 그의 이런 권능을 부인할 수가 없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이유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는 중풍병자의 관점에서 이 구절을 이해한 것이고 후자는 예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한 것으로 두 가지 견해를 모두 취할 수 있다.

카이 이두 티네스 톤 그람마테온 에이판 엔 헤아우토이스 후토스 블라스페메이

개역개정,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새번역,3 그런데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 이것을 보고 몇몇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가톨릭성경,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영어NIV,3 At this, some of the teachers of the law said to themselves, “This fellow is blaspheming!”

영어NASB,3 And some of the scribes said to themselves, “This fellow blasphemes.”

영어MSG,3 Some religion scholars whispered, “Why, that’s blasphemy!”

영어NRSV,3 Then some of the scribes said to themselves, “This man is blaspheming.”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ιδου τινες των γραμματεων ειπον εν εαυτοις ουτος βλασφημει

라틴어Vulgate,3 et ecce quidam de scribis dixerunt intra se hic blasphemat

히브리어Modern,3 והנה אנשים מן הסופרים אמרו בלבבם מגדף הוא׃

성 경: [마9:3]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어떤 서기관들이 – 서기관이란 용어는 바리새나 사두개 등과 같은 종교적 당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중앙 성전 또는 각급회당 등에 속하여 율법 필사 또는 각종 종교 행정을 담당하던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서(2:4) 공직을 가리키는 직명(職名)이었다. 이들은 유대 종교의 수구(守舊) 세력으로서 예수의 메시야직에 대한 이해가 없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가 2절과 같은 예수의 선언을 듣고는 결정적인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후토스 블라스페메이) – ‘참람하다’란 말의 ‘블라스페메이’는 원래 ‘남을 욕하다’, ‘부당하게 비난한다'(shander)는 뜻이며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다’, ‘하나님에 대해 불경스럽게 말하다’로 쓰였다. 그후 이 말은 그 개념이 확대되어 ‘신성모독'(blasphemy)의 뜻을 가졌다. 즉 어떤 서기관들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예수의 말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며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지을 때에 그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이시며(사 43:25; 44:22). 그런 이유에서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시 51:4). 이런 점에서 마가는 여기에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는 어구를 덧붙이고 있다.

카이 이돈 호 예수스 타스 엔뒤메세이스 아우톤 에이펜 히나티 엔뒤메이스데 포네라 엔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휘몬

개역개정,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새번역,4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우리말성경,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가톨릭성경,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영어NIV,4 Knowing their thoughts, Jesus said, “Why do you entertain evil thoughts in your hearts?

영어NASB,4 And Jesus knowing their thoughts said, “Why are you thinking evil in your hearts?

영어MSG,4 Jesus knew what they were thinking, and said, “Why this gossipy whispering?

영어NRSV,4 But Jesus, perceiving their thoughts, said, “Why do you think evil in your hearts?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ιδων ο ιησους τας ενθυμησεις αυτων ειπεν ινα τι υμεις ενθυμεισθε πονηρα εν ταις καρδιαις υμων

라틴어Vulgate,4 et cum vidisset Iesus cogitationes eorum dixit ut quid cogitatis mala in cordibus vestris

히브리어Modern,4 וירא ישוע את מחשבתם ויאמר למה תחשבו רעה בלבבכם׃

성 경: [마9:4]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그 생각을 아시고 –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와 그 동료들의 믿음을 직시하셨던(2절) 것처럼 서기관들의 마음의 심연(深淵)을 꿰뚫어보고 계셨다. 이에 대해 마가는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막 2:8). 성경에는 인간의 생각을 알고 또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언급되어 있다(대상 28:9; 렘 17:10; 요 2:25; 롬 8:27; 계 2:23). 따라서 이 같은 일은 예수께서 전지(omniscience)하심을 분명히 나타내주는 증거인 것이다.

󰃨 악한 생각 –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악하다고 하신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예수의 말씀을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서 이적을 베푸심과 동시에 이 이적과 함께 주어진 ‘죄 사함’의 진의를 성실하게 알아 보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예수를 불신(不信)하며,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예수를 파멸시킬 근거로 삼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티 가르 에스틴 유코포테론 에이페인 마피엔타이 수 하이 하마르티아이 에 에이페인 에게이레 카이 페리파테이

개역개정,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새번역,5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우리말성경,5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쉽겠느냐?

가톨릭성경,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영어NIV,5 Which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and walk’?

영어NASB,5 “Which is easier, to say, ‘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Get up, and walk’?

영어MSG,5 Which do you think is simpler: to say, ‘I forgive your sins,’ or, ‘Get up and walk’?

영어NRSV,5 For which is easier, to say,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Stand up and walk’?

헬라어신약Stephanos,5 τι γαρ εστιν ευκοπωτερον ειπειν αφεωνται σοι αι αμαρτιαι η ειπειν εγειραι και περιπατει

라틴어Vulgate,5 quid est facilius dicere dimittuntur tibi peccata aut dicere surge et ambula

히브리어Modern,5 כי מה הנקל האמר נסלחו לך חטאתיך אם אמר קום התהלך׃

성 경: [마9:5]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어느 것이 쉽겠느냐 – 예수는 죄 사함과 병고침 중에 어떤 것이 더 쉽겠느냐고 질문하셨는데, 후자의 것, 즉 ‘일어나 걸어라’고 하는것이 분명 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 사함을 선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지만 이적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여러 선지자나 사도들도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사이비 메시야의 경우에는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가시화(可視化)할 수 없는 죄 사함의 명령을 남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유대인의 생각에는 죄 사함보다는 병고치는 능력이 더 쉬울 것이었지만, 이 둘은 모두 권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는 둘 다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모두 균일하게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예수가 여기서 이 두 가지 신적 일을 동시에 행하신 것은 대부분의 예수의 이적이 그렇듯이 자신의 메시야직의 진정(眞正)성과 그에 따른 권능을 보임과 아울러 자신의 메시야직의 궁극적 목적, 곧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더나아가 자신이 메시야로서 죄 사할 수 있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임을 동시에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히나 데 이이데테 호티 엨수시안 에케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에피 테스 게스 아피에나이 하마르티아스 토테 레게이 토 파랄뤼티코 에게르데이스 아론 수 텐 클리넨 카이 휘파게 에이스 톤 오이콘 수

개역개정,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새번역,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들이 알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니,

우리말성경,6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가톨릭성경,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영어NIV,6 But so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 . .” Then he said to the paralytic,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영어NASB,6 “But so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then He said to the paralytic, “Get up, pick up your bed and go home.”

영어MSG,6 Well, just so it’s clear that I’m the Son of Man and authorized to do either, or both. . . .” At this he turned to the paraplegic and said, “Get up. Take your bed and go home.”

영어NRSV,6 But so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he then said to the paralytic–“Stand up, take your bed and go to your home.”

헬라어신약Stephanos,6 ινα δε ειδητε οτι εξουσιαν εχει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πι της γης αφιεναι αμαρτιας τοτε λεγει τω παραλυτικω εγερθεις αρον σου την κλινην και υπαγε εις τον οικον σου

라틴어Vulgate,6 ut sciatis autem quoniam Filius hominis habet potestatem in terra dimittendi peccata tunc ait paralytico surge tolle lectum tuum et vade in domum tuam

히브리어Modern,6 אך למען תדעון כי בן האדם יש לו השלטן בארץ לסלח חטאים ויאמר אל נכה האברים קום שא את מטתך ולך לך אל ביתך׃

성 경: [마9:6]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 – 여기서 ‘권세'(*, 여수시아)란 ‘능력’과 ‘권위의 위임받은 권능’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아 행하시는 신적 권능을 가리킨다. 또한 본문의 ‘세상에서’란 말은 미래에 도래할 신천신지(新天新地)나 하나님의 처소로 여겨졌던 하늘과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바로 이 지구상에서’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곳은 죄와 죽음이 현존하는 곳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인류의 죄악을 도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강조한다(1:21). 실로 죄를 사하는 것은 ‘인자’된 자의 특권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친히 십자가의 제물이 되심으로써 속죄의 영원한 초석을 마련하신 것이다.

󰃨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 앞절에서 예수는 자신에게 사죄하는 권세가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병자에게 ‘제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지만 사람들은 이를 매우 어렵게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는 사죄의 권세가 있음을 입증하려는 방편으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어나 가라’는 명령과 함께 기적을 행하신다. 다시 말해서 이 중풍 병자가 고침받은 것은, 곧 예수의 사죄권에 대한 증거인 셈이다. 성경에 이적이 기록된 이유는 저자들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신적 목적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적 뒤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병고친 이적의 목적은 예수가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임과 죄를 사할 권세가 있는 그리스도임을 나타내고자 함인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 문맥을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어”라고 생생히 번역하고 있다.

󰃨 일어나…가라 – 이 명령은 부정 과거 능동, 명령형으로 표현되어 ‘지체치 말고 일어난 즉시 네 침상을 챙겨 집으로 가라’는 매우 생동감 넘치는 3중의 명령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1) 그 중풍병자의 병세를 완전히 치유하셨다는 사실과 (2) 그의 죄악을 완전히 도말하셨다는 사실및 (3)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서기관들의 비난을 완전히 반박하셨음을 나타낸다. 실로 그는 사죄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카이 에게르데이스 아펠덴 에이스 톤 오이콘 아우투

개역개정,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새번역,7 그가 일어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말성경,7 그러자 그 사람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영어NIV,7 And the man got up and went home.

영어NASB,7 And he got up and went home.

영어MSG,7 And the man did it.

영어NRSV,7 And he stood up and went to his home.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εγερθεις απηλθεν εις τον οικ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7 et surrexit et abiit in domum suam

히브리어Modern,7 ויקם וילך לביתו׃

성 경: [마9:7]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그가…돌아가거늘 – 병고침 받기 위해 침상에 들려 온 중풍병자는 의심없는 절대적 순종을 통해(2절) 병고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1:21) 하기위해 보내심을 받은 임마누엘(Immanuel)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죄 사함까지도 받은 것이다. 즉 그는 건강한 육체 뿐만 아니라 건강한 영혼도 선사받았다. 영육의 동시 축복,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완전한 축복인 것이다. 성경은 영혼을 우선하지만 우리의 육체도 무시하지 않는다. 앞으로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때 우리는 새육체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돈테스 데 호이 오클로이 에포베데산 카이 에돜사산 톤 데온 톤 돈타 뎈수시안 토이아우텐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개역개정,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새번역,8 무리가 이 일을 보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런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말성경,8 이를 보고 무리는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가톨릭성경,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영어NIV,8 When the crowd saw this, they were filled with awe; and they praised God, who had given such authority to men.

영어NASB,8 But when the crowds saw this, they were awestruck, and glorified God, who had given such authority to men.

영어MSG,8 The crowd was awestruck, amazed and pleased that God had authorized Jesus to work among them this way.

영어NRSV,8 When the crowds saw it, they were filled with awe, and they glorified God, who had given such authority to human beings.

헬라어신약Stephanos,8 ιδοντες δε οι οχλοι εθαυμασαν και εδοξασαν τον θεον τον δοντα εξουσιαν τοιαυτην τοις ανθρωποις

라틴어Vulgate,8 videntes autem turbae timuerunt et glorificaverunt Deum qui dedit potestatem talem hominibus

히브리어Modern,8 והמון העם כראותם זאת השתוממו וישבחו את האלהים אשר נתן שלטן כזה לבני אדם׃

성 경: [마9:8]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중풍병자 치유]

󰃨 두려워하며(*, 에포베데산) – 초기 사본들(알렉산드리아 사본, 가이사랴 사본등)에는 하나같이 ‘무서워하다’, ‘경외하다’ 등의 뜻을 지닌 본문의 원어를 사용했지만 후기 필사자들(copyists)은 이를 그저 ‘이상히 여겼다’, ‘놀랐다’는 뜻의 ‘에다우마산'(*)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원래의 뜻을 약화시키고 있다. 실로 죄악에 물든 인간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지니신 절대적 존재 앞에 두려워 떠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에 직면할 때마다 경외심과 두려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17:6; 28:5, 10). 한편 이러한 거룩한 두려움은 항상 경배와 찬양을 수반한다.

󰃨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 공관복음서 3기자 중 유일하게 마태만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기, 즉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의도를 나타낸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편 이 구절을 해석하는 데에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1) 찬양을 돌린 주체 : 이 구절은 복음서 기자의 생각, 즉 예수의 많은 가르침을 받고 또 부활을 목격하며 성령 세례를 받았던 복음서 기자들의 입장에서 나온말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며 찬양인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2) 사람의 정체 : ‘사람에게’ (*, 토이스 안드로포이스)란 말은 복수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지 좀 애매하다. 문맥상 ‘이런 권세’, 즉 중풍병을 치유하고 죄를 사하는 권세를 행사하신 분은 분명히 예수이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Benoit, Held, Hill, Hummen) ‘사람에게’란 이 말은 교회를 가리킨 것이며, 교회가 이러한 권세를 부여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16:19과 18:18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종말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정당한 것으로 볼 수가 없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이 말은 마태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었음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무리들은 인자이신 예수의 권세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본것이 아니라 한 특수 그룹의 자연인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이해하였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 당시 이 기적을 목격한 자들이 일부 율법주의자들을 제외하고서, 예수라는 한 개인의 사죄권에 대해 크게 놀라서 찬양을 드리긴 하였지만 예수의 참 정체, 즉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란 사실을 이해하는 차원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 영광을 – 이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능력을 인정한다

는 뜻이다.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죄사함 선포를 신성 모독으로 보았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이 문제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주제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원래 단순하고 겸허한 자들의 심령에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만 자신의 지혜를 믿고 뽐내는 이들에게는 혼돈과 불평거리만 될 뿐이다.

카이 파라곤 호 예수스 에케이덴 에이덴 안드로폰 카데메논 에피 토 텔로니온 맏다이온 레고메논 카이 레게이 아우토 아콜루데이 모이 카이 아나스타스 에콜루데센 아우토

개역개정,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새번역,9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우리말성경,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태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가톨릭성경,9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영어NIV,9 As Jesus went on from there,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tax collector’s booth. “Follow me,” he told him, and Matthew got up and followed him.

영어NASB,9 As Jesus went on from there, He saw a man called Matthew, sitting in the tax collector’s booth; and He said to him, ” Follow Me!” And he got up and followed Him.

영어MSG,9 Passing along, Jesus saw a man at his work collecting taxes. His name was Matthew. Jesus said, “Come along with me.” Matthew stood up and followed him.

영어NRSV,9 As Jesus was walking along, he saw a man called Matthew sitting at the tax booth; and he said to him, “Follow me.” And he got up and followed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παραγων ο ιησους εκειθεν ειδεν ανθρωπον καθημενον επι το τελωνιον ματθαιον λεγομενον και λεγει αυτω ακολουθει μοι και αναστας ηκολουθησ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9 et cum transiret inde Iesus vidit hominem sedentem in teloneo Mattheum nomine et ait illi sequere me et surgens secutus est eum

히브리어Modern,9 ויהי בעבר ישוע משם וירא איש ישב בבית המכס ושמו מתי ויאמר אליו לכה אחרי ויקם וילך אחריך׃

성 경: [마9:9]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마태를 부르심]

󰃨 예수께서…지나가시다가 – 본문의 평행구인 막 2:13, 14에는 예수께서 바닷가를 지나셨음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아마 이곳은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 지방의 변두리였을 것이다(D.A. Carson). 마태라 하는 사람이 – 마태라는 이름은 ‘신실한 자’란 뜻의 히브리어 ‘에메트’ (*)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를 가진 히브리식 이름 ‘맛다냐'(대상 9:15)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마가와 누가는 세리 마태를 ‘레위’란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시피 동시에 두 서너개의 이름을 가졌던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12제자의 명단에는 그를 ‘마태’란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아마도 레위 소명받기 전의 이름이고 마태는 소명후에 부여된 호칭인 듯하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두개의 이름(‘사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도의 권위로서 자칭할 경우에는 소명 이후의 호칭인 ‘바울’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과 비교할만하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레위’와 ‘마태’란 이름을 둘 다 사용한 반면 마태 자신은 ‘마태’란 이름만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 마태는 12제자들중 한 사람이요 본서의 기록자이기도 하다(Gundry, 본서 서론 참조)

󰃨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 세관에 앉았다는 말은 그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당시 이곳 세관은 그 당시 유대를 속국(屬國)으로 하고 있던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었고 거기에다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정치 자금의 출처이기도 했다. 한편 이곳 가버나움은 상업과 교통이 발달했었던 다메섹과 갈릴리의 해안 도시들과 연결되는 길목에 위치했다. 따라서 육상 및 해상으로 운반되는 상품들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에 적합했던 곳이다. 더욱이 이곳은 수리아와 애굽을 잇는 무역품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기에 적절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세관은 대로로 통행하는 상인들에게 관세를 부과키 위해 길가나 마을 입구에 간이 건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 관리들은 밤낮없이 세관 업무에 종사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리하고 긴 막대로 곡식 자루 등을 찔러보아 그 속에 불법 상품들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도 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Van Lennep). 실로 그들은 세금의 강제, 부당 징수등으로 유대 사회 내에서 가장 악질적 인물 중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했다(5:46; Edersheim).

󰃨 나를 좇으라 – 여기서 ‘좇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데이’ (*)는 현재 명령형으로 조금도 지체하거나 주저없이 당장 좇으라는 뜻이다. 이는 신앙 결단의 시급(時急)성을 강조한 말로서 내 제자가 되라는 의미와 상통한다(4:19; 19:21).

󰃨 일어나 좇으니라 – 이는 미련이나 후회가 있을 수 없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나타낸다. 이 제 2의 세관 자리는 새 사람으로 대치될 것이었지만, 그는 그보다 더 영광스런 천국 일꾼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한편 누가의 평행 구절에는 마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다고 기록되고 있다(눅 5:28). 이는 마태의 겸손한 면모를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즉 그는 본서의 저자로서, 타인으로부터 훌륭하다고 칭찬받을 만한 사항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카이 에게네토 아우투 아나케이메누 엔 테 오이키아 카이 이두 폴로이 텔로나이 카이 하마르톨로이 엘돈테스 쉬나네케인토 토 예수 카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개역개정,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새번역,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 ㉠그, ‘비스듬히 눕다’. 유대인들이 식사할 때 가지는 자세

우리말성경,10 예수께서 집에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가톨릭성경,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영어NIV,10 While Jesus was having dinner at Matthew’s house,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ate with him and his disciples.

영어NASB,10 Then it happened that as Jesus was reclining at the table in the house, behold,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were dining with Jesus and His disciples.

영어MSG,10 Later when Jesus was eating supper at Matthew’s house with his close followers, a lot of disreputable characters came and joined them.

영어NRSV,10 And as he sat at dinner in the house, many tax collectors and sinners came and were sitting with him and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εγενετο αυτου ανακειμενου εν τη οικια και ιδου πολλοι τελωναι και αμαρτωλοι ελθοντες συνανεκειντο τω ιησου και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0 et factum est discumbente eo in domo ecce multi publicani et peccatores venientes discumbebant cum Iesu et discipulis eius

히브리어Modern,10 ויהי בהסבו בביתו והנה מוכסים וחטאים רבים באו ויסבו עם ישוע ותלמידיו׃

성 경: [마9:10]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죄인들과의 식사와 의원 비유]

이 구절은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고 있는 ‘카이 에게네토’ (*, and it came to pass, 그리고 다음과 같이되었다)란 말로 시작되고 있다(7:28, 29). 이는 마태가 독창적으로 사용한 어투로서 어떤 사건이나 내용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device)한 문장이다.

󰃨 마태의 집에서(*, 엔 테 오이키아) – 원문에는 단순히 ‘그 집에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이 집을 분명하게 ‘마태의 집’으로 규정하고 있다.

󰃨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 누가는 이 부분을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눅 5:29)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자신의 집을 그냥 ‘그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의 기록에 나타나는 ‘큰 잔치’란 말을 표현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그가 자화 자찬(自畵自讚)에는 매우 인색한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 성도는 한없이 겸손하신 주님과 더불어 이와 같이 겸손한 주의 제자의 모범을 또한 본받아, 자기를 내세우고 자신을 칭찬하는 일에는 극도로 인색한 반면 타인을 칭찬하고 타인을 내세우는 데는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한 알의 밀알 같이 ‘나’란 자아는 완전히 썩어질 때 비로소 예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 ‘앉아 잡수신다’는 말은 유대인의 전통 식사법에서 보는대로 식탁에 거의 눕다시피 기대어 먹는 상태를 가리킨다.

󰃨 많은 세리와 죄인들 – 마태가 예수를 위해 베푼 잔치는 일종의 송별회 성격을 띤 것 같다. 즉 마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옛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예수를 따라다니는 제자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태는 바로 이 자리에 옛 동료들과 세속적 친구들을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의 말씀을 듣도록 의도했던 것 같다. 여기서 세리는 앞에서 설명되었다시피 비애국적이고 또 욕심많고 부정직한 세관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당했다. 특별히 본문에서 ‘죄인들’이란 비록 실정법에 따라 사법적 제재를 받는 죄수(prisoner)는 아니었지만 유대 사회의 도덕 규범과 구전(口傳) 율법인 할라카(Halacha)및 랍비들이 주의깊게 규정해온 전통과 규례를 지키지 않고 무시하던 의식법상의 죄인(sinner)으로서 여기에는 창기와 포주, 그리고 세리가 대표적인 부류였다.

󰃨 함께 앉았더니 – 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상호 인정과 우의, 평화와 사랑, 언약 공동체의 확인을 의미하는 표시였다. 따라서 예수와 제자들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이 멸시하며 상종조차 하지 않던 이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한 것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관점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행동이었다. 즉 그들은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과 같은 이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라면 결단코 이들 죄인들과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고 벌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함을 주려고 이세상에 오신 것이다. 한편 예수의 공동 식사에서 얻는 교훈은 (1) 예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구주요 친구다. (2) 보통 사람들은 죄인들과 함께함으로써 죄의 영향을 받았으나 예수는 오히려 그들의 악을 선으로 정화시키셨다. (3) 주님께서는 의인인 척 착각하는 바리새인들보다 자신의 죄로 갈등하고 연민하는 영혼들에게 먼저 찾아가셨다는 점에서 깊은 교훈을 준다.

카이 이돈테스 호이 파리사이오이 엘레곤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디아 티 메타 톤 텔로논 카이 하마르톨론 에스디에이 호 디다스칼로스 휘몬

개역개정,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새번역,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우리말성경,11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가톨릭성경,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영어NIV,11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asked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영어NASB,11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said to His disciples, ” Why is your Teacher eating with the tax collectors and sinners?”

영어MSG,11 When the Pharisees saw him keeping this kind of company, they had a fit, and lit into Jesus’ followers. “What kind of example is this from your Teacher, acting cozy with crooks and riff-raff?”

