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ppa.cazzette.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cazzette.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CBS성서학당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23,169회 및 좋아요 277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본 문 : 요한계시록 19:11~16
1. 성도를 위해 싸우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2. 승리에 동참하는 성도들
3. 구원의 완성과 공의의 심판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란 무엇인가요? – GotQuestions.org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
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10/23/2022
View: 6140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예비된 아내 (요한계시록 19 : 1 – 10)
희게 해야 하며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 어린양의 혼인 기약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천년왕국에 대한 약속이요,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실현된 천년 …
Source: www.bamjoongsori.org
Date Published: 2/21/2021
View: 4743
‘어린 양의 신부’가 의미하는 건 친밀함 – 국민일보
그러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소중함을 의미한다. 혼인 잔치에는 혼주와 각별한 관계인 사람이 초대를 …
Source: news.kmib.co.kr
Date Published: 1/2/2022
View: 7026
어린 양의 혼인 잔치 (계 19:1-10) – 수요예배 설교 – 동탄영락교회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 …
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6/18/2021
View: 8603
요한계시록 강해 2019 – (68). 어린 양의 혼인 잔치 – 벧샬롬교회
7-8절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신랑과 신부의 정체를 밝힙니다. 신랑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시고, 신부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부부로 묘사하는 …
Source: www.bschurch.net
Date Published: 5/19/2022
View: 111
[요한계시록 19장 강해성경말씀]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1-21)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됩니다. 본문의 큰 잔치는 하나님의 심판의 잔치입니다. 그것은 새들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고기 …
Source: bedesd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24/2022
View: 5014
[강정훈의 성서화 탐구] 어린 양의 혼인잔치 – 기독일보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중요한 말이다. 혼인은 구약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신약 …
Source: www.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9/8/2021
View: 4125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되고 아름답다
누가 초대장을 보냈는가. 결혼관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주도권이 강조된 단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호의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 …
Source: www.bonhd.net
Date Published: 1/17/2022
View: 4088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 Author: CBS성서학당
- Views: 조회수 23,169회
- Likes: 좋아요 277개
- Date Published: 2016. 5.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kjmiroZGXBE
어린 양의 혼인 잔치란 무엇인가요?
질문
어린 양의 혼인 잔치란 무엇인가요?
답변
요한계시록 19:7-10에서 요한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천상의 군중들을 보고 그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축제, 말 그대로 “혼인 잔치”가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혼인 잔치의 개념은 그리스도 시기의 혼인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좀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당시의 혼인 풍습에는 세 가지 주요 과정이 있었습니다. 첫째, 신랑 신부 부모가 혼인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신랑 당사자나 신랑의 부모는 신부나 신부 부모에게 지참금을 지불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약혼과 마찬가지인 정혼 기한이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 것을 알았을 당시 요셉과 마리아도 이 정혼 기한에 속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8, 누가복음 2:5).혼인 과정의 두 번째 단계는 보통 일년 후 신랑이 자기 친구들을 동반하고 자정에 신부 집에 찾아가면서 거리에 횃불 행진을 벌이는 행사입니다. 신부는 이 행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처녀들과 함께 준비합니다. 그들이 모두 이 행진에 참여하고 신랑의 집에서 행사가 마무리됩니다. 이 관습은 마태복음 25:1-13의 열 처녀 비유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절차가 바로 요한복음 2:1-2에 나온 가나의 혼인 잔치로 알 수 있는, 며칠간 이어지곤 했던 혼인 잔치였습니다.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요한의 환상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절차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과 그의 아내 (교회)의 혼인 잔치입니다. 이는 이미 앞의 두 단계가 끝났음을 함축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각 개인이 그리스도를 구원자로서 믿음으로써 완수되었습니다. 신랑의 부모 (아버지 하나님)가 지불하는 지참금은 신부를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약혼”을 한 것이고, 비유에 나온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모든 믿는 자들은 신랑이 올 때 (재림)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의 신부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교회의 휴거를 상징합니다. 혼인 잔치는 그래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입니다.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 (이 땅에서의 환난 중) 사이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베풀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보는 관점입니다.혼인 잔치에는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함께 합니다. 이 “다른 자들”은 구약성경의 성도들을 포함합니다. 그들이 아직 부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영은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천사가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쓰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축제가 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 (계 19:1-10) – 수요예배 설교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에 ‘장차 될 일’에 해당하는 대재앙이 기록된 18장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았고,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재림과 사탄 세력의 멸망, 최후의 심판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사건에 대한 묵시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찬송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찬송은 세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 첫 번째 찬송은 1-2절의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찬송’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모든 대재앙은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의로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의 선택됨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무섭고 두려운 심판의 책이 아니라 회복의 책이요, 복음의 책입니다.
먼저, 1절에 ‘이 일 후에’라는 말은 ‘큰 성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18:20의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 곧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지칭합니다.
