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음 13 장 | 누가복음 13장 163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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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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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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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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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누가복음 13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누가복음 13장 · (눅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행5:37 · (눅 13:2) · (눅 13:3) · (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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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1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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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누가복음 13. 13. 1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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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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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번역 누가복음 13장

13:1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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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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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KLB – 천국 문은 좁다 – 바로 그때 – Bible Gateway

천국 문은 좁다 –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제사를 드리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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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6/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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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금) “누가복음 13:1-9” / 작성: 정한조

본문 누가복음 13:1-9 찬송가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빌라도의 갈릴리 사람들 살해 사건(1-3절) 오늘 본문은 두 사건과 한 비유에 대해서 증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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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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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27일. 누가복음 13장. – 하늘품은교회

누가복음 13장.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1. 두어 사람이 주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 몇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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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poom.or.kr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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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 Daum 카페

누가복음 제 13장 =====13:1 그때 마침 – 이 표현은 앞의 이야기와의 연결을 말해주는 동시에 어떤 예기치 않은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이 있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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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3/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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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장 – 문제와 해답]

누가복음 13 장. 1.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는 것은 모독적인 방법으로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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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10/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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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 복음 13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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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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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1)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시다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마 13:31-33; 막 4:30-32)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마 7:13-14, 21-23)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2)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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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10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22 예수께서 각성 각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9 사람들이 동서 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새번역 누가복음 13장

13:1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13: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13: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13: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13:6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13: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3: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13: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13:10 [안식일에 등 굽은 여자를 고치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3:11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13:12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3: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13:15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13: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무리는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13:18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마 13:31-33; 막 4:30-3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그것을 무엇에다가 비길까?

13:19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13:20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다가 비길까?

13:21 그것은 누룩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a말 속에 b섞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a 그, ‘사타스’. 세 사타스는 약 22리터 b 그, ‘감추었더니’)

13:22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마 7:13-14, 21-23)] 예수께서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르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13: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13: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3: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13:27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13: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13:29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13:30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13:31 [예루살렘을 보고 한탄하시다(마 23:37-39)]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13: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13: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13:35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c’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c 시 118:26)

2020/05/15(금) “누가복음 13:1-9” / 작성: 정한조

본문 누가복음 13:1-9

찬송가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빌라도의 갈릴리 사람들 살해 사건(1-3절)

오늘 본문은 두 사건과 한 비유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절은 빌라도 총독이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 마침”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것의 문자적인 뜻은 “바로 같은 그 시간에”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12:54-59과 관련된다는 의미입니다. 1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되면, 비가 쏟아질 것이 금방 예상이 됩니다. 또 여름에 아침 해가 뜨기 전임에도 날씨가 후덥지근하면, 그날은 몹시 무더울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또 나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기세등등한 자세로 나를 데리고 재판장에게 끌고 간다면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자명해집니다. 이처럼 지금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예상이 된다면, 이 시대의 흐름을 보고서,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최후 심판이나 자신의 종말이 오기 전에 분별력 있게 회개하고 주님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백성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드리는 짐승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직접 잡았습니다. 유월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때에 수만 마리의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제사장들이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제물로 드린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각 뜬 제물을 불로 태우는 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제물로 드릴 짐승을 잡고 있는데, 빌라도 총독이 갈릴리 사람들을 죽이고, 그 피를 제물로 드릴 짐승의 피와 섞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누가복음 23:12에 보면 헤롯과 빌라도가 이전에는 원수였지만 당일-예수님을 죽이는 날-에는 친구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학자들은 빌라도의 이 사건 때문에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빌라도 총독은 이스라엘의 남쪽인 유대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헤롯(헤롯 안티파스)은 이스라엘의 북쪽인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쪽 통치자가 북쪽 사람을 죽여 그 피를 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피와 섞어버린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게릴라전을 펼쳤고, 로마 정부는 그런 일에 대해서 무자비한 탄압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로마의 총독이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중에 당시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한 사건을 예수님께 일러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 사건을 예수님께 고했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일차적으로는 가해자인 빌라도 총독을 비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을 정죄하고, 그에게 분노를 쏟아 내는 것을 듣고 자신들도 예수님과 함께 빌라도 총독을 욕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빌라도 총독의 일을 예수님께 고한 것은 빌라도 총독보다는 갈릴리 사람들에 초점을 두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사람들은 빌라도 총독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아주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 중에는 빨리 성공해서 예루살렘과 같은 도시로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살거나 세상에 대해서 한과 분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갈릴리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진노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아서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천재지변이나 인재지변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때, 사람들이 잘못 살았기 때문에, 또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일을 겪을 때도 동일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서 가족이 세상을 떠나거나 심각한 상태에 있게 될 때에,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또 내 가족에게 일어났을까? 내가 삶을 잘못 살았기 때문일까?”와 같이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은 믿음 안에서 해석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태도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4-5절)

4-5절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이 사고도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있었던 천재지변이나 의도하지 않았던 인재지변과 같은 재난으로 여겨집니다. 이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그들이 죄가 많아서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에 있었던 성수대교 붕괴나 1995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고가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에서도 있었던 것입니다.

