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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01) 설교 (9편) – 블로그 – 네이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 … [오늘의 설교]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려면 기사의 사진 5월 첫째 주일 …
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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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주일설교 – 어린이를 축복합시다 (막 10:13-16절)
어린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가 통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꿈은 현실보다 강합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강합니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한 힘을 …
Source: jesusfestival.org
Date Published: 9/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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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018 – 자녀가 잘 되는 법 [에베소서 6:1-4] – 어린이주일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이 믿음안에서 하나님께 나와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복된 일 …
Source: sakumc.org
Date Published: 3/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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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17)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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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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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 – mission – 어린이주일의 유래
어린이주일의 유래 성경에는 어린이의 고귀함과 그들에 대한 마땅한 대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며(시 127:3-5),
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4/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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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설교,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어린이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본문 : 마가복음 10장13-16절 2014.5.4. 어린이주일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한 시인이 이런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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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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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설교말씀] 어린이는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신명기 …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31장 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어린이는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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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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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주일[어린이 주일 설교 원고] / 부모가 그냥 넘어 갈 수 …
5월 3일 주일[어린이 주일 설교 원고] / 부모가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것 · 1. 자녀가 거짓말에 했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16절) [양치기 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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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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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어린이 주일 설교
- Author: 시카고 온누리교회 어린이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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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4.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xKgoIIUK9s
자녀가 잘 되는 법 [에베소서 6:1-4]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이 믿음안에서 하나님께 나와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복된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가 잘 되는 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동일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때로 아이들이 잘못해서 화가 난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빌어 먹을 놈”이라고 해서, 정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빌어 먹는 거지가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은 못 먹고 못입을 지언정,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입니다. 제가 아는 한 남자분은, 미국에 올 때 가진 돈이 없어서 수 많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얻은 첫 아들이 잘 되라고 그 이름을 ‘하버드’라고 지었습니다. 커서 하버드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지는 알만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래서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자녀가 잘되는 것을 자신이 잘되는 것보다 더 기쁘게 여기는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육신의 부모님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가정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은, 그 자녀들을 그 가정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가 잘 되기를 그 어떤 부모보다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 되는 법도 알려 주셨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가 잘 되는 길인지를 명시하고 계시고, 그것을 분명한 약속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비단 어린 자녀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도 자녀가 잘되기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도 자신들이 잘 되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나는 대충 막 살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가 잘 되는 법,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되는 법은 무엇인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자녀가 잘 되는 법은,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라는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과 한 가족을 꾸미시고자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향해서 “너, 내 가족하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을 처음 만드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고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자녀가 그 부모를 닮아서 태어나듯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담아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잘됨을 경험하는 자녀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깨닫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200년대에 이탈리아서 활동했던 성자 프란치스코에 대한 일화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화려한 옷을 입고,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허무함이 곧 찾아오게 되었고 영적인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1205년에 페루자 정복을 위해 한 백작의 군대를 모집했는데, 그 군대에 자원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집이 있는 아시시로 돌아왔습니다. 은혜를 받은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큰 부자고 포목상 주인이었는데,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아 잘 되기를 바랬는데, 아들이 그러한 생각은 안하고, 날마다 다니며 전도하고 기도하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옷감을 팔아서 성당을 수리하는데 사용하는 아들을 보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결국 아버지,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 상속권을 프란치스코에게 주지 않겠다는 재판을 주교 앞에서 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주교가 행하는 재판석에 선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상속권은 물론 부친과의 관계마저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아버지께 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아버지를 잊어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의 부모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시고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자녀된 자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에 잘 되는 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2. 