‘할렐루야’는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라’ 라는 뜻인데, ‘할렐’이라는 말은 ‘찬송하라’는 뜻이고, ‘루’는 ‘너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뜻합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시편’에서만,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만 등장합니다.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이 있은 후 하늘에서 수많은 군중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내용이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대한 찬송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정의와 공의로 판결하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좌측이든 우측이든 한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불완전한 판결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완전한 판결과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자 의로우셔서 공평한 판단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악에 대한 심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한 심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심판을 하시든지 그 심판의 의로움과 정당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겉으로 드러난 겉모습만을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숨겨진 그 폐부까지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받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시편 73편).
심지어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잘 믿는 나에게 이럴 수는 없어!”,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지?” 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불평 속에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이 더 의롭고 더 옳다는 교만한 생각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믿음으로 예수님이 가신 좁은 길로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당장 먹을 것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고 적그리스도가 주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내하다보면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교만한 세상을 공의로서 심판하시고 우리의 인내의 모든 일들을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오늘 본문의 허다한 무리들처럼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앞에서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결과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숨겨진 죄를 찾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마음속에 혹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그를 통해 불순종하는 마음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혹, 작은 것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회개하고, 지금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 찬송은 4절의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송입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과 온 세상 만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4절의 찬송은 3절의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는 말씀에 대한 ‘화답송’ 입니다.
3절에서의 ‘연기’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의 연기인데,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완전한 멸망의 연기입니다.
그 멸망의 연기를 보며 허다한 무리뿐만 아니라 천상천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움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찬송이 울려 퍼지자 5절에 보좌에서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여기에서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음성은 감격에 찬 천사나 이십사 장로나 네 생물 가운데 하나의 음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감격에 찬 찬송은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꼭 필요합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두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서로 섬기며 세우는 것이야 말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큰 자냐?’ ‘작은 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가?’하는 것이고, 이어서 그 경외함으로 ‘그가 얼마나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환경과 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 찬송은 6-8절의 ‘허다한 무리의 음성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우렛소리와도 같은’ 찬송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에서 ‘어린 양의 혼인’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어린양 되신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연합’을 말합니다.
이 혼인 잔치 때에는 성도들이 하늘로 들려 올려져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혼인에 많이 비유하는데, 이스라엘에는 구약시대로부터 남녀가 혼인을 하기 위해서는 세단계의 절차를 가져야 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정혼이었습니다.
그들은 혼인식을 하기 전에 정혼식을 치루었습니다.
한번 정혼을 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신랑 집에서는 신부 집에 지참금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혼 후 혼인 약속 날까지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와서 잔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혼인잔치입니다.
오늘 본문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에 우리의 구원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인 과정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구원의 여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여러분 성경 에베소서 1:4에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영원한 신부로 삼기로 창세 전에 이미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우리의 정혼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부로 삼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 흘리신 피가 바로 신랑 지참금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에서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은 혼인 찬치를 기다리는 신부의 기다림의 때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다림의 때에 신부는 좋은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신부가 되기 위해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혼인잔치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언제든지 혼인잔치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날을 준비한 자만이 그날이 최고의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와 성도들은 혼인 잔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는 어떤 노력이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성도들의 옳은 행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앞에 죄를 고백하여 죄 사함을 받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선한 행실은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의 열매들을 뜻하고, 이러한 믿음의 옳은 행실이 바로 세마포 예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옳은 행실을 많이 한 성도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성도는 예복이 없으므로 혼인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차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삶에 따라 상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얼마나 큰 권세를 가지고 살았는지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가 있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아무 공로 없이 구원 받은데 감사하며,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더욱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1.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움에도 내 마음속에 혹,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불순종하는 마음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혹, 작은 것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회개하고, 지금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구원 받은 감격에 찬 찬송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3. 우리들은 옳은 행실로써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앞에 죄를 고백하여 죄 사함을 받는 일입니다. 믿음의 선한 삶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을 준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 속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뜨겁게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악의 세력 앞에서 주눅 들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 빛나는 세마포 예복을 입혀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영안을 열고 사탄마귀의 궤계를 분별하여 악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68). 어린 양의 혼인 잔치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말씀내용
우리는 지난 주일, 하늘에서 할렐루야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온 세상을 미혹하여 음행하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한 음녀,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며, 하늘에 허다한 성도들과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그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며, 그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있다고 찬송을 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심판에 이어질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축하하는 찬송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본문 19:6-10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1. 더 큰 소리의 찬송 (6-8; 1:15; 14:2-3; 마 5:12)
5절에서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보좌의 음성 덕택에, 이제 허다한 무리의 찬송은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 그것이 6-8절입니다.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6a).” 하늘의 승리한 교회에 더하여, 5절의 주님의 명령대로 지상의 모든 교회가 함께 부르는 찬송이기에 더 큰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1:15에서는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했고, 14:2-3에서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은’ 소리였고, 하늘의 승리한 성도들의 소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이 큰 소리를 표현할 때, 해안을 강타하는 파도의 포효소리에 비유하여 많은 물소리라고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큰 소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통하여 온 땅에 임했다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b).”