천재지변이든, 인재지변이든지 간에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답변이 동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 빌라도 총독이 제물의 피에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를 섞은 일에 대해서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천재지변, 예기치 않은 사고라고 할 수 있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3절의 말씀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고는 동일하게 “회개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다’의 구약적인 의미는 ‘가던 길을 바꾸고 돌아서다’입니다. 동쪽으로 가다가 그 길이 바른길이 아님을 깨닫고, 돌아서서 서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 ‘회개하다’의 신약적인 의미는 ‘마음을 바꾸다’입니다. 동쪽으로 가던 길을 서쪽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정신)을 바꿀 때 가능하고, 그 마음(정신)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바뀌어 다시는 동쪽으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3절과 5절은 예수님께서 어떤 형태의 일들을 보든지 간에 각자의 삶에 바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 사건, 사고, 현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은 신앙의 지혜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사람에 의하여서 일어나는 재난인 인재(人災)를 최소화하는 것은, 바른 제도를 만들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 제도를 제대로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6-9절)

6-9절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비유입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에다 포도가 아니라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우리말 ‘무화과’의 문자적인 의미는 ‘꽃이 없는 과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꽃이 없이 바로 과일이 열리는 나무는 없습니다. 무화과는 열매 안에 꽃이 있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무화과_꽃이 없는 과일’이라기 보다, ‘은화과(隱花果, syconium)_꽃이 감추어진 과일’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중동에서는 무화과를 1년에 2번 수확합니다. 3월경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첫 열매를 ‘파게(Phage)’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지난해의 가지에 열리는 것으로 과즙이 부족하고, 당도가 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양식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귀한 먹거리였습니다. 마치 ‘춘궁기(春窮期)’에 먹는 ‘구황식물(救荒植物)’과도 같았습니다. 첫 무화과 파게는 6월경이면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무화과는 8-9월에 수확했는데, ‘테에나(Thaena)’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첫 열매보다 수분도 풍부하고 당도도 높았습니다. 이것을 과일이나 음식의 일부로 먹었음은 물론 말려서 소화제나 치료제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고대에 무화과나무는 효용 가치가 높은 나무였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은 것은 틀림없이 열매를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지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주인은 무화과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3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매해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나무를 심은 지 3년이 지났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화과나무는 묘목을 심고 3-4년 정도 지나면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유실수를 심게 될 때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첫 3년 동안은 부정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해에 수확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드리게 했습니다. 이유는 짐승의 첫 새끼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신이 수고해서 농사를 지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 다섯 번째 해에 수확한 과일부터 농사를 지은 사람이 갖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1400년이 지난 당시에도 랍비들은 동일하게 적용해서 가르쳤습니다. 즉 유실수를 심어서 첫 3년 동안 결실한 열매는 부정하다고 가르쳤고, 네 번째 해에 결실한 것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해에 결실한 것은 농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결국 포도원에 심어진 무화과나무는 처음 심어서 3-4년을 기다렸고, 부정하다고 여겨진 3년도 지나고 난 후에 또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이 나무는 심은 지 9-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에게는 아무런 열매를 주지 못하는 그런 나무였던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 나무에게 특별한 기대를 하고 포도밭에 심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실해야 할 때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있으나마나한 나무였습니다. 그저 땅만 덩그렇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나무는 땅속에 있는 자양분과 수분을 흡수함으로 다른 나무들이 더 건강하고, 더 좋은 결실을 내는 것을 방해하는 존재였습니다. 더 나아가 포도원지기의 노동력도 헛수고로 만들었습니다. 포도원지기가 다른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나무에게도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도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내린 결론은 나무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도 이 무화과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 처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구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8-9)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지기는 “주인님, 베어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니까 그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제가 둘레도 파주고 비료도 주겠습니다. 한 해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만약 그때도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그때 베면 좋겠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초점은 죽음이나 파멸이 아니라 생명과 결실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다시 얻은 기회의 비유’, ‘연장받은 생명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포도원지기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위해서 주인에게 간청하는 것도 참 감동적이지만, 더 감동되는 것은 주인이 그 간청을 들어주고, 또 기다려 줄 만큼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은 전부 하나님께서 3년, 또 1년, 그리고 또 1년을 기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길이가 있습니다. 그 길이가 얼만큼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우리는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숨을 내어 쉬는 순간을 오늘 본문의 갈릴리 사람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질 때처럼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일로 인해서 맞이할 수도 있고, 포도원에 심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처럼 그 생명을 계속 연장을 받다가 평균나이 이상을 살고서 맞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이 언제이든, 우리가 늘 진리의 스폿(spot)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게 되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숨을 내어 쉰 후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여기며, 진리의 스폿인 하나님의 말씀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한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쉴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언제인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방법일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마지막 숨을 내어 쉬든지 간에, 그때까지 영원한 진리의 스폿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 순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복된 한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인재지변(人災地變)과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생각을 하곤 하십니까? 그 재난을 당한 사람이 나와 관련이 있을 때 나와 관련이 없을 때, 다르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2.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나무는 결실해야 할 때가 삼 년이나 지났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기다려주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3.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나무가 결실하지 못했을 때, 포도원지기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기를 간청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4.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스폿으로 삼고 살아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매일말씀묵상. 2월 27일. 누가복음 13장. > 매일말씀묵상

(아래 관련링크 클릭하여 드라마바이블을 들으면서 묵상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