영어NRSV,11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said to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ιδοντες οι φαρισαιοι ειπον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διατι μετα των τελωνων και αμαρτωλων εσθιει ο διδασκαλος υμων

라틴어Vulgate,11 et videntes Pharisaei dicebant discipulis eius quare cum publicanis et peccatoribus manducat magister vester

히브리어Modern,11 ויראו הפרושים ויאמרו אל תלמידיו מדוע עם המוכסים והחטאים אכל רבכם׃

성 경: [마9:11]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죄인들과의 식사와 의원 비유]

󰃨 바리새인들이 보고 – 이 당시 바리새인들은 식사에 초대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그들은 자칭 율법의 수호자들로서 예수의 기이한 행동에 따른 율법의 파괴 여부를 관찰, 감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다. 따라서 분명 자기 의(義)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이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 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율법을 더럽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 바리새인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잔치를 끝까지 지켜보며 예수의 결점을 확보해 두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와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따라서 죄인과 동류(同類)인 그를 어찌하여 선생으로 두고 따르느냐는 듯이 비난하면서 선생과 제자 사이를 이간(離間)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편 그들은 권능을 행하신 예수께(2-6절) 직언(直言)할 수 없을 만큼 용기가 부족했던 자들이었다.

󰃨 함께 잡수시느냐 – 이 말은 예수가 종교적.사회적으로 버림받은 패거리들과 함께 어울리는 이상, 그는 결단코 의인이 될 수가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한편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율법에 의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불의를 도모하는 자들과 교제를 나누어서는 안되었던 것이 분명하며 단지 세속적인 문제로 거래를 해야할 경우만은 에외였던 것 같다.

호 데 아쿠사스 에이펜 우 크레이안 에쿠신 호이 이스퀴온테스 이아트루 알 호이 카코스 에콘테스

개역개정,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새번역,12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우리말성경,12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가톨릭성경,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영어NIV,12 On hearing this, Jesus said,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영어NASB,12 But when Jesus heard this, He said, “It is not those who are healthy who need a physician, but those who are sick.

영어MSG,12 Jesus, overhearing, shot back, “Who needs a doctor: the healthy or the sick?

영어NRSV,12 But when he heard this, he said, “Those who are well have no need of a physician, but those who are sick.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 δε ιησους ακουσας ειπεν αυτοις ου χρειαν εχουσιν οι ισχυοντες ιατρου αλλ οι κακως εχοντες

라틴어Vulgate,12 at Iesus audiens ait non est opus valentibus medico sed male habentibus

히브리어Modern,12 וישמע זאת ישוע ויאמר אליהם החזקים אינם צריכים לרפא כי אם החולים׃

성 경: [마9:12]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죄인들과의 식사와 의원 비유]

󰃨 의원이…병든 자에게라야 –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들으신 예수는 그 당시 흔히 통용되던 본문의 속담을 그들에게 들이대셨는데, 이는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그런 복잡한 대답이 아니었으며 또한 바리새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이를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하고도 명쾌한 답변이었다. 즉 병든 자만이 의원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병자들 곁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죄인들을 구하려고 오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절대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롬 3:10) 예수의 도움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임을 안타깝게 여기고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분으로서 그들과는 언제나 함께 있지만, 자신의 영적인 질병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의인인 체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인에게는 예수가 함께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간과치 말아야 할 사실은 죄인들이 예수를 반가이 맞이했기 때문에 예수가 그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가셨던 것이다.

포류덴테스 데 마데테 티 에스틴 엘레오스 델로 카이 우 뒤시안 우 가르 엘돈 칼레사이 디카이우스 알라 하마르톨루스

개역개정,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새번역,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호 6:6

우리말성경,13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호6:6

가톨릭성경,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영어NIV,13 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영어NASB,13 “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COMPASSION, AND NOT SACRIFICE,’ for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영어MSG,13 Go figure out what this Scripture means: ‘I’m after mercy, not religion.’ I’m here to invite outsiders, not coddle insiders.”

영어NRSV,13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come to call not the righteous but sinners.”

헬라어신약Stephanos,13 πορευθεντες δε μαθετε τι εστιν ελεον θελω και ου θυσιαν ου γαρ ηλθον καλεσαι δικαιους αλλ αμαρτωλους εις μετανοιαν

라틴어Vulgate,13 euntes autem discite quid est misericordiam volo et non sacrificium non enim veni vocare iustos sed peccatores

히브리어Modern,13 ואתם צאו ולמדו מה הוא חסד חפצתי ולא זבח כי לא באתי לקרא את הצדיקים כי אם את החטאים לתשובה׃

성 경: [마9:13]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죄인들과의 식사와 의원 비유]

󰃨 너희는 가서…배우라 – 이는 랍비들이 성경을 더 공부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할 때 흔히 사용하던 상투어이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위하면서, 참 종교의 핵심이요 내용인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게을리하면서 외적인 의식과 형식에만 매달려 있었다. 즉 이들은 모양만 갖추면 종교적인 임무를 다 한 것이라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점을 지적하기 위해, 즉 그들이 성경도 참 종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냉소적으로 랍비들이 흔히 사용하던 이 말을 빌어 바리새인들의 자만을 질타(叱咤)하신 것이다.

󰃨 내가 긍휼을 원하고 – 이 말은 구약에서도 가끔 눈에 띄는 구절이다(호 6:6). ‘긍휼'(mercy, 사랑, 자비)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헤세드'(*)인데 구약에서 ‘인자하심’, ‘자비’등으로 번역된다. 이 말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 준한 사랑을 뜻한다. 즉 여호와의 종교는 여호와의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는 종교인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호세아 당시, 종교의 핵심은 잊고 형식적인 의식에만 치중했던 제사장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등한시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불행한 일을 당한 자에겐 그가 누구든지 사랑의 손길을 펴서 그리스도의 긍휼의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터인데 이러한 예수의 사랑을 보이지 않고 그가 이방인이며 불신자란 이유로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기독교의 외형적 상식에만 어긋나도 마치 그를 사단의 자식인양 질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의식만 준수하고 외형적 틀 내에만 있다면 자기가 의인인 것처럼 목을 곧게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 이 말은 제사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님을 우선 주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의식보다는 소외된 자에게 베푸는 사랑과 자비를 우선적으로 여기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긍휼과 제사는 둘 다 필요하고 선한 것이지만 긍휼이 보다 더 선한 것이며 제사보다 먼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언컨대, 제사와 같은 모든 희생 제물은 타락한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을 지적하기 위해 의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의 핵심과 내용은 긍휼과 사랑인 것이며 이것들이 결여된 제사란 아무런 실체가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 예수께서는 인간을 의인과 죄인 두 부류로 나누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모두가 죄인에 해당되기 때문인 것이다. 실로 인간은 본래부터 의롭지 못하다(시 14:3; 롬 1:18-32; 3:10-18). 따라서 스스로 의인인 체하였던 바리새인들도 역시 죄인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죄인이긴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들을 부르려고 온것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의 사역을 오히려 방해하고 죄를 뉘우치려고 하지 않은 자칭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자신의 사역의 본질, 곧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며 버려진 죄인들을 구원키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말씀이다. 누가는 이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부르다는 말의 원어 ‘칼레사이'(*)는 ‘초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예수는 죄인들을 불러 천국의 기쁜 잔치에 초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외된 무리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예수의 고유한 사역인 것이며, 또한 그는 바로 이런 무리들을 구하고자 오신 것이다.

토테 프로세르콘타이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요안누 레곤테스 디아 티 헤메이스 카이 호이 파리사이오이 네스튜오멘 폴라 호이 데 마데타이 수 우 네스튜우신

개역개정,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새번역,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자주’가 없음

우리말성경,14 그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가톨릭성경,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영어NIV,14 Then John’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How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fast,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영어NASB,14 Then the disciples of John came to Him, asking,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영어MSG,14 A little later John’s followers approached, asking, “Why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rigorously discipline body and spirit by fasting, but your followers don’t?”

영어NRSV,14 Then the disciples of John came to him, saying,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헬라어신약Stephanos,14 τοτε προσερχονται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ιωαννου λεγοντες διατι ημεις και οι φαρισαιοι νηστευομεν πολλα οι δε μαθηται σου ου νηστευουσιν

라틴어Vulgate,14 tunc accesserunt ad eum discipuli Iohannis dicentes quare nos et Pharisaei ieiunamus frequenter discipuli autem tui non ieiunant

히브리어Modern,14 ויגשו אליו תלמידי יוחנן ויאמרו מדוע אנחנו והפרושים צמים הרבה ותלמידיך אינם צמים׃

성 경: [마9:14]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금식 논쟁]

󰃨 그 때에(*, 토테) – 앞뒤 상황의 연속성을 나타낸 말로서 마태가 독특하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 요한의 제자들이 – 여기서 마가는 당시 ‘혹'(some people)이라고 언급했고, 누가는 질문자를 바리새인으로 적고 있다(눅 5:33). 아마 금식 문제에 있어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의견이 일치했던 것 같다. 한편 이 당시 요한은 헤롯의 일로 투옥된 상태였는데(4:12), 이 상황에서 요한의 몇몇 제자들은 자기 스승보다 권위에 찬 메시지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께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던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강력한 증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요한의 금식주의만을 고수했 때문에 정해진 금식일에 금식치 않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비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요한의 추종자들은 A.D. 3세기까지 계속 그 세력을 유지했으며, 또한 금식과 기도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금욕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 아마 이 당시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 스승인 요한이 메시야의 선구자였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자기들과 예수의 제자들 간에는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율법준수, 특히 금식에 관한 외형적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을 그들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로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사실 요한의 제자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씩(월, 목요일) 규칙적으로 금식하였으며 거국적인 금식일(속죄일, 부림절 전날, 예루살렘 함락을 기념하는 아빕월 9일) 금식하였을 뿐 아니라 수시로 금식하곤 하였다(눅 18:12). 이와 같은 금식 규례는 유대 지방에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내려오던 관습이었던 것이다. 이 당시 요한은 자신이 금식을 폐기시킬 만큼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금식의 전통을 계속 고수하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왜 금식을 하지 아니하는지 대단히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다.

󰃨 당신의 제자들은…아니하나이까 – 이 질문은 아마 그들의 스승인 요한이 헤롯에 의해 수감된 이후 찾아와 질문한 내용으로서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투옥으로 인해 대단히 슬퍼하는 중에 있으면서 금식을 준수했던 것 같다. 금식이란 것은 주지하다시피 슬픔에 대한 자연적인 표현이었기에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인 예수의 선구자요 또 세례를 베푼 자인 요한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도 왜 자기들과 함께 슬퍼하지 아니하는지 대단히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예수스 메 뒤난타이 호이 휘오이 투 뉨포노스 펜데인 엪 호손 멭 아우톤 에스틴 호 뉨피오스 엘류손타이 데 헤메라이 호탄 아파르데 앞 아우톤 호 뉨피오스 카이 토테 네스튜수신

개역개정,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새번역,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우리말성경,1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데 어떻게 결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금식할 것이다.

가톨릭성경,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영어NIV,15 Jesus answered, “How can the guests of the bridegroom mourn while he is with them? The time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will be taken from them; then they will fast.

영어NASB,15 And Jesus said to them, “The attendants of the bridegroom cannot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can they? But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영어MSG,15 Jesus told them, “When you’re celebrating a wedding, you don’t skimp on the cake and wine. You feast. Later you may need to pull in your belt, but not now. No one throws cold water on a friendly bonfire. This is Kingdom Come!”

영어NRSV,15 And Jesus said to them, “The wedding guests cannot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can they?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ο ιησους μη δυνανται οι υιοι του νυμφωνος πενθειν εφ οσον μετ αυτων εστιν ο νυμφιος ελευσονται δε ημεραι οταν απαρθη απ αυτων ο νυμφιος και τοτε νηστευσουσιν

라틴어Vulgate,15 et ait illis Iesus numquid possunt filii sponsi lugere quamdiu cum illis est sponsus venient autem dies cum auferetur ab eis sponsus et tunc ieiunabunt

히브리어Modern,15 ויאמר אליהם ישוע איך יוכלו בני החפה להתאבל בעוד החתן עמהם הנה ימים באים ולקח מאתם החתן ואז יצומו׃

성 경: [마9:15]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금식 논쟁]

󰃨 혼인집 손님들이(*, 호이 휘오이 투 뉨포노스) –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신랑방의 아들들’이란 뜻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신랑의 혼인 예식을 돕기 위해 온 친구들을 가리킨다. 유대 사회에서 결혼 잔치는 7일간 계속되는데 이 사람들은 결혼 마지막 날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장인(丈人)의 집에 갈 때 신랑과 함께 동행하는 들러리였다. 한편 세례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에 비긴 반면 예수는 ‘신랑’으로 생각한 바가 있다(요 3:29). 따라서 본문의 요한의 제자들은 신랑에 대한 예수의 비유 설명을 듣고는 자기들의 스승인 요한의 말을 상기했을 것이며 다른 누구보다 예수의 말씀을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 예수의 이 질문은 혼인집 손님들과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슬퍼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전제하고 있다. 실로 예수는 신랑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는 손님들로서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그들은 기뻐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있는 동안 슬픔의 금식을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모양이 좋지 못한 것이다. 한편 구약에는 곳곳에서 하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고 있으며(사 54:5, 6; 62:4, 5; 호 2:16-20), 특별히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도래 또는 메시야의 잔치와 관련된 비유에서 종종 이 ‘신랑’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메시야적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예수는 이 대답을 통해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종말의 날에 오실 신랑, 곧 메시야이며 따라서 그 예언된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계신다. 한편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사이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로 비유한다(25:1; 고후 11:2; 엡 5:32).

󰃨 신랑을 빼앗길 날 –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게 될 것임을 가리킨 표현이다. 7일 동안 계속되는 잔치 기간에는 설사 그 중에 금식일이 끼여 있다고 해도 금식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잔치 기간이 끝나기 전날 신랑을 떠나 보내고 난 후에는 금식해야 했던 것으로서 영적 신랑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제자들은 그때부터 당연히 슬픔에 빠져 금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만약 예수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나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한다고 한다면 예수의 오신 목적, 즉 병든 자에게 치유함을 얻게 하고 갇힌 자에게 자유함을 주려는 그 목적이 퇴색할 우려가 있고 또 마치 그리스도의 오심이 어떤 큰 재앙이나 불러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식할 때가 있으리니 그때는 바로 신랑되신 주님을 잃게될 때인 것이다.

우데이스 데 에피발레이 에피블레마 라쿠스 아그나푸 에피 히마티오 팔라이오 아이레이 가르 토 플레로마 아우투 아포 투 히마티우 카이 케이론 스키스마 기네타이

개역개정,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번역,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그 옷을 당겨서, 더욱더 크게 찢어진다.

우리말성경,16 낡은 옷에 새로운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천 조각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 더 찢어지게 된다.

가톨릭성경,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영어NIV,16 “No one sew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for the patch will pull away from the garment, making the tear worse.

영어NASB,16 “But no one put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for the patch pulls away from the garment, and a worse tear results.

영어MSG,16 He went on, “No one cuts up a fine silk scarf to patch old work clothes; you want fabrics that match.

영어NRSV,16 No one sews a piece of unshrunk cloth on an old cloak, for the patch pulls away from the cloak, and a worse tear is mad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δεις δε επιβαλλει επιβλημα ρακους αγναφου επι ιματιω παλαιω αιρει γαρ το πληρωμα αυτου απο του ιματιου και χειρον σχισμα γινεται

라틴어Vulgate,16 nemo autem inmittit commissuram panni rudis in vestimentum vetus tollit enim plenitudinem eius a vestimento et peior scissura fit

히브리어Modern,16 אין משים מטלית חדשה על שמלה בלה כי תנתק מלאתו מן השמלה ותרע הקריעה׃

성 경: [마9:16]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금식 논쟁]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 왜 금식하지 않는가고 묻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두번째 예화이다. 누가는 이 예화를 비유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눅 5:36). 생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나포스'(*)는 한 번도 세탁이 된 적이 없는 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을 물에다 빨아 말리면 줄어든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생베를 여러 번 세탁이 된 적이 있고 또 올이 낡은 베에다 대고 기울 경우 생베는 오그라들어 낡은 옷을 잡아당김으로써 기운 효과가 전혀 없고 오히려 그 헤어짐을 더할 뿐인 것이다. 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옛 종교인 유대교 이식에 접붙여질 경우 유대교 의식은 마치 낡은 옷처럼 이 새로운 복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고 말 것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의 교리는 많은 금식과 금욕주의적 의식들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예수의 새 복음과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예수의 새 교리들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교리들을 비교하면 할수록 바리새인들의 교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데 발루신 오이논 네온 에이스 아스쿠스 팔라이우스 에이 데 메 게 레그뉜타이 호이 아스코이 카이 호 오이노스 엨케이타이 카이 호이 아스코이 아폴륀타이 알라 발루신 오이논 네온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 카이 암포테로이 쉰테룬타이

개역개정,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새번역,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우리말성경,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된다. 그러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전된다.”

가톨릭성경,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영어NIV,17 Neither do men pour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they do, the skins will burst,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No, they pour new wine into new wineskins, and both are preserved.”

영어NASB,17 “Nor do people put new wine into old wineskins; otherwise the wineskins burst, and the wine pours out and the wineskins are ruined; but they put new wine into fresh wineskins, and both are preserved.”

영어MSG,17 And you don’t put your wine in cracked bottles.”

영어NRSV,17 Neither is new wine put into old wineskins; otherwise, the skins burst, and the wine is spilled, and the skins are destroyed; but new wine is put into fresh wineskins, and so both are preserve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υδε βαλλουσιν οινον νεον εις ασκους παλαιους ει δε μηγε ρηγνυνται οι ασκοι και ο οινος εκχειται και οι ασκοι απολουνται αλλα βαλλουσιν οινον νεον εις ασκους καινους και αμφοτερα συντηρουνται

라틴어Vulgate,17 neque mittunt vinum novum in utres veteres alioquin rumpuntur utres et vinum effunditur et utres pereunt sed vinum novum in utres novos mittunt et ambo conservantur

히브리어Modern,17 ואין נותנים יין חדש בנאדות בלים פן יבקעו הנאדות והיין ישפך והנאדות יאבדו אבל נותנים את היין החדש בנאדות חדשים ושניהם יחדו ישמרו׃

성 경: [마9:17]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금식 논쟁]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 이 구절은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세번째 답변이다. 내용상 이 세번째 예화는 두번째 예화와 댓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가죽 부대라고 하는 것은 양이나 염소 등의 가죽을 통채로 벗겨낸 후 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다시 기워 그 안에다 액체를 담아 놓는 데 사용된 용기이다. 근동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가죽 부대가 아직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가 낡아 튼튼하지 못할 경우 거기다 새 술을 담아두면, 새 술에서 생겨나는 발효력을 감당치 못해 신축성이 없는 이 낡은 가죽 부대는 반드시 터져버리고 만다. 따라서 급격한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새 술을 담아둘 경우에는 반드시 새로 만든 가죽 부대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 말은 예수의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공존할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어리석게도 배합하려고 한다면 하나는 파괴되고 만다는 뜻으로서 금식과 같은 생명력이 약한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에 생명력이 충만한 예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옛 언약은 새 언약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 새 언약은 옛 언약에 대한 완성이자 그 최종 목적인 것이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여기서 먼저 ‘포도주’를 수식하는 ‘새'(*,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으로 가장 최근에 제조된 포도주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둘째번의 ‘새'(*,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로 가죽 상태가 전혀 훼손되지 않고 매우 양호함을 나타낸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지금 새로이 시작되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나라는 형식과 전통의 종교인 유대교가 아닌 새로운 조직 속에 부어 넣어져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혹자는 이러한 새로운 조직을 교회라고 보기도 한다(16:18; 18:17).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예수의 교훈과 구약의 율법은 전혀 관계 없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견해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태는 계속해서 구약과 예수의 가르침을 연관시키면서 예수의 사역이란 바로 율법과 예언의 성취임을 입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16, 17절에 언급되고 있는 이 두 비유는 시각에 따라서는 금식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있으나, 예수의 새로운 교훈이 금식과 같은 유대주의적 의식에 맞게 변형될 수 없으며 또한 그 전통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질서인 점을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금식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인 대답인 것이다.

타우타 아우투 랄룬토스 아우토이스 이두 아르콘 헤이스 엘돈 프로세퀴네이 아우토 레곤 호티 헤 뒤가테르 무 아르티 에텔류테센 알라 엘돈 에피데스 텐 케이라 수 엪 아우텐 카이 제세타이

개역개정,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새번역,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갑자기 회당장 한 사람이 와서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시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8 While he was saying this, a ruler came and knelt before him and said,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put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영어NASB,18 While He was saying these things to them, a synagogue official came and bowed down before Him, and said,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lay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영어MSG,18 As he finished saying this, a local official appeared, bowed politely, and said, “My daughter has just now died. If you come and touch her, she will live.”

영어NRSV,18 While he was saying these things to them, suddenly a leader of the synagogue came in and knelt before him, saying,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lay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헬라어신약Stephanos,18 ταυτα αυτου λαλουντος αυτοις ιδου αρχων ελθων προσεκυνει αυτω λεγων οτι η θυγατηρ μου αρτι ετελευτησεν αλλα ελθων επιθες την χειρα σου επ αυτην και ζησεται

라틴어Vulgate,18 haec illo loquente ad eos ecce princeps unus accessit et adorabat eum dicens filia mea modo defuncta est sed veni inpone manum super eam et vivet

히브리어Modern,18 ויהי הוא מדבר אליהם את אלה והנה אחד השרים בא וישתחו לו ויאמר עתה זה מתה בתי בא נא ושים את ידך עליה ותחיה׃

성 경: [마9:18]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혈루증 앓는 여인의 신앙]

󰃨 이 말씀을 하실 때에 – 마태는 이 사건을 예수께서 마태의 잔치에 참석하신 사건(9-17절)과 직결시키고 있으나 마가는 예수가 바닷가에 계실 때 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막 5:21). 또한 마가와 누가는 이 사건을 마태의 잔치와 연결시키지 않고 앞에서 지적된 바 있는 가다라 지방(또는 거라사인의 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다. 반면에 마태의 잔치 이야기는 세 복음서 모두 중풍병자를 고친 사건 다음에 기록되고 있다.

󰃨 한 직원이 와서 – 여기서 ‘직원'(*, 아르콘)은 통치자, 또는 지배자라는 뜻으로서 어떤 관직이나 종교 기관의 장급 인사를 일컫는다. 마가와 누가는 이 사람을 회당장 ‘야이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유대 회다(synagogue)에는 몇 사람의 관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회당 건물의 유지.보존과 운용 및 회당 예배의 질서와 신성함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눅 13:14). 본문의 이 직원은 아마 가버나움에 있던 한 회당의 회당 감독이거나 회당장이었던 것 같다(막 5:22; 눅 8:41 참조).

󰃨 절하고 – 원뜻은 ‘무릎을 꿇고’로서 예수 앞에 무릎을 꿇어 존경과 깊은 경의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8:2)

󰃨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 누가는 이 직원의 딸이 그의 무남독녀였으며 나이가 12살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마가와 누가는 그의 딸이 죽기 직전에 있었으며 그후 그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회당장의 집에서 보냄받은 사람들이 알려왔다고 밝히고 있다. 마태는 이 두 사건을 결합하여 상세한 과정을 생략한 채 예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는가를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Broadus). 뿐만 아니라 ‘방장 죽었사오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티 에테류테센’ (*)은 반드시 ‘죽어 있다’는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죽으려고 한다’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람이 예수께 와서 ‘내 딸이 너무나 아픈 나머지 지금쯤은 죽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셔서…손을 얹으소서 – 선지자들은 은혜를 빌기 위해 병자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적인 관례였다. 이는 권위의 부여, 인격적인 관계성 설정, 생명과 축복의 전달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담은 행위이다(출 29:1-37 강해, ‘안수에 대하여’ 참조). 아마 예수께서는 본 사건 이외에도 다른 병자들에게 손을 얹었던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 회당장은 그 사실을 목격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 그러면 살겠나이다 – 이는 그 회당장의 믿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여태까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기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몸에 주의 손을 얹으면 살겠다고 하는 믿음은 백부장의 믿음(8:8)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카이 에게르데이스 호 예수스 에콜루데센 아우토 카이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개역개정,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새번역,19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우리말성경,19 예수께서 일어나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뒤따랐습니다.