그 큰 음성은 7-8절에서 계속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요한계시록 19:7–8).”
한 마디로 기대하고 기다리던 결혼식의 날이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두 동사가 함께 등장한 곳은 이 구절 말고 단 한 구절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2).”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욕먹고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상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상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 본문의 결혼식입니다.
2.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 (7-8; 사 54:5; 61:10; 겔 17; 호 2:19-20; 고후 11;2; 엡 5:22-33)
7-8절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신랑과 신부의 정체를 밝힙니다. 신랑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시고, 신부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부부로 묘사하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사야 선지자의 두 군데 말씀을 보지요.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이사야 54:5; 61:10).”
에스겔 선지자도 17장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부부의 유비를 사용했습니다. 아가서는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로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아름답게 묘사한 성경이 아가서입니다. 호세아서는 선지자 자신이 음란한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음란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그들과 결혼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신 관계를 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세아 2:19–20).”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부부관계의 유비는 신약성경에서도 당연히 발견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린도후서 11:2).”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영광스럽게 혼인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정결하게 보존하는 것이 신부의 아버지된 자신의 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에서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권면을 합니다(엡 5:22-33).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부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고 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에베소서 5:32).”
3.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창 29:20,30; 요 2:1-11; 17:6,24)
비록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의 결혼 문화의 특징들을 좀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유대 문화나 고대 근동 문화에서는 결혼이 약혼(정혼)과 결혼의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는 약혼이 흔하지도 않거니와, 약혼은 결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이해되기에 파혼은 이혼처럼 큰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약혼을 하는 시점부터 신랑과 신부는 법적 부부로 간주되었고 두 사람은 혼인식까지 남편과 아내로서 신실함의 의무를 서로에게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혼과 혼인 사이의 기간에 신랑은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불이 덜 된 결혼지참금을 지불해야했습니다. 결혼지참금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신랑은 신부될 사람의 집에서 그것을 노동으로 대신하기도 했는데,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레아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씩 도합 14년을 일했던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창 29:20,30).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급해야 하는 유대인이나 고대 근동의 결혼 문화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오늘날의 결혼식처럼 그 의식이 한 자리에서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신랑의 행렬이 신부의 집으로 감으로써 시작됩니다. 이때 신부는 곱게 치장을 하고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신부의 집에 도착한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하여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갑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혼인잔치는 대개 일주일 정도 벌어지는 게 보통이었고 그 이상도 지속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결혼 문화의 특징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재림까지의 시대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정혼(약혼)한 후 혼인식을 기다리는 시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신부인 교회는 스스로 준비하고 단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신부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때 벌어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7일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천국의 기쁨을 현시합니다. 윌리엄 헨드릭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부는 영원 전부터 택함을 받았다. 전체 구약시대를 통해서 혼인은 예고되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혈과 육을 입고 오셔서 정혼은 이루어졌다. 그 결혼지참금은 갈보리 산 위 십자가상에서 지불되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보시기에는 순간이 이 기간(복음시대) 후에 신랑이 오시게 되면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게 된다. 이 땅의 교회는 이 순간을 갈망하고 있으며 하늘의 교회도 또한 그러하다. 이후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토록 함께 하게 된다. 이것은 거룩하고 복되고 영원한 교제가 될 것이며 복음의 모든 약속들이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첫번째 표적은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공급하신 일입니다(요 2:1-11). 이로써 주님은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암시하신 것입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전체 사역은 당신의 결혼을 준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기쁨이 사라진 세상에 천국 혼인의 기쁨을 회복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는 삼위 하나님이 모두 연관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신부를, 신부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더글라스 켈리(Douglas Kelly)는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당신의 아들에게 놀라운 신부를 주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의 혼인 잔치를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Douglas F. Kelly, Revelation, Mentor Expository Commentary (Tain, Ross-shire, Scotland: Mentor, 2012), 357. Richard Philips, The Revelation (Reformed Expository Commentary),P&R에서 재인용). 이것을 아셨던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복음 17:6,24).”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성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와 죽음으로 당신의 신부를 사셨습니다. 성자께서는 그들을 위해 성부와 구속의 언약을 맺으셨고 이 언약에 의해 주님은 때가 되면 그들의 본성을 취하고 그들의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으시며 그들을 자유롭게 하여 자기 백성이 되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영원의 회의에서 지극히 높으신 삼위 하나님 사이에 조정되고 결정된 그 언약은, 어린양께서 성부 하나님이 옛적에 그에게 주신 온 무리를 영접하여 영원한 결합을 이루는 그날에 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하시고 인내심이 있으며 신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신 신랑은 없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정혼 반지(증표)로써 신부인 우리에게 보증의 표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왕실의 결혼식이나 대단한 인사들의 결혼식을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상 최고의 결혼식이 열릴 것입니다.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신랑은 역사상 없었고, 이보다 더 큰 혼인 잔치를 열 수 있는 신랑의 아버지도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부에게 주어진 성령님의 서약—보증 보다 더한 보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4. 세마포와 옳은 행실 (7b-8; 레 20:7-8; 사 61:10; 빌 2:12; 골 3:8-9)