육신의 부모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해야 잘 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지는 것이 잘 되는 일이라고 여기고, 그 일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 되는 두가지 법을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는 그에 따르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계명은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마쳐집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녀에게는 약속을 주셨는데,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 되는 법으로, 부모 공경의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사회에 보면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경의 기준을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공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경할 사람은 적어도 공경할 만한 업적을 가진, 위인전에 나올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공경할 대상에 대해서 세상의 권세자나 부한 자와 같은 업적을 이룬 사람을 공경하라고 하지 않고, 단순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할 조건으로 부모의 어떠한 업적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가난하던지 부하던지, 높은 지위에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상관없이 부모라는 그 자체로 공경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때로 부모를 보면서, 공경할 만한 내용이 없어서 부모공경의 계명을 부당하게 여겨 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부모님보다 자기 부모님이 좀 못나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부자인 부모의 집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께서 명령하실 때, 부모 공경은 부모가 어떤 분이고, 나에게 어떻게 해 주었냐라는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녀라면 부모님에게 가져야 할 태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그 부모가 나를 잘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부모를 공경하는 나를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로 잘 되도록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나의 잘됨은 부모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은 곧 부모님에 대한 순종으로 연결됩니다.부모에 대해서 공경할 때에 순종이 있게 됩니다. 1700년대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Sammuel Johnson)이, 어느 여름날 비가 막 쏟아질 때에 복잡한 장터에서 홀로 몇 시간이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해도 인사도 받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립니다.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지켜 보던 제자들이 대체 왜 그렇게 서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 이유를 말합니다. “사실은 50년 전, 우리 아버지가 바로 이 자리에서 낡은 책을 사고 파는 헌 책 장사를 하셨었지, 그런데 한 손님과 어느 날 어떤 책을 갖다주기로 약속하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책을 손님에게 전달해 주기로 약속한 날,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시다며, 아버지 대신 그 손님에게 그 책을 갖다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구. 그런데 나는 발끈해서 아버지께 이렇게 대들었지, ‘헌 책 장사하시는 것도 창피스러운데 내가 그런 심부름까지 해야 되요?’ 내 말을 들으시고, 아버지는 아픈 몸으로 장터에 가셨고, 그 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지금에 와서야 지난날 내가 아버지께 순종하지 못한 것,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네, 그리고 아무리 후회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겠기에 내가 나를 벌주기 위해서 여기 서 있는 것이네.” 순종할 부모가 계시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잘됨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 계실 때에 힘써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 앞서는 것은 “주안에서”입니다. 주안에 있지 않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불순종할 여지도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말씀을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하고 불의한 것들, 거짓된 것들, 다른 이들을 해하고 미워하는 것들을 자녀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잘 되게 하고자 할 때에, 부모의 신앙적인 책임도 큽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갈등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 아비에게 주는 말씀이 있는데 자녀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계명은,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주입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모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서,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자녀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은 여러가지 수고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고해야 할 일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기에 힘쓰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녀들을 잘 되게 하려고 수 많은 노력을 합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키워보겠다고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자녀를 양육합니다.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하고, 아이들의 스케쥴에 마쳐서 부모의 스케쥴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녀를 주신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할 때에 그 자녀가 잘 될 것이고 장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잘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이들이 잘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자녀들의 잘됨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잘 되게 해 주실 때에 가능합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여기에 있는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잘됨의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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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이 잘 되면 범사가 풀어지게 됩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부부가 싸우게 되면 자녀들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의 부모가 먼저 화평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모습도 보여줄 때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부모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면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향기가 풍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부모들이 자녀들을 진리의 복음으로 양육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녀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고후 2:1~17
요절: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서나 멸망하는 자들 가운데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니, 한 부류에게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다른 부류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 (고후 2:15-16)
주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받아 세상에 생명에로 인도하는 향기로 살아가자
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 셋째 주일은 청년 주일, 넷째 주일은 성령강림절, 다섯째 주일은 가정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꽃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영접하시고 축복하시며 친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린이날 (Children’s Day)은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한 날로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1899~1931년,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사위,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선생은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부인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왜 호가 ‘소파’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훗날에 큰 물결 대파가 되어 출렁일 테니 부인은 오래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 주시오” 했답니다. 조선시대인 17세기 <가례언해>와 <경민편언해>에 나이가 어린 사람을 “어린아이”로 지칭했으며, 1921년, 소파 방정환은 아동을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말로 ‘어린이’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하면서 초등학생 아동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용어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23년 3월 <어린이> 잡지 발간했으며 1923년 5월 1일에 <색동회>를 조직하면서 ‘어린이날’을 처음 지켰다고 합니다.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이라는 선언문에서 어린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서 좋은 환경에서 씩씩하게 자라나기를 기원해서 일 년에 하루를 지켰으며,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 월요일로 바뀌어 치르게 되었고, 1939년 어린이날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본 일제에 의해 중단된 뒤 광복되고 나서 1946년부터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지켰고 1957년 어린이 헌장이 선포되었고, 1975년 5월 5일부터 오늘날까지 법정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해 열심히 살던 방정환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재정적인 문제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지게 되고 33세(1931년 7월 23일) 별세의 순간까지도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명언은 지금도 호소력이 있고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나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
‘어린이를 내 아들놈, 내 딸년하고 자기 물건같이 알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의 얼굴을 보라.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그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린이는 아래의 세 가지 세상에서 온갖 것을 미화시킨다. 이야기 세상, 노래 세상, 그림 세상.’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입니다. 어른들은 미래의 희망이요, 주인공이 될 우리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어린이 여러분! 씩씩하고 정직한 어린이가 됩시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를 떠받칠 기둥입니다.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로 바르게 자랍시다!’