가톨릭성경,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영어NIV,19 Jesus got up and went with him, and so did his disciples.

영어NASB,19 Jesus got up and began to follow him, and so did His disciples.

영어MSG,19 Jesus got up and went with him, his disciples following along.

영어NRSV,19 And Jesus got up and followed him, with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ι εγερθεις ο ιησους ηκολουθησεν αυτω και οι μαθητα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9 et surgens Iesus sequebatur eum et discipuli eius

히브리어Modern,19 ויקם ישוע וילך אחריו הוא ותלמידיו׃

성 경: [마9:19]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혈루증 앓는 여인의 신앙]

󰃨 일어나 따라 가시매 – 예수는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장소에 방해받지 않으시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간청하는 자의 요구에 따라 즉각 응답하여 따라가서 죽은 자가 있는 곳으로 가셨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한 영혼의 구원 문제가 달려 있다면 어떠한 위험과 고통도 무릎쓰고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일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이로'(*)는 전후 문맥상 식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카이 이두 귀네 하이모르로우사 도데카 에테 프로셀두사 오피스덴 헾사토 투 크라스페두 투 히마티우 아우투

개역개정,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새번역,20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우리말성경,20 바로 그때,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예수 뒤로 다가와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가톨릭성경,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영어NIV,20 Just then a woman who had been subject to bleeding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edge of his cloak.

영어NASB,20 And a woman who had been suffering from a hemorrhage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fringe of His cloak;

영어MSG,20 Just then a woman who had hemorrhaged for twelve years slipped in from behind and lightly touched his robe.

영어NRSV,20 Then suddenly a woman who had been suffering from hemorrhages for twelve years came up behind him and touched the fringe of his cloak,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ιδου γυνη αιμορροουσα δωδεκα ετη προσελθουσα οπισθεν ηψατο του κρασπεδου του ιματιου αυτου

라틴어Vulgate,20 et ecce mulier quae sanguinis fluxum patiebatur duodecim annis accessit retro et tetigit fimbriam vestimenti eius

히브리어Modern,20 והנה אשה זבת דם שתים עשרה שנה נגשה מאחריו ותגע בציצת בגדו׃

성 경: [마9:20]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혈루증 앓는 여인의 신앙]

󰃨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 본문에는 번역되지 않고 있는 ‘카이 이두’ (*)라는 감탄사가 본절의 앞 부분에 기록되고 있다. 따라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이 여인을 소개하며 이 여인에게로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혈루증이란 질병을 육체적으로 뿐아니라 의식적으로 매우 불결한 것으로 여겨 공동체 생활에서 그 환자들을 격리시켰다(레 15:25). 마가는 이 여자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증하였졌던 차에”(막 5:26)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그녀의 투병 기간이 ’12’년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기나긴 세월이었다. 더욱이 히브리인들의 숫자 개념으로 ’12’는 완전수인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성취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녀는 예수의 영광스런 치유 사역에 의해 치료되기까지 철저하고도 완벽한 고난을 순간들을 보냈음을 암시한다.

󰃨 예수의 뒤로 와서 – 이 여자는 12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자기 질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허비하며 애써왔지만 결국 병을 고치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질병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예수의 뒤로 가서 예수의 옷자락 만이라도 만져보면 나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 그 겉옷 가를 만지니 – 여기서 ‘겉옷 가'(*, 크라스페돈)는 ‘옷의 가장자리'(edge) 또는 ‘술'(tassel)로서, 이 ‘술’은 히브리어로 ‘치치트’ (*)라 부르며 겉옷의 네 모퉁이에 단청색 내지는 보라색의 장식을 가리킨다(민 15:37; 신 22: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이 술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었다(민 15:38, 39). 예수께서는 한 때 이 ‘술’의 형식화 현상에 대해 비판하시기도 하셨지만(23:5), 그 역시 율법의 가르침대로 그러한 장식이 있는 옷을 입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여인은 예수의 옷에 장식되어 붙어 있는 바로 이 옷가의 술을 만지려고 하였던 것이다.

엘레겐 가르 엔 헤아우테 에안 모논 핲소마이 투 히마티우 아우투 소데소마이

개역개정,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새번역,21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했던 것이다.

우리말성경,21 여인은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영어NIV,21 She said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healed.”

영어NASB,21 for she was saying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garment, I will get well.”

영어MSG,21 She was thinking to herself, “If I can just put a finger on his robe, I’ll get well.” Jesus turned–caught her at it. Then he reassured her: “Courage, daughter. You took a risk of faith, and now you’re well.”

영어NRSV,21 for she said to herself,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made well.”

헬라어신약Stephanos,21 ελεγεν γαρ εν εαυτη εαν μονον αψωμαι του ιματιου αυτου σωθησομαι

라틴어Vulgate,21 dicebat enim intra se si tetigero tantum vestimentum eius salva ero

히브리어Modern,21 כי אמרה בלבה אך אם אגע בבגדו אושע׃

성 경: [마9:21]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혈루증 앓는 여인의 신앙]

󰃨 그 겉옷만 만져도 – 그녀의 믿음이 위대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녀는 예수의 만져주심을 받은 사람들의 병이 치료받았다는 것을 알고, 역으로 생각하여 자기가 예수의 겉옷만을 만져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병이 나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반드시 실제적으로 접촉을 해야만이 나을 수 있다는, 다소 미신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믿음은 완전한 것이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 구원을 받겠다 – 구원이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건짐받는 것이다. 이 여인에게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질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었다.

호 데 예수스 스트라페이스 카이 이돈 아우텐 에이펜 다르세이 뒤가테르 헤 피스티스 수 세소켄 세 카이 에소데 헤 귀네 아포 테스 호라스 에케이네스

개역개정,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새번역,22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우리말성경,22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인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그 순간 여인은 병이 나았습니다.

가톨릭성경,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영어NIV,22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영어NASB,22 But Jesus turning and seeing her said, “Daughter, take courage;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At once the woman was made well.

영어MSG,22 The woman was well from then on.

영어NRSV,22 Jesus turned, and seeing her he said, “Take heart,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And instantly the woman was made well.

헬라어신약Stephanos,22 ο δε ιησους επιστραφεις και ιδων αυτην ειπεν θαρσει θυγατερ η πιστις σου σεσωκεν σε και εσωθη η γυνη απο της ωρας εκεινης

라틴어Vulgate,22 at Iesus conversus et videns eam dixit confide filia fides tua te salvam fecit et salva facta est mulier ex illa hora

히브리어Modern,22 ויפן ישוע וירא אותה ויאמר חזקי בתי אמונתך הושיעה לך ותושע האשה מן השעה ההיא׃

성 경: [마9:22]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혈루증 앓는 여인의 신앙]

󰃨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 마가는 예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 사실과 이 여자가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 앞에 나와 모든 일을 고백하는 장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막 5:30-33). 그렇다면 마태는 이 사건을 왜 이렇게 간단히 축약했는가? (1) 짧은 기사가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다(Hill). (2) 마태는 자신에게 가장 관심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마태는 시간적 순서보다는 주제별로 사건을 결합시켜 놓고 있기 때문에 (2)의 견해가 타당한 것 같다.

󰃨 딸아 – 이 말은 중풍병자를 보고 ‘소자야'(2절)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한 여자에 대한 애칭이다.

󰃨 안심하라(*, 다르세이) –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무서워 말라’, ‘용기를 내라’란 뜻으로서 예수께서 이미 그 여자의 절박한 상황을 인지하고 계셨을 뿐 아니라 완전한 치료까지를 염두에 두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주께서는 ‘담대하라'(안식하라)고 격려하신 일이 있다(행 23:11). 뿐만 아니라 예수는 중풍병자에게도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절)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주는 자이심을 볼 수가 있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그 여인이 왼치된 것은 예수의 옷 가를 만져서(주술적 방법)가 아니라 예수께 대한 믿음, 곧 전능자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녀는 회복될 수가 있었다. 그녀의 질병을 치유한 것은 예수의 능력이었지만 그녀가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죄인들의 영적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님이 자신의 죄를 치유해 주실 수 있고 또 치유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질 때 죄인은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다.

󰃨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 예수가 말씀 하시는 그 순간에 그녀의 병이 고침받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이 예수를 만나 그 시(時)에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마가의 평행 구절에 의하면 이 여자가 예수의 옷 가를 만지자마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병이 나았음을 밝히고 있다(막 5:27-29). 부연컨대, 구원은 믿음과 더불어 주어지며 믿지 않는 자는 어떠한 선행이 있다하더라도 구원함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함을 베푸는 능력이 아니라 구원함을 받는 도구임을 주목해야 한다.

카이 엘돈 호 예수스 에이스 텐 오이키안 투 아르콘토스 카이 이돈 투스 아울레타스 카이 톤 오클론 도뤼부메논

개역개정,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새번역,23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우리말성경,23 예수께서 그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피리 부는 사람들과 곡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가톨릭성경,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영어NIV,23 When Jesus entered the ruler’s house and saw the flute players and the noisy crowd,

영어NASB,23 When Jesus came into the official’s house, and saw the flute-players and the crowd in noisy disorder,

영어MSG,23 By now they had arrived at the house of the town official, and pushed their way through the gossips looking for a story and the neighbors bringing in casseroles.

영어NRSV,23 When Jesus came to the leader’s house and saw the flute players and the crowd making a commotion,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ελθων ο ιησους εις την οικιαν του αρχοντος και ιδων τους αυλητας και τον οχλον θορυβουμενον

라틴어Vulgate,23 et cum venisset Iesus in domum principis et vidisset tibicines et turbam tumultuantem

히브리어Modern,23 ויבא ישוע אל בית השר וירא את המחללים בחלילים ואת העם ההומה ויאמר׃

성 경: [마9:23]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죽은 소녀를 살리심]

󰃨 피리 부는 자들 – 유대인 풍속에 따르면(대하 35:25) 사람이 죽었을 경우 피리부는 자들을 고용해서(잔치 자리에도 종종 초청함, 계 18:22) 떠들게 하여 슬픔의 극한을 표현했다. 이는 빈부와 귀천을 불문하고 당연히 베풀어져야 하는 관습으로서,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의 규범서라 할 수 있는 ‘미쉬나'(Mishna)에는 아무리 미천한 자일지라도 죽은 자를 위해 2명의 피리부는 자와 1명의 애곡하는 자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Lightfoot). 한편 예레미야는 모압과 길헤레스 사람들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피리같이 소리하리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이것 역시 장례식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다(렘 48:36). 그리고 유대인 뿐만 아니라 그리이스인들과 로마인들도 사람이 죽었을 경우 사람을 고용해서 슬픔을 애도하였다.

󰃨 훤화하는 무리 – 여기서 ‘훤화하는'(*, 도뤼부메논)이란 ‘소동을 일으키다’, ‘애곡하다’는 뜻으로 상당히 곡하는 소리가 크고 소란스러웠다는 점을 암시한다(행 17:5). 아마 이들도 역시 피리부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인(故人)을 애도하기 위해 고용된 무리로서 이들은 곡을 했던 것 같다. 한편 이러한 고용 인원 외에 그 슬픔당한 집을 위로하기 위해 모여든 자, 술과 고기를 얻어 먹기 위해 모여든 자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흔재(痕在)하여 더욱 소란스러웠을 것이다(Bruce). 이런 풍습은 오늘날, 중근동 지방의 원주민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엘레겐 아나코레이테 우 가르 아페다넨 토 코라시온 알라 카듀데이 카이 카테겔론 아우투

개역개정,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새번역,24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우리말성경,2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러가라.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가톨릭성경,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영어NIV,24 he said, “Go away. The girl is not dead but asleep.” But they laughed at him.

영어NASB,24 He said, “Leave; for the girl has not died, but is asleep.” And they began laughing at Him.

영어MSG,24 Jesus was abrupt: “Clear out! This girl isn’t dead. She’s sleeping.” They told him he didn’t know what he was talking about.

영어NRSV,24 he said, “Go away; for the girl is not dead but sleeping.” And they laughed a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4 λεγει αυτοις αναχωρειτε ου γαρ απεθανεν το κορασιον αλλα καθευδει και κατεγελω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24 dicebat recedite non est enim mortua puella sed dormit et deridebant eum

히브리어Modern,24 סורו מפה כי לא מתה הילדה אך ישנה היא וישחקו לו׃

성 경: [마9:24]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죽은 소녀를 살리심]

󰃨 물러가라 – 예수의 단호한 명령으로서 그들의 애곡이 더 이상 소용없음을 나타낸다. 이는 이제 생명의 주인이신 당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give place, KJV)것이기 때문이다.

󰃨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축어적으로 이해하여 회당장의 딸이 실제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假死)상태에 있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으나(Olshausen), 이는 적절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기 전 회당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의 딸이 죽었음을 통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막 5:35; 눅 8:4).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 썬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두고 말씀하실 때도 그가 잠들었다고 하셨던 것이다(요 11:11). 따라서 이 말씀은 인간의 육체가 죽지 않고 자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죽은 것은 사실이나 사망의 권세 아래에는 놓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소녀는, 예수의 능력에 의해 정복될 수 밖에 없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기 때문에, 자던 사람이 일어나듯이 그렇게 죽음의 권세에서 일어나게 되라라는 것이다. 실로 성경에서 ‘잠’은 종종 ‘죽음’에 비견되나 절대적 절망인 ‘비존재'(nonexistence)의 상황을 일컫지는 않는다(단 12:2; 요 11:11; 고전 15:6, 18).

󰃨 저들이 비웃더라 – 이는 죽은 소녀에 대한 슬픔의 표현으로서 피리불며 곡하기 위해 왔던 자들이 예수의 인격을 모독하며 멸시하였음을 나타낸 표현이다. 특별히 ‘비웃더라'(*, 카테겔론)는 말은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한 번의 조소(嘲笑)가 아닌 계속 반복해서 추근거리며 경멸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란 흔히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좋아하지 않는 그런 진리를 비웃고 조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충실한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자기의 나아가야 할 길을 충실히 지키며 주의 사역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호테 데 엨세블레데 호 오클로스 에이셀돈 에크라테센 테스 케이로스 아우테스 카이 에게르데 토 코라시온

개역개정,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새번역,25 무리를 내보낸 다음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말성경,25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시고 방으로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가톨릭성경,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영어NIV,25 After the crowd had been put outside, he went in and took the girl by the hand, and she got up.

영어NASB,25 But when the crowd had been sent out, He entered and took her by the hand, and the girl got up.

영어MSG,25 But when Jesus had gotten rid of the crowd, he went in, took the girl’s hand, and pulled her to her feet–alive.

영어NRSV,25 But when the crowd had been put outside, he went in and took her by the hand, and the girl got up.

헬라어신약Stephanos,25 οτε δε εξεβληθη ο οχλος εισελθων εκρατησεν της χειρος αυτης και ηγερθη το κορασιον

라틴어Vulgate,25 et cum eiecta esset turba intravit et tenuit manum eius et surrexit puella

히브리어Modern,25 ויהי אחרי גרש העם ויבא הביתה ויאחז בידה ותקם הנערה׃

성 경: [마9:25]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죽은 소녀를 살리심]

󰃨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 이 무리들은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 들었다기 보다 의무감에서나 단순히 돈을 받고 울어주는데 지나지 않은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예수가 온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비웃고 야유(揶楡)하는 저속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런 비속(卑俗)하고 믿음이 없는 무리들에게는 발휘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비웃은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죄악가운데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 두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비밀에 붙이시고 믿는 자에게만 나타내시는 것이다. 한편 이때 예수께서 무리들을 다 몰아내셨으나 당신의 권능을 신뢰하던 5인의 증인들(베드로, 야고보, 요한, 아이의 양친)을 대동(accompaniment)하시고 죽음의 현장에 들어가셨다(막 5:40).

󰃨 소년의 손을 잡으시매 – 소녀의 아비인 이 직원은 예수께 손을 얹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손을 잡으시고 일으키신다. 마가는 이때 예수께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막 5:41; 눅 8:54, ‘아이야 일어나라’). 실로 예수의 손길인 것이다.

󰃨 일어나는지라 –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모든 생명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며 하나님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수가 없다. 따라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께서 이 죽은 소녀의 목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자 이 소녀는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난 것이다. 죽음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생명 뿐이다. 따라서 죽음이 점령하고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만이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줄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이 죽음 앞에서 무슨 힘을 쓸 수가 있는가? 죄와 범법(犯法)으로 죽은 영혼에게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율법 안에서 죽은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서만 영적인 생명을 회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카이 엨셀덴 헤 페메 하우테 에이스 홀렌 텐 겐 에케이넨

개역개정,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새번역,26 이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졌다.

우리말성경,26 그리고 이 소문은 그 지역 온 사방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가톨릭성경,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영어NIV,26 News of this spread through all that region.

영어NASB,26 This news spread throughout all that land.

영어MSG,26 The news was soon out, and traveled throughout the region.

영어NRSV,26 And the report of this spread throughout that district.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εξηλθεν η φημη αυτη εις ολην την γην εκεινην

라틴어Vulgate,26 et exiit fama haec in universam terram illam

히브리어Modern,26 ותצא השמועה הזאת בכל הארץ ההיא׃

성 경: [마9:26]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죽은 소녀를 살리심]

󰃨 그 소문이 – 예수께서는 자신의 이적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전능하고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서 발휘되고 있는 그 사역은 온 사방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 온 땅’이란 저자 마태의 시각이 항상 성지 예루살렘을 중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팔레스틴의 남쪽 지역으로 볼 수 있다(Nosgen). 한편 예수께서 가능하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은 데서 우리는 복음만을 나타내고자 하는 성공적인 복음 전파자의 모습을 배워야 하며, 또한 하나님만이 영광을 자신에게로 돌릴 능력과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편 마가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경계하여 이 이적의 소문을 퍼뜨리지 말 것과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취지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이같이 비밀을 요구하신 것 역시 믿지 않는 패역한 무리를 고려하사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카이 파라곤티 에게이덴 토 예수 에콜루데산 아우토 뒤오 튀플로이 크라존테스 카이 레곤테스 엘레에손 헤마스 휘오스 다윋

개역개정,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새번역,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 왔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예수를’이 없음

우리말성경,27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는데 눈먼 두 사람이 예수를 따라오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가톨릭성경,27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영어NIV,27 As Jesus went on from there, two blind men followed him, calling out,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

영어NASB,27 As Jesus went on from there, two blind men followed Him, crying out,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

영어MSG,27 As Jesus left the house, he was followed by two blind men crying out, “Mercy, Son of David! Mercy on us!”

영어NRSV,27 As Jesus went on from there, two blind men followed him, crying loudly,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παραγοντι εκειθεν τω ιησου ηκολουθησαν αυτω δυο τυφλοι κραζοντες και λεγοντες ελεησον ημας υιε δαβιδ

라틴어Vulgate,27 et transeunte inde Iesu secuti sunt eum duo caeci clamantes et dicentes miserere nostri Fili David

히브리어Modern,27 ויעבר ישוע משם וילכו אחריו שני אנשים עורים והמה צעקעם ואמרים חננו בן דוד׃

성 경: [마9:27]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두 소경의 치유]

󰃨 거기서 떠나 가실새 – 예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후 그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 절(28절)에 언급된 ‘집’이란 말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거처가 아니면 다시 마태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 두 소경이 – 복음서에는 소경이 치유함을 받고 눈을 뜨는 장면이 가끔 나타난다(20:29-34; 막 10:46-52; 눅 18:35-43; 요 9장). 그런데 마태복음 후반부(20:29-34)에 등장하는 소경 치유 기적은 바디메오라는 소경에게 발생한 것으로서 막 10:46-52과 눅 18:35-43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문의 소경 치유 사건과 요한 9장의 실로암 사건과는 각기 별개의 사건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팔레스틴 지방에는 동쪽으로부터의 극심한 모래 바람과 거기에다 지면에 수분이 늘 부족한 관계로 일어나는 석회석의 먼지 등으로 인해 소경 및 안질환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 다윗의 자손이여 – 유대인들은 이 말을 메시야에 대한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1:1 주석 참조). 그런데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 호칭으로 불리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사야는 메시야 시대의 특징을 지적하면서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이하)라고 예언한 바 있는데 진정 메시야라면 이사야의 예언과도 같이 자기들의 눈을 밝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서 두 가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1) 이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일 것이라는 견해를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으며(요 7:42), (2) 예수는 유대인들로부터 다윗의 줄기에서 나온 분임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12:23)라고 하는 점이다.

󰃨 불쌍히 여기소서 – 이 말은 이 두 소경이 자기들에게는 메시야의 은혜를 입어 구원함을 받을만한 공적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 표현으로서 우리는 이 말을 통해 그들이 비록 육신의 눈은 멀어 앞을 보지 못하지만 영적인 눈은 메시야를 식별하고 있었으며, 또 이렇기 때문에 이미 하늘의 빛을 어느정도나마 감지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엘돈티 데 에이스 텐 오이키안 프로셀돈 아우톤 호이 튀플로이 카이 레게이 아우토이스 호 예수스 피스튜에테 호티 뒤나마이 투토 포이에사이 레구신 아우토 나이 퀴리에

개역개정,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새번역,28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눈 먼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우리말성경,28 예수께서 어떤 집으로 들어가시자 눈먼 사람들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가톨릭성경,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28 When he had gone indoors, the blind men came to him, and he asked them, “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 “Yes, Lord,” they replied.

영어NASB,28 When He entered the house, the blind men came up to Him, and Jesus said to them, “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 They said to Him, “Yes, Lord.”

영어MSG,28 When Jesus got home, the blind men went in with him. Jesus said to them, “Do you really believe I can do this?” They said, “Why, yes, Master!”

영어NRSV,28 When he entered the house, the blind men came to him; and Jesus said to them, “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 They said to him, “Yes,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λθοντι δε εις την οικιαν προσηλθον αυτω οι τυφλοι και λεγει αυτοις ο ιησους πιστευετε οτι δυναμαι τουτο ποιησαι λεγουσιν αυτω ναι κυριε

라틴어Vulgate,28 cum autem venisset domum accesserunt ad eum caeci et dicit eis Iesus creditis quia possum hoc facere vobis dicunt ei utique Domine

히브리어Modern,28 וכבואו הביתה נגשו אליו העורים ויאמר אליהם ישוע המאמינים אתם כי יש לאל ידי לעשות זאת ויאמרו אליו כן אדנינו׃

성 경: [마9:28]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두 소경의 치유]

󰃨 집에 – 이 곳은 마태의 집이거나 아니면 가버나움의 거처 또는 베드로의 집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 두 소경들은 그동안 계속 예수를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인 참된 메시야임을 믿고 끝까지 자비를 구하며 열심히 예수를 따랐던 것이다. 아마 이때 예수께서 끈질긴 그들의 호소에도 침묵하고 집 안까지 들어오신 것은 일반인들에게 정치적 해방자로 오해될 여지가 있는 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내가…할 줄을 믿느냐 – 소경들이 더듬거리며 또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계속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집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그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하셨는데, 이는 일반인들의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억누르기 위한 조치(措置)이기도 했거니와 소경들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내가’라는 말을 특징적으로 사용하심으로써 소경들에게 자신의 능력, 인격, 권위를 모두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암시적 질문을 하신 것이다.