그렇다면 이제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요한계시록 19:7b–8).”라는 말씀을 상고해봅시다. 여기서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두 말씀 사이에는 신학적 긴장이 놓여 있습니다. 한편으로 신부는 자신(자신이 그날에 입을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신부에게 그녀가 입을 옷을 제공해 주십니다. 게다가 8절 하반절은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함으로써 신부가 준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20:7–8).”고 말씀하는 성경은, 동시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이사야 61:10).”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주도권을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표현도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성도들을 주어로 해석하면 ‘성도들이 행한 옳은 행실’이 됩니다. 그러나 목적어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 성도들을 옳다고 인정해 주신 일’을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칭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원인적인 필요조건이지만, 선한 행위는 비원인적인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다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 자체라기 보다, 옳은 행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마포 옷은 끝까지 인내한 성도들의 셀 수 없는 신실한 순종의 행위들이 일일이 수놓아져 있는 옷이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신랑의 요구에 합당한 신부의 반응은 이렇게 복음이 만들어내는 거룩하고 옳은 변화된 삶입니다. 이 신학적 긴장의 양편에 있는 어느 요소 하나도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삶에는 언제나 이 긴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 율법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수동적인 의를 전가 받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빌 2:12).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골로새서 3:8–9).” 이와 같이, 성도의 삶은 옛 생활 방식을 벗어버리고 새 삶의 방식을 입는 삶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결혼은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결혼은 서로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연인이 언약으로 하나가 되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을 기다립니다. 8절에서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마지 못해, 그날을 위해 준비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신부의 준비는 전적으로 은혜가 지배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신부의 마음이 신랑을 향할 때, 그 마음은 전혀 강요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은혜에 힘입어 신부인 교회는 그날의 혼인잔치를 위하여 스스로를 준비하고 거룩하고 옳은 행실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기쁘게 말입니다.
5. 신부와 청함을 받은 자들 (9; 요 10:7,11; 눅 22:30; 마 11:19; 눅 7:34)
이제 9절에서 천사가 받아 말합니다.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요한계시록 19:9).” 여기서 새롭게 등장하는 존재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혼식의 하객들을 가리킵니다. 교회가 신부라면, 이들 하객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신부는 신약의 교회이고, 청함을 받은 자들 곧 하객은 구약 교회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지만, 근거가 약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신부이자, 동시에 하객이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하시고 바로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과도 비슷합니다(요 10:7,11). 어떻게 양의 문이면서 동시에 선한 목자가 되실 수 있습니까? 이런 식의 표현은 모순이 아니고, 또한 묵시문학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청함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에도 혼인잔치의 주인—혼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 강조됩니다. 천국은 종종 잔치에 비유되곤 했습니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누가복음 22:30).” 천국은 잔치의 장소이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주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잡수시곤 하셨습니다(마 11:19; 눅 7:34). 이 사실은 죄인인 우리가 천국에서 그 혼인 잔치의 자리에 청함을 받아 복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천사는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확증을 해줍니다.
그러자, 이 계시의 말씀에 감동한 요한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는 경배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천사는 말합니다. 경배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천사의 마지막 말,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는 말씀은 그 해석이 좀 난해합니다. 앞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예수의 증언’은 예수님이 주신 증언을 의미할 수 있고 또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 ‘영’이라는 말은 본질 혹은 핵심이라는 용례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물론 성령님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예언이다”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교훈과 적용 (고전 2:9; 시 73:25-26)
언젠가 그날이 올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어린 양의 신부로서 그 자리에 앉을 것을 기대하십니까? 그날 여러분은 또한 그 잔치에 청함을 받은 복된 은혜를 누리시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그날은 완전히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와 정혼한 교회는 여전히 법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겨지지만, 우리는 혼인잔치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양의 신부로서 여러분 자신을 거룩하고 의로운 행실로 단장하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은 그날에 하나님의 청함을 받은 복된 은혜를 누리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날에 신랑이신 주님을 뵐 기대가 있습니까?
스티브 로슨이 그의 책 Heaven Help Us 에서 윌리엄 몬태규라는 젊은 귀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똑똑한 윌리엄은 불행하게도 10살에 실명을 하지만, 장애를 딛고 공부를 하게 되고 대학원에서 해군 제독의 딸을 만나게 됩니다. 데이트는 사랑으로 이어지고 윌리엄은 비록 눈으로 그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영혼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두 사람은 약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는데, 윌리엄은 신부의 아버지의 거절할 수 없는 주장으로 영영 시력을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눈 수술을 받게 됩니다. 수술 후 눈에 붕대를 감은 윌리엄은 결혼식까지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윌리엄은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입장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붕대를 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결혼식의 시간이 왔고 오르간이 신부의 입장을 알리자, 사람들은 이제 일어날 일을 잔뜩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부가 다가오자, 윌리엄의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었고 그 마지막 붕대가 풀려질 때 윌리엄은 자신의 두 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천천히 윌리엄은 자신의 아름다운 신부의 빛나는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고, 감정에 복 받혀 속삭입니다. “당신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뵈올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스티브 로슨은 말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 2:9).”