누가복음 13장.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1. 두어 사람이 주님께 와서 , 갈릴리 사람들 몇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묻습니다 (1). 정치적 독립 성향이 강했던 갈릴리 사람들을 빌라도 총독이 죽인 일과 일치하는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찾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이 사건을 주님께 고한 것은 죽은 자들이 특별한 잘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치셨다는 자신들의 생각 때문이었거나,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모함하려는 함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함정을 피하시면서 그들 모두가 아는 사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의 유대인이 죽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2. 그 죽은 자들이 남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 누구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 그들과 같이 망할 것입니다 (5). 큰 재난이 임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볼 때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도 회개치 않으면 우리도 영원히 망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하고 돌이킬 수 없는 더 두려운 심판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회개만으로는 안 되고 , 그 이상의 열매 맺는 삶을 살 것을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6~9).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고 포도원지기에게 맡겼습니다. 열매를 얻으려고 와서 보지만, 열매를 얻지 못한 채 3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땅을 더 이상 버리지 않게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하지만, 포도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무화과나무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열매 맺는 백성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했지만, 번번이 하나님께 실망만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우리의 죄가 충만함에도 아직 멸망하지 않은 것은 ,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 다만 1 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는 주님의 간청 때문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기회를 주십니다 . 이 말씀을 묵상하는 당신에게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

4. 주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18 년을 귀신 들려 허리가 구부러져 펴지 못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11). 그 여인은 고쳐달라고 구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회중 속의 그녀를 불러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지켜보던 회당장은 회중에게 설교를 하면서 엿새 동안에는 뭐하고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냐고 분을 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위선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안식일에 자기네 가축에게 물을 먹이려고 외양간에서 풀어주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18 년을 귀신에게 붙잡힌 아브라함의 딸을 귀신에게서 풀어주신 것을 비난한다면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율법적 위선과 경건의 모양을,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앞세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5.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밭에 심은 겨자씨 같고 , 가루 서 말 속의 누룩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8~21). 겨자씨는 이스라엘 농부들이 사용하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지만, 잘 농사하면 2~3미터에 이르는 나무를 이루게 됩니다. 밀가루 속의 누룩도 보이지 않지만 결국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이, 하나님 나라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지만 결국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비유를 기억한다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들의 형편과 처지로 인하여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6.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말씀을 주의 깊게 듣던 어떤 사람은 , 그러면 결국 구원 얻는 자가 적으냐고 물었습니다 (23). 그러나 주님께서는 ‘ 적다 많다 ‘ 로 답하지 않으시고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 힘쓴다는 단어는 ‘씨름하다, 고투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7. 주님은 들어가기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 왜 그럴까요 ? 회개의 기회는 오직 문이 열려있을 동안 만입니다 .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 언제까지나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주인이 문을 닫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25). 비록 ‘많은’ 사람이 자기들은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말씀을 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주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입니다(25). 신앙은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이며 , 동시에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입니다 .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는 의외의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나라 밖에 머물지만 , 동서남북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와서 ,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씀하심입니다. 먼저 된 유대인은 나중 되고 , 나중 된 이방인이 먼저 될 수 있습니다 .

8. 주님이 말씀하실 때 , 어떤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와서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까 피하시라고 말합니다 . 이것은 주님을 두렵게 해서 시험에 들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 그러나 주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하시면서, 당신께서는 하실 일을 계속 하실 것이라고 헤롯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삼일’은 주님의 부활을, ‘완전하여 지리라’는 것은 주님의 목표를 완성하실 것을 가리킵니다(32). 주님은 선지자들이 다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주님도 죽으실 것을 암시하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표현하시면서 심판의 날을 예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을 ‘너희 집’이라고 하심으로써(35) 하나님의 영광이 그 건축물에서 떠나신 것을 암시하십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 로마의 군대로 인하여 성취되었습니다.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어려운데(35), 많은 유대인이 주님 재림 전에 주님을 믿을 것을 가리키거나,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재림의 날에 강제적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것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9. 교회를 다니고 있고 ,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 신자로서 좁은 문과 좁은 길로 다니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행하고 있는 종교적 외형만으로 안심하고 있다가, 마지막 날에 뜻밖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진실한 회개와 돌이킴이 필요합니다 . 또한 그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 그 열매로 그가 진실한 신자인 것을 확인하십니다 . 진실한 신자는 합당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 오늘도 신자로서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고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진실하고 온전한 회개의 은혜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가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평생 주님을 따르다가 마지막 날에 주님이 저희를 알아주시는 영광을 입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3장 주석

누가복음 제 13장

=====13:1

그때 마침 – 이 표현은 앞의 이야기와의 연결을 말해주는 동시에 어떤 예기치

않은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 .

빌라도가…섞은 일 –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예수께 보고되고 있다. 여러명의 갈

릴리인들이 성전에서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이 그 보고 내용인데 이러한

류의 사건들 즉 식민지 통치자인 로마 총독과 피식민지 백성인 유대인들 사이의 반목

때문에 생겨나는 인명 살상극은 당시에 흔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

에 의하면 어떤 유월절 제사 때에는 3천명의 유대인들이 제단에 바쳐지는 짐승들처럼

학살당했으며 또 다른 어떤 유월절에는 무려 2만명 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학살(虐

殺)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본문의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느때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고 다만 여러가지 추축이 있을 뿐이다. (1) 행 5:37의 사건과 동일한 것으로 본

다.(2)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처럼 되게 한 사건이라고 본다(23:12). (3) 앞에서 언

급한 것과 같이 요세푸스가 기록하고 있는 각종 사건들 이라고 보는 견해. 그러나 이

들 견해는 확실한 증거로써 뒷받침되지 않는 하나의 추축에 불과하다.

=====13:2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 이 말씀은 앞에서 보고한 사람들의 관심(關心)이 빌라도

의 악함이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불쌍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살자들의 죄에 있음

을 암시한다.이는 인간이 당하는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종교적 이해를 보여

주는 바, 유대인들은 사람이 당하는 불행을 범한 죄의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욥

4:7;8:20;22:4-5;요 9:1,2).