󰃨 주여 그러하오이다 – 이들은 예수가 소경의 눈을 뜨게할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임을 진실로 믿었던 것이다. 영적 의미에서 우리 역시 이 같은 소경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우리는 (1)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은혜를 믿는 살아있는 믿음과 (2) 이 은혜를 받아 누리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부르짖음 (3)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얻게된 구원에 대한 확고한 인식 등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토테 헾사토 톤 옾달몬 아우톤 레곤 카타 텐 피스틴 휘몬 게네데토 휘민

개역개정,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새번역,29 예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우리말성경,29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가톨릭성경,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영어NIV,29 Then he touched their eyes and said, “According to your faith will it be done to you”;

영어NASB,29 Then He touched their eyes, saying, “It shall be done to you according to your faith.”

영어MSG,29 He touched their eyes and said, “Become what you believe.”

영어NRSV,29 Then he touched their eyes and said, “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done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9 τοτε ηψατο των οφθαλμων αυτων λεγων κατα την πιστιν υμων γενηθητω υμιν

라틴어Vulgate,29 tunc tetigit oculos eorum dicens secundum fidem vestram fiat vobis

히브리어Modern,29 ויגע בעיניהם ויאמר יעשה לכם כאמונתכם׃

성 경: [마9:29]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두 소경의 치유]

󰃨 저희 눈을 만지시며 – 이 같은 행동은 병을 치유하는 수단이 아니라 신앙을 북돋우어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깃든 행위였던 것 같다(8:3). 왜냐하면 이들에 대한 치료는 예수의 권세 있는 말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너희 믿음대로(*, 카타 테 피스틴 휘몬) – 문자적으로 ‘너희 믿음에 따라’ 인데, 소경들의 ‘믿음의 정도에 비례해서’란 의미보다는 ‘믿고 바라는 바대로’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8:13).

카이 에네오크데산 아우톤 호이 옾달모이 카이 에네브리메데 아우토이스 호 예수스 레곤 호가테 메데이스 기노스케토

개역개정,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새번역,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다짐하셨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우리말성경,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엄히 당부하셨습니다. “이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가톨릭성경,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영어NIV,30 and their sight was restored. Jesus warned them sternly, “See that no one knows about this.”

영어NASB,30 And their eyes were opened. And Jesus sternly warned them: “See that no one knows about this!”

영어MSG,30 It happened. They saw. Then Jesus became very stern. “Don’t let a soul know how this happened.”

영어NRSV,30 And their eyes were opened. Then Jesus sternly ordered them, “See that no one knows of this.”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ανεωχθησαν αυτων οι οφθαλμοι και ενεβριμησατο αυτοις ο ιησους λεγων ορατε μηδεις γινωσκετω

라틴어Vulgate,30 et aperti sunt oculi illorum et comminatus est illis Iesus dicens videte ne quis sciat

히브리어Modern,30 ותפקחנה עיניהם ויגער בם ישוע ויאמר ראו פן יודע לאיש׃

성 경: [마9:30]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두 소경의 치유]

󰃨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 예수의 권세있는 말씀에 의해 그들이 가장 소망하던 바 눈이 밝아졌다. 그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은 그들이 눈을 뜰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분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들이 믿고 바라는 바대로 그들에게 눈을 뜰 수 있도록 허락하신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실로 예수를 영.육의 온전한 구원자이신 메시야로 인식하는 자에게 그의 도래로 인해 실현된 축복의 약속(사 35:5, 6)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다.

󰃨 엄히 경계하시되(*, 에네브리메데 아우토이스) – 이는 다소 격렬한 감정적 요소가 있는 자에게 대한 경고의 말을 할 때 사용된 용어이다(단 11:30; 막 1:43; 요 11:33, 38). 한편 이 당시 유대인들은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기 조국을 독립시켜줄 정치적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그릇된 메시야관을 가진 대중들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메시야 이적을 발설치 못하도록 밝은 세계를 이제 막 봄으로써 환희에 들떠 있던 소경들에게 엄히 경고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군중들로부터 메시야 추대(推戴)를 받는 것이 그가 이 땅에 온 진정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이 데 엨셀돈테스 디에페미산 아우톤 엔 홀레 테 게 에케이네

개역개정,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새번역,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지역에 퍼뜨렸다.

우리말성경,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께 대한 소문을 그 지역 온 사방에 퍼뜨렸습니다.

가톨릭성경,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영어NIV,31 But they went out and spread the news about him all over that region.

영어NASB,31 But they went out and spread the news about Him throughout all that land.

영어MSG,31 But they were hardly out the door before they started blabbing it to everyone they met.

영어NRSV,31 But they went away and spread the news about him throughout that district.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ι δε εξελθοντες διεφημισαν αυτον εν ολη τη γη εκεινη

라틴어Vulgate,31 illi autem exeuntes diffamaverunt eum in tota terra illa

히브리어Modern,31 והמה בצאתם השמיעו את שמעו בכל הארץ ההיא׃

성 경: [마9:31]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두 소경의 치유]

󰃨 나가서…전파하니라 –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나은 것이다(삼상 15:22). 따라서 눈을 뜬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침묵을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아마 이 놀라운 사건을 당하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예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선전하고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발설하였던 것 같다. 인간의 지혜란 것은 이렇게 어리석기 마련인 것이다(Calvin).

아우톤 데 엨세르코메논 이두 프로세넹칸 아우토 안드로폰 코폰 다이모니조메논

개역개정,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새번역,32 그들이 떠나간 뒤에, 귀신이 들려 말 못하는 한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께 데리고 왔다.

우리말성경,32 그들이 떠나간 뒤 사람들이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가톨릭성경,32 그들이 나간 뒤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영어NIV,32 While they were going out, a man who was demon-possessed and could not talk was brought to Jesus.

영어NASB,32 As they were going out, a mute, demon-possessed man was brought to Him.

영어MSG,32 Right after that, as the blind men were leaving, a man who had been struck speechless by an evil spirit was brought to Jesus.

영어NRSV,32 After they had gone away, a demoniac who was mute was brought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2 αυτων δε εξερχομενων ιδου προσηνεγκαν αυτω ανθρωπον κωφον δαιμονιζομενον

라틴어Vulgate,32 egressis autem illis ecce obtulerunt ei hominem mutum daemonium habentem

히브리어Modern,32 המה יצאו והנה הביאו אליו איש אלם אחוז שד׃

성 경: [마9:32]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벙어리의 치유]

󰃨 저희가 나갈 때에 – 이 장면은 앞절과 연결된 것으로 소경을 고치셨던 바로 그 집에서 막 나가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킨다.

󰃨 귀신 들려 – 성경에는 귀신에 사로잡힌 중풍병자나 소경 또는 벙어리가 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즉 사단의 무리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질병이나 불구를 이용하여 침투하고는 교묘하게 자기들의 모습을 감추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이 사람의 벙어리 병이 귀신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아시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다고 종종 기록하는 신약성경의 언급들이 조잡하고 원시적인 미신에 근거한 성경 기자들의 우매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 발병과 귀신에 의한 병증을 구분할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반증해주는 것이다(막 9:14-29, 귀신들림과 축사 참조).

󰃨 벙어리 된 자(*, 코포스) – 이 말의 원어는 ‘귀머거리'(deaf), ‘벙어리'(dumb), ‘귀 먹고 말 못하는 자'(deaf-mute)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귀가 먹어 듣지 못할 경우 자연적으로 말을 배우지 못해 벙어리가 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 그리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자들 역시 벙어리 귀신에 사로잡혀 말 못하는 벙어리인 것이다.

카이 에크블레덴토스 투 다이모니우 엘랄레센 호 코포스 카이 에다우마산 호이 오클로이 레곤테스 우데포테 에파네 후토스 엔 토 이스라엘

개역개정,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새번역,33 귀신이 쫓겨나니, 말 못하는 그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 무리가 놀라서 말하였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에서 처음 보는 일이다.”

우리말성경,33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말 못했던 사람이 말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없다.”

가톨릭성경,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33 And when the demon was driven out, the man who had been mute spoke. The crowd was amazed and said, “Nothing like this has ever been seen in Israel.”

영어NASB,33 After the demon was cast out, the mute man spoke; and the crowds were amazed, and were saying, ” Nothing like this has ever been seen in Israel.”

영어MSG,33 As soon as Jesus threw the evil tormenting spirit out, the man talked away just as if he’d been talking all his life. The people were up on their feet applauding: “There’s never been anything like this in Israel!”

영어NRSV,33 And when the demon had been cast out, the one who had been mute spoke; and the crowds were amazed and said, “Never has anything like this been seen in Israel.”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εκβληθεντος του δαιμονιου ελαλησεν ο κωφος και εθαυμασαν οι οχλοι λεγοντες οτι ουδεποτε εφανη ουτως εν τω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33 et eiecto daemone locutus est mutus et miratae sunt turbae dicentes numquam paruit sic in Israhel

히브리어Modern,33 וכאשר גרש השד וידבר האלם ויתמה המון האנשים ויאמרו מעולם לא נראתה כזאת בישראל׃

성 경: [마9:33]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벙어리의 치유]

󰃨 귀신이 쫓겨나고 – 벙어리 된 자의 질병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즉 태어날 때부터 귀가 먹어 벙어리가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본문처럼 귀신들려 벙어리가 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벙어리의 원인이 귀신들린 데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므로 이 사람의 벙어리를 고치신 것이다.

󰃨 벙어리가 말하거늘 –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 때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면서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 6)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벙어리가 말하게 된 이적은 메시야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던 것이다.

󰃨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냄과 동시에 벙어리를 고치신 이적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다음 구절에 언급되는 바리새인들의 반응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부자와 학자들보다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더 쉽게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호이 데 파리사이오이 엘레곤 엔 토 아르콘티 톤 다이모니온 에크발레이 타 다이모니아

개역개정,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새번역,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는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34절이 없음

우리말성경,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가 귀신의 왕을 통해 귀신을 쫓아낸다.”

가톨릭성경,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영어NIV,34 But the Pharisees said, “It is by the prince of demons that he drives out demons.”

영어NASB,34 But the Pharisees were saying, “He casts out the demons by the ruler of the demons.”

영어MSG,34 The Pharisees were left sputtering, “Hocus pocus. It’s nothing but hocus pocus. He’s probably made a pact with the Devil.”

영어NRSV,34 But the Pharisees said, “By the ruler of the demons he casts out the demons.”

헬라어신약Stephanos,34 οι δε φαρισαιοι ελεγον εν τω αρχοντι των δαιμονιων εκβαλλει τα δαιμονια

라틴어Vulgate,34 Pharisaei autem dicebant in principe daemoniorum eicit daemones

히브리어Modern,34 והפרושים אמרו על ידי שר השדים מגרש הוא את השדים׃

성 경: [마9:34]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비방하는 바리새인들]

󰃨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 바리새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예수의 사역과 이적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야로 보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를 비난하고(9:3, 11, 24) 급기야 여기에 와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벙어리를 고치는 메시야 이적에 대해 예수께서 귀신의 왕의 힘을 빌었다고 극단적인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 부분은 이후의 예수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특히 10:16-28의 배경이 된다.

󰃨 귀신의 왕 – 귀신들의 괴수, 곧 사단을 지칭하는 말로서(4:1-11, 사단과 귀신)이는 바알세불을 가리킨 것이다(10:25; 12:24 참조).

󰃨 빙자하여(*, 엔) – 이는 귀신의 왕을 ‘통하여’ 라는 뜻도 있고 귀신의 왕 ‘안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사단을 방편삼았을 뿐 아니라 그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치유했다고 하는 것이다.

󰃨 귀신을 쫓아낸다 – 이와 같은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더할 나위 없는 악의에 찬 비난이었다. 이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목수의 아들 예수를 통해 발휘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기와 질투심에 가득차 있었으며 또한 자기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일어나는 이 신비로운 메시야의 광채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이와같이 악한 사단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비록 이들 바리새인들과 같은 정도의 악한 시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죄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는 이상 이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하겠다.

카이 페리에겐 호 예수스 타스 플레이스 파사스 카이 타스 코마스 디다스콘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아우톤 카이 케뤼쏜 토 유앙겔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 카이 데라퓨온 파산 노손 카이 파산 말라키안

개역개정,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새번역,35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우리말성경,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영어NIV,35 Jesus went through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영어NASB,35 Jesus was going through all the citie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oclaim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kind of disease and every kind of sickness.

영어MSG,35 Then Jesus made a circuit of all the towns and villages. He taught in their meeting places, reported kingdom news, and healed their diseased bodies, healed their bruised and hurt lives.

영어NRSV,35 Then Jesus went about all the citie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curing every disease and every sickness.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περιηγεν ο ιησους τας πολεις πασας και τας κωμας διδασκων εν ταις συναγωγαις αυτων και κηρυσσων το ευαγγελιον της βασιλειας και θεραπευων πασαν νοσον και πασαν μαλακιαν εν τω λαω

라틴어Vulgate,35 et circumibat Iesus civitates omnes et castella docens in synagogis eorum et praedicans evangelium regni et curans omnem languorem et omnem infirmitatem

히브리어Modern,35 ויסב ישוע בכל הערים והכפרים וילמד בבתי כנסיותיהם ויבשר בשורת המלכות וירפא כל מחלה וכל מדוה בעם׃

성 경: [마9:35]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순회 사역]

󰃨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 이는 예수께서 한 곳에 정체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도 사역을 진행하셨음을 암시한다. 한편 ‘성’이란 성곽으로 둘러 싸인 비교적 큰 성읍을, ‘촌’은 성곽이 없거나 ‘성’에 영향을 받는 모든 촌락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모든’이란 수식어에는 단지 ‘성’에만 제한된다. 따라서 예수는 이때 모든 촌을 샅샅이 다니신 것이 아니라 많은 곳을 두루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마태는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예수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배경을 잠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35-38절은, 4:23-25이 첫번째 강론(5-7장)을 위한 전제였듯이, 두번째 강론(10:5-42)의 전제가 된다. 이는 시간적으로 정확히 언제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주제별 기사 배열을 자주 사용했던 마태의 기술 방식에 따른 갈릴리 사역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본문은 사도 파송(派送)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위한 준비기라 할 수 있다.

󰃨 가르치시며…고치시니라 – 이는 마태가 예수의 사역에 대해 기록한 것을 돌이켜 보고 난 다음 그것을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요약하여 정리한 부분이다. 예수는 자기를 환영하는 무리로부터 얼마든지 좋은 안식처와 훌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를 마다하고 갈릴리 전 지역을 순회하며 한 시도 무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하였다.

󰃨 천국 복음 – 이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좋은 소식임과 동시에 메시야가 도래하여 다스리라는 좋은 소식을 가리킨다. 실로 예수 자신은 곧 천국 복음의 실체였으며, 그분의 메시지는 그 복음의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 병과 모든 약한 것 – 그리스도가 임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의 임재를 나타내 주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예수는 오직 유익하고 생명을 주는 기적만을 행하셨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마찬가지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 당시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셨지만 그분의 원래 목적은 이적을 행하는 초능력자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돈 데 투스 오클루스 에스프랑크니스데 페리 아우톤 호티 에산 에스퀼메노이 카이 에르림메노이 호세이 프로바타 메 에콘타 포이메나

개역개정,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새번역,36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6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NIV,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영어NASB,36 Seeing the people, He felt compassion for them, because they were distressed and dispirited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영어MSG,36 When he looked out over the crowds, his heart broke. So confused and aimless they were, like sheep with no shepherd.

영어NRSV,36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for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헬라어신약Stephanos,36 ιδων δε τους οχλους εσπλαγχνισθη περι αυτων οτι ησαν εκλελυμενοι και ερριμμενοι ωσει προβατα μη εχοντα ποιμενα

라틴어Vulgate,36 videns autem turbas misertus est eis quia erant vexati et iacentes sicut oves non habentes pastorem

히브리어Modern,36 ובראותו את ההמנים נכמרו רחמיו עליהם כי הם מתעלפים ונדחים כצאן אשר אין להם רעה׃

성 경: [마9:36]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순회 사역]

󰃨 민망히 여기시니(*, 에스플랑크니스데) – 이 말은 창자를 뜻하는 ‘스플랑크논'(*)에서 유래하였다. 유대인들은 창자에 동정심이라든지 긍휼히 여기는 마음 등이 담겨 있다고 보았으며 이렇기 때문에 창자란 감정을 가진 기관인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서 ‘민망히 여기다’는 말의 뜻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내부의 창자에서부터 동정심이 우러나와 마음이 움직이다’로서 이 말은 격한 동정심에 대한 강조적 표현인 것이다.

󰃨 목자 없는 양 –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주 목자로 비유되어졌다(겔 34장).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삯꾼 목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의 눈에는 이들이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떼로 보였던 것이다.

󰃨 고생하며(*, 에크레뤼메노이) – 이 말의 원뜻은 ‘가죽을 벗기다’, 칼로 ‘썰다’로서 극심한 고통이나 걱정, 약탈 또는 탈진한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주로 종교적 정황을 묘사한 것으로(A.T. Robertson) 백성을 올바로 지도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백성을 괴롭히고 학대하며, 심지어 천국 입성을 방해하곤 했던(23:13)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백성들이 바리새인들의 종교 의식이나 교리 등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 유리함이라(*, 엘림메노이) – 술에 만취하거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곤두박질한 상황을 일컫는다. 이는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의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절망적 상태를 나타낸다.

토테 레게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호 멘 데리스모스 폴뤼스 호이 데 에르가타이 올리고이

개역개정,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새번역,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우리말성경,37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가톨릭성경,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영어NIV,37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영어NASB,37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영어MSG,37 “What a huge harvest!” he said to his disciples. “How few workers!

영어NRSV,37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헬라어신약Stephanos,37 τοτε λεγει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ο μεν θερισμος πολυς οι δε εργαται ολιγοι

라틴어Vulgate,37 tunc dicit discipulis suis messis quidem multa operarii autem pauci

히브리어Modern,37 אז ידבר לתלמדידיו ויאמר רב הקציר והפעלים מעטים׃

성 경: [마9:37]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일꾼의 필요성]

󰃨 추수할 것은 많되 – 이는 복음과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영혼들이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추수가 영혼 구원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13:49) 추수할 시기 곧 세상 끝과 그때 있을 심판으로 해석된다.

󰃨 일군은 적으니 – 여기서 일군이란 예수 자신, 세례 요한, 예수의 치유 이적을 경험한 산 증인들 정도의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실로 유대 지방에는 수많은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 등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곁에서 방관하는 신사들이었지 직접 나서서 추수하는 일꾼들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백성을 구원하는 참 목자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거짓 목자였기 때문에 일꾼이 부족했던 것이다.

데에데테 운 투 퀴리우 투 데리스무 호포스 에크발레 에르가타스 에이스 톤 데리스몬 아우투

개역개정,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새번역,38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우리말성경,38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추수할 들판으로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

가톨릭성경,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영어NIV,38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영어NASB,38 “Therefore beseech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영어MSG,38 On your knees and pray for harvest hands!”

영어NRSV,38 therefore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헬라어신약Stephanos,38 δεηθητε ουν του κυριου του θερισμου οπως εκβαλη εργατας εις τον θερισμ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38 rogate ergo dominum messis ut eiciat operarios in messem suam

히브리어Modern,38 לכן התחננו אל בעל הקציר לשלח פעלים לקצירו׃

성 경: [마9:38]

주제1: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

주제2: [일꾼의 필요성]

󰃨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 여기서 ‘청하여'(*, 데에데테)란 공적 간구라기 보다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간청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기도 하나 문맥상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실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하늘 일꾼을 보내달라고 친밀히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천국 일꾼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한편 여기서 ‘천국 일꾼’이란 10:1 이하에 제시되는 12제자에 국한시키는 것은 어색하다. 오히려 12제자에 구애됨 없이 많은 하늘 일꾼들로 보는 것이 좋다.