이것 뿐이 아닙니다. 이 하늘 잔치에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도, 친구들이 많지 않아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차별 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그 영광의 잔치에 앉게 할 것입니다.
왜 이 영광스러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비록 이 땅을 사는 동안, 고난과 박해를 당할지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고난이 닥칠지라도, 하늘의 상이 있음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그의 친밀하고도 영원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날에 알게 될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과 맺은 관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 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피하고만 싶은 두려운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죽음은 신랑 그리스도의 영광의 얼굴을 뵙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실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편 73:25–26).” 이런 복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9장 강해성경말씀]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1-21)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9장 강해 성경말씀 중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활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신부들은 거룩한 주님의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신부의 옷을 입고 신랑이신 예수님과 혼인 잔치를 하게 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혼인을 맺고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제목: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 19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계 19:1-21
요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9)
주제: 모든 심판 멸망을 받지 말고 신랑 예수님과 혼인하는 신부 교회와 성도가 되자
오늘은 계시록 19장을 강해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을 차례로 살피는 중 계 16:17부터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을 살피고 있습니다. 계 17장과 18장에서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 배교한 교회의 멸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19장은 1-5절에서 하나님의 바벨론 음녀 심판을 찬양하는 천상 예배가 소개되고 있으며, 6-10절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에 대해서, 11-21절은 백마를 타신 주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상예배 (계 19:1-5) The heavenly worship after the fall of Babylon
1) 바벨론 음녀 멸망 후 찬양(계 19:1-3)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말하기를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 말하기를 ”할렐루야“ 하더니 그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천국에 있는 천사들과 먼저 간 성도들을 다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니다. 앞서 17장과 18장에서 바벨론의 큰 음녀는 마침내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the great whore)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찬송의 이유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들과 배교는 세상을 장악하였고 그들이 세력이 지속할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순식간에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이들의 멸망 전에 힘을 다하여 참된 성도들을 심히 핍박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돈과 육신의 쾌락과 음란의 유혹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또한 고난과 핍박과 순교까지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간섭하셔서 그분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모든 고난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 즉 배교한 교회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의 피를 많이 흘린 그 배교한 교회에 반드시 갚으실 것입니다. 배교하는 교회와는 달리 천사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께 오직 영광을 돌리며 두 번째 “할렐루야” 찬양을 합니다.
바벨론의 큰 음녀에게 내린 심판 불의 연기가 무궁토록(for ever and ever) 올라갑니다. 이에 대한 성경 구절을 찾아봅시다.
계 14: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8:9“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계 18: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창 19: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사 34:9-10“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유 1:7“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배교한 교회, 성도, 적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사람들, 사탄 마귀 권세는 영영 무궁토록 불에 타서 연기를 내뿜게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2)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과 경배(계 19:4-5)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말하기를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그분의 종들 곧 그분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이십사 장로(계 4:4, 10, 5:8, 14, 11:16 )와 네 생물(계 4:6-7, 9, 5:11, 14, 15:7)은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예배를 돕는 이들로 “아멘, 할렐루야” (계 5:14, 대상 16:36, 느 5:13, 8:6, 시 41:13, 72:19, 89:52, 106:48, 렘 28:6, 마 6:13, 28:20, 고전 14:16) 등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이들은 천상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좌에서 음성이 납니다.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의 음성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계 7: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계 11:19“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 16:17“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말하기를 ‘되었다’ 하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그분의 종들 his servants’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노인이든지 어린 아이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의 구원을 찬송해야 합니다. 지상교회도 늘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모든 악의 세력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의 뜻이 “너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Praise ye the Lord”입니다. 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행을 해야 합니다.
2. 어린양(그리스도)와 신부(교회)의 혼인예식 (계 19:6-10) The Marriage Supper of the Lamb
6 또 내가 들으니 많은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말하기를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분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섭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으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the marriage supper)로 표현됩니다. 혼인은 연합을 말합니다. 신부는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키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부활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광중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누릴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왔으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은 연합으로 나타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고전 12:27). 그러나 그것은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신부가 입게 될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옷입니다(8절).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입니다. ‘옳은 행실’이라고 번역된 원어(디카이오마타)는 ‘의(義) the righteousness of saints’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말합니다(빌 3:9). 인간의 행위의 의는 불완전합니다. 이사야는 인간의 의가 더러운 옷 즉 누더기 옷과 같다고 말합니다(사 64:6). 오직 예수님께서 주신 의만이 완전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의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록 보잘것없어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위한 당연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누릴 천국의 영광을 혼인 잔치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기쁘고 즐겁고 참된 만족을 주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누릴 기쁨과 만족은 이 세상의 가장 큰 기쁨과 만족보다 더 큽니다.