‘참혹하게도 우리 아이들에겐 노래가 없어. 우리는 싸워야겠어. 이겨야겠어. 나는 우리네 아이들을 한참 쳐다보다가 눈시울을 적신 적이 많았어. 마치 그 아이들이 가시밭을 걷는 것 같아서. 윤극영 선생, 동요곡 좀 하나 만들어 봐 줘. 정서가 부친 우리 아이들에게 꽃다운 선물을 보내 주지 않을 테야?’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두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그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하늘의 소리입니다. 죄 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하늘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사람이 모두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지 창간호 첫머리]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싹(어린이)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 버립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습니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맞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뿌린 전단에서]‘어린 사람의 운동도 크지만 제일에 앞으로 그들을 직접 낳고 기르고 교양해 나갈 어머니들의 문제도 또한 큰 것이다.’ [<신여성> 잡지를 발간하면서]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좀 더 힘쓰지 못하고 가니 미안하다.’ [1931년 7월 23일 방정환 선생 유언]
교회에서는 어린이를 미래의 꽃이라고 여겨 5월 첫 주일을 꽃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소년은 바미쯔바(Bar-Mitzvah “계명의 아들 the son of the commandment”)라고 부르는 13세 이전을 어린이라고 부릅니다. 소녀는 밧미쯔바(Bat-Mitzbah “계명의 딸”)이라고 부르는 12세 이전을 어린이라고 합니다(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나이 이전). 미국에서 Children 개념은 유아부터 8학년(중학교)까지를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3-12세로 유아, 유치, 초등학생을 어린이라 부릅니다. 성경에 어린이에 대해 많은 언급이 나옵니다. 쉐마교육, 테필린 교육 등 모든 교육이 가정에서 이뤄지며, 회당에서도 어린이에게 말씀 교육을 합니다. 예배는 모든 가족이 참석했습니다.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3대(자녀, 부모, 조부모)가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말씀으로 양육받고 모두 결혼 후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태어나면서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신앙으로 양육받았습니다. 요셉, 모세, 사무엘, 솔로몬, 예레미야, 디모데 등 모두 어린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잠언서는 “내 아들아”로 시작하여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교훈을 떠나지 말지어다.”로 훈계하고 있습니다.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딤후 1:5 “내가 네 속에 있는 꾸밈없는 믿음을 회상하노니 그것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창 18: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렘 1:5-7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 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 찬송가에서 가장 오래전에 작사된 곡이 어거스틴의 “사랑의 하나님” (566장, 통 301장)으로 성부=사랑, 성자=사랑의 육화, 성신=사랑의 은사로 찬양합니다. “1.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적어도 잘 알 수 있어요. 4. 저 푸른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주 하나님의 사랑을 늘 속삭이지요”
미국 주일학교에서도 많이 불리는 “예수께로 가면 If I go to Jesus” (565장, 통 300장)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고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세계적으로 가장 애송하는 어린이 찬송은 “예수 사랑하심은 Jesus loves me”(563장, 통 411장)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Yes Jesus loves me(3번) The Bible tells me so.”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말씀으로 작사된 564장(통 299장) “1.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시리 2. 정한 보배 빛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거두시리 3. 주를 사랑하는 아이 이 세상에 살 때 주의 말씀 순종하면 참 보배로다 <후렴>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이 찬송에서 어린이는 천국의 보배(treasure)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 2장을 통해 “사랑과 승리의 직분”을 강해합니다.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1. 용서 촉구: 사랑의 직분(고후 2:1-11)
1 그러나 내가 이것 즉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다시 가지 아니할 것을 스스로 결심하였나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내가 근심하게 한 바로 그 사람 외에 나를 즐겁게 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3 내가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기쁨을 얻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근심을 얻지 아니하려 함이었노라. 나는 너희 모두에 대하여 확신하되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로 확신하였노라. 4 내가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나니 이것은 너희가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에게 더욱 넘치게 베푸는 사랑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5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근심을 일으켰을지라도 그가 어느 정도만 나를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나는 너희 모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아니하려 하노라. 6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7 그런즉 너희가 오히려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함이 마땅하니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잠길까 염려하노라. 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그를 향한 너희의 사랑을 확증하라. 9 너희가 모든 일에서 순종하는지 너희의 증거를 알기 위해 내가 또한 이런 목적으로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11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1-3절. “그러나 내가 이것 즉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다시 가지 아니할 것을 스스로 결심하였나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내가 근심하게 한 바로 그 사람 외에 나를 즐겁게 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내가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기쁨을 얻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근심을 얻지 아니하려 함이었노라. 나는 너희 모두에 대하여 확신하되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로 확신하였노라.” 고린도 교인들의 기쁨이 사도바울의 기쁨이요 그들의 근심이 그의 근심이었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교역자의 기쁨이요 성도의 근심은 교역자의 근심입니다. 또 교역자의 기쁨은 성도의 기쁨입니다.