󰃨 보내어 주소서(*, 호포스 에크발레) – 이는 강제력이 동원된 상태로 밀어내 달라는 의미이다. 결국 이것은 급박한 상태에서의 절대적 요청을 나타낸다. 실로 그때나 지금이나 천국 일꾼이 시급히 필요한 때인 것이다. 또한 이 말은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일꾼은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스스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택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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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주석 | [하루 한 장] 누가복음9장_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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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4 (화) [하루 한 장]“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눅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자신의 사자로

각 성과 촌에 두루 보내시면서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을 하나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보내신 이가

그들의 삶을 책임지고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그들에게 알도록

깨닫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친히 책임을 물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까지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이 필요한

구원의 대상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부산 성민교회 분홍목사의 설교 영상들을 통해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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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주석 – Daum 카페

누가복음 제 9장 =====9:1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 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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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9/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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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누가복음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우리말성경,22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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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1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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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9장 주석

[스크랩] 누가복음 9장 주석 … (눅 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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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10/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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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982-누가복음 09장 – 네이버 블로그

매튜헨리주석982-누가복음 09장 · 1)우리는 자기부정과 인내에 익숙해져야 한다(23절). 또한 안일과 욕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 · 2)우리는 어떤 세속적인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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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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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 장 – 문제와 해답]

누가복음 9 장.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임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사도들이 행한 이 일은 예수님께서 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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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4/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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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누가복음9장_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인기 답변 …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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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taphoamini.com

Date Published: 4/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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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마가복음 09장 – HANGL NOCR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 이 말은 8:38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즉 원문에 보면 등위 접속사 카이 가 있어서 앞절에 언급한 내용과 대등한 내용이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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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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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8688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주석 – Daum 카페. 누가복음 제 9장 =====9:1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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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covadoc.vn

Date Published: 1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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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57-62절 주해 레포트 – 해피캠퍼스

Ⅰ. 서론 누가복음 9장을 하나로 묶는 소재를 굳이 찾아내자면 ‘제자’가 될 것이다. 물론 헬라 원문의 경우는 아니지만 한글개역성경의 누가복음 총 24장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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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ppycampus.com

Date Published: 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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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 옛신앙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 물론 누가복음 2장에 증거된 대로, 그는 열두 살 때에 벌써 하나님을 ‘내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oldfaith.net

Date Published: 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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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누가복음9장_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복음 9장 주석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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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020. 4. 13.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ozWbp785dM