=====13:3

회개치 아니하면…망하리라 – ‘아니라'(* , 우키)고 하는 단정적인 부정

의 표연은, 유대인들의 고정 관념(固定觀念) 즉 재난이나 불행한 사건이 죄의 결과라

는 종교적 편견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은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나

그 죽음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기들의 죄 없음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나 모두 동일한

죄인 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불의의 재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안심할 수 없으며 동일한 불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한다. 여기서

‘회개'(* ,메타노에오)는 지난 날을 돌아보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

우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잘못된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것 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에게 시급히 요청되는 ‘회개’는 이웃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 위로해

주고 함께 아파해 주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정죄하는 신앙의 태도를 버리는 깃이고 더

나아가 자기들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마7:1-5;

롬 3:10-12). 한편 “이와같이 망하리라”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는 A.D.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Farrar,Godet), 그보다는 이말씀이

보편적으로 인간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최후의 심판’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Marshall,Lenski).

=====13:4

실로암에서…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 – 예수는 앞에서 말씀하신 것을 재차 강조하

기 위하여 ‘재난과 죄’의 관계에 관한 또 하나의 예를 들고 있다. 여기서 ‘실로암

‘(Siloam)은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 성벽에 접해 있었고 기흔 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공급되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였다. 본문에서 말해주는 사건은,이곳을 지키기 위해

세워놓은 망대가 무너졌다는 것이며 그 사건으로 열 여덟 명의 생명이 죽음을 당했다

는 것이다. 이 사건은 빌라도가 물의 공급을 개선하기 위하여 실시한 수로 공사와 관

련된다고 보기도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이

해해 온 방식에 따라 죄의 대가로 해석하였을 것이나 예수는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고

있다. 한편 개역성경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어상으로는 2절과 4

절의 ‘죄’가 다른 단어로 되어있다. 즉 2절(* ,하마르톨로이)에서 와

는 달리 4절의 ‘오페일레타이(* )는 ‘빚진 자’라는 뜻이다. 이것에 대

해서 ‘빚진 자’를 ‘죄인’에 대한 단순한 동의어라고 보는 견해(Marshall)와 열 여덟

명의 희생자들이 성전에 대해 빚을 진 것이라고 보는견해(Ewald)가 있다. 즉 이들은

빌라도의 수로공사에서 사고로 죽은 것이고, 빌라도는 그 공사비를 성전에 바쳐진 돈

을 빼앗아 사용한 것이므로 이 돈을 노임으로 받은 이들은 그 돈을 다시 성전에 되돌

려 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13:5

너희도 만일…망하리라 – 3절 말씀을 반복하여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세한 주해는 3절 주석을 보라.

=====13:6

포도원에…얻지 못한지라 – 앞부분에서는 다분히 회개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심

판이 강조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비유에는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동안 회

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

로,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포도나(시 80:8-11; 사 5:2) 무화과 나무(렘 24:3;호

9:10)로 비유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를 심은 사람은 하나님을 비유

하며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회개를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포도원에 무화

과나무를 심는 것은 결코 이상한일이 아니며 포도원에는 여러가지 과실수들이 함께 심

어졌다(왕하 18:31;미 4:4).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

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

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13:7

과원지기에게 …버리느냐 – 여기서 과원지기는 예수라고 보아야 하며 이 과원지기

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이에 주인은 그열

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한다.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두 가지 면

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과실수(果實樹)가 과실을 맺지 못하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며, 다른 하나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땅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 쓸모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명령은 당

연한 것이었다. 여기서 ‘찍어버림’은 그 시대에 주어지는 하나의 징벌의 수준이 아

니라 영원한 파멸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며(Marshall),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 가해지

는 심판의 최후성을 말해주는 것이다(마 3:10;7:19;21:18-20).

=====13:8

금년에도…두루 파고 거름을 –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자적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것은 마치 멸망 받아야 할 소돔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

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창 18:22-32) 예수가 지니고 있는 신적인 인내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다. ‘두루 파고’에서 ‘파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캐

토'(* )는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을 긁어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다.뿌리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거름을 주는 이 특별한 배려(配慮)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기간

이 3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음으로

써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악에

도 불구하고 예수의 궁극적 관심은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보여준다

(23:34).

=====13:9

만일 실과가…찍어 버리소서 –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 강조하기 위하여 문장을 완결짓지 않고 중간에 끝맺는 돈절법(頓絶法)적인 표현이

다. 과원지기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열매

를 맺는 것은 나무의 상태에 달린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해 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줌으로써 조건을 만들

어 줄 수는 있지만 회개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결정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보(留保)해둔 심판까지

의 기한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13:10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 안식일이라는 시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여기서 전개되는

사건이 안식일과 관계있는 것임을 암시한다.’안식일'(Sabbath,NIV)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마지막 날에 안식하신 것과(창2:1-3), 십졔명(출 20:8)의 명령에

근거한 것으로 매우 엄격히 지켜지는 율법 조항이었다. 본문에서 언급된’한회당'(one

of the synagogues,NIV)이 구체적으로 위치한 지역에 대해서는’베뢰아’일 것이라

는 추측이 유력하다(Hendriksen,Lenski).

=====13:11

십 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원문에는 ‘보라’

는 의미의 명령형 어구가(* , 이두) 본절 첫 머리에 기록되어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집중되는 관심의 대상은 십 팔 년 동안 병 중에 고통

을 당해 온 한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허리가 ‘굽어져'(* , 쇼큐토) 혼

자 일어서거나 머리를들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병은 현대 의학적

용어로 말하면 척추교착염과 유사하다(Marshall). 누가는 이 여인의 병이 귀신에 의

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십 팔 년이라는 세월의 병고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말해준다.