4절. “내가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나니 이것은 너희가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에게 더욱 넘치게 베푸는 사랑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전도자 바울에게는 외적으로는 큰 환난과 핍박이 있었고 내적으로는 애통과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애통과 근심은 성도들의 연약과 부족 때문에 왔고 그래서 그는 많은 눈물로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눈물의 사역이었습니다. 행 20:19, 31에 보면, 그는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말했고 또 “너희가 일깨워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눈물의 편지”는 책망과 권면의 내용이었는데 이 편지는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근심과 슬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향한 뜨겁고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5-6절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근심을 일으켰을지라도 그가 어느 정도만 나를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나는 너희 모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아니하려 하노라.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근심하게 한 자’는 범죄자를 말합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 근심하였으나 너무 심하게 표현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나를 근심케 한 것’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범죄자를 권징 하라는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그 권징에 반대했을지도 모르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찬성하였고 그 범죄자를 벌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시대의 교회에는 권징(discipline)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권면을 순종하였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권면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참된 신앙고백과 순종의 삶이 있는 공동체이었습니다.
7-9 “그런즉 너희가 오히려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함이 마땅하니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잠길까 염려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그를 향한 너희의 사랑을 확증하라. 너희가 모든 일에서 순종하는지 너희의 증거를 알기 위해 내가 또한 이런 목적으로 너희에게 썼노라.” 권징은 벌(punishment)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죄인의 회개를 목표로 합니다. 권징치 않으면 죄 가운데 머물 형제를 권징을 통해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제 권징의 목적이 이루어졌으므로, 바울은 그 범죄자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지 않도록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말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징계한 후 그를 품어주듯이! 오늘날도 교회는 권징이 있고 용서와 위로도 있어야 합니다. 권징의 목적은 불완전한 성도를 완전한 사람으로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이 미움의 표현이 아니고 사랑의 동기에서 행해진 것이라는 것을 증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하는 교인을 징벌하는 교회의 심정에 그 교인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음을 그에게 증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의 권면을 순종하리라고 기대합니다. 불순종은 예부터 인간의 뿌리 깊은 죄악입니다. 교회는 성경에 증거 된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0-11절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교회는 회개한 자를 용서하고 해벌(解罰)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행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18). 사탄은 범죄자로 하여금 너무 근심케 함으로 낙망케 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사탄의 궤계는 성도를 범죄케 하고 낙심케 합니다. 그러므로 징벌도 필요하지만 회개한 자에게는 용서와 위로도 필수적입니다. 사탄은 죄인에게 속박과 근심과 낙심을 주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여 그에게 죄로부터 자유함과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교회는 범죄자에게 눈물의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하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와 위로를 줌으로 마귀의 궤계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2-17)
12 또한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려고 드로아에 이르매 주께서 내게 문을 열어 주셨으되 13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영 안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여 그들과 작별하고 거기서 마케도니아로 들어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서나 멸망하는 자들 가운데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니 16 한 부류에게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다른 부류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에서 난 자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같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2-13절. 12절의 ‘문 gate’은 전도의 문입니다. 문은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이 주님 안에서 바울에게 열렸고 그는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으나,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해 심령이 편치 못해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디도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구약시대에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듯이”(삼하 8:6, 14),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일행을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the savour of his knowledge’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지식의 향기,’ 곧 그리스도의 지식을 널리 알리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고난 중에서도 항상 승리했습니다. 오늘날도 진리의 사역은 승리입니다. 불순종과 죄는 실패의 원인이지만, 순종과 의는 결국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종들의 사역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15-16절.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서나 멸망하는 자들 가운데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니 한 부류에게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다른 부류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향기이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명과 사망을 나누고 영생(永生)과 영벌(永罰)을 나누기 때문입니다(요 3:18).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17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에서 난 자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같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부패시킨다’는 원어(카펠루오 kapeleuw)는 ‘장사하다, 품질을 떨어뜨리다, 혼잡시키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같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같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많은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고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같이 또는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 합니다. 그는 말씀의 바른 일꾼이었고 모든 시대에 복음 사역자의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일꾼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질되거나 타협하지 말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지 말고 순수하게, 순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고후 2:12-17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로, 우리는 우리 교회에도 전도의 문이 넓게 열리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구원과 전도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널리 전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겠으나 하나님의 은혜로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거짓 교사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시키거나 부패시키거나 변질시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무궁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를 널리 전하여 수많은 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다합시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이가 되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젖을 먹고 양육되어 우리 이웃에게 사랑의 예수님을 널리 전합시다. 어린이 찬송 429장에 있는 대로
1.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2. 나는 주의 품 안에 자라나는 아이니 찬미하며 주님을 믿고 따라갑니다
주의 사랑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마음 받으소서.