누가복음 9장 주석

누가복음 제 9장 =====9:1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 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그 선택이 완료된 인물들이다. 예수께서 열 둘을 부르신 것은 열 두 지파에 의해 상징되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새 이스 라엘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Hendriksen). 한편 누가는 마가의 ‘부르다'(* , 프로스칼레오)라는 표현(막 6:7) 대신 ‘불러 모으다'(* , 슁칼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8:51에 있었던 잠깐 동안의 헤어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고려한 누가의 세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귀신…능력과 권세 – 마태와(마 10:1) 마가는(막 6:7)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모든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마태와 마가는 귀신의 악함에 초점을 두고 누가는 ‘모든 종류’의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 엑수시아)에 능력(* , 뒤나미스)을 첨가하고 있는데, 전 자는 합법적 권리나 권위를 나타내며 후자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와 능력이 예수 당시와 초대 교 회에도 있었던 마술사(행 19:13)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준 다. =====9:2 하나님의 나라…보내시며 – 마태에 의하면(마 9:3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동 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 라고 하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두 가지 책무를 부여받고서 파송되었다. (1)제자들 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과 인격 속에 현존함과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이기도 했다(마 6:10).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뜻을 백성 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희망 으로인해 곡해(曲解)하고는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권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4:15;마 18:1;20:21;막 11:10;15:43;14:15). 하나 님 나라의 개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막 1:15의 주제 강해 ‘하나님의 나라개념’을 참 조하라. (2)제자들은 병을 고쳐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영적인 일 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은 육적인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바 육적인 문제의 해결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짐에 주목해야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영혼의 구원에 비하여 이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질병 치유가 단순히 영혼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수 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병을 고치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전파하고'(* , 케뤼쎄인)와 ‘고치는’ (* , 이아스다이)이 대등 접속사 ‘카이'(* )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한편 제자들이 해야할 이 두가지 과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일은 다름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인데(11절;마 9:35), 이는 제 자들이 해야하는 일이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할 사도로 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9:3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 – 예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도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 하나 세부적인 항목 까지 열거하고 있다. (1)지팡이(* , 라브도스)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도(마 10:10)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으나 마가는(막 6:8) 지팡이 는 허용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ㄱ)마가는 왕하 4:29에 나오는 게하시의 경우처럼 지팡이를 스승의 권위에 대 한 상징으로 파악했다는 견해(Schurmann). 그러나 게하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스승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만약 게하시의 경우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려 면 제자들 모두가 스승인 예수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ㄴ)누가는 지팡이나 슬리퍼나 허리띠를 띠고 성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랍비적 규율을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Manson). (ㄷ)발음은 비슷하나 뜻은 서로 다른 아람어가 혼동되었다는 견해. 즉 ‘…외에’라는 뜻의 ‘ella'(엘라)와 ‘그리고…도 아닌’의 의 미를 가진 ‘wla'(웰라)를 혼동한데서 생긴 차이이다. 이 설명은 헬라어 성경 원문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ㄹ)두 복음서 기자가 서 로 다른 지팡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 즉 마가는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누가는 맹수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팡이를 각각 염두에 두었 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복음서가 모두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 ‘라브도스’를 사 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결국 이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설명은 아직 없다 하겠다. (2)가방(* , 페라)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방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일 수도 있고 동 냥 주머니일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주머니가 동냥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 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 여행 도중에 축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여행 필수품을 담는 가방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만한 물건을 소유하지 말 라는 의미에서 금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빵(* , 아르토스)도 가지고 가 지 못했다. (4)돈(* , 아르귀리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스스로 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마 지막으로 두 벌 옷(* , 키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 옷은 속옷으로 거 의 발에까지 닿으며 소매가 달려있었다(Hendriksen). 한편 마가복음에는(막 6:9) 신발 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비해 누가는 신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고있는 신발 외에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여 행에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일을함에 있어서 현실적 여건이나 물질에 의지하지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 지하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며, 동시에 사사로운 재산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 하고 따르라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18:18-27). 22:35에 의하면 실제로 제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전도하러 다녔지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다. =====9:4 어느 집에…떠나라 – 여행 준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유숙(留宿)하는 방 법을 일러주신다. 물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머물라는 말은 아니며 말씀을 받아 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마 10:11). 그러나 한 번 숙소를 정했으 면 그 마을을 떠날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지 불편한 점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대 접을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전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주의 교훈집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다케'(Dedache)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거짓 선지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본문은 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 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 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9:5 발에서…떨어버려 –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는 경우에 마을을 통과한 뒤 발의 먼지를 떨고 이스라엘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방 지역에서 묻은 옷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들어 간다. 이는 유대인들의 성별(聖別)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정한 것을 자신들의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한편 본문에서 주님이 이러한 행위 를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선민과 이방인의 진정한 구분은 메 시지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영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더 나아가 발의 먼지 를 떠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부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사 실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자 증거가 된다. (3)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받 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둠으로써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 하게 되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행 13:50,51에 의하면 바울 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는 도중 유대인들로부터 방해를 당하였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다. =====9:6 나가 각 촌에 – ‘나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르콘토'(* )는 ‘디에르 코마이'(* )의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 제자들의 선교 활동 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촌'(* , 코마스)이라는 단어 에 대해서 그룬트만(Grundmann)같은 학자는 예수가 읍내들을 돌아다니신데 비해 제자 들은 촌락들을 돌아다닌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8:1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성’ 뿐만 아니라 ‘촌’에도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처처에 복음을…병을 고치더라 – ‘처처에’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쿠'(* )는 ‘그들이 가는곳 어디서나’의 뜻으로, 제자들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 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등 예수의 사역을 열심히 대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바 야흐로 제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9:7 분봉왕 헤롯 – 이는 헤롯이 왕(王)이 아니라 영주(領主)였음을 뜻한다. 그는 B.C.4-A.D. 39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었는데 그 지역은 예수의 사역이 펼쳐 진 중심지였다.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이 모든 일 – 이 문구의 헬라어 표현은 ‘타 기노메나 판타'(* )로 문법 구조상 현재 중간태 분사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생 하고 있는 모든일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이란 일차적으로는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갖 가지의 이적들과 선포이겠지만 누가는 이 표현을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에 이어 서술 함으로써 제자들의 역할도 예수의 소문이 널리퍼져 헤롯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는데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한다. 심히 당황하여 – 이 말은 부정의 접두사 ‘디아'(* )와 ‘길’을 뜻하는 ‘포로 스'(* )의 합성어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헤 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문법상 미 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때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이…살아났다고도 하며 – 마태나(마 14:2) 마가(막 6:14)는 헤롯이 예수의 소 식을 듣자 곧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마 가는 예수에 관한 헤롯의 최종적인 확신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고 누가는 무엇이 헤롯 으로 하여금 이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즉 먼저는 세례 요한이 살아난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이 있었고 이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지 자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하여(3:19,20;마 14:3-11;막 6:17-28) 즉시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 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구약적 부활 사상이 담겨져 있음(신 32:39;삼상 2:6;욥 19:25-27)을 엿보게 한다. =====9:8 혹은 엘리야가…혹은 옛 선지자…함이라 –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하게된 배경에는 말 4:5의 말씀이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종말을 알리는 ‘종말적 예언 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와의 연관성은 세례 요한에 게 그가 적용된다(1:17;마 11:14). 예수는 단지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성 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 대한 세번째 견해는, 옛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들은 정 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것이지만 예수의 사역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에 게 선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퍼져나갔음을 알수 있다. =====9:9 이 사람이 누군고…보고자 하더라 – 헤롯은 예수께 대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 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에 집착하며 고민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 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늘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마 14:3-11; 막 6:17-28). 여기서 “-자 하더라”는 표 현 ‘에제테이'(* )는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헤롯이 계속해서 예수를 보고자 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13:31에 의하면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한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죄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를 희롱하며 예수가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 내지는 동조자(同調者)로서의 역할을 했다(23:8,11). =====9:10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 – 제자들이 사역한 기간이나 그들이 행한 구체적인 일들 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시에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사역의 기간과 다시 모이는 장소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고한 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게산토'(* )는 “경과를 끝까지 이야 기한다”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킨 다. 벳새다 – 이 지명의 뜻은 ‘고기 잡는집’인데 정확한 명칭은 ‘벳새다 율리아스'(Be- thsaida Julias)로 빌립왕이 건설하여 황제 아구스도의 딸 율리아스를 기념하는 뜻에 서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은 베드로, 빌립,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요 1:44). 예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간것은 제자들이 먼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 문이다(막 6:31). 말하자면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 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로’ 사적인 만남 을 갖고자했음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선교 여 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 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이다. =====9:11 무리가…따라 왔거늘 –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마가에 의하면(막 6:32,33)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와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 가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보다는 예수께 많은 사람들 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듯하다. 영접하사…고치시더라 – 제자들 하고만 있고자 했던 예수의 계획은 모여든 무리들 로 인해 일단 좌절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 니라 제자들과 별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영접했다 해 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영접했다’는 표현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목자없 는 양 같이 보인 불쌍한 무리들을 따뜻이 그리고 흔쾌하게 맞아주신 예수의 온정을 느 끼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두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 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는 일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 를 고쳐주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 하시며'(* , 엘랄레이)와 ‘고치시더라’ (* , 이아토)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9:12 날이 저물어 가매 –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고치는 능력에 완전히 마음이 붙들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먹을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시티스몬'(* )은 ‘곡 식’을 뜻하는 ‘시티온'(* )에서 유래한 동사 ‘에피시티조 마이'(* ,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특히 고대 헬라어에 서 ‘여행중의 양식’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제자들이 무리들의 묵을 곳 과 먹을것을 염려하는 모습은 예수의 생각에 비교한다면 믿음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 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점에 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9:13 너희가 먹을 것을…없삽나이다 – 예수는 제자들이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배불 리먹일 수 있는 아무런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 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 해 볼 수 있다. (1)본문에서는 ‘너희가'(* , 휘메이스)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데, 이것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 지고 해결해 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야할 사도로서, 예 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전적인 책임의식을 가지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 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2)예수께서는 선교여행 중 지녔던 권세 와 능력에 대해 망각한 채 극히 평범하고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제자들을 깨우쳐 주고 책망하는 의미로 그런 주문을 하셨다. (3)제자들은 선교여행 중 아무 것도 소유 하지 않았으나 주리지않고 헐벗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그 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받은것에 대해 서 필요에 따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적인 동 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의 명령은 엘리 사가 그의 사환에게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라고 명령한 것을 연상시킨다(왕 하 4:42-44). 이에 대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함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본문의 기록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가 두 마리 뿐이니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2)지금의 장소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음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 수가 없다. (3)설령 사람을 보내어 200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을 사온다 한들 어림없이 부족하다(요 6:7). 특히 마가(막 6:37)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 는 말투로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먹이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누가는 비교적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9:14 남자가 한 오천 명 – 남자 장정만 오천명 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이다. 떼를 지어 – 마가는 이 표현을 라틴어의 ‘심포지움’ 즉 ‘향연’과 같은 의미의 ‘쉼 포시아'(* )를 사용하는데(막 6:39) 비해 누가는 이 표현을 ‘클리시아 스'(* )라는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정찬에 참석하기 위해 모 여드는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마샬(Marshall)같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만찬을 반영해 준다고 한다. 한 오십 명씩 앉히라 – 여기서도 누가는 독특하게 ‘한'(* , 호세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누가는 의사와 역사가로서 숫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비교, 막 6:40). 몇 명 단위로 앉혔는가 하는 사실에 관해 서는 전승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단지 무리를 일정한 단위 로 세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를 세 분화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9:15 제자들이…다 앉힌 후 – 제자들이 예수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이 간결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 역시 음식이 어디서 올것 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준 다. =====9:16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 공관복음서 모두가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문구(文句)이 다. 여기서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식사 관습과 일치한다. ‘축사 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오'(* )는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것은 하나님의 이 적적인 능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평범한 감사의 식사 기도로 보아야한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는 삶을 사신 예수께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 으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위한 별도의 간구가 필요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어…놓게하시니 – ‘주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두'(* )는 ‘디도 미'(* )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예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었음을 가리킨다. 떡과 물고기는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을 경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 되었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단지 우리는 ‘주어'(* , 에디두)라는 미완료 동사에서 예수의 손에서 떡이 끝없이 계속해서 떼어져 나가는 기적적인 증가가 있었음을 암시받을 뿐이 다. =====9: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배불리 먹지 못한 자는 하나도 없다. 이는 예수의 능력의 완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 서는 육신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 보다는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일에 궁극적 목적을 두셨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매료(魅了)되어 찾아온 무리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도한 요한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요 6:14,15,26,27)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 – 무리가 모두 배불리 먹은데 그치지 않고 남은 양이 무려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이라 명하시는 데(요 6:12), 이것은 음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외에도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예수의 이적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다음에 또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구니'(* , 코피노이)는 군인들이 장비나 급식을 담아 짊어지고 다니 는 기구 또는 여행자들이 음식과 필수품을 가지고 다니는 기구를 가리킨다. 처음의 시 작은 바구니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예수 앞에 바쳐졌을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하라. 제자들은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된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적합할 만큼 의 적은 것으로 큰 일을 하신 것이다. =====9:18 따로 기도하실 때에 – 누가는 막 6:45-8:26의 내용을 생략한 채 오병 이어의 기적 에 이어 바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인 ‘…할때에’라는 ‘엔토'(* )구문으로 단락을 전환시키고 있다. 마태나 마가 에 의하면(마 16:13;막 8:27) 이 장소는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이었다. 가이사랴 빌립 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90km 떨어진 헤르몬 산 근처의 성읍으로 특히 우상 숭배로 유명하다. 토착민들은 바알신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pan)의 신당 을 지어 섬겼으며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이런 우상 숭배의 지역에서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 의 아이러니(irony)라 할 수 있다. 한편 누가는 이러한 단락 전환에 있어서 그 서두를 예수께서 기도 중에 있는 사실로 시작하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전개될 것임 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있어서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3:21;6:12;9:28). 무리가…누구라고 하느냐 –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들 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물으신 듯하다. 예수께서 지 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며, 그는 이미 무리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다(요 6:14,15,26). =====9:19 세례 요한…엘리야…선지자…살아났다 –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 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 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9:2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 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41-56;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 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게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의 이해를 갖게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한편 이 물음은 모 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베드로가…그리스도시니이다 –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역시 제자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간에 표현상의 차 이를 나타낸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마 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 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 호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 바 하나님의 뜻을 성 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민 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 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요 10:30;요일 4: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의문시 되어 왔던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 으나 마태복음에는(마 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 이 언급되며, 그 본문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여 교회의 머 리가 된다는 근거로도 사용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 16:13-20의 주제 강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따른 약속’을 보라. =====9:21 경계하사…명하시고 – ‘경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 )인데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 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 , 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 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 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요 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 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9:22 인자가…하리라 – 본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 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 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 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 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 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 마조'(* )는 ‘거부하다’, ‘쓸모 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 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 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 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 )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 )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 ‘데이'(* )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 혀준다(사 53장; 요 3:16;롬 8:32).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24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 보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 , 프레스뷔테 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 성하였다(7:3;20:1;22:52). ‘대제사장들'(* , 아르키에류스)은 1년 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 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 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 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 , 그람마튜스)은 ‘랍 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 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 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 다. 유대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옳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9:23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절)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 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가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 마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째로 이러한 자기부 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9:24 목숨을…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 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 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 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요 12:25). 나를 위하여…구원하리라 –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 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 자라 할 수 있다. =====9:25 온 천하를…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 혼과 본성을 잃게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 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 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계 2:10). =====9:26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 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 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 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자도…부끄러워 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있다. 누 가는 마태나(마 16:27), 마가(막 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 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 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마 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히 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 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 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 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롬 1:16). =====9:27 여기 섰는…있느니라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 하였다면 본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 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섰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 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연결구를 첨 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 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 26:37;막 14:33) 예수를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 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다. 기도 하시러 산에 –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山行)의 목적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 ‘메론 산’, ‘다볼산’이라는 추측 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가에게 있어 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 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9:29 기도하실 때에…나더라 –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 이 달라졌다’이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한다. 이 는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시 84:11;계 1:16;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 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마 28:3;막 16:5;행 1:10;계 3:4,5;7:14). 이것 역시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준 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 )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 )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 )의 합성어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 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 모는 (1)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 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 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 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의 모습과(롬 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 다. =====9:30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이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 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다(말 4:5). 엘리 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 리야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마 5:17,18). =====9:31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 고 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 )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낸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 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 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 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 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9:32 곤하여 졸다가 –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와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 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 에 곯아 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 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한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 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 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 결과를 초래했다(22:42-46). 아주 깨어…보더니 –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난다. 아마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와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다. 이는 예수가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 시사한 다. =====9:33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이 제단은 하늘로부터 온 두 사람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는 베드로의 바램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예수의 수난 예 고와(22절) 그것을 확증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31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그리 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安住)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초막 셋을 짓되 – 이 초막은 숙곳에서 장막절에 사용했던 것(출 13:20)과 같이 나 뭇잎이나 기타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움막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텐트나 장막을 가리킨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천상적인 영광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끼 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초막 셋’이라는 표현은 예수를 다른 두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적 무지를 반영한다. =====9:34 구름 – 구름은 미래에 다시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고(단 7:13) 성도들을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며(계 11:12), 신 구약 중간시대 문학에서는 메시야의 도래와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다(위경 2 Baruch 53:1-12;4 Ezra 13:3). 구 름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이다(출 16:10;19:9;24:15-18;33:9). 특히 출 24:15-18에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병행구를 찾아 볼 수 있다. 예수와 두 인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어 하나님 자신의 임재로 말미암 아 상황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저희를 덮는지라 – 여기서 ‘저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1)예수와 두인물 그리고 3제자 모두(Schurmann), (2)모세와 엘리야만 (Greijdanus, Williams), (3)예수와 모세, 엘리야(Godet, Knox, Marshall). 이 중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무서워하더니 – 신적인 권능 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 끼기 마련인데 이는 인간의 죄성과 유한성 때문이다(8:25;24:4,5). =====9:35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 – 구름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음성 이기에 그만큼 이 선언은 엄숙하고 확정적이다. 또한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 들려왔던 음성과도 비슷하다(3:22).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예수 이해 는 이제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더이상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요 한에 의하면 수난 주간에도 한번 더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요 12:2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 사역의 시작과 절정기와 마지막에 주어진 것이며 이것 은 그 사역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의미한다. 한편 누가는 마태 (마 17:5)나 마가(막 9:7)와 달리 ‘사랑하는’을 생략하고 ‘택함을 받은 자’를 첨가하 고 있다. 누가는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의 삶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음과 아 울러 예수의 권위의 출처가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저의 말을 들으라 – 이 명령은 신 18:15의 반영으로 이제 예수의 정체(正體)가 분 명히 드러난 이상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의 말을 들으려 하 지 않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이 명령은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 선택 여하에 따른 필연적 심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하여 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에 있으며 예수께서 제시하는 사역의 목적과 방 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지 말라는 것이다(마 16:21-23). =====9:36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 누가는 상황이 끝나는 장면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마 17:6-8 비교).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 )로 강조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 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 뿐이다. 그만큼 예수는 탁월하신 분이라 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 때에는…아니하니라 – 자기들이 본 사실을 잠정적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음 을 말하는데 아마 예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말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듯하다(마 17:9; 막 9:9). =====9:37 이튿날 – 누가만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변화산의 영광 이 밤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마태나 마가는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엘리야와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마 17:10-13;막 9:11-13) 누 가는 그 이야기를 생략한채 바로 무리들과의 만남을 서술한다. 이 무리들 중에는 베드 로, 요한, 야고보외의 제자들도 함께 있었고(40절), 막 9:14에 의하면 서기관들도 있 었다고 한다. =====9:38 내 외아들이니이다 – 무리들이 예수를 기다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딱한 사정에 대 하여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은 8:40,41에 있는 야이로의 외딸을 살리신 사건과 유사하 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외아들’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극심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고통이 극심한 만큼 하나님의 은총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릴 때(7:12)나 야이로의 외동딸을 살릴 때도(8:41) 마찬가지였다. 한편 누가는 아버지의 간청을 묘사함에 있어서 마가(막 9:22)의 ‘불쌍히 여기다'(* , 스플랑크니조마이)를 ‘돌아보 다'(* , 에피블렙사이)로 대치시키고 있는데 이 단어는 ‘위로’를 뜻 하는 ‘에피'(* )와 ‘보다’를 뜻하는 ‘블레포'(* )의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이다.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9:39 귀신이 저를 잡아 – 마태는 이 아이가 간질병에 걸렸다 하고(마 17:15), 마가는 벙 어리 귀신에 들렸다고 하나(막 9:17) 누가는 간략하게 귀신에 붙잡혔다고만 서술하고 있다. 누가로서는 이 사건의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확증을 받은 ‘아들’과 아들 의 사역을 방해하는 핵심 세력인 ‘귀신’과의 싸움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졸지에…떠나 가나이다 – 이런 증세는 의학적으로 규명할 때 간질병의 증세임에 틀림이 없으나 그 간질병 배후(背後)에는 귀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서 기자들 의 공통된 진술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의 문제는 간질병과 예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귀신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9:40 제자들…능히 못하더이다 – 결국 서기관들을 포함한 무리들의 변론 주제가(막 9:14) 제자들의 무능력에 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신적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동안 예수와 함께 있던 세 제자는 잠을 자고(32절), 아래 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에 붙잡힌 아이를 구하지 못해 무리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서기 관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인 바, 이는 제자들의 아둔함을 잘 보여준 다. 본래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능히 예수를 대신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로부터 권능을 받았고 그 권능으로 능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1-6 절). 그렇다면 제자들의 능력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 이 없었기 때문이다. =====9:4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이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 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하다.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 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한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 동시켜 이적(異蹟)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너희를 참으리요 – 본절에 나타난 ‘믿음이 없는’, ‘패역한’ 등의 표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들을(신 32:5,20) 반 영하며, 본문의 말씀은 더이상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패역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백성들을 품안에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연상시킨다(사 46:4). 이제 예수의 지상 사역은 예루살렘에서의 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자 들은 여전히 믿음의 결핍을 노출시켰고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무리들은 점점 더 패역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예수의 격한 감정은 ‘호'(* )라는 탄식어가 잘 나타내 준다. =====9: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 ‘올때에’는 문자적으로 ‘아직 저가 오고있는 동안’ 의 의미로 아직 소년이 예수 앞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부터 귀신이 도발을 시작했음을 뜻한다(비교, 막 9:20). ‘거꾸러뜨리고'(* , 엘렉센 아우톤) 는 전투나 레슬링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타격을 가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말로 아이의 발작이 귀신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귀신이 예수의 사역 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더러운 귀신을…낫게하사 – 귀신의 격렬한 도발 행위는 예수의 꾸짖음 앞에서 무 기력하게 멈춰졌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괴롭힘당했던 모든 질병들로부터 치유를 받았 다. 한편 마가(막 9:22-24)는 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 줌으 로써 신앙적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그 부분을 생략하여 예수의 놀라운 치유 능력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 조금전의 엄한 꾸짖음(41절)과 달리 이번에는 부드러운 사 랑과 자비로운 행위로 아이를 아비에게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행위는 7:15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본질적 성품이 사랑임을 나타내 준다. =====9:43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확인은 예수의 귀신 축사를 통해 분명히 증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사건 속에서 예수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충만하게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예수의 행위를 보면서 그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수준까지 이 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겪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9: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두라 – 사람들이 예수의 행함을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예 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다시 한번 수난 예고를 하고 있다. 이 수난 예고는 22절에 이 어 두번째에 해당하며 여기서는 ‘너희'(* , 휘메이스)가 강조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사람들이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기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든지 제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 다. ‘이 말들’이란 계속 이어지는 ‘수난 예고’를 가리킨다. 인자가…넘기우리라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수난 예고는 누가복음 전체에 기록 되어 있는 네 번의 수난예고 가운데 두번째 것이다(9:22,44;18:31-34;22:21-23). 여기 서 ‘넘기우다'(* , 파라디도스다이)는 수동태의 표현은 가룟 유다에 의한 배반을 예고하며 ‘사람들’은 22절에 언급된 바 있는 산헤드린(Sanhedrin) 을 가리킨다. 물론 가룟 유다의 배반 이면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었음이 전제되 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마태(마 17:23)나, 마가(막 17:31)와 달리 누가는 여기서 ‘부활’에 관해서는 언급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45 알지 못하였나니 – 제자들은 두 번에 걸쳐 주어진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 하였다. 제자들은 첫째, 변화산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變貌)를 목격하고 이어서 귀신 쫓아내는 권능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게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 던 까닭에, 둘째 수동태의 ‘히나'(* )절에 의해 확인되는 바 제자들의 몰 이해 배후에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 고 있다. 이러한 ‘숨김’에 대한 진술은 본서에만 나오며, 일정한 때가 이르기 전에는 제자들이 무지한 상태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여기서 누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 자하는 것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에로의 길은 ‘부활’ 이후에 그들이 갖게 될 성서 적 지식과 부활의 빛에서 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Marshall).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에 대해 묻 기조차 두려워 하였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 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23-27절에 기록된 바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스스로 사도로서 사역할 수 있 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9:46 누가 크냐 – 마가복음에서(막 9:33) 제자들은 가버나움에 이르는 노중(路中)에 논 쟁을 벌였으며 가버나움에 이르러 예수의 추궁이 있었다. 누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문제의 쟁점만을 취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것이었다(마 18:1). 여기서 변론(* , 디알로 기스모스)은 ‘논쟁’을 의미하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였음 을 시사한다. 불과 일주일 쯤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 부인을 가르치셨고(23,24절), 조 금 전에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수난을 제차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44절)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문제는 결국 메시야가 일으켜 세 울 왕국에서 누가 높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때 제자들 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아(ego)를 버리지 못하고 지위나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제자들로서는 예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 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9:47 예수께서…아시고 – 제자들은 예수 몰래 자기들 끼리 논쟁을 벌였으나 예수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써 그들의 잘못된 다툼을 이미 알고 계셨다. 어린아이 하나를…세우시고 – 누가는 마태나(마 18:3,4), 마가(막 9:35)가 기록하 고 있는 ‘큰 자’에 대한 결론적 서언을 생략한 채 바로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9:48 내 이름으로…영접함이요 – 예수께서 제자들의 사고 방식을 교정시켜주기 위해 간 접적인 방식으로 교훈을 베푸신다. 먼저 ‘내이름으로’ 행하라는 말씀은 제자들의 명예 나 지위가 예수께 완전히 종속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모든 제자들의 이름은 예수라 는 이름 앞에 따로 드러날 수 없으며 모든 영광이 예수의 이름에 돌려져야 함을 뜻한 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은 예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한편 마가는 ‘이런 어린아이 하나’라고 하여(막 9:37) 어린이 일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누가는 ‘이 어린아이’라고 하여 바 로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사 람 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를 영접하면…영접함이라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 논리는 성도들의 대인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열 쇠가 된다. 