=====13:12

여자여…병에서 놓였다 – 이 여인이 이미 회당 안에 들어와 있었는지 아니면 예

수께서 가르치실 때 들어왔는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경

우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의 요청이 있기전에 자의적으로 병을 고

쳐주시고 있다. 예수께서 그녀의 병을 즉각 고쳐주신 것은, 그녀의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녀의 비참함에 대한 연민 때문일 수도 있는데,

본문상 그녀의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병을 고치주는 것으로 보아

전적인 예수의 자유 의사에 의한 은총이라 할수 있다.

=====13:13

안수(按手)하시매 – 아마 이 행동은 앞절의 “여자여 네가 네병에서 놓였다”는 선언

과 동시적으로 취해졌을 것이다.한편 본문에서 언급된 ‘안수’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구약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창 48:13,14,17-19)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일반적

으로 안수가 갖는 의미는, 수여자가 가진 그 무엇을 피수여자에게 전가(轉嫁)하는 것

이다. 한편 안수는 여러 가지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는데 그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

다. (1) 구약의 제사법에 나타나는 것으로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에 손을 얹음으

로써 자신이 범한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상징적 행위로 행해졌다(레 1:4;4:4;8:14

민 8:10,12). (2) 신성 모독자를 돌로 칠 때 나타난다. 이것은 신성 모독의 말을 들

은 증인들이 자신들에게 임한 부정과 더러워진 인격, 나아가 장차 당할 심판등 신성

모독자에게 돌리는 의미가 있다(레 24:14). (3) 병을 고치는 행위로 안수를 한다. 이

것은 예수나 사도들이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 병자에걔 전이시킴으로써

병을 낫게하는 것이다(눅 4:40;행 28:8). (4) 성령을 받게 하는 데 행해진다. 사도들

은 성령이 임하지 않은 곳의 그리스도인들에걔 안수함으로써 그들도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음을 증거해보였다(행 8:18-19;16:6). (5) 직분을 위임할 때 안수한다. 이

것은 안수하는 자가 자신의 권위, 직분, 능력을 피안수자에게 전그시켜 줌 으로써 그

로 하여금 사역을 담당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행 6:6;13:3).

곧 펴고 – ‘펴고'(* , 아노르도데)는 ‘회복하다’ ‘재건하다’의 뜻으

로(행 15:16;히 12:12) 여인이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영광을 돌리는지라 – (* , 에돝)는 문법상 미완료 과거 능동태로,

예수께 병 고침을 받은 여인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일회적으로서가 아니라 지속적

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병을 고쳐주신 분은 예수인데 찬양은 하나님께 돌려지

고 있다. 이는 예수의 병 고침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3:14

회당장이…분내어 – 드디어 안식일에 병 고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회당장

(synagogue ruler,NIV)이 분을 낸 표면적인 이유는 예수께서 병을 고침으로써 안식일

에 노동을 금한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븐노이면에는 회당의 최고 수반

(首班)으로서 회당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를 주도적으로 관장하는 그의 권위가 완전

히 소외된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열등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그마치 십

팔 년 동안이나 고통스러운 병을 앓던 여인이 치유된 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며 하나

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율법을 범했다고 비판하는 그의 태도

는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폐기자의 모습인 것이다. 한편 회당장이

말하는 대상이 ‘여인’이 아니라 ‘무리’로 되어있는 것은 여기서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말고도 병 고침 받기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추축을 가능하게 한다.

=====13:15

너희가 …먹이지 아니하느냐 – 이 말씀의 베경에는 짐을 싣지 않는 한 안식일에도

짐승들을 밖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미쉬나의 규정이 있고 안식일의 여행 제한을 어

기기 않는 범위 내에서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특별조치가 있었다. 또한 쿰란

종파에서는 안식일에 가축에게 풀을 뜯어 먹임에 있어서 이 천 규빗 그러니까 약 910m

이상을 끌고가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기켜졌었다(Marshall). 이와 같이 당시 관

례상 동물들에 대해서는 안식일에 관한 율법이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게 지켜졌지만,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의 융통성(融通性)도 허락되지 않았다.

=====13:16

아브라함의 딸…합당치 아니하냐 – 15절과 16절에서는, 짐승과 아브라함의 딸,

물먹이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수 시간의 매임과 18년 동안의 매임, 마구에서 푸는 것

과 사단에게서 푸는 것이 치밀하게 대비되면서 적대자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드는 예

리한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짐승도 목이 마르면 물을 먹이는 법이거늘 하물며 18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살아온 여인을 치유하는 일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지연될 수 없었

다. 특히 “합당치 아니하냐”(* , 에데이)는 ‘반드시 해야한다’는 뜻을 가진

‘데이'(* )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여인의 병을 고친 것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꼭 해야 할 당위성을 가진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13:17

부끄러워하고 …기뻐하니라 – 이 부끄러움에 대한 표현은 사 45:16의 “…성을 내

며 너에게 달려드는 자들은 모두 어이없이 창피를 당하리라”(공동번역)를 반영한 것으

로 볼 수 있으며 이럴 경우 누가는 메시야적 대망이 예수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말하

려 했었다고 볼 수 있다(Marshall), 한편 반대자들dmf 제외한 모든 무리들은 예수의

통쾌한 승리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아마 이들도 회당장 이하 맹목적 율법주의자들의