[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사도 바울께서 눈물로 고린도 교인들을 권면하며 징계하며 용서함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눈물로 탕자 어거스틴을 회개하도록 만든 모니카의 기도처럼 저희들도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게 하여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옵소서. 저희 자녀들을 효자, 효녀로 만들게 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성장시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어린이들, 우리나라 어린이들, 세계 모든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며 평화 내려 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애굽기 13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유월절 무교절 규례 실행(출 13:1-10) [성지순례 주일설교말씀] 산으로 도망하라(마 24:16-22)반응형
어린이주일의 유래
어린이주일의 유래
성경에는 어린이의 고귀함과 그들에 대한 마땅한 대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며(시 127:3-5),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영원한 생명체이며(롬 11:36),
구속의 대상이자 천국 시민의 그림자이며(막 10:13-16),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됨(마 7:24)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 동시에
진지함과 순수함을 갖춘 인격의 주체이기도 하며 그들에게는
내일의 역사가 달려 있으므로 바르게
교육해야 할 대상임에 분명합니다.
이에 몇몇 선각자들은 세계 각 지역의 교회를 중심으로
어린이 주일을 정하였으며
1870년 미국의 한 조합 교회에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여 ‘꽃주일’이라고도 불립니다.
1. 시기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들의 가능성과 꿈을 존중하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실시되었습니다.
즉 1856년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레오날드 목사가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킨 이래 1868년 미국 감리교회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정했으며,
1883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이날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으로 확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6월 둘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6월 둘째 주가 어린이 주일로 결정된 것은,
일년 중 꽃이 만발한 가장 아름다운 이 시기가 푸르고 아름다운 어린이들의
이미지와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초창기에는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 오다가
1956년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는 1946년부터 지켜오던 5월 5일 어린이날과 근접해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 주일의 근본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유래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근세에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어떻게 교육되느냐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과 직결되기에
몇몇 뜻있는 목회자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교회의 특별한 봉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어린이 주일을 제정한 유니버셜리스트 제일교회의
레오날드(G.H Leonald)목사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한 사람으로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 주를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그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레오날드 목사의 어린이 주일 시행이후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결정은 다른 교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린이 주일은 교회 절기의
일부분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으나
이 무렵의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어린이라는 호칭조차 없던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우리에겐 어린이 주일의 제정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바른 인식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여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편 초창기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이
1927년부터는 5월 첫째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보다 활발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어린이주일설교,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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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장, 소토교회 어린이주일 설교,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어린이들을 내게로 데려오라
본문 : 마가복음 10장13-16절
2014.5.4. 어린이주일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한 시인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아이가 비평을 들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남을 저주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적대감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남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조소를 받으며 성장하면 그 아이 는 열등인간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수치심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자라면 그 아이는 인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칭찬을 받으며 성장 하면 그 아이는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으며 자 라면 그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나면 그 아이는 정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관용과 우정 속에 자라면 그 아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충격적인 선포, 아이들은 천국의 주역이다.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충격적인 선포를 하십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을 두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어떤 때는 천국을 어린아이들처럼 받들지 않으면 천국갈 생각 아예 말아라고도 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사람들은 천국과 아이들 간의 유사성을 찾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전 그리 생각합니다. 이건 천국과 어린아이들의 유사성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천국의 당당한 주인공이니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이죠. 예수님은 이렇게 어린아이를 보는 태도가 당시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보았습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와 함께 너희도 아이들을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생각이 달랐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측근에서 모시고 배우면서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아이들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귀찮고 하찮고, 자신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하든 예수님 곁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을 꾸짖기도 하고, 또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며 철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들, 시도 때도 없어 울어대는 아이들이 그저 성가시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동네마다 약장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약장수들이 약팔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죠? “애들은 가라..” 그런데 그 약장수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애들은 가라..”
지금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하나 내지 둘,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좀 살만한 세상이다보니 아이들을 끔찍하게 위합니다. 공주님 왕자님 하면서 키우는게 아니라 받들어 모시는 세상입니다. 좀 이상한 것은 지금처럼 좀 먹고 살만할 때 아이들을 많이 낳아 키워야하는데, 도리어 요즘은 기껏 하나 둘 정도입니다. 그런데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자 자기 밥그릇 갖고 태어난다는 대책 없는 낙관론을 갖고 살았던 탓일까요? 저도 사남매이고, 제 사촌이 있는데 그 가정은 8남매입니다. 이 때는 어떻게 하든 빨리 키워서 숟가락 하나 덜게 하는 것이 큰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애들을 대부분 막키웠고, 막자랐습니다. 그렇지 않은 가정들도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아이들을 받들어 키우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적당히 구박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 대체로 효자노릇합니다. 희안하게 받들어 키운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만 알고, 자라서도 부모에게 바라는게 많지, 자식된 도리를 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이것도 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받들어 키우나 막키우나 부모들이 갖고 있는 동일한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내 새끼 내 맘대로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것이고, 그러니 내 맘대로 키우겠다. 그 생각 안에는 이 아이가 갖고 있는 인격, 인권, 자존감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합니다.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부모가 결정하고 부모 뜻대로 하려 합니다. 그저 엄마 아빠가 시키는대로만 해라. 이것이죠.