허물과 죄로 가득한 인생들을 자연 모습대로 대할 때에는 누구나 환멸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주님의 피로 새로 태 어난 생명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 – 작은 자가 큰 자라는 역설적 진리는 23-25절에서 말씀하 신 죽음으로써 삶을 얻는 역설적 진리와 갖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 자는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행위의 대가로 지위나 명예를 얻어 보려는 욕망을 버린 사람이다. 한편 본문에서 ‘가장 낮은 자’와 대비되는 개념을 ‘가장 큰 자’가 아니라 단순히 ‘큰 자’라 고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데는 비교 우위의 개념이 적용되 지만 높아지는 데에는 비교 우위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9:49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다. 제자들은 그가 자기들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단의 일원이 아 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하였다. 여기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들만이 예 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자격을 가졌다는 자의식(自意識)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1, 2) 아울러 이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들의 실패에 대 한(40절)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9:50 금하지 말라…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 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匿名)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 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 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6, 42절)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 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9:51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 여기서 ‘승천'(* , 아날렘프세오 스)은 ‘위로’를 뜻하는 ‘아나'(* )와 ‘올리다’의 의미를 갖는 ‘렙시스'(* )의 합성어로 ‘들어 올라감’이란 뜻이다(24:51). 여기서는 ‘죽음'(31절) 대신 ‘승 천’이 언급됨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이라는 영광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차가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플레로오'(* )는 본래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승천을 성취할 시 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런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정되었음과 예 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심을 분명히 밝혀준다. 예루살렘을…굳게 결심하시고 – 갈릴리로부터 예수의 최종 종착지인 예루살렘에로 의 대전환이 언급되고 있다. 승천은 곧 수난과 죽음을 전제한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날 장소인 예루살렘에로의 행로를 굳은 결심으로 시작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귀는 ‘…로 얼굴을 향하다’는 셈어적인 표현 으로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 하 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음을 향한 결단을 하신 것이다(22:42;요 10:11). =====9:52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것 이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역사 깊은 불화와 반목 (反目)이 있어(왕하 17:24-41;요 4:9)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사 마리아인 사이에는 충돌이 있었다. 그리하여 순례객들은 가까운 사마리아 길로 가지 않고 먼 베레아 지방으로 지나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을 택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른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사마리아를 멸 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며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하셨음을 보여준다. =====9:53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중앙 성소 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신 12:4-14).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 은 예루살렘성전에 대응하는 성전을 그리심산에 따로 지어서 이것을 자기들의 중앙 성 소로 삼았다(요 4:20). 이런 종교적 갈등 때문에 저들은 예수께서 머무는 것을 허락하 지 않은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조그마한 난관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겪을 고초를 암시하 는듯 하다. 또한 이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 관습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진정한 성전 이신 예수를 만나 구원의 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 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예수의 예루살렘행을 방해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9:54 야고보와 요한이…원하시나이까 –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우뢰의 아들’ (Sons of Thunder, NIV)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막 3:17), 그 까닭은 본절에서 보 는대로 그들의 성격이 매우 급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하 나의 보복 조처를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아하시야 왕 당시 엘리야를 모욕했던 자들에 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그들을 사른 사건(왕하 1:10-12)을 반영한다. 어쨌든 제자들 은 복음이나 메시야 사역의 본질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였으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며 잃어버린 자들을 건지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19:10;요 3:17;12:47)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9:55 꾸짖으시고 – 구체적인 내용없이 간략하게 언급된 ‘꾸짖으시고’는 제자들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하셨음을 말해준다. 제자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의해 보복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구약적 대응방식 즉 ‘이에는 이로 눈에 는 눈으로’를 거절하시고 도리어 꾸짖고 있다. 제자들은 엘리야의 방식 즉 ‘보복의 방 식’을 요구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사랑의 방식을 말씀하심으로써 엘리야를 능가하는 분 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여기 나타난 예수의 태도는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저항 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에 대한 하나의 복선(伏線)이라 할 수 있다. =====9:56 다른 촌으로 – 누가는 지리에 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단지 다른 곳으로갔다 고만 하여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한 사실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예루살 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을 방해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보복적 행동을 취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는 먼 길로 돌아가는 비효율적 방식을 택하셨고 폭력이 아닌 평화의 길을 택하셨다. 그것이야 말로 참된 삶의 방식, 구원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이러한 예수의 방 법을 따를 때 모든 난관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간 ‘다른 촌’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추측하는데, (1)사마리아에 있는 다른 마을 (Klostermann, Zahn, Plummer), (2)사마리아로부터 다시 돌아간 갈릴리의 어느 촌 (Bruce, Gilmour, Farrar), (3)베레아 접경의 촌 등이 그것이며 이중 어느 견해가 정 확한지 단정 지을수 없으나 9절과 10:10과 17:11의 본문을 참고할 때 세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9:57 혹이…좇으리이다 – 여기서 ‘혹이’는 불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헬라어 부정 대명사 ‘티스’의 번역이다. 누가는 이렇게 불특정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나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서 이 사람은 서기관이었다(마 8:19). 학식, 재력, 권력에 있어서 유대사회의 최고 상위계층에 있는 서기관(22절 주석 참조)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어디로 가시든지’라는 말은 그가 단지 예수께 대한 신앙을 갖 겠다는 뜻이 아니라 열 두 제자들처럼 예수를 수행하며 섬기는 제자가 되겠다는 의미 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의 어떤 점을 보고 그를 따르려 하는지 그리고 어떤모습 의 제자상을 가지고 그의 제자가 되려고 지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계속 이 어지는 예수의 답변(58절)의 빛에서 볼 때 아마 이 지원자는 예수의 권능(마 8:16)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능력 많으신 분을 수행하는 제자들의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에 부러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광에 동반되는 아픔, 능력 이전에 가 난함의 의미를 알고 지원했어야 했고 무엇보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결심은 자기 부 인(自己否認)의 의미를 알고 난 후에 했어야 했다. =====9:58 여우도…머리 둘 곳이 없도다 – 암시성이 깊은 예수의 대답은 이 지원자의 의도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런 생각으로 제자가 되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 을 뜻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권력이나 부, 명예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도리어 여우나 새와같은 짐승들에게도 허락된 최소한의 삶의 터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다. 예수를 따르는 일은 의. 식. 주 문제가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거기에 덧붙여 입신 양명(立身揚名)을 지향하는 출세주의가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며 안정 된 삶의 거처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자기를 희생시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 이다(23절). 허영심에 사로잡혀 예수의 제자가 되려했던 이 서기관은 아마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9:59 부친을 장사하게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죽은 이에 대한 예우를 갖춘 장례식은 가 정적, 종교적,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였다. 장례의 의무는 율 법을 공부하는 일, 성전 예배, 유월절 제사, 할례 시행 등 보다도 우선권을 가졌으며, 보통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 사제들도 그들의 친척이 죽은 경우에는 시체를 만질 수 있었다(레 21:1-3). 그 만큼 장례를 치루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밖에 연고자(緣故者) 없이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일은 이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보상이 약속 된 사랑의 행위로 여겨졌다. 유대사회의 장례 풍토가 이런만큼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 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후 따르겠다는 이 사람의 명분은 누구도 반대할수 없는 적절한 것이었다. =====9:60 죽은 자들로…장사하게 – 이말은 그 내용의 급진성 때문에 해석하여 적용하기가 매우 난해하여 여러가지의 견해가 제기되었던 본문이다. (1)아람어를 잘못 번역한 것 이다(Black). (2)본문의 표현은 역설적인 것으로 장례지내는 일은 반드시 치러지고야 말리라는 의미이다(Manson, Sayings of Jesus, p.73). (3)이 표현은 비유대인 계열에 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이 말을 보편적인 행위 규범으로 해석하여 주의 일을 위하여 가정에 대한 의무를 저버 려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도 안될 것이다. 본문의 의미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게하라”는 뜻으로 세상 일은 세상 사람 들에게 맡기고 오직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전심전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 즉 성도들이 예수를 좇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우선 순위를 세상 일과 하나님의 일 중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자세의 문제로서 그것은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하는 결단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 이 문구는 누가만의 것으로 콘첼만(Conzelmann) 같은 학자는 본문에서 회개의 긴박성으로부터 전도의 긴박성으로의 전이를 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무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요 그러한 예수 제자의 길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있음을 말해준다. =====9:61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 이 장면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기 전에 가족과 마지막 입맞춤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왕상 19:20). 그러나 뒤이은 예수의 대답을(62절) 통해 유추하건대, 이 사람의 마음은 가족에 대한 염려로 가득차 있었으 며 작별인사 중 가족의 만류가 간절해질 경우에는 가정에 발목이 묶일 가능성이 많았 을 것이다. =====9:62 손에 쟁기를…돌아보는 자 – 농경문화의 산물인 이 격언적 표현은 B.C. 80년의 헤 시오드(Hesiod; 그리스의 교훈 시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전통 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격언적 문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자신이 가르치고자하는 교훈 의 소재로 삼으시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것이다. 손에 쟁기를 들고 밭을 가는 자의 유일한 목적은 곧은 고랑을 내는 일이며, 그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 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써서 뒤를 돌아 본다면 고랑은 곧게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좇는 자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다. ‘따르는 자’는 이 목적의식을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합당치’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토스'(* )는 ‘잘 놓여 있는’, ‘적합한’, ‘순응하는’의 의미를 갖는 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함에 있어서 우선 순위에 대한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궁극적인 목적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적합한’자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헬라어 누가복음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반응형 슁칼레사메노스 데 투스 도데카 에도켄 아우토이스 뒤나민 카이 엨수시안 에피 판타 타 다이모니아 카이 노수스 데라퓨에인 개역개정,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새번역,1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들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 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영어NIV,1 When Jesus had called the Twelve together, he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to drive out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영어NASB,1 And He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the demons and to heal diseases. 영어MSG,1 Jesus now called the Twelve and gave them authority and power to deal with all the demons and cure diseases. 영어NRSV,1 Then Jesus called the twelve together and gave them power and authority over all demons and to cure diseases, 헬라어신약Stephanos,1 συγκαλεσαμενος δε τους δωδεκα μαθητας αυτου εδωκεν αυτοις δυναμιν και εξουσιαν επι παντα τα δαιμονια και νοσους θεραπευειν 라틴어Vulgate,1 convocatis autem duodecim apostolis dedit illis virtutem et potestatem super omnia daemonia et ut languores curarent 히브리어Modern,1 ויקרא אל שנים העשר ויתן להם גבורה ושלטן על כל השדים ולרפא חליים׃ 성 경: [눅9: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 이 제자들은 5:3-11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처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6:12-16에서 그 선택이 완료된 인물들이다. 예수께서 열둘을 부르신 것은 열 두 지파에 의해 상징되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새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는다(Hendriksen). 한편 누가는 마가의 ‘부르다'(*, 프로스칼레오)라는 표현(막 6:7) 대신 ‘불러 모으다'(*, 슁칼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8:51에 있었던 잠깐 동안의 헤어짐과의 논리적 일관성을 고려한 누가의 세심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모든 귀신…능력과 권세 – 마태와(마 10:1) 마가는(막 6:7)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모든 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마태와 마가는 귀신의 악함에 초점을 두고 누가는 ‘모든 종류’의 귀신을 제어하시는 예수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또한 누가는 마가복음에 있는 ‘권세'(*, 엑수시아)에 능력(*, 뒤나미스)을 첨가하고 있는데, 전자는 합법적 권리나 권위를 나타내며 후자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와 능력이 예수 당시와 초대 교회에도 있었던 마술사(행 19:13)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카이 아페스테일렌 아우투스 케뤼쎄인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카이 이아스다이 투스 아스데네이스 개역개정,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새번역,2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우리말성경,2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영어NIV,2 and he sent them out to preach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the sick. 영어NASB,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perform healing. 영어MSG,2 He commissioned them to preach the news of God’s kingdom and heal the sick. 영어NRSV,2 and he sent them out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and to heal.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αυτους κηρυσσε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και ιασθαι τους ασθενουντας 라틴어Vulgate,2 et misit illos praedicare regnum Dei et sanare infirmos 히브리어Modern,2 וישלחם לקרא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ולרפא את החלים׃ 성 경: [눅9: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하나님의 나라…보내시며 – 마태에 의하면(마 9:36)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동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하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두 가지 책무를 부여받고서 파송되었다. (1)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사역과 인격 속에 현존함과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것이기도 했다(마 6:10).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뜻을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희망으로 인해 곡해(曲解)하고는 있었으나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권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4:15;마 18:1;20:21;막 11:10;15:43;14:15).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막 1:15의 주제 강해 ‘하나님의 나라개념’을 참조하라. (2)제자들은 병을 고쳐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영적인 일이라면 병을 고치는 것은 육적인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바 육적인 문제의 해결도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짐에 주목해야 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영혼의 구원에 비하여 이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질병 치유가 단순히 영혼의 문제로 이끌어 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병을 고치는 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서 ‘전파하고'(*, 케뤼쎄인)와 ‘고치는'(*, 이아스다이)이 대등 접속사 ‘카이'(*)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한편 제자들이 해야할 이 두가지 과제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일은 다름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인데(11절;마 9:35), 이는 제자들이 해야하는 일이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계승할 사도로 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메덴 아이레테 에이스 텐 호돈 메테 랍돈 메테 페란 메테 아르톤 메테 아르귀리온 메테 아나 뒤오 키토나스 에케인 개역개정,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새번역,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지팡이도 가방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 가톨릭성경,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영어NIV,3 He told them: “Take nothing for the journey–no staff, no bag, no bread, no money, no extra tunic. 영어NASB,3 And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either a staff, nor a bag, nor bread, nor money; and do not even have two tunics apiece. 영어MSG,3 He said, “Don’t load yourselves up with equipment. 영어NRSV,3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o staff, nor bag, nor bread, nor money–not even an extra tunic.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μηδεν αιρετε εις την οδον μητε ραβδους μητε πηραν μητε αρτον μητε αργυριον μητε ανα δυο χιτωνας εχειν 라틴어Vulgate,3 et ait ad illos nihil tuleritis in via neque virgam neque peram neque panem neque pecuniam neque duas tunicas habeatis 히브리어Modern,3 ויאמר להם אל תקחו מאומה לדרך לא מטות ולא תרמיל ולא לחם ולא כסף ואל יהיה לאיש מכם שתי כתנות׃ 성 경: [눅9: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 – 예수께서는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도 그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 하나 세부적인 항목까지 열거하고 있다. (1)지팡이(*, 라브도스)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점에 대해서는 마태도(마 10:10) 동일하게 보도하고 있으나 마가는(막 6:8) 지팡이는 허용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ㄱ)마가는 왕하 4:29에 나오는 게하시의 경우처럼 지팡이를 스승의 권위에 대한 상징으로 파악했다는 견해(Schurmann). 그러나 게하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스승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만약 게하시의 경우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려면 제자들 모두가 스승인 예수의 지팡이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ㄴ)누가는 지팡이나 슬리퍼나 허리띠를 띠고 성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랍비적 규율을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Manson). (ㄷ)발음은 비슷하나 뜻은 서로 다른 아람어가 혼동되었다는 견해. 즉 ‘…외에’라는 뜻의 ‘ella'(엘라)와 ‘그리고…도 아닌’의 의미를 가진 ‘wla'(웰라)를 혼동한데서 생긴 차이이다. 이 설명은 헬라어 성경 원문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ㄹ)두 복음서 기자가 서로 다른 지팡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견해. 즉 마가는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지팡이를, 누가는 맹수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팡이를 각각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복음서가 모두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 ‘라브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설명은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결국 이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설명은 아직 없다 하겠다. (2)가방(*, 페라)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방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는 가방일 수도 있고 동냥 주머니일 수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주머니가 동냥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 여행 도중에 축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한 것이라고볼 수 있고, 여행 필수품을 담는 가방이라면 아무것도 의지할만한 물건을 소유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빵(*, 아르토스)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4)돈(*, 아르귀리온)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스스로 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마지막으로 두 벌 옷(*, 키톤)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이 옷은 속옷으로 거의 발에까지 닿으며 소매가 달려있었다(Hendriksen). 한편 마가복음에는(막 6:9) 신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비해 누가는 신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고있는 신발 외에 여분의 신발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여행에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현실적 여건이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며, 동시에 사사로운 재산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라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18:18-27). 22:35에 의하면 실제로 제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전도하러 다녔지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카이 에이스 헨 안 오이키안 에이셀데테 에케이 메네테 카이 에케이덴 엨세르케스데 개역개정,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새번역,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우리말성경,4 어느 집에 들어가든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으라. 가톨릭성경,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영어NI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town. 영어NASB,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until you leave that city. 영어MSG,4 Keep it simple; you are the equipment. And no luxury inns–get a modest place and be content there until you leave. 영어NRSV,4 Whatever house you enter, stay there, and leave from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εις ην αν οικιαν εισελθητε εκει μενετε και εκειθεν εξερχεσθε 라틴어Vulgate,4 et in quamcumque domum intraveritis ibi manete et inde ne exeatis 히브리어Modern,4 והבית אשר תבאו בו שם שבו לכם ומשם צאו׃ 성 경: [눅9: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어느 집에…떠나라 – 여행 준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이번에는 유숙(留宿)하는 방법을 일러주신다. 물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머물라는 말은 아니며 말씀을 받아 들일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마 10:11). 그러나 한 번 숙소를 정했으면 그 마을을 떠날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지 불편한 점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더 좋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전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주의 교훈집으로 알려지고 있는 ‘디다케'(Dedache)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본문은 제자들이 거짓 선지자들 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 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카이 호소이 안 메 데콘타이 휘마스 엨세르코메노이 아포 테스 폴레오스 에케이네스 톤 코니오르톤 나포 톤 포돈 휘몬 아포티나쎄테 에이스 마르튀리온 엪 아우투스 개역개정,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새번역,5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서,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삼아라.” 우리말성경,5 만약 너희를 맞아 주지 않으면 그 마을을 떠날 때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발에 붙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 가톨릭성경,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영어NIV,5 If people do not welcome you,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when you leave their town,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NASB,5 “And as for those who do not receive you, as you go out from that city,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영어MSG,5 If you’re not welcomed, leave town. Don’t make a scene. Shrug your shoulders and move on.” 영어NRSV,5 Wherever they do not welcome you, as you are leaving that town shake the dust off your feet as a testimony agains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σοι αν μη δεξωνται υμας εξερχομενοι απο της πολεως εκεινης και τον κονιορτον απο των ποδων υμων αποτιναξατε εις μαρτυριον επ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5 et quicumque non receperint vos exeuntes de civitate illa etiam pulverem pedum vestrorum excutite in testimonium supra illos 히브리어Modern,5 וכל אשר לא יקבלו אתכם צאו מן העיר ההיא ונערו את העפר מעל רגליכם לעדות בהם׃ 성 경: [눅9: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발에서…떨어버려 –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지나는 경우에 마을을 통과한 뒤 발의 먼지를 떨고 이스라엘의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방 지역에서 묻은 옷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들어간다. 이는 유대인들의 성별(聖別)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정한 것을 자신들의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한편 본문에서 주님이 이러한 행위를 지시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선민과 이방인의 진정한 구분은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영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2)더 나아가 발의 먼지를 떠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부한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자 증거가 된다. (3)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 둠으로써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행 13:50,51에 의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지역에서 주의 일을 하는 도중 유대인들로부터 방해를 당하였을 때도 이런 행동을 했었다. 엨세르코메노이 데 디에르콘토 카타 타스 코마스 유앙겔리조메노이 카이 데라퓨온테스 판타쿠 개역개정,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새번역,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우리말성경,6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들을 두루 다니며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영어NIV,6 So they set out and went from village to village,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people everywhere. 영어NASB,6 Departing, they began going throughout the villages, preaching the gospel and healing everywhere. 영어MSG,6 Commissioned, they left. They traveled from town to town telling the latest news of God, the Message, and curing people everywhere they went. 영어NRSV,6 They departed and went through the villages, bringing the good news and curing diseases everywhere.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ξερχομενοι δε διηρχοντο κατα τας κωμας ευαγγελιζομενοι και θεραπευοντες πανταχου 라틴어Vulgate,6 egressi autem circumibant per castella evangelizantes et curantes ubique 히브리어Modern,6 ויצאו ויעברו בכפרים מבשרים את הבשורה ומרפאים בכל מקום׃ 성 경: [눅9: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열 두 제자의 파송] 󰃨 나가 각 촌에 – ‘나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르콘토'(*)는 ‘디에르 코마이'(*)의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 제자들의 선교 활동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촌'(*, 코마스)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룬트만(Grundmann)같은 학자는 예수가 읍내들을 돌아다니신데 비해 제자들은 촌락들을 돌아다닌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8:1에 의하면 예수께서도 ‘성’ 뿐만아니라 ‘촌’에도 다니셨음을 알 수 있다. 󰃨 처처에 복음을…병을 고치더라 – ‘처처에’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쿠'(*)는 ‘그들이 가는곳 어디서나’의 뜻으로, 제자들이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등 예수의 사역을 열심히 대행하였음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제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실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에쿠센 데 헤로데스 호 테트라아르케스 타 기노메나 판타 카이 디에포레이 디아 토 레게스다이 휘포 티논 호티 요안네스 에게르데 에크 네크론 개역개정,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새번역,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고, / ㉠그, ‘테트라아르케스’. 지위와 권위가 왕보다 밑에 있었음 우리말성경,7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났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7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영어NIV,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about all that was going on.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some were saying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영어NASB,7 Now Herod the tetrarch heard of all that was happening; and he was greatly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risen from the dead, 영어MSG,7 Herod, the ruler, heard of these goings on and didn’t know what to think. There were people saying John had come back from the dead, 영어NRSV,7 Now Herod the ruler heard about all that had taken place, and he was perplexed, because it was said by some that John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헬라어신약Stephanos,7 ηκουσεν δε ηρωδης ο τετραρχης τα γινομενα υπ αυτου παντα και διηπορει δια το λεγεσθαι υπο τινων οτι ιωαννης εγηγερται εκ νεκρων 라틴어Vulgate,7 audivit autem Herodes tetrarcha omnia quae fiebant ab eo et haesitabat eo quod diceretur 히브리어Modern,7 וישמע הורדוס שר הרבע את כל אשר נעשה על ידו ותפעם רוחו כי יש אשר אמרו יוחנן קם מן המתים׃ 성 경: [눅9: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분봉왕 헤롯 – 이는 헤롯이 왕(王)이 아니라 영주(領主)였음을 뜻한다. 그는 B.C.4-A.D. 39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었는데 그 지역은 예수의 사역이 펼쳐진 중심지였다. 분봉왕 헤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1주석 참조. 󰃨 이 모든 일 – 이 문구의 헬라어 표현은 ‘타 기노메나 판타'(*)로 문법 구조상 현재 중간태 분사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는 모든 일을 말한다. ‘이 모든 일’이란 일차적으로는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갖가지의 이적들과 선포이겠지만 누가는 이 표현을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에 이어 서술함으로써 제자들의 역할도 예수의 소문이 널리퍼져 헤롯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는데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음을 시사한다. 심히 당황하여 – 이 말은 부정의 접두사 ‘디아'(*)와 ‘길’을 뜻하는 ‘포로스'(*)의 합성어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헤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표현이 문법상 미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때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요한이…살아났다고도 하며 – 마태나(마 14:2) 마가(막 6:14)는 헤롯이 예수의 소식을 듣자 곧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에 관한 헤롯의 최종적인 확신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고 누가는 무엇이 헤롯으로 하여금 이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즉 먼저는 세례 요한이 살아난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이 있었고 이 소문이 헤롯에게 들려지자 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하여(3:19,20;마14:3-11;막 6:17-28) 즉시 그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의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구약적 부활 사상이 담겨져 있음(신 32:39;삼상 2:6;욥 19:25-27)을 엿보게 한다. 휘포 티논 데 호티 엘리아스 에파네 알론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새번역,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말성경,8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옛 예언자 중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8 더러는 “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d come back to life. 영어NASB,8 and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d risen again. 영어MSG,8 others that Elijah had appeared, still others that some prophet of long ago had shown up. 영어NRSV,8 by some that Elijah had appeared, and by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d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8 υπο τινων δε οτι ηλιας εφανη αλλων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ε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8 a quibusdam quia Iohannes surrexit a mortuis a quibusdam vero quia Helias apparuit ab aliis autem quia propheta unus de antiquis surrexit 히브리어Modern,8 ויש שאמרו אליהו נראה ואחרים אמרו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혹은 엘리야가…혹은 옛 선지자…함이라 – 예수를 엘리야로 생각하게된 배경에는 말 4:5의 말씀이 있다. 당시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종말을 알리는 ‘종말적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와의 연관성은 세례 요한에게 그가 적용된다(1:17;마 11:14). 예수는 단지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성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께 대한 세번째 견해는, 옛선지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견해들은 정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만 예수의 사역이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에게 선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퍼져나갔음을 알수 있다. 에이펜 데 헤로데스 요안넨 에고 아페케팔리사 티스 데 에스틴 후토스 페리 후 아쿠오 토이아우타 카이 에제테이 이데인 아우톤 개역개정,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새번역,9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우리말성경,9 그러자 헤롯은 “내가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이런 소문이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영어NIV,9 But Herod said, “I beheaded John. Who, then, is this I hear such things about?” And he tried to see him. 영어NASB,9 Herod said, “I myself had John beheaded; but who is this man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kept trying to see Him. 영어MSG,9 Herod said, “But I killed John–took off his head. So who is this that I keep hearing about?” Curious, he looked for a chance to see him in action. 영어NRSV,9 Herod said, “John I beheaded; but who is this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tried to se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ειπεν ο ηρωδης ιωαννην εγω απεκεφαλισα τις δε εστιν ουτος περι ου εγω ακουω τοιαυτα και εζητει ιδει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9 et ait Herodes Iohannem ego decollavi quis autem est iste de quo audio ego talia et quaerebat videre eum 히브리어Modern,9 ויאמר הורדוס הן אנכי נשאתי את ראש יוחנן מעליו ומי אפוא הוא אשר אני שמע עליו כזאת ויבקש לראותו׃ 성 경: [눅9: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헤롯의 불안] 󰃨 이 사람이 누군고…보고자 하더라 – 헤롯은 예수께 대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에 집착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 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늘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마 14:3-11; 막 6:17-28). 여기서 “…자 하더라”는 표현 ‘에제테이'(*)는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헤롯이 계속해서 예수를 보고자 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13:31에 의하면 헤롯이 예수를 보고자 한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죄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만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를 희롱하며 예수가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내지는 동조자(同調者)로서의 역할을 했다(23:8,11). 카이 휘포스트렢산테스 호이 아포스톨로이 디에게산토 아우토 호사 에포이에산 ㅏ이 파랄라본 아우투스 휘페코레센 캍 이디안 에이스 폴린 칼루메넨 베드사이다 개역개정,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새번역,10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이야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우리말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예수께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셨다. 영어NIV,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reported to Jesus what they had done. Then he took them with him and they withdrew by themselves to a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ASB,10 When the apostles returned, they gave an account to Him of all that they had done. Taking them with Him, He withdrew by Himself to a city called Bethsaida. 영어MSG,10 The apostles returned and reported on what they had done. Jesus took them away, off by themselves, near the town called Bethsaida. 영어NRSV,10 On their return the apostles told Jesus all they had done. He took them with him and withdrew privately to a city called Bethsaida.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υποστρεψαντες οι αποστολοι διηγησαντο αυτω οσα εποιησαν και παραλαβων αυτους υπεχωρησεν κατ ιδιαν εις τοπον ερημον πολεως καλουμενης βηθσαιδα 라틴어Vulgate,10 et reversi apostoli narraverunt illi quaecumque fecerunt et adsumptis illis secessit seorsum in locum desertum qui est Bethsaida 히브리어Modern,10 וישובו השליחים ויספרו לו את כל אשר עשו ויקחם אליו ויסר לבדד אל מקום חרב אשר לעיר הנקראה בית צידה׃ 성 경: [눅9:1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사도들이 돌아와…고한대 – 제자들이 사역한 기간이나 그들이 행한 구체적인 일들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시에 돌아와 예수께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사역의 기간과 다시 모이는 장소는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고한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게산토'(*)는 “경과를 끝까지 이야기한다”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킨다. 󰃨 벳새다 – 이 지명의 뜻은 ‘고기 잡는 집’인데 정확한 명칭은 ‘벳새다 율리아스'(Be-thsaida Julias)로 빌립왕이 건설하여 황제 아구스도의 딸 율리아스를 기념하는 뜻에서 ‘벳새다 율리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은 베드로, 빌립,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요 1:44). 예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간것은 제자들이 먼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막 6:31). 말하자면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따로’ 사적인 만남을 갖고자 했음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이다. 호이 데 오클로이 그논테스 에콜루데산 아우토 카이 아포뎈사메노스 아우투스 엘랄레이 아우토이스 페리 테스 바실레이아스 투 데우 카이 투스 크레이안 에콘타스 데라페이아스 이아토 개역개정,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새번역,11 그러나 무리가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우리말성경,11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예수를 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영어NIV,11 but the crowds learned about it and followed him.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healing. 영어NASB,11 But the crowds were aware of this and followed Him; and welcoming them, He began speaking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curing those who had need of healing. 영어MSG,11 But the crowds got wind of it and followed. Jesus graciously welcomed them and talked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Those who needed healing, he healed. 영어NRSV,11 When the crowds found out about it, they followed him; and he welcomed them, and spoke to them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ose who needed to be cure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ι δε οχλοι γνοντες ηκολουθησαν αυτω και δεξαμενος αυτους ελαλει αυτοις περι της βασιλειας του θεου και τους χρειαν εχοντας θεραπειας ιατο 라틴어Vulgate,11 quod cum cognovissent turbae secutae sunt illum et excepit illos et loquebatur illis de regno Dei et eos qui cura indigebant sanabat 히브리어Modern,11 והמון העם כאשר ידעו את זאת הלכו אחריו ויקבלם וידבר אליהם על מלכות האלהים וירפא את הצריכים לרפואה׃ 성 경: [눅9:1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무리가…따라 왔거늘 –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마가에 의하면(막6:32,33)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와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이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보다는 예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듯하다. 󰃨 영접하사…고치시더라 – 제자들 하고만 있고자 했던 예수의 계획은 모여든 무리들로 인해 일단 좌절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들을 떠나간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별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영접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영접했다’는 표현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목자없는 양 같이 보인 불쌍한 무리들을 따뜻이 그리고 흔쾌하게 맞아주신 예수의 온정을 느끼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두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는 일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는 일이다. 특히 ‘이야기 하시며'(*, 엘랄레이)와 ‘고치시더라'(*, 이아토)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헤 데 헤메라 에릌사토 클리네인 프로셀돈테스 데 호이 도데카 에이판 아우토 아폴뤼손 톤 오클론 히나 포류덴테스 에이스 타스 퀴클로 코마스 카이 아그루스 카탈뤼소신 카이 휴로신 에피스티스몬 호티 호데 엔 에레모 토포 에스멘 개역개정,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새번역,12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우리말성경,12 날이 저물자 열두 제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외딴 곳에 와 있으니 사람들을 보내 주변 마을과 농가로 가서 잠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얻게 하십시오.” 가톨릭성경,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영어NIV,12 Late in the afternoon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ey can go 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food and lodging, because we are in a remote place here.” 영어NASB,12 Now the day was ending, and the twelve came and said to Him, “Send the crowd away,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and find lodging and get something to eat; for here we are in a desolate place.” 영어MSG,12 As the day declined, the Twelve said, “Dismiss the crowd so they can go to the farms or villages around here and get a room for the night and a bite to eat. We’re out in the middle of nowhere.” 영어NRSV,12 The day was drawing to a close, and the twelve came to him and said, “Send the crowd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villages and countryside, to lodge and get provisions; for we are here in a deserted place.” 헬라어신약Stephanos,12 η δε ημερα ηρξατο κλινειν προσελθοντες δε οι δωδεκα ειπον αυτω απολυσον τον οχλον ινα απελθοντες εις τας κυκλω κωμας και τους αγρους καταλυσωσιν και ευρωσιν επισιτισμον οτι ωδε εν ερημω τοπω εσμεν 라틴어Vulgate,12 dies autem coeperat declinare et accedentes duodecim dixerunt illi dimitte turbas ut euntes in castella villasque quae circa sunt devertant et inveniant escas quia hic in loco deserto sumus 히브리어Modern,12 והיום רפה לערב ושנים העשר קרבו ויאמרו אליו שלח נא את העם וילכו אל הכפרים והחצרים אשר סביבותינו ללון שם ולמצא מזון כי פה אנחנו במקום חרבה׃ 성 경: [눅9:1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날이 저물어 가매 –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고치는 능력에 완전히 마음이 붙들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 먹을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시티스몬'(*)은 ‘곡식’을 뜻하는 ‘시티온'(*)에서 유래한 동사 ‘에피시티조 마이'(*, ‘스스로 양식을 공급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특히 고대 헬라어에서 ‘여행중의 양식’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제자들이 무리들의 묵을 곳과 먹을것을 염려하는 모습은 예수의 생각에 비교한다면 믿음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에이펜 데 프로스 아우투스 도테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파게인 호이 데 에이펜 우크 에이신 헤민 플레이온 에 아르토이 펜테 카이 이크뒤에스 뒤오 에이 메티 포류덴테스 헤메이스 아고라소멘 에이스 판타 톤 라온 투톤 브로마타 개역개정,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새번역,13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말성경,13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가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합니다.” 가톨릭성경,13 예수님께서 “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3 He replied,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answered, “We hav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unles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is crowd.” 영어NASB,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 unless perhaps we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영어MSG,13 “You feed them,” Jesus said. They said, “We couldn’t scrape up more than five loaves of bread and a couple of fish–unless, of course, you want us to go to town ourselves and buy food for everybody.” 