2)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되도다(계 19:9-10)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왜냐하면 예수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기 때문이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너무 감격하여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그 천사는 자기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천사가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하나님의 영에 의한 대언(代言) 사역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일곱 가지 기적(표적 semeion)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포도주 문제를 해결해 주심(2:1-11)
2)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4:46-54)
3)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된 중풍병자 고치심(5:1-9)
4) 오병이어 (6:5-14)
5) 갈릴리 호수위로 걸어오심 (6:16-21)
6) 예루살렘에서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 고치심(9:1-7)
7)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 살리심(11:1-44)
참고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 이다” (헬라어, ego eimi)가 일곱 번 나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3) 나는 양의 문이다(10:7, 9)
4) 나는 선한 목자다(10:11, 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5)
일곱 개 표적가운데 첫 번째 표적과 계 19:9-10의 천국의 어린양 혼인잔치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키아즘 구조). 가나의 혼인잔치 표적에서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로 잔치의 매니저와 신랑 및 참석한 사람들에게 먹이심으로 제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며 앞으로 천국의 혼인에서 신랑 되심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신부로 단장하고 이 혼인을 늘 준비해야 합니다.
계 19:1-10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큰 음녀 즉 배교한 교회로부터 분리된 삶을 사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하늘의 천사들과 화답하여 힘차게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공의의 심판과 은혜의 구원을 찬송합시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 즉 성도가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사모합시다. 거기에는 더 이상 죄가 없고 슬픔이 없고 질병과 고통도, 피곤과 낙심과 방황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완전하고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그 영광을 사모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신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거룩함과 의를 간직하고 그 거룩함과 의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찬송 176장(통 163장)
①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아는 이가 없으니 등 밝히고 너는 깨어있어
주를 반겨 맞으라.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으라
② 주 오늘에 다시 오신다면 부끄러움 없을까 잘하였다
주님 칭찬하며 우리 맞아주실까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으라
③ 주 예수님 맡겨 주신 일에 모두 충성 다했나
내 맘 속에 확신 넘칠 때에 영원 안식 얻겠네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으라
④ 주 예수님 언제 오실는지 한밤에나 낮에나
늘 깨어서 주님 맞는 성도 주의 영광 보겠네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으라
3. 백마 탄 예수님의 심판(계 19:11-21) The Rider on a White Horse
1) 백마를 탄 충성과 진실(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성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백마와 탄 자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은 전쟁을 수행하는 기동력과 힘을 나타내고 흰색은 성결함을 나타냅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심판은 신속하고 힘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충성과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즉 택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하는 일을 충성스럽게 완수하셨습니다(요 6:39-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구령 사업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고 참되신 구주이십니다. 또 그분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는 자이십니다. 그분의 심판은 공의로울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공의롭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싸울 대상은 모든 악한 자들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를 포함한 모든 악인들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모습과 하늘의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름(계 19:12-14)
12 그 눈들(eyes)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이라 부르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불꽃같은 눈(his eyes were as a flame of fire)은 그분의 꿰뚫는 지식과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또 그의 머리에 많은 면류관은 그분이 많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이름들, 즉 주님, 예수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 충성, 진실 등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밖에 아는 자가 없는 한 이름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신성의 이름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에게 신비에 감추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 뿌린 옷을 입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나타내거나, 혹은 원수들을 심판할 때 그들의 피가 그분의 옷에 묻을 것을 말합니다(사 63:1-3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냐?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냐?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또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Logos)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님이십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히 4:12-13“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upon, and our hands have handled, of the Word of life.”
요일 5:7 “하늘에 증거 하시는 분이 세분이시니 아버지, 말씀, 성령이시라. 이 세분은 하나이시라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그분을 따르는 하늘 군대는 선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살전 4:16-17“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후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천사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것은 성결함과 기동력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도울 천사들은 다 거룩하고 능력이 있는 자들입니다.
3)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계 19:15-16)
15 그분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천국 혼인잔치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장차 재림하시는 주 예수님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a sharp sword)이 나오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분의 말씀은 심판의 능력을 가진 말씀입니다. 그분은 두려운 말씀으로 만국을 치실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친히 철장(a rod of iron)으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분을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포도주 틀을 밟듯이 그분의 원수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바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계 17:14). 모든 왕들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요 모든 주인들의 참 주인이십니다.
4) 태양에 서 있는 천사가 모든 새들을 향해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명함(계 19:17-18)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천사가 태양에 선 것은 온 세계의 새들이 볼 수 있도록 외치기 위함 입니다.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됩니다. 본문의 큰 잔치는 하나님의 심판의 잔치입니다. 그것은 새들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고기를 먹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은 예언된 대전쟁에 참여한 자들이 처참하게 죽을 것을 의미합니다.