2. 부모가 될 훈련을 하라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이 천국의 주역이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니 부모라고 아이들의 인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우린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아이, 이 아이에게 어떤 재능을 주셨는지, 어떤 성격을 갖게 하셨는지, 그리고 이 아이를 통해 어떻게 영광받고자 아이의 미래를 계획하셨는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두고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혜와 사랑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부모는 그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만 낳고 산다고 해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녀와 대화하는 훈련, 자녀에게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훈련,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는 훈련을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만, 저도 예전에는 참 불량 아빠 불량 남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공부하고 익히면서도 제가 자라왔던 과거와 우리의 생활습관이 그대로 남아 아주 가부장적인 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정 사역을 해야 한다며, 저를 세 번이나 가정사역 세미나에 참석시켰습니다. 첨엔 엄청 거부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처음 세미나를 듣고 와서는 담임목사님에게 이런 프로그램 교회에서 하면 여자들은 좋을지 몰라도, 남자들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목사님 이거 자충수 두는 겁니다. 그래서 말렸습니다. 교회를 옮겼는데 또 그 교회도 그런 계획을 가지면서 또 가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다른데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들으니 내가 잘못하였나? 이런 생각이 들고, 좀 고치긴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임지를 옮겼는데 또 그런 일이 반복됩니다. 세 번째 갔습니다. 거기서요 정말 많이 회개했습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내 아내 내 아이들이 참 상처를 받았겠구나..많이 울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때부터 달라졌습니다. 그 중에 아버지 학교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런 훈련을 시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면대에서 세면을 하잖아요? 그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니다. “하나님 제가 아버집니다.” 하나님 제가 아버집니다. 어떨 때는 이 말을 하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아버집니다. 제가 엄마입니다.
3. 어릴 때 누구를 만나게 할 것인가?
제가 아버집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무엇일까요?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자기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내 아이에게 가장 귀한 것, 바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예수님이 만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 아이를 예수님이 손을 꼭 붙잡아주고, 품에 안아주면서 축복해주신다면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을까? 여러분, 자기 아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온 그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시나요?
공자님께서 어린이에 대하여 3계도(三計圖)를 말하였습니다. “일생지계는 재어유하고, 일연지계는 재어춘하며, 일일지계는 재어인이라” 한 평생 동안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릴 때 누구를 만났느냐? 그 경험은 때로 아이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아직 이 아이는 어려서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아빠가 가자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따라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내가 어릴 때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이 내 손을 잡아주었으며, 자신의 품에 안고 축복해주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이라면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어서 벽에 걸어두지 않았겠습니까? 넌 예수님이 축복해준 아이야. 그 때 주님께서 널 위해 이렇게 축복해주셨단다. 이 말을 듣고 아이가 자랄 때 그 아이의 인생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안수하며 축복해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로 축복했는지 몰라도, 그 아버지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며, 그 아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4. 예수를 만나는 자 기적을 이룬다.