위선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지금 그들의 위선이 폭로되고 예수의 탁월한 가르침이

베풀어 졌을 때 매우 흡족한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본문은 진리 앞에

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과 기뻐하는 자들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13:18

그러므로 – ‘그러므로'(* , 운)는 시간의 계속을 표시하는 접속사로 여기서 부

터 시작되는 말씀이 앞부분과 연속성을 가진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앞에서의 치

유 사건과 하나님의 나라 비유가 관련되어져 이해될 수 있다는 결과가 된다. (1) 예수

께서 한 여인의 병을 고쳐주었을 때 회당장과 같이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

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나라는 게속 확대되어 갈 것이다. (2) 하

나님의 나라는 한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통치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보잘것 없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개개인을 구원하는 방식

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무엇으로 비할꼬 – 이 이중(二重)의 도입구는 사 40:18과 유

형상 비슷하며 막 4:30 에 더 온전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NIV)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 동안에 여러번 언급이 있었고, 여러 교

훈 및 치유 사건을 통해 그 나라의 성격이 부분적으로 암시되기는 했지만

(6:20;7:28;8:10;9:2,27,60;10:9,11;11:20),여기서는 비유를 통해 그 성격이 좀더 명

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13:19

겨자씨 한 알 – 유대인들에게는 “겨자씨 만큼이나 작다”속담이 있는데(Robertson)

이는 ‘겨자씨’가 아주 작은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소재로 사용되었음을 가리킨다. 씨

앗은 그렇게 작지만 그것이 자라면 무려 5m나 되는 큰 나무가 된다. 어떤 사본들은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커다란'(* , 메가)라는 말을 첨가시킨 것도 있다. 본문에

서도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이 겨자씨의 성장과 같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시작이 매우

작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눈여겨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으나 그 마지막 사람들

의 예측을 초월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13:20

또 가라사대…무엇으로 비할꼬 – 이 비유는 내용상 마 13:33과 일치하지만 본문의

의문문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이 가르쳐

지고 있다.

=====13:21

가루 서 말 속에…누룩 – ‘가루 서말’에 대해서는 노아의 세 자손(Bengel),사람의

몸, 혼, 영혼의 세 요소(Lange)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거기에 어떤 특별

한 의미가 숨겨겨 있다고 보기 보다는 그냥 일반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가루 서 말’은 대개 한 번 반죽할 때 사용하는 평균적인 양이라고 본다(창 18:6).’누

룩'(* , 쥐메)은 빵을 굽기 위한 전 단계로 반죽을 부풀게하는 효소이다. 누룩은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 때문에 혼히 악한 것의 상징으로 많이사용된다

(12:1;마 16:6;막8:15;고전 5:6;갈 5:9).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하나

님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한 것이다. 겨자씨의 비유가 ‘외적인 성장’을 표현한

것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재적인 능력의 확장’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경

우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며,

특히 누룩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을 파급시키는 방식이 스스로를 거창하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산

화(酸化)시켜 대의를 이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실현되는

것이다.

=====13:22

각 성 각 촌…예루살렘으로 – “각성 각 촌”이라는 표현은 누가에 의해 사용된 독

특한 도입구로서(8:1) 어떤 특정한 지리적 정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

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서술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 으로 여행하시더니’라는 표현은 9:51의 예루살렘으로의 출발에 이어 예수

의 행로의 최종 목적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 시키는 것으로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예루살렘이 가지는 중요성을 암시한다.

=====13:23

구원을 얻는 자 – 시간과 장소에 대한 배경 설명 없이 하나의 질문이 제기되고 있

다.질문의 요지는 ‘구원받을 사람’의 많고 적음에 관한 것으로 본문에 해당하는 문구

‘호이 소조메노이(* )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라는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종말론적 구원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얻는 사람들의 수

가 많으냐 적으냐에 대한 물음은 당시의 유대교 내에서 많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소수의 극악한 죄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와 극소수의 사람들 만이 구원얻을 수 있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이

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마22:14;요 8:31-47).

=====13:24

좁은 문으로…힘쓰라 – 예수께서는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

다.다만 본절 후반절에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많지않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얼마 만큼의 수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로부터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얼마나 하고 있는가에로 질문의 초점을 돌려놓고있다. 이 좁은 문이 구

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드러나는 바가 없다. 그러나 ‘힘쓰

라'(* , 아고니제스데)는 단어가 ‘투기장’이나 ‘운동경기’에서 전

력 투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라는 점에서,결코 안락한 것이 아니라 매우 고된 노역

을 경주해야 하는 길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하기 위한 노력 뿐만 아

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내적, 외적 적들과의 영적인 싸움도 포함

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자기 부인(自己否認)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9:23-25). 할편 ‘구원을 얻을자’가 미래적인데 비해 ‘힘쓰라’가 현재형인것은 신앙

의 현재적 삶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최종적으로 들어간

다는 의미에서 구원은 미래적인 것이지만 그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적인 신앙의

삶이라는 것이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 이 말씀은 구원의 문이 어려운 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도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기한이 지난 뒤에는 들어가고자 하여

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절과의 관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13:25

주인이…문을 한 번 닫은 후 – 본문에서는 비유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마7:22-23)에서는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있다. 마태의 본문

에 비추어 볼 때 본문의 ‘집주인’은 심판 주이신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

며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좁은 문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 번 닫혀진 문은 다시 열리기 않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주어진 기회를

지나치게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여 결단을 유보하거나 다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는 안 된다는 뜻이다.