5) 사탄의 수종자들과 거짓 대언자들 및 추종자의 완전 멸망(계 19:19-21)
19 또 내가 보니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대언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의 연합군은 재림의 주님과 더불어 싸우려 하다가 패하며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는 잡혀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독재적 통치자와 교황이든지 혹은 그 국가와 그 교회가 멸망하고 맨 먼저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산채로 던져진다는 말은 그들이 악인의 부활체를 입은 후 지옥 불 못(a lake of fire)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8에서,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라고 예언합니다. 또 그 전쟁에 참여한 나머지 사람들도 다 죽어 새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의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고 권세 있는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그분을 따라 내려와 그분의 심판을 도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는 결국 잡혀 산채로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배교한 교회는 일시적으로 번영하고 사치할 것이지만, 마침내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써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며 죄악 된 일을 버리고 오직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들릴 때 나의 이름도 불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찬송 180장(통 168장)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후렴)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다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저희들로 하여금 신부로 단장하고 준비하여 신랑 되시는 주님과 천국에서 혼인하여 무궁한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모든 악인들, 적그리스도 따르는 자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짐승과 거짓 대언자들과 함께 영원히 멸망당함을 늘 기억하게 하사 백마를 타신 예수님만 따르고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의의 길로 가서 마침내 구원받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되고 아름답다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지금은 한·중·일 모두 주로 결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결혼이란 말보다 ‘혼인(婚姻), 가취(嫁娶), 혼가(婚嫁), 혼례(婚禮), 성혼(成婚), 혼취(婚娶), 가약(佳約)’ 등의 다양한 용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은 단어가 많았다. 결혼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증거가 된다. 혼인의 비유적 표현은 음녀와 음행으로 암시되어 있던 자들과 반대되는 긍정적인 관계를 환기시킨다. 이상적인 혼인은 상호 간의 동의와 애정에 근거를 둔 평생의 협력관계이다. 결혼에서 ‘맺을 결(結)’ 자는 이왕 맺을 일이라면 ‘길(吉)하게 맺으라’는 뜻이다. ‘혼인할 혼(婚)’ 자에 ‘저물 혼(昏)’ 자다. 어둑어둑해질 때 혼례를 올렸다. 이때 양가 모친 앞에 있는 촛불을 켜는 ‘점초’ 또는 점촉(點燭) 의식이 필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종말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묘사하기 위해 혼인 잔치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잔치 이미지는 부활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부활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준다.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을 수 있게 한다. 어린 양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한다.
구약에서 종말의 잔치 이미지가 특별히 혼인 잔치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기쁨과 구원이 연결된다. 슬픔과 압박 그리고 수치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혼인의 이미지를 사용했던 선지자들의 전승과 같은 전승들과 연결될 수 있게 한다. ‘혼인 잔치’ 주제는 요한계시록 19장에만 나온다. 다가오는 메시야 시대에 의해 잘 알려진 표상이었다. 메시야 잔치는 유대 사상의 통상적인 주제다. 이사야 25:6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화려한 잔치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사망은 멸하신다. 자기 백성의 눈물과 수치를 제하실 것이다(사 25:8). 요한 전승에서, 선지자 요한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신부를 취하는 혼인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묘사한다(요 3:29).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제공함으로 예수님은 암시적으로 신랑의 역할을 주장한다(요 2:1-11).
1.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보면,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이다’는 단어를 설명해 준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익숙함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잔치에 초청받는 것이 그렇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잔치’는 혼인 비유에 표현된 친근한 교제 사상을 강조한다. 잔치는 친밀한 식탁 교제의 장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과 식사하는 장면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복 된 까닭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교제의 즐기는 상이기 때문이다. 잔치집의 먹을 게 얼마나 많으냐가 관건이 아니다. 음식이 풍성하다고 더 행복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행복감이 더 커진다는 믿음은 잘못이다. 심리학자 Barry Schwartz는 ‘선택의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행복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음식을 선택하는 폭이 넓은 것보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과 얼마나 가까운 지가 더 중요하다. 들러리도 행사업체도 하객도 아닌 신부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신랑이 누구인가. 신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다. 성경적으로, 왕의 혼인 잔치에서 신랑은 말을 타고 허리춤에 칼을 차고 진리와 공의를 행하는 승리한 인물로 묘사된다. 다음 장면에서 이 이미지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혼인은 일반적으로 기쁨이 그 특징이다. 고대 문헌들은 신랑신부들의 기쁨을 고무시키기 위한 혼인 하객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천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에 대해 말할 때 이 비유적 표현은 신부로부터 손님들로 그 대상이 변경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신부이며, 손님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손님이다. 이중적인 상징이 차용되어 있다. 그 신부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이 하나다. 독립 다큐 영화 ‘B급 며느리’에서 여주인공 김진영(36세)은 “며느리도 ‘손님’이란 거다. 사위를 보통 ‘백년손님’이라 하지 않나. 그런데 며느리도 사위와 다를 게 없다. 왜 사위만 손님 대접을 받고 며느리는 못 받는가.”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린 양의 신부이면서 영원한 손님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라는 어구는 이례적(unusual)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전치사구가 정관사와 그 관사의 지배를 받는 실명사 사이에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혼인 잔치의 초청, 즉 청첩장은 구두나 글로 주어진다(마 22:1-10). 초대의 글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테모르디스는 그의 집에서 내일 열리는 그의 딸의 혼인식 잔치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또는 “혼인식에 당신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당신을 초대합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사이에서 청첩장을 받을 때 머리가 복잡해진다고 한다. 청첩장을 보내면 축의금을 마련해 가야 한다. 요즘의 교통 사정을 감안하면 거의 반나절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 예식장에 간다. 일종의 세금 고지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받은 축하금은 언제든 돌려줘야 할 빚인 셈’이란 것이다. 그래서 아주 절친한 사이가 아니면 ‘안 주고 안 받으면 되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친분에 대한 회신율’이 60%에 불과하다고 한다.