사람들에게 참 좋은 기운을 주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늘 활짝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니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에게 참 좋은 기운이 흘러서 목사님 만나면 참 행복해집니다. 비결이 뭡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전에 기도원에서 아주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 저더러 안수 받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그분이 하도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거절하면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어 머리를 숙였죠.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안수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처럼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목사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입니다. 그 후로 그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고, 또 절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 때문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님 그렇게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며 살고 있는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 좋은 아버지가 되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다. 예수님께로 아이들이 가는 것을 막지 말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볼트모어의 빈민굴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마약 중독자,알콜 중독자와 극빈자들이 모여 사는 취약지구였습니다. 학자들이 이 지역을 살펴본 후 내린 연구 결과는 ‘이곳은 구제불능이다. 여기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은 소망이 없음’. 그리고 25년 후에 다시 이곳을 조사해보았습니다. 이곳은 구제불능이고 아이들은 전혀 소망이 없다고 했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서 자란 아이들 180명 중 무려 176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학자, 목사, 교육자, 사업가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 일반 회사에 일하는 회사원 등 모두가 번듯한 사회원으로 성장한 것이죠. ‘대체 웬일인가?’ 하고 원인을 조사하니까 그속에 그들을 위해서 희생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구제불능의 빈민굴에서 한평생 그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여인의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 구제 불능한 빈민굴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났더란 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난 주님의 사랑으로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 사랑으로 이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주님께 인도된 그 아이들을 주님은 귀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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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설교말씀] 어린이는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신명기 3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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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31장 어린이 주일 설교말씀 중에서 어린이는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이며 교회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잘 키워야 합니다. 교회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유럽 교회들도 어린이를 신앙적으로 키워내지 못했기 때문에 큰 건물만 남아있고 성도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도 어린이를 신앙으로 키워내지 못한다면 유럽 교회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여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고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이 아닌 세상의 부와 명예를 좇게 만든다면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내세에서도 고통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큰 인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먼저 믿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어린이는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신 31:9-30)
신 31:9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신 31: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신 31: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신 31: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신 31: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 31: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 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신 31: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신 31: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신 31: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신 31: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신 31: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신 31: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신 31: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신 31:23 여호와에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신 31: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신 31: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신 31: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신 31: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신 31:30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서론>
유대인들은 2천 년간 나라를 잃고 유리방황할 때 공존의식으로 어린이들을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엄마들이 수유를 할 때에 내 아이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선 이웃집 아이에게 먼저 먹여 주었는데, 이런 우호적 공존의식이 있었기에 그들은 방황과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독특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근래에 우리 민족은 산아제한으로 한 둘씩만 자녀를 낳기 때문에 제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과잉보호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왜 어린이들이 귀중한가?”를 말씀을 통해 상고하며 아울러 그러한 어린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본론>
1. 어린이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에 가장 귀하고 보배로우니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을 길러낸 성도들은 이처럼 자식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인 줄 알고 가장 귀중하게 길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신앙의 후사로 잘 길렀고, 레위와 요게벳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모세를 정성껏 길렀으며 한나는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려 길렀습니다. 이렇듯 어린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니만큼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말하지 말고 어린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아이 하나를 세 번 낳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 육신의 탄생(창 3:16), 두 번째, 복음을 통한 영적 거듭남(고전 4: 15),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인격적 탄생입니다(갈 4: 19). 우리 속담에 옥돌도 다듬어야 보배가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어린이들도 신앙으로 잘 길러야 천국 보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가 되고 선생 된 자들이 잘못하여 어린이들을 실족하게 했다면 하나님 앞에 그 책임을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했는데 예수님 당시 수리아, 그리스, 로마제국의 중범자들을 사형에 처할 때 큰 돌을 목에 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아이들을 구원하는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점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잘 길러 천국의 보배가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2. 어린이는 우리의 가문을 이어갈 후계자이니 가장 귀하고 보배롭게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며(시 127: 3) 우리의 후계자요 우리의 가문을 이어갈 계승자이기에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귀중한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도록 가정교육의 대헌장을 선언하셨으니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을 강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신 6:6-7). 학문과 기술은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배우고 대인관계는 사회생활 속에서 배우지만 인격형성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 6)라고 말씀하였습니다.
3. 어린이는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같이 쓰임 받을 일꾼이 될 터이니 가장 귀하고 보배롭게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난 외아들이었는데,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정성 어린 양육 가운데 하나님의 도를 배워 자랐고 바울 사도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후일에 바울의 후계자가 되어 교회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기 쉽고 세속적 욕망으로 자식을 양육하기 쉽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 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는 교회의 중직자인데 자녀는 방탕아가 된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엘리 제사장은 경건한 사람이었으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탕자여서 무서운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고넬료의 집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시간을 내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중 온 식구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부모의 신앙을 따라 자식들이 교회 위해 봉사하고 수고를 개념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그 얼마나 부러운 가정이겠습니까! 이러한 가정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4. 어린이는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꾼이니 가장 귀하고 보배롭게 길러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는 천국 시민임과 동시에 세상에 남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복음의 역군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목사나 전도사로 기르는 게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 충성하는 일꾼으로 길러야 하겠습니다. 요셉, 다니엘, 모르드개, 에스더 같은 인물들을 길러내야 하겠습니다. 영국 시민혁명의 주역이었던 크롬웰 같은 정치가, 노예 해방의 선구자 링컨 대통령, 아름다운 노랫말로 성도들의 심금을 감동시킨 화니 클로스비여사, 과학의 왕 죤 뉴톤 등등 각 시대마다 사회 각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평신도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과거 우리 사회는 단순하고 가난과 전란으로 상처 입은 백성들이 많아 목사의 역할이 더욱 컸으나 이제는 교회 바깥 사회가 한없이 넓어져 일할 분야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러분의 귀여운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여 이 나라와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역군이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결론>
어린이 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 신앙의 후계자들이요 내일의 교회와 나라의 역군이 될 어린이들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며 어린이들을 잘 길러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의 미래가 복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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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주일[어린이 주일 설교 원고] / 부모가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것
성경 : 잠언 23 : 13 – 20
제목 : 부모가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세가지
2015. 5. 3(어린이 주일)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라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지혜서”인 잠언을 통해 우리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1. 자녀가 거짓말에 했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16절) [양치기 소년 동영상]
오늘 지혜서는 부모는 자녀가 거짓말을 하였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모르는 척 하고 지나치면 안 된다.”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16절)“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정직한 말의 반대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란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으로, “섞었다.”란 뜻으로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섞었다고 할 때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부패된 음식물을 먹게 되면, 구토를 일으키게 되듯 거짓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파울”(Foul)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타자가 친 공이 정해진 선 밖으로 빗나갔을 때 파울이라고 부릅니다. 거짓말이란 “빗나간 말”입니다. 거짓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빗나가게 만들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3-14절)“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지혜자는 거짓말을 중단 시키는 방법으로, 훈계, 채찍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11년 3월까지 간접 체벌을 허용하다, 현재는 거의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1985년부터 금지되었고, 미국은 과거 채벌을 금지해 오다 지금은 오히려 19개 주에서 체벌이 부활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마18:4)“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말씀이 오래 동안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양보하고, 겸손한 것을 보았습니까? 자기 밖에 모르며, 부모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잘난 척 하고, 영악스럽기 까지 한 아이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을까?