=====13:26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가르치셨나이다 – 문 밖에서 거절당한 무리들은 예수와

안면이 있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유대인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와 친분이

있다는 것으로 구원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첫째로 그들이 제시한 사항은 “주앞에서 먹고 마셨다”

는 것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함께 식사하는 것을 친밀한 교제의 표현으로 여겼다.하지

만 본절의 무리들은 형식적으로 예수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

에서의 내밀한 교제를 나눈 것 같지는 않다.둘째로 그들이 제시한 것은 주께서 그들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응답(應答)한 흔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과 예수 사이에는 아무런 인격적 친분도 없었던 것이

라고 보아야 한다.한편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7:22)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것 조

차도 구원을 보증해주는데 아무런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한다. 하물며 본문의 조건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3:27

나는…알지 못하노라 – 무리들은 자신들과 예수 사이를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항들을 열거하였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단호한 대답은 전혀 아는 바 없다(I don’t

Know you.NIV)는 것이다. 이 대답은 25절에 이어반복 되면서 그들이 당하는 외면을 더

비극적로 강화시키고 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 – 이 말씀은 예수께서 그들을 거부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

로 시 6:8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행악'(* , 아디키아)은 ‘불의’,

‘악행’을 뜻하며,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이다(16:8-9;18:6;행 1:18;8:23). 이는 누가가

‘불의’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고 있음을 말해준

다.

나를 떠나 가라 – 단순히 알지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 여기서는 완전한 분리를 선언

하고 있다. 마태의 경우에는(7:23)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범죄자를 추방(追放)할 때 사

용하는 관용적 표현인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는 표현을 썼다.

=====13:28

아브라함과…나라에 있고 –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the chosen

people)의식을 철폐시키는 말씀으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대 즉 하나님의 나라 잔치

에서(29절)열조들과 함께 하리라는 기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세 명의 선조

들을 천국 잔치에서 언급을 한 것은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과 일치하나(마8:11) ‘선지

자’에 대한 언급은 누가만의 기록이다. 그러나 ‘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의미는 아니

다. 선지자와 선지자를 거역한 백성들의 대조는 이미 앞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1:47-51).

슬피 울며 이를 갊이 – ‘슬피 울며'(* , 클라우드모스)는 위로할 길

없는 비참과 영원한 절망에 대한 울음이며(Hendriksen), ‘이를 갊'(* ,브

리그모스)은 증오에 떠는 몸부림이다. 결국 본문이 표현하는 그들의 상태는 ‘절망적

후회’의 차원을 넘어 주를 향한 강한 적대감까지 표시하는 최악의 상태임을 알 수 있

다.

=====13:29

동서 남북으로부터 잔치에 – 이 장면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여러 문헌에서 이야기

해왔던 하늘에서의 잔치를 묘사한 것이다(사49:12). 이 잔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될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혼인잔치를 뜻한다(계 19:7). ‘동서 남

북’은 ‘전세계’를 뜻하는 표현이며(사 59:91;말1:11;슥 8:7),’참여하리니'(*

, 아나클리데손타이)는 만찬 석상에 비스듬히 누워 음식먹는 자세를 취

하고 있는 모습을 서술한 것이다. 본래 그 자리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 유대인들은

밖에 쫓겨남을 당하고 그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여겨져왔던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대

신하여 참여한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인데 이것에 관해서는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이(마

8:11-12)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13:30

나중 된 자…먼저 된 자 – ‘좁은 문’의 비유는 이 말씀으로 결론에 이른다. ‘나중

됨과 먼저 됨’의 처음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말씀인데,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

다. (1) 지옥에서의 고통이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12:47,48)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도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천국에서의 등급이 뒤 바뀔 수 있다는 뜻

으로 본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천국과 지옥에 갈 자가 뒤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서의 등급이 바뀐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2) 이 세상에서의 명성이 곧 하늘에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뀔 수도 있다(Hendrikson).(3) 현재 억압 당하고 희망이 없다

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자신들만 합당하다고 여기는 교만한 사

람들은 거부당한다는 의미로 본다(Marshall,1:51-53). (4) 먼저 선택받은 선민으로서

의 유대인들은 교만과 불신으로 인해 구원받지 못하고, 멸시받던 이방인들이 복음으

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본다(Yyndale). 이 가운데서 네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본문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전체 집단으로서 뒤바뀐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 모두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이방인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13:31

바리새인들이 …떠나소서 – 일단의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해롯의 음모(陰

謨)를 알려주면서 혜롯의 영역을 떠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의 이

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바리새인

들이 지금 취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동기가 작용하고 있는지 여러가지로 추

측해 볼 수 있다. (1)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들도 있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7:36;11:37) 이 바리새인들은 선의로 예수를 염려하여 피신을 종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중립적인 입장에서 헤롯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주었을 가능성이 있

다. 즉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경험도 있고 해서(마14:1-12) 예수를 죽일 의사는 없

었으나 혜롯 자신이 관할하던 갈릴리 베레아 지방의 사회적 안정을 원했으며 예수로

인하여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위협용 정보를

알리게 하여 예수 스스로 그 지역에서 떠나게 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3) 바리새인들

이 단순히 중립적인 입장에 있었던 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적극적인 악의를 가지고

헤롯과 합세하여 예수를 쫓아내려는 의도에서 정보를 제공해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세번째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13:32

저 여우 – 여우는 팔레스틴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짐승으로 간교하고 교활하