영어NRSV,13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They said, “We have no more than five loaves and two fish–unless we are to go and buy food for all thes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ιπεν δε προς αυτους δοτε αυτοις υμεις φαγειν οι δε ειπον ουκ εισιν ημιν πλειον η πεντε αρτοι και δυο ιχθυες ει μητι πορευθεντες ημεις αγορασωμεν εις παντα τον λαον τουτον βρωματα 라틴어Vulgate,13 ait autem ad illos vos date illis manducare at illi dixerunt non sunt nobis plus quam quinque panes et duo pisces nisi forte nos eamus et emamus in omnem hanc turbam escas 히브리어Modern,13 ויאמר אליהם תנו אתם להם לאכל ויאמרו אין לנו כי אם חמשת ככרות לחם ודגים שנים בלתי אם נלך ונקנה אכל לכל העם הזה׃ 성 경: [눅9:1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너희가 먹을 것을…없삽나이다 – 예수는 제자들이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아무런 물질적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본문에서는 ‘너희가'(*, 휘메이스)에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해야할 사도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전적인 책임의식을 가지셨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2)예수께서는 선교여행 중 지녔던 권세와 능력에 대해 망각한 채 극히 평범하고 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제자들을 깨우쳐주고 책망하는 의미로 그런 주문을 하셨다. (3)제자들은 선교여행 중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으나 주리지않고 헐벗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받은것에 대해서 필요에 따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적인 동시에 의존적인 존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의 명령은 엘리사가 그의 사환에게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라고 명령한 것을 연상시킨다(왕하 4:42-44). 이에 대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불가능함을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본문의 기록대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가 두 마리 뿐이니 이것은 단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다. (2)지금의 장소는 너무 외진 곳이어서 음식을 구하러 사람을 보낼 수가 없다. (3)설령 사람을 보내어 200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을 사온다 한들 어림없이 부족하다(요6:7). 특히 마가(막 6:37)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는 말투로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누가는 비교적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산 가르 호세이 안드레스 펜타키스킬리오이 에이펜 데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카타클리나테 아우투스 클리시아스 호세이 아나 펜테콘타 개역개정,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새번역,14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우리말성경,14 그곳에는 남자만 5,000명 정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50명씩 둘러앉게 하라.” 가톨릭성경,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영어NIV,14 (About five thousand men were there.) But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NASB,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Have them sit down to eat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영어MSG,14 (There were more than five thousand people in the crowd.) But he went ahead and directed his disciples, “Sit them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영어NRSV,14 For there were about five thousand men. And he said to his disciples, “Make them sit down in groups of about fifty each.”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σαν γαρ ωσει ανδρες πεντακισχιλιοι ειπεν δε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κατακλινατε αυτους κλισιας ανα πεντηκοντα 라틴어Vulgate,14 erant autem fere viri quinque milia ait autem ad discipulos suos facite illos discumbere per convivia quinquagenos 히브리어Modern,14 כי היו כחמשת אלפי איש ויאמר אל תלמידיו הושיבו אתם שורות שורות חמשים בשורה׃ 성 경: [눅9:1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남자가 한 오천 명 – 남자 장정만 오천명 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이다. 󰃨 떼를 지어 – 마가는 이 표현을 라틴어의 ‘심포지움’ 즉 ‘향연’과 같은 의미의 ‘쉼포시아'(*)를 사용하는데(막 6:39) 비해 누가는 이 표현을 ‘클리시아스'(*)라는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정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마샬(Marshall)같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 교회의 만찬을 반영해 준다고 한다. 󰃨 한 오십 명씩 앉히라 – 여기서도 누가는 독특하게 ‘한'(*, 호세이)이라는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누가는 의사와 역사가로서 숫자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비교, 막 6:40). 몇 명 단위로 앉혔는가 하는 사실에 관해서는 전승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단지 무리를 일정한 단위로 세분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를 세분화했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카이에포이에산 후토스 카이 카테클리난 하판타스 개역개정,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새번역,15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우리말성경,15 제자들은 그대로 사람들을 모두 앉혔습니다. 가톨릭성경,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영어NIV,15 The disciples did so, and everybody sat down. 영어NASB,15 They did so, and had them all sit down. 영어MSG,15 They did what he said, and soon had everyone seated. 영어NRSV,15 They did so and made them all sit down.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ποιησαν ουτως και ανεκλιναν απαντας 라틴어Vulgate,15 et ita fecerunt et discumbere fecerunt omnes 히브리어Modern,15 ויעשו כן ויושיבו את כלם׃ 성 경: [눅9:1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제자들이…다 앉힌 후 – 제자들이 예수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이 간결하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 역시 음식이 어디서 올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본 데 투스 펜테 아르투스 카이 투스 뒤오 잌뒤아스 아나블렢사스 에이스 톤 우라논 율로게센 아우투스 카이 카테클레센 카이 에디두 토이스 마데타이스 파라데이나이 토 오클로 개역개정,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새번역,16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우리말성경,16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영어NIV,16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m.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NASB,16 Then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blessed them, and broke them, and kept giving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영어MSG,16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lifted his face to heaven in prayer, blessed, broke, and gave the bread and fish to the disciples to hand out to the crowd. 영어NRSV,16 And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he looked up to heaven, and blessed and broke them,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 crow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λαβων δε τους πεντε αρτους και τους δυο ιχθυας αναβλεψας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υλογησεν αυτους και κατεκλασεν και εδιδου τοις μαθηταις παρατιθεναι τω οχλω 라틴어Vulgate,16 acceptis autem quinque panibus et duobus piscibus respexit in caelum et benedixit illis et fregit et distribuit discipulis suis ut ponerent ante turbas 히브리어Modern,16 ויקח את חמשת ככרות הלחם ואת שני הדגים וישא עיניו השמימה ויברך עליהם ויפרס ויתן לתלמידיו לשום לפני העם׃ 성 경: [눅9:1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 공관복음서 모두가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문구(文句)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은 일반적인 유대인의 식사 관습과 일치한다. ‘축사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오'(*)는 ‘찬양하다’, ‘축복하다’, ‘감사하다’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것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며 단지 평범한 감사의 식사 기도로 보아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되는 삶을 사신 예수께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으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위한 별도의 간구가 필요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 주어…놓게하시니 – ‘주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두'(*)는 ‘디도미'(*)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 예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었음을 가리킨다. 떡과 물고기는 예수의 손에서 제자들을 경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전달 과정에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단지 우리는 ‘주어'(*, 에디두)라는 미완료 동사에서 예수의 손에서 떡이 끝없이 계속해서 떼어져 나가는 기적적인 증가가 있었음을 암시받을 뿐이다. 카이 에파곤 카이 에코르타스데산 판테스 카이 에르데 토 페리쓔산 아우토이스 클라스마톤 코피노이 도데카 개역개정,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새번역,17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우리말성경,17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남은 조각들을 거두어 보니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가톨릭성경,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영어NIV,17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영어NASB,17 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broken pieces which they had left over were picked up, twelve baskets full. 영어MSG,17 After the people had all eaten their fill, twelve baskets of leftovers were gathered up. 영어NRSV,17 And all ate and were filled. What was left over was gathered up, twelve baskets of broken piece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και εφαγον και εχορτασθησαν παντες και ηρθη το περισσευσαν αυτοις κλασματων κοφινοι δωδεκα 라틴어Vulgate,17 et manducaverunt omnes et saturati sunt et sublatum est quod superfuit illis fragmentorum cofini duodecim 히브리어Modern,17 ויאכלו כלם וישבעו וישאו מן הפתותים הנותרים להם שנים עשר סלים׃ 성 경: [눅9:1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오병 이어(五餠二魚)의 이적] 󰃨 먹고 다 배불렀더라 – 그곳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배불리 먹지 못한 자는 하나도없다. 이는 예수의 능력의 완전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육신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 보다는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일에 궁극적 목적을 두셨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매료(魅了)되어 찾아온 무리들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도한 요한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요 6:14,15,26,27) 󰃨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 – 무리가 모두 배불리 먹은데 그치지 않고 남은 양이 무려 열 두 바구니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어 들이라 명하시는데(요 6:12), 이것은 음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 외에도 무엇이든 힘들이지 않고 예수의 이적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다음에 또 예수께서 기적을 일으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구니'(*, 코피노이)는 군인들이 장비나 급식을 담아 짊어지고 다니는 기구 또는 여행자들이 음식과 필수품을 가지고 다니는 기구를 가리킨다. 처음의 시작은 바구니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는 적은 양이었지만 그것이 예수 앞에 바쳐졌을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하라. 제자들은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안된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적합할 만큼의 적은 것으로 큰 일을 하신 것이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에이나이 아우톤 프로슈코메논 카타 모나스 쉬네산 아우토 호이 마데타이 카이 에페로테센 아우투스 레곤 티나 메 레구신 호이 오클로이 에이나이 개역개정,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새번역,18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말성경,18 한번은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가톨릭성경,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영어NI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in private and his disciples were with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I am?” 영어NASB,18 And it happened that while He was praying alone, the disciples were with Him, and He questioned them, saying, “Who do the people say that I am?” 영어MSG,18 One time when Jesus was off praying by himself, his disciples nearby, he asked them, “What are the crowds saying about me, about who I am?” 영어NRSV,18 Once when Jesus was praying alone, with only the disciples near him, he asked them, “Who do the crowds say that I a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ν προσευχομενον καταμονας συνησαν αυτω οι μαθηται και επηρωτησεν αυτους λεγων τινα με λεγουσιν οι οχλοι ειναι 라틴어Vulgate,18 et factum est cum solus esset orans erant cum illo et discipuli et interrogavit illos dicens quem me dicunt esse turbae 히브리어Modern,18 ויהי הוא מתפלל לבדד ויאספו אליו תלמידיו וישאל אתם לאמר מה אמרים עלי המון העם מי אני׃ 성 경: [눅9:1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따로 기도하실 때에 – 누가는 막 6:45-8:26의 내용을 생략한 채 오병 이어의 기적에 이어 바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할때에’라는 ‘엔토'(*)구문으로 단락을 전환시키고 있다. 마태나 마가에 의하면(마 16:13;막 8:27) 이 장소는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이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90km 떨어진 헤르몬 산 근처의 성읍으로 특히 우상 숭배로 유명하다. 토착민들은 바알신을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pan)의 신당을 지어 섬겼으며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이런 우상 숭배의 지역에서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irony)라 할 수 있다. 한편 누가는 이러한 단락 전환에 있어서 그 서두를 예수께서 기도 중에 있는 사실로 시작하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있어서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3:21;6:12;9:28). 󰃨 무리가…누구라고 하느냐 – 무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문을 못들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물으신 듯하다. 예수께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며, 그는 이미 무리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다(요 6:14,15,26). 호이 데 아포크리덴테스 에이판 요안넨 톤 밮티스텐 알로이 데 엘리안 알로이 데 호티 프로페테스 티스 톤 아르카이온 아네스테 개역개정,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새번역,19 그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또는 ‘침례자’ 우리말성경,19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옛 예언자 중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침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영어NIV,19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long ago has come back to life.” 영어NASB,19 They answered and said, “John the Baptist, and others say Elijah; but others, that one of the prophets of old has risen again.” 영어MSG,19 They said, “John the Baptizer. Others say Elijah. Still others say that one of the prophets from long ago has come back.” 영어NRSV,19 They answered, “John the Baptist; but others, Elijah; and still others, that one of the ancient prophets has arisen.” 헬라어신약Stephanos,19 οι δε αποκριθεντες ειπον ιωαννην τον βαπτιστην αλλοι δε ηλιαν αλλοι δε οτι προφητης τις των αρχαιων ανεστη 라틴어Vulgate,19 at illi responderunt et dixerunt Iohannem Baptistam alii autem Heliam alii quia propheta unus de prioribus surrexit 히브리어Modern,19 ויענו ויאמרו יוחנן המטביל ואחרים אמרים אליהו ואחרים אמרים נביא קם מן הקדמונים׃ 성 경: [눅9:1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세례 요한…엘리야…선지자…살아났다 – 제자들의 답변은 7,8절에서 헤롯이 들었던 소문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특별성은 보았으나 그가 단순히 특별한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메시야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에이펜 데 아우토이스 휘메이스 데 티나 메 레게테 에이나이 페트로스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톤 크리스톤 투 데우 개역개정,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새번역,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 ㉢히브리어로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분’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0 그러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가톨릭성경,20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어NIV,20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Peter answered, “The Christ of God.” 영어NASB,20 And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And Peter answered and said, ” The Christ of God.” 영어MSG,20 He then asked, “And you–what are you saying about me? Who am I?”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영어NRSV,20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answered, “The Messiah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ιπεν δε αυτοις υμεις δε τινα με λεγετε ειναι αποκριθεις δε ο πετρος ειπεν τον χριστ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dixit autem illis vos autem quem me esse dicitis respondens Simon Petrus dixit Christum Dei 히브리어Modern,20 ויאמר אליהם ואתם מה אתם אמרים מי אני ויען פטרוס ויאמר משיח האלהים אתה׃ 성 경: [눅9:2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께서 재차 제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 것은 무리의 생각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수많은 이적적 권능들을 나타내 보이셨다(8:22-25,26-35, 41-56; 9:10-17). 이 모든 일들은 첫째,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며, 둘째,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하려는 간접적인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제 예수는 제자들이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게되었을 것이라고 보아 이런 물음을 던지신 것이다. 한편 이 물음은 모든 신앙인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공개적인 신앙고백의 요청이기도 하다. 즉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경험하는가하는 질문이다. 󰃨 베드로가…그리스도시니이다 – 질문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역시 제자들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록함에 있어서 각 복음서간에 표현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마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로 마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요한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되어 있어 표현상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호 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뜻하는 것이며 이 고백은 (1)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곧 성경에 예언된 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인물임을 말한다(민 24:17). (2)또한 이 고백은 예수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시인한 것이다(요 10:30;요일4: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의문시 되어 왔던 예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마가와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마태복음에는(마 16:17-19) 훌륭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칭찬과 약속이 언급되며, 그 본문은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여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근거로도 사용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 16:13-20의 주제 강해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따른 약속’을 보라. 호 데 에피티메사스 아우토이스 파렝게일렌 메데니 레게인 투토 개역개정,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새번역,21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우리말성경,21 예수께서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며 가톨릭성경,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영어NIV,21 Jesus strictly warn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NASB,21 But He warned them and instructed them not to tell this to anyone, 영어MSG,21 Jesus then warned them to keep it quiet. They were to tell no one what Peter had said. 영어NRSV,21 He sternly ordered and commanded them not to tell anyon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δε επιτιμησας αυτοις παρηγγειλεν μηδενι ειπειν τουτο 라틴어Vulgate,21 at ille increpans illos praecepit ne cui dicerent hoc 히브리어Modern,21 ויצו אתם בגערה לבלתי הגיד לאיש את הדבר הזה׃ 성 경: [눅9:2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경계하사…명하시고 – ‘경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인데 이 말은 ‘보통 꾸짖다'(4:35)라는 뜻을 가지나 여기서는 ‘당부하다’ 또는 ‘심각하게 말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명령하다'(*, 파랑겔로)를 첨가하여 매우 강도 높은 함구령임을 부각시겼다. 예수께서 이렇게 메시야로서의 정체를 강력하게 숨기려 한것은 (1)유대인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랜 역사의 억압과 수탈을 당해 오면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야를 열렬히 대망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경우에 그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들었을 것이다(요 6:14,15). (2)예수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질 경우 너무나 빨리 그에게 정치적 위협이 다가올 수 있고 그럴 경우 예수의 지상 사역이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3:31). 에이폰 호티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폴라 파데인 카이 아포도키마스데나이 아포 톤 프레스뷔테론 카이 아르키에레온 카이 그람마테온 카이 아포크탄데나이 카이 테 트리테 헤메라 에게르데나이 개역개정,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새번역,22 말씀하셨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우리말성경,22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받아 끝내 죽임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영어NIV,22 And he said,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he must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to life.” 영어NASB,22 saying, ”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and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be raised up on the third day.” 영어MSG,22 He went on, “It is necessary that the Son of Man proceed to an ordeal of suffering, be tried and found guilty by the religious leaders, high priests, and religion scholars,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up alive.” 영어NRSV,22 saying, “The Son of Man must undergo great suffering,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ιπων οτι δει τον υιον του ανθρωπου πολλα παθειν και αποδοκιμασθηναι απο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και αρχιερεων και γραμματεων και αποκτανθηναι και τη τριτη ημερα εγερθηναι 라틴어Vulgate,22 dicens quia oportet Filium hominis multa pati et reprobari a senioribus et principibus sacerdotum et scribis et occidi et tertia die resurgere 히브리어Modern,22 ויאמר מן הצרך הוא אשר בן האדם יענה הרבה וימאס מן הזקנים והכהנים הגדולים והסופרים ויהרג וביום השלישי קום יקום׃ 성 경: [눅9:2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인자가…하리라 – 본절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차례의 수난 예고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바로 이어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준다. 즉 예수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로서 유대의 주권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는 임무를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는 임무를 띠고 오신 분이다. 본절의 수난 예고는 예수에게 네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데 (1)먼저 수난을 당하신다. 이 고난의 배경에는 사 53:4,11의 예언이 있다. (2)버림을 받으신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아포도키마조'(*)는 ‘거부하다’, ‘쓸모 없다고 선언하다’는 뜻으로 공무원 지망생을 면밀히 조사하고 심사한 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경우나 열등한 화폐를 검사하여 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을 말해준다. (3)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4)죽은 후 제 삼 일에 살아나실 것이다. 여기서 마가는 ‘일어나다’는 표현을 능동태 ‘아나스테나이'(*)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수동태 ‘에게르데나이'(*)를 사용하여 ‘일으킴을 받는다'(be raised)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과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개입함을 시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동사’데이'(*)는 당위의 뜻인 바, 예수의 수난이 필연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밝혀준다(사 53장; 요 3:16;롬 8:32). 󰃨 인자 – 여기서 인자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5:24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 보라. 󰃨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장로들'(*, 프레스뷔테로스)은 지방의 하급 법원에서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지방의 공회를 구성하였다(7:3;20:1;22:52). ‘대제사장들'(*, 아르키에류스)은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과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는 권한이있다. 본래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종신적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고 총독들에 의해 임시로 교체되는 관행이 생기면서부터 그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된 것은 대제사장을 지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관들'(*, 그람마튜스)은 ‘랍비’, ‘율법사’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바리새인으로서 각각 공공기관 또는 사설 단체에 속하여 율법의 이론적 발전, 율법의 교수, 율법의 적용에 힘썼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나열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 그룹들은 유대 최고의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무리들이다.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모두 7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기관이었다. 유대 민족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백성들을 옳바른 종교적인 삶으로 인도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차단시키는 역할을 선도적으로 하게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유대인의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엘레겐 데 프로스 판타스 에이 티스 델레이 오피소 무 에르케스다이 아르네사스도 헤아우톤 카이 아라토 톤 스타우론 아우투 칻 헤메란 카이 아몰루데이토 모이 개역개정,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새번역,23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우리말성경,23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가톨릭성경,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영어NI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NASB,23 And He was saying to them all,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영어MSG,23 Then he told them what they could expect for themselves: “Anyone who intends to come with me has to let me lead. You’re not in the driver’s seat–I am. Don’t run from suffering; embrace it. Follow me and I’ll show you how. 영어NRSV,23 Then he said to them all, “If any want to become my followers, let them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daily and follow me. 헬라어신약Stephanos,23 ελεγεν δε προς παντας ει τις θελει οπισω μου ελθειν απαρνησασθω εαυτον και αρατω τον σταυρον αυτου καθ ημεραν και ακολουθειτω μοι 라틴어Vulgate,23 dicebat autem ad omnes si quis vult post me venire abneget se ipsum et tollat crucem suam cotidie et sequatur me 히브리어Modern,23 ואל כלם אמר איש כי יחפץ ללכת אחרי יכחש בנפשו ויום יום ישא את צלבו והלך אחרי׃ 성 경: [눅9:23]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 예수의 길이 분명하였듯이(22절)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함을 말해준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의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기란 실로 어렵다. 첫째로 자기 부정이 요구된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자기 십가가를 져야한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째로 이러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지속성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성장하려면 일시적 결심으로만은 부족하며 일관된 신앙 훈련이 요구된다. 호스 가르 안 델레 텐 프쉬켄 아우투 소사이 아폴레세이 아우텐 호스 드 안 아폴레세 텐 프쉬켄 아우투 헤네켄 에무 후토스 소세이 아우텐 개역개정,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새번역,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4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영어NIV,24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e will save it. 영어NASB,24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he is the one who will save it. 영어MSG,24 Self-help is no help at all. Self-sacrifice is the way, my way, to finding yourself, your true self. 영어NRSV,24 For those who want to save their life will lose it, and those who lose their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ς γαρ αν θελ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σωσαι απολεσει αυτην ος δ αν απολεση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ενεκεν εμου ουτος σωσει αυτην 라틴어Vulgate,24 qui enim voluerit animam suam salvam facere perdet illam nam qui perdiderit animam suam propter me salvam faciet illam 히브리어Modern,24 כי כל אשר יחפץ להושיע את נפשו תאבד נפשו ממנו וכל אשר יאבד את נפשו למעני הוא יושיענה׃ 성 경: [눅9:24]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목숨을…잃을 것이요 – 자기의 삶을 고집하는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아의 범주 속에 파묻혀 일신상(一身上)의 부귀 영화만을 위하여 타자를 생각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잃게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는 교회에 핍박과 순교의 시련이 올 때 육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 때 진정한 생명을 잃게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요 12:25). 󰃨 나를 위하여…구원하리라 – 마가복음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고 하여 ‘복음’을 첨가하고 있으나 누가는 그것을 삭제하여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집중 시킨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기꺼이 포기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잃음이 아니요 얻음이라는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 할 수 있다. 티 가르 오펠레이타이 안드로포스 케르데사스 톤 코스몬 홀론 헤아우톤 데 아폴레사스 에 제미오데이스 개역개정,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새번역,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우리말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가톨릭성경,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영어NIV,25 What good is it for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and yet lose or forfeit his very self? 영어NASB,25 “For what is a man profited if he gains the whole world, and loses or forfeits himself? 영어MSG,25 What good would it do to get everything you want and lose you, the real you? 영어NRSV,25 What does it profit them if they gain the whole world, but lose or forfeit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25 τι γαρ ωφελειται ανθρωπος κερδησας τον κοσμον ολον εαυτον δε απολεσας η ζημιωθεις 라틴어Vulgate,25 quid enim proficit homo si lucretur universum mundum se autem ipsum perdat et detrimentum sui faciat 히브리어Modern,25 כי מה יועיל האדם כי יקנה את כל העולם ואבד והשחית את נפשו׃ 성 경: [눅9:25]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온 천하를…유익하리요 –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의 문제를 가르친다. 세상이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누려본다 한들 자기의 영혼과 본성을 잃게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기위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가치를 소모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온 천하를 잃게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계 2:10). 호스 가르 안 에파이스퀸데 메 카이 투스 에무스 로구스 투톤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에파이스퀸데세타이 호탄 엘데 엔 테 돜세 아우투 카이 투 파트로스 카이 톤 하기온 앙겔론 개역개정,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새번역,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우리말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가운데 올 때 그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영어NIV,26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in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NASB,26 “For whoever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영어MSG,26 If any of you is embarrassed with me and the way I’m leading you, know that the Son of Man will be far more embarrassed with you when he arrives in all his splendor in company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angels. This isn’t, you realize, pie in the sky by and by. 영어NRSV,26 Those who are ashamed of me and of my words, of them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when he comes in his glory and the glory of the Father and of the holy angels.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ς γαρ αν επαισχυνθη με και τους εμ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ν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επαισχυνθησεται οταν ελθη εν τη δοξη αυτου και του πατρος και των αγιων αγγελων 라틴어Vulgate,26 nam qui me erubuerit et meos sermones hunc Filius hominis erubescet cum venerit in maiestate sua et Patris et sanctorum angelorum 히브리어Modern,26 כי כל אשר הייתי אני ודברי לו לחרפה הוא יהיה לחרפה לבן האדם כאשר יבא בכבודו ובכבוד האב והמלאכים הקדושים׃ 성 경: [눅9:26]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 적극적 의미에서는 복음 증거시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을 의식(意識)하지 말라는 당부이며, 소극적 의미에서는 박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 승천후 교회에 핍박이 닥쳐올 때예수께서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 무기력해 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삶이 실패자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인자도…부끄러워 하리라 –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재림이 최초로 언급되고있다. 누가는 마태나(마 16:27), 마가(막 8:38)와 달리 ‘자기와 천사의 영광’을 첨가하여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三重)의 영광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재림주로 오실 예수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은 사람들을 행위에 따라 심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마 16:27)에 주목하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히 12:2) 종말 때의 심판주로 재림하시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부끄러워 하여 인간적인 방식대로 살았던 사람은 혹 세상을 얻었을지 몰라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수치스러운 종국을 맞게 될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롬 1:16). 레고 데 휘민 알레도스 에이신 티네스 톤 아우투 헤스테코톤 호이 우 메 규손타이 다나투 헤오스 안 이도신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개역개정,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새번역,2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 우리말성경,2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영어NIV,27 I tell you the truth, some who are standing here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NASB,27 “But I say to you truthfully, there are some of thos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until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MSG,27 Some who have taken their stand right here are going to see it happen, see with their own eyes the kingdom of God.” 영어NRSV,27 But truly I tell you, there are some standing here who will not taste death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λεγω δε υμιν αληθως εισιν τινες των ωδε εστηκοτων οι ου μη γευσονται θανατου εως αν ιδωσ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7 dico autem vobis vere sunt aliqui hic stantes qui non gustabunt mortem donec videant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27 ובאמת אני אמר לכם יש מן העמדים פה אשר לא יטעמו מות עד כי יראו את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9:27]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번째 예고] 󰃨 여기 섰는…있느니라 – 26절에서 예수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확인하였다면 본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축복이 약속되고 있다. 본절에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섰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구별된 사람들’이 보게될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해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1)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2)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까지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 (3)오순절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 (4)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이 중 세번째 견해가 유력하다고 본다. 에게네토 데 메타 투스 로구스 투투스 호세이 헤메라이 옼토 카이 파랄라본 페트론 카이 요안넨 카이 야코본 아네베 에이스 토 오로스 프로슠사스다이 개역개정,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새번역,28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우리말성경,28 이런 말씀을 하신 뒤 8일쯤 지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가톨릭성경,28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영어NIV,28 About eight days after Jesus said this, he took Peter, John and James with him and went up onto a mountain to pray. 영어NASB,28 Some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He took along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영어MSG,28 About eight days after saying this, he climbed the mountain to pray, taking Peter, John, and James along. 영어NRSV,28 Now about eight days after these sayings Jesus took with him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went up on the mountain to pray.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γενετο δε μετα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ωσει ημεραι οκτω και παραλαβων τον πετρον και ιωαννην και ιακωβον ανεβη εις το ορος προσευξασθαι 라틴어Vulgate,28 factum est autem post haec verba fere dies octo et adsumpsit Petrum et Iohannem et Iacobum et ascendit in montem ut oraret 히브리어Modern,28 ויהי כשמנה ימים אחרי הדברים האלה ויקח אליו את פטרוס ואת יוחנן ואת יעקב ויעל אל ההר להתפלל שם׃ 성 경: [눅9:28]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이 말씀을 하신 후 –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연결구를 첨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26:37;막 14:33) 예수를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다. 󰃨 기도하시러 산에 –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山行)의 목적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 ‘메론 산’, ‘다볼산’이라는 추측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프로슈케스다이 아우톤 토 에이도스 투 프로소푸 아우투 헤테론 카이 호 히마티스모스 아우투 류코스 엨사스트랖톤 개역개정,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새번역,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우리말성경,29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동안 얼굴 모습이 변하셨고 옷이 하얗게 빛났습니다. 가톨릭성경,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영어NIV,29 As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as bright as a flash of lightning. 영어NASB,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became different, and His clothing became white and gleaming. 영어MSG,29 While he was in prayer,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blinding white. 영어NRSV,29 And while he was praying, the appearance of his face changed, and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헬라어신약Stephanos,29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προσευχεσθαι αυτον το ειδος του προσωπου αυτου ετερον και ο ιματισμος αυτου λευκος εξαστραπτων 라틴어Vulgate,29 et factum est dum oraret species vultus eius altera et vestitus eius albus refulgens 히브리어Modern,29 ויהי בהתפללו נשתנה מראה פניו ולבושו הלבין והבריק׃ 성 경: [눅9:29]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기도하실 때에…나더라 –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이 달라졌다’이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한다. 이는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시 84:11;계 1:16;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다(마 28:3;막 16:5;행 1:10;계 3:4,5;7:14). 이것 역시 예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준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의 합성어로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의 변모는 (1)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 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의 모습과(롬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다. 카이 이두 안드레스 뒤오 쉬넬랄룬 아우토 호이티네스 에산 모위세스 카이 엘리아스 개역개정,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새번역,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우리말성경,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어NIV,30 Two men, Moses and Elijah, 영어NASB,30 And behold, two men were talking with Him; and they were Moses and Elijah, 영어MSG,30 At once two men were there talking with him. They turned out to be Moses and Elijah– 영어NRSV,30 Suddenly they saw two men, Moses and Elijah, talki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ιδου ανδρες δυο συνελαλουν αυτω οιτινες ησαν μωσης και ηλιας 라틴어Vulgate,30 et ecce duo viri loquebantur cum illo erant autem Moses et Helias 히브리어Modern,30 והנה שני אנשים מדברים אתו והמה משה ואליהו׃ 성 경: [눅9:30]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모세와 엘리야 –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이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다(말 4:5).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마 5:17,18). 호이 오프덴테스 엔 돜세 엘레곤 텐 엨소돈 아우투 헨 에멜렌 플레룬 엔 예루살렘 개역개정,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새번역,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 ㉤’세상에서 떠나가심’ 곧 ‘죽으심’ 우리말성경,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분의 떠나가심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영어NIV,31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영어NASB,31 who, appearing in glory,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영어MSG,31 and what a glorious appearance they made! They talked over his exodus, the one Jesus was about to complete in Jerusalem. 영어NRSV,31 They appeared in glory and were speaking of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accomplish at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ι οφθεντες εν δοξη ελεγον την εξοδον αυτου ην εμελλεν πληρου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31 visi in maiestate et dicebant excessum eius quem conpleturus erat in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31 אשר נראו בכבוד והגידו את אחריתו אשר ימלאנה בירושלים׃ 성 경: [눅9:31]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낸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 데 페트로스 카이 호이 쉰 아우토 에산 베바레메노이 휲노 디아그레고레산테스 데 에이돈 텐 돜산 아우투 카이 투스 뒤오 안드라스 투스 쉬네스토타스 아우토 개역개정,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새번역,32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우리말성경,32 베드로와 그 일행이 잠을 이기지 못해 졸다가 완전히 깨서 예수의 영광과 그분 곁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영어NIV,32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very sleepy, but when they becam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ASB,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had been overcome with sleep; but when they were fully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MSG,32 Meanwhile, Peter and those with him were slumped over in sleep. When they came to, rubbing their eyes, they saw Jesus in his glory and the two men standing with him. 영어NRSV,32 Now Peter and his companions were weighed down with sleep; but since they had stayed awake, they saw his glory and the two men who stood wit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2 ο δε πετρος και οι συν αυτω ησαν βεβαρημενοι υπνω διαγρηγορησαντες δε ειδον την δοξαν αυτου και τους δυο ανδρας τους συνεστωτας αυτω 라틴어Vulgate,32 Petrus vero et qui cum illo gravati erant somno et evigilantes viderunt maiestatem eius et duos viros qui stabant cum illo 히브리어Modern,32 ויהיו פטרוס ואשר אתו נרדמים ובהקיצם ראו את כבודו ואת שני האנשים העמדים עליו׃ 성 경: [눅9:32] 주제1: [인자의 신분과 사역의 공개] 주제2: [변화산에서의 예수] 󰃨 곤하여 졸다가 –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와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예수는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곯아 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한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결과를 초래했다(22:42-46). 󰃨 아주 깨어…보더니 –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난다. 아마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와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다. 이는 예수가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 시사한다. 카이 에게네토 엔 토 디아코리제스다이 아우투스 앞 아우투 에이펜 호 페트로스 프로스 톤 예순 에피스타타 칼론 에스틴 헤마스 호데 에이나이 카이 포이에소멘 스케나스 트레이스 미안 소이 카이 미안 모위세이 카이 미안 엘리아 메 에이도스 호 레게이 개역개정,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새번역,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3 두 사람이 예수를 떠나려고 하자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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