2. 복 되도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여!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손님으로 청함을 받는다. 누가 초대장을 보냈는가. 결혼관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주도권이 강조된 단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호의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다. 잔치는 은혜로운 것이다. 초대장이 있으면 참석할 수 있다. 축의금이 아니다. 은혜다. 공로나 선행이 아니다.
바울 서신에 있는 선택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으로 언급된다. ‘청함을 받은’이라는 단어가 ‘택하심을 받은’과 거의 동의어라는 사실이 확증한다. 하나님은 신부에게 혼인 예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를 바라는 자들을 ‘초청하신다.’ 하나님의 초청이다. 단체가 아닌 개인적이다. 교회 공동체보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이 자신의 것으로 부르신다. 택하신 자들이 초청에 응한다. 저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것과 백마 탄 자에 의해서 패배한 원수들의 시체로 잔치를 벌이도록 새를 초대하는 것과 대비시킨다. 성도들은 교회로서 신부이면서 초청받은 손님이다. 둘 다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긴밀한 교제를 묘사한다. 전자는 교회 공동체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후자는 교회를 이루는 개개인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은유의 결합은 이미지에 풍성함을 더하기 위하여 고대 세계에서는 흔히 사용되었다. 여전히 하나님은 통제하시는 분이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리라는 약속은 흔하게 나타나는 문학적 형태다.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하나의 지복(beatitude)이라 할 수 있다. 일곱 복 중의 네 번째다. 선언된 ‘복 되도다’는 법적인 상황에서 의롭다고 인정함 또는 상 받음이라는 사상과 관련이 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복 되도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 악과 사망의 최종 멸망과 함께 임하게 될 풍성한 생명을 예견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말은 ‘선언’하는 행위로서 세상을 바꾼다. “피청구인 대통령을 파면한다”라는 헌법재판관의 말 한마디는 살아 있는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말은 곧 행위다. 행위가 모여서 세상을 주조한다. 다만 말이 행위가 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말하는 이의 자격이다. ‘복 되도다’을 선언하는 이가 전능하신 이가 아니라 유한한 인간이라면 가짜라고 말할 것이다.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다. 왜 복이 있는가. 통상적인 관례를 생각해 보자. 결혼식장에서 복을 비는 자는 하객들이다. 신랑과 신랑의 행복을 기원한다. 요즘은 예식장이지만 그 때는 손님들이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데려가는 횃불 행렬에 참여한다. 혼인은 신부의 집으로 가는 행렬로 시작된다. 뒤이어 이 행렬은 혼인 잔치를 위해 신랑의 집으로 돌아왔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약혼한 교회는, 이제 그의 하늘 신랑이 신부를 위해 오고, 함께 하늘로 돌아가 영원토록 혼인 잔치를 하는 그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 사회적 관례에서, 혼인 예식에는 잔치와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하는 행진이 포함된다. 가는 길에, 사람들은 신랑·신부에게 복을 외친다. ‘복 되도다’에 해당하는 ‘Μακαριοι’(마카리오이)를 외친다. 그들이 행복하고 번성하며 아이들을 많이 갖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대상이 바뀐다. 신랑신부가 아닌 손님들이다. 손님들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혼인 잔치에 단지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손님이면서 그들은 어린 양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이다. 생명과 평강이 영원히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배자들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신부의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예견하는 다가올 혼인 잔치를 내다본다. 그 후에 한 천사가 혼인 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에게 복을 선포한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이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꼽는다.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것은 이보다 더 복되고 아름답다.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의 통해 사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속죄적 고난을 통해 사랑을 느꼈다. 이 희생은 그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그가 신부인 자기 백성들에게 ‘충실과 진실’이 될 것임을 보여 준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다음은 Bing에서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 CBS
- 성서학당
- 요한계시록
- 송태근 목사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YouTube에서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BS 성서학당 요한계시록 48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송태근 목사) | 어린 양 의 혼인 잔치,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