여 랍비 문헌에서는 간교함의 대명사로 나온다. 예수께서 여기서 헤롯을 여우로 부

르는 것은 협박과 속임수로 당신을 그의 관할 지역 밖으로 쫓아내려 한 헤롯의 교활함

과 간사함을 간파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여우는 사자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짐

승이었다. 이렇게 볼 때 예수께서 헤롯을 여우라고 부른 또 다른 의미는 그의 교활함

과 간교함은 지극히 하찮은 것이며 예수께서는 결코 그의 협박을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으심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과 내일…제 삼 일 – 헤롯의 협박은,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조

금도 걸림돌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임을 언명(言明)하고 있다. 난해 구절인

본문의 의미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 (1) 문자적인 의미에서 삼일을 가리킨

다고 보아, 오늘과 내일은 일을 더하고 제3일에 헤롯의 관할 지역을 떠나가겠다는 의

미로 본다(Bleek,Meyer). (2) 출 19:10-11에 배경을 둔다고 보아 준비와 정결 기간인

이틀이 지나고 사홀째 되는 날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3) 제 삼 일

이 절정에 이르는 결정적인 시간을 뜻한다고 보아 ‘오늘과 내일’즉 ‘이틀’은 그 시간

에 이르기 까지의 기간을 뜻한다고 본다(Marshall). (4) 상징적 의미로 보아 오늘은

‘현재’를, 내일은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제 삼 일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에 죽으심으로써 사역을 완성하시기까기의 기간을 뜻한다고 본다(Bengel,Farrar). 이

가운데 어떤 견해가 가장 타당한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4) 견해가 유력하

다.

완전하여지리라 – ‘완전하여 지리라'(* ,텔레이우마이)는 ‘완성

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텔레이오오'(* )의 현재 수동태 직설법으로, 여

기서 수동태가 사용된 것은 하나님이 그 완성의 중개자 임을 암시하기 위함이라고 본

다. 이 문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1) 헤롯의 관할 지역인 갈릴리에서

의 사역을 완료하신다(Bleek,Bruce). (2)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을 완료하신

다(Manson). (3) 예루살렘 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의 지상 사역을 완수하신다

(Chrysostom,Farrar,Marshall,Gilmour). 이중 (3) 의 견해가 유력하다.

=====13:33

그러나…갈길을 가야 하리니 – ‘ 그러나'(* ,플렌)는’…완전하여지리라’와

대조대는 문구로 ‘완성의 때’까지는 예수의 길을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음을 뜻한다.

여기서 ‘오늘과 내일과 제 삼 일’은 예루살렘에서의 왕성을 이루기까지 그가 계속 수

행해야 할 사역의 기간을 뜻하는 문학적 표현이라 하겠다.또한 ‘…해야만 한다

‘(must)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데이'(* )는 예수의 사역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

해 필연적으로 완수되어야 할 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죽는 법이 없느니라 – 헤롯이나 바리새인이나 간에 그 누구도 예수를 해하지 못한

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다.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기 때문이

다. 또한 본문은 예수께서 부패한 종교와 타락의 상징인 에루살렘에서 자신의 생명이

끝나게 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여기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

움이 아니라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능동적 결의가 넘치고 있다.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예수의 관심이 해롯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고 있으며 자

신이 죽임을 당하게 될 선민의 도시 예루살렘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통한 심정이 표현

되었다.여기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백성들을 가리키며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

를 가리킨다.이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선지자들과 사자들을

살해하고 돌로 쳐죽인 주체로 묘사되는것이다(삼상30:6;왕상12:18;18:4,13;19

:10;21:10-15;느 9:26).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이 탄식의 말씀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어(마23:13-36) 예루살렘 멸망의 책임이 거짓된 종교 지

도자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는데 비해 본문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다.

암탉이…몇 번이냐 – 어미 새가 새끼들을 둥지 속에 모아 보호하는 모습을 묘사하

는 이 문구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았

는가를 말해준다. 암탉과 그 새끼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은

유로 사용되는 경우는 구약에 흔히 나타난다(신 32:11-12;시 36:7;사31:5).’몇 번이냐

‘(* ,포사키스)는 ‘얼마나 자주’의 뜻으로 빈도수가 한 두번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예수는 실제로 예루살렘을 여러차례 방문 했었다(2:14;5:14;7:14, 28,

37;10:22, 23). 그러나 이 말씀이 예루살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전체 이스라엘

을 상대로 한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15장;마 9 :36;11:25-30;15:32).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거역하였던 이스라엘 백

성들은 예수의 구원 사역도 거부하였다(13절;11:15).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죽일 것이

다(23:18,21,23).

=====13:35

너희 집이 황폐(荒廢)하여 – 예수의구원 사역을 거부한 이스라엘이 당할 결과가

서술되고 있다. 여기서 ‘집'(* , 오이코스)은 ‘신전’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곧 이스라엘 전체

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렘 12:7과 22:5의 반영으로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종국에는

저버리신다는 의미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 이 말씀은 시 118:26의 인용으로 그 의미하는 바가 무

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1)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가리킨다고

본다(Danker,Erasmus). 이 견해는 예루살렘 입성 때 사람들이 외친 소리가 본문과 다

르며, 환영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 더구나 마태의 평행본

문에서는 입성후에 본문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2)

유대인들의 대회개를 뜻한다고 본다(plummer).(3) 주의 재림을 뜻한다고 본다

(Godet,Farrar,Marshall). 즉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재림하기 까지 사람

들이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

다. 주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그를 거부하였던 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통절(痛

切)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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