혹 “예수님 당시 아이들은 지금 아이와 달랐겠지?”라고 생각도 할 수 있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허술한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어린아이의 겸손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 아이는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어린 아이가 겸손한 상황에 있을 때에, 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구약 열왕기나 역대기 왕들의 치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정직이었습니다. 주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왕상15:11)“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5)“이는 다윗이 헤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일 외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정직했고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왕이 많은 사람 중 요셉을 총리로 삼은 것이나, 거짓된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실한 오바댜를 신하로 둔 것이나,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총리와 장관으로 삼은 것은, 거짓이 통용되는 곳에까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직은 세상의 풍조와 상관없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우리 자녀를 진실 되게 양육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시적인 손해가 있다고 해도 우리의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쳐야 합니다.
2. 자녀가 불신앙의 길로 갈 때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17절)
성경에 자녀가 불신앙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그냥 내 버려두었을 때, 어떻게 되는 가를 생생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엘리 제사장의 경우입니다. 엘리에게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장차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해야할 자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들이 잘못을 바르게 고쳐 주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탈취했을 뿐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을 했습니다. (삼상2:14)“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2:12)“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불량자가 누구입니까? 예배를 무시하는 자가 곧 불량자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의 태도는 방관했으며, 아주 미온적이었습니다. (삼3:13)“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아들의 잘못을 훈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삼상3:34)“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부모가 매를 드는 기회를 놓칠 때 훗날 자식은 부모에게 큰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잠29:15)“자식을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부모가 나이 들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이 노인네가 무슨 잔소리냐”며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보고도 매를 때리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대신 매를 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드시기 전에 먼저 부모가 매를 들어야 합니다. 지혜자는 (17절)자녀들이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도록 보살필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녀와 가정에 대하여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가정을 보라, 저 집 아이를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가 믿음이 좋고, 경건하다고 반드시 그 자녀가 믿음 좋은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믿음이 없어도 그 자녀들이 얼마든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내 버려 둘 때 그 혼란은 막대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의 두 아들을 내버려두었을 때 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어떤 경우에도 불신앙 가운데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지만,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나쁜 친구가 있는 것을 알면서 묵인해서 안 된다. (20절) [탕자의 동영상]
흔히 친구를 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이 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당 정문에 새겨 놓은 말씀입니다. (잠27:17)“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근묵자흑” 이란 말과 같이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하면 결국 우리의 자녀도 나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있는 레위를 향해 “나를 좇으라.”고 했을 때 레위는(눅5:27-28)“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을 때 버려야 했던 것들이 참으로 많았을 것입니다. 그중 과거 가까이했던 친구들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레위가 세관을 떠나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이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이 자리를 버리고 어딜 가려느냐?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을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사에 잘 알려진 어거스틴이 3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방탕생활을 한 것은 나쁜 친구를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버린 후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성경은 술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20절)“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이것은 방탕생활을 하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고전15: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나쁜 친구로부터 자녀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큼 안전한 것이 없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시간 빼앗기고 것이나, 공부하는 데 지장 된다는 생각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의 주변 환경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자녀들의 정신과 마음을 해치는 독극물들이 깔려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행동과 태도를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자녀들이 거짓말 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모른 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불신앙의 길로, 세상의 길로 빠져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친구를 사귀고 있는 것을 알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상 유혹과 악의 길에서 우리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부모가 모범